마음이 흔들린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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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1:32 조회3,908회 댓글0건본문
마음이 흔들린 요한
마음이 흔들린 요한
2013년 12월 29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1:1~15
본문 말씀은 1절과 2~15절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전도하러 가셨다고 기록되어있고, 2~15절에 보면, 세례 요한에 대해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주시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고, 천국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예수님께서는 가르치고 전도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다니던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잘 가르치시기만 하신 것이 아니고, 친히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론적인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운 대로 실천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3년 동안 항상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며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말씀 전하시는 것을 일일이 보게 하시고 듣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배우도록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가장 훌륭한 스승은 신앙과 인격과 삶에 있어서 본을 보여주는 스승입니다. 말씀을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앙과 인격과 삶의 본을 보여주는 스승이 훌륭한 스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정말 좋은 스승을 만났습니다. 저를 전도한 친구의 큰 형님이 그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성령 충만한 분이었습니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 허물 잡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성품이 얼마나 좋은지, 그분과 부딪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분을 싫어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충성하고 봉사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최고 신랑감이었습니다.
저는 그 형님이 신앙생활하는 모습과 인격과 성품을 그대로 본받으려고 노력하고, 형님의 삶을 그대로 본받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형님은 기도를 많이 하셨습니다. 형님이 삼각산에까지 가서 기도하시면, 저도 따라가서 기도했습니다. 형님이 부흥회에 가면, 저도 형님을 따라 부흥회에 갔습니다.
겨울에 한강이 얼었을 때, 형님이 철야기도하러 한강변에 가면, 저도 형님을 따라가서 형님 옆에 가마니 깔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강바람이 불어 얼마나 추운지, 가마니를 뒤집어쓰고 떨었습니다.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제가 뭘 알겠습니까. 저는 그저 형님이 하는 대로 따라했습니다. 그것이 제게 얼마나 큰 축복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신앙과 인격, 삶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언제나 예수님 닮는 것을 목표로 삼고, 예수님의 신앙과 인격과 삶을 본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가장 올바른 생각은 예수님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장 바른 말은 예수님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가장 올바른 삶은 예수님처럼 행동하고,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면서 사는 비결입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가리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 역시 완전한 인간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훌륭한 사람에 대해 말할 때에 지나치게 과장해서 말하다 보면, 그 사람을 예수님처럼 높이기 쉽습니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예수님과 같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허물과 죄가 전혀 없으시고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인간은 모두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그 사람을 예수님처럼 높이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잠시도 살 수 없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감옥에 갇혀있는 세례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냈습니다. 세례 요한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께 궁금한 것을 질문하여 답을 받아오게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마 11:3). 이 말은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라는 의미입니다. 세례 요한 같은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일입니다.
누가복음 1장에 보면, 세례 요한이 특별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도록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기도하여 응답 받아 낳은 아들이 세례 요한입니다.
사가랴가 하나님 앞에 제사 지내고 있을 때, 하나님 앞에 분향하는 시간에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사가랴에게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눅 1:13~17).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세례 요한이 먼저 이 땅에 와서 예수님이 오실 것을 준비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3장에 보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먼저 유대 광야에 나타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외쳤습니다(마 3:2). 그때 많은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때 세례 요한은 철저히 회개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라고 말했습니다(마 3:11~12).
마태복음 3장을 계속해서 살펴보면,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러 오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자, 세례 요한은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라고 사양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서 예수님 위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이보다 확실히 증거하는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례 요한은 이 모든 것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갑자기 예수님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질문했으니, 얼마나 기막힌 질문입니까.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이 왜 이렇게 질문했을까요?
