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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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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8 10:01 조회4,1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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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2005년 03월 13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1:28~30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 물질문명이 발달하여 생활이 편리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 받는 사람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삶의 고통은 지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지금보다 더 어려울 때도 무수히 많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삶의 고통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라고 아담에게 물으셨을 때에, 얼른 엎드려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변명만 늘어놓았습니다.

 

창세기 3장 16~19절에 보면, 이들이 범죄한 결과, 여자는 잉태하는 고통과 해산의 수고를 해야 했고, 남자는 먹고 살기 위해 땀을 흘리며 노동해야 하는 고생을 해야 했으며, 누구를 막론하고 질병과 죽음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기 전에는 먹고 살기 위한 고생이나 인간관계로 인한 갈등, 질병, 죽음의 고통이 없었습니다. 지금껏 인간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보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인간이 타락할수록 고생과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병은 더 많아지며, 더 많은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은 죄입니다. 이 땅에 죄가 없으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왜 고민하며 고통 당해야 합니까? 그것은 그 뿌리가 죄에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죄의 고통을 알면서도 계속 죄를 범하고 사는 까닭은 죄악에 낙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대부분의 사람이 죄악으로 인해 누리는 낙은 잠시뿐이나, 죄로 인해 받게 되는 고통은 매우 크고 끈질기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도 왕으로서 육신의 쾌락을 따라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이 살았으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결론 내렸습니다(전 1:2).

결국 죄로 번민하며 살다가 가는 것이 한스러워 죽기를 원하는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죄의 결과는 이처럼 비참합니다.

 

인간이 불행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만드신,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을 무척 사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행복하려면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들은 하나님을 떠나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행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곧 방종의 생활을 뜻합니다. 이런 사람은 정욕에 사로잡히고, 죄의 덫에 걸려 결국 하나님을 떠나 마귀의 종이 됩니다. 인간의 불행은 여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도적입니다(요 10:10). 우리에게서 좋은 것을 다 도둑질해갑니다. 마귀의 종이 되면, 고귀했던 인격을 도둑맞습니다. 사랑이 없어집니다. 존경과 명예도 한순간에 땅에 떨어지며, 행복도 건강도 잃고, 재산도 탕진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믿음을 죽이고, 결국 불행한 인간이 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탕자를 보면, 아버지의 집을 떠나 타국에서 제멋대로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막다른 골목에서 돌이키고, 아버지의 집에 돌아옴으로 말미암아 회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귀의 종이 되어 근심 걱정하며 고생하는 인생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전지전능하고 절대주권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저주 받은 우리를 은혜로 대속해주셨으며,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메시아가 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는 말씀은 이 세상의 어떤 종교도, 교주도, 그 어떤 사람도 말한 적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여러분, 사람을 의지하거나 기대하지 마십시오. 기대하는 만큼 실망하고 상처 받게 됩니다. 도와주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부담만 주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아내도, 남편도 너무 의지하지 마세요. 아무리 자식을 훌륭하게 키웠어도 그 자식에게 기대를 갖지 마세요. 반드시 섭섭해 할 날이 옵니다. 부모가 자식을 너무 의지하면 부담이 되어 자식도 부모 곁에서 도망가고 싶어집니다.

솔직히 인간은 다 연약하기 때문에 문제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는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29~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라는 말씀은 무척 부담됩니다. 여기에서 ‘나의 멍에’는 무슨 의미일까요?

 

예수님의 멍에란?

첫째, 예수님을 믿는 수고를 가리킵니다.

일평생 먹고 사는 수고도 무거운데, 예수님을 믿는 수고까지 짊어지라면,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고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 아직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한 주에 한 번 교회에 나오는 것도 무척 힘듭니다. 바빠 죽겠는데, 할 일이 많은데, 돈도 더 벌어야 하는데, 피곤한데, 낮잠도 자고 싶고, 놀러 가고 싶고 ….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체험을 한 사람,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수고로운 것이 아니라, 너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결코 짐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일이 기다려집니다.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Leo Tolstoy)는 15세까지는 교회를 잘 나갔습니다. 그러나 18세 되던 해에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든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친구의 말이 진리로 여겨졌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종교는 자신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종교를 버리고 제멋대로 자유롭게 살다가 55세에 이르러 주님께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종교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품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예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발견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에게 참 평안을 줄 사람도, 참 평안을 누릴 장소도 없습니다. 참 평안은 오직 예수님만이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27).

세상이 주는 평안은 잠시뿐입니다. 불완전하고 금방 사라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영원하고 완전하고 참 만족을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는 수고가 있다할지라도 예수님을 믿으므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기쁨과 행복과 평강은 매우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과 함께 지고 가는 십자가를 가리킵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 보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따라가려면, 반드시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지려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시며 사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한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마지막에는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으로 구원 받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일 가운데 이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8장 18~20절과 마가복음 16장 15절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9절에서 예수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시며 그 이유를 두 가지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시고 겸손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예수님의 짐은 가볍기 때문입니다.

멍에는 본래 소를 괴롭히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소가 논이나 밭을 갈 때, 일을 편하게 잘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하나의 멍에에 구멍을 두 개 뚫어 두 마리의 소가 함께 멍에를 지고 일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소 한 마리가 혼자서 일할 때보다 둘이 일할 때 훨씬 쉽고 일의 능률이 더 높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인생의 짐이 무겁고, 고생이 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지고 가면,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짐을 대신 져주시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편히 쉼을 얻게 됩니다.

물론 예수님과 함께 지고 가는 십자가는 고난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작고 잠시뿐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갈 때에 얻는 기쁨과 영광은 매우 크기 때문에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고통을 당할 때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수고와 고난이 크지만, 장차 받을 영광은 이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8장 16~18절에 보면,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살아가기가 어려운 이때에 홀로 짐을 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주님 앞에 나아오세요. 주님을 찾으세요. 주님 앞에 부르짖으세요. 주님과 함께 주님의 멍에를 매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에게 있을 축복과 영광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기쁨으로 예수님을 믿고, 기쁨으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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