세례 요한은 지금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3~4절에 보면,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례 요한이 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헤롯 왕은 양심이 없고, 비인간적인 사람입니다. 왕이면서 자신의 동생에게서 아내를 빼앗아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왕에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왕에게 함부로 말했다가는 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왕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 당신이 한 일은 옳지 않다.”라고 책망했습니다. 그랬더니 헤롯 왕은 세례 요한을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세례 요한을 죽이려고 했으나, 백성들이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기 때문에 죽이지는 못하고, 그 대신 감옥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지금 세례 요한이 당하는 고난은 의인의 고난입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아닙니다. 그리고 헤롯 왕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해야 하는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헤롯을 왕의 자리에 그대로 두시고, 세례 요한은 억울하게 고난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은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서 고생하고 있는데, 왜 예수님은 한 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시고 가만히 계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가만히 계시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신 큰 권능으로 옥문을 열어주시고, 세례 요한을 구원하실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고난을 잘 참고 견뎠지만, 인내에 한계를 느껴 이런 질문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세례 요한이 자기중심적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세례 요한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지만, 완전하지는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례 요한은 깨끗하게 살았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결혼하지도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일찍 광야에서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하며 성령 충만한 가운데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나타나서 예수님에 대해 증거한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세례 요한은 순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세례 요한을 죄 없는 의인, 완전한 사람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우리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본문의 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저와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의 믿음이 훌륭해보여도 세례 요한 역시 연약함이 있는 인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1:4~5).
이것은 보통 선지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메시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너희들이 듣고 본 대로 가서 요한에게 말하라’는 것은 ‘내가 메시아다.’라는 의미입니다.
본문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어떤 처지에 있다 해도 실족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어떤 일을 당한다 해도 실족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는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는 내게 구하라.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음성을 들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면,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토마스 아 켐피스는 “저는 그리스도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다른 것은 구할 것이 아무것도 없고,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것을 다 잃어버려도,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고난을 당한다 해도 실족하지 않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7절에 보면, 제자들이 떠난 후에 예수님은 무리에게 요한에 대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로부터 사람의 마음은 조석변(朝夕變)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아침과 저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변화가 심합니다.
베드로를 보세요.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자신은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과장해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진심을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정말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한 젊은 여자가 베드로에게 “너도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라고 말하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막상 위험한 일을 당하면, 흔들리는 것이 인간입니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인간입니다.
세례 요한은 믿음이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그도 흔들릴 때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체험하고 증거를 받았다면,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에 은혜를 받고,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학교 분위기가 초등학교 때와 어찌나 다른지 많이 놀랐습니다. 그 당시에는 교회에서 학생 수가 적었기 때문에 중ㆍ고등부가 같이 모였는데, 교회에서도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중ㆍ고등학교 6년 동안 어떻게 하면 은혜 받는 생활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을까.’라고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세 가지를 결심했습니다.
첫째, 예배에 절대 빠지지 않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예배에는 빠지지 않는다.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예배는 꼭 드린다.
둘째,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한다. 학교에 갈 때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학교에서 돌아올 때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저녁 먹고 난 후 교회에 가서 기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모자란다고 생각되면 철야기도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셋째, 매일 성경을 1장 이상 꼭 읽는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계속해서 실천했습니다.
그런데 제 신앙이 얼마나 요동치는지, 마치 바다의 파도 같았습니다. 올라갈 때에는 마치 천사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내려갈 때에는 마치 마귀와 같았습니다. 중ㆍ고등학교 6년을 돌이켜보면, 얼마나 풍파가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세 가지 결심을 실천했습니다. 그랬더니 마귀가 저를 아무리 넘어뜨리려고 해도 마치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중ㆍ고등학교 6년의 시간 동안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받은 은혜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니, 고등부 학생들이 헌신예배를 드리는데, 제게 설교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때 고등부 헌신예배 시간에 설교를 했습니다. 지난 6년 동안 세 가지를 결심하고 실천한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본문 8~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라는 말은 보통 수준의 선지자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통해 세례 요한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가리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세례 요한을 최고로 높여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세례 요한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본문 13~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얼마나 훌륭한 인물인지를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런데 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 시대에 속한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 시대에 속한 사람 중에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는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들 중에 가장 큰 사람입니다. 구약 시대에 세례 요한처럼 깨끗하고 훌륭하게 살았던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시는 사건 이전에 죽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 시대의 인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죽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 사함 받아 마치 죄를 한 번도 범하지 않은 사람처럼 깨끗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의롭다 함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바로 그 전에 죽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이지만,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 사함을 받아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죄를 범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의인의 모습으로 서게 된다고 생각하며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후부터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 받고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천국을 침노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의 우편에 달렸던 강도는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눅 23:42). 평생 강도 짓을 했던 사람이었지만, 십자가에 달린 채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3:43).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요, 가장 큰 축복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우리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 사함 받았음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가장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고,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은혜와 축복을 늘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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