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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0장

전도자에게 대한 주님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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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1:29 조회3,4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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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에게 대한 주님의 위로

 

전도자에게 대한 주님의 위로

2013년 12월 22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0:40~42

 

예수님 당시에는 목회자의 생활비와 선교사의 선교비를 맡아서 후원하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선교사가 선교하기 위해 여러 나라, 여러 지방으로 다닐 때에 묵을 수 있는 곳이 있지 않았고, 있다 하더라도 거기서 하룻밤을 쉴 만한 돈이 선교사에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열두 명의 제자들을 전도하러 내보내셨을 때, 아마 제자들은 걱정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0장 9~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없는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품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일을 해도 일을 하면, 한 일에 대한 대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일보다 천 배, 만 배 더 소중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 25:4). 곡식 떠는 소, 즉 일하는 소는 마음껏 먹으며 일할 수 있도록 망을 씌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소를 생각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이 없도록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도하는 제자들을 위로하시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이 책임져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먹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삯을 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책임져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0장 11~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합당한 자를 찾아내면, 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 동안에는 그 집에서 떠나지 말고, 그 집에 거주하면서 복음을 전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집의 사람들을 축복해주라는 것입니다. 그 집의 사람이 축복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면, 그 복이 그 집에 임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 집의 사람이 축복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복이 그 집에 하나도 임하지 않고, 복을 빌어준 제자들에게 돌아온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합당한 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이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 은혜 받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의 특징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여러분은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 중에 은혜 받은 사람에게는 자신이 구원 받은 것에 대한 감사가 있고, 장차 천국에 들어가서 살게 될 것을 생각하며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 받은 것을 생각하며 주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은혜 받은 사람에게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복음 전하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고, 그들을 사랑합니다. 그들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혜 받은 사람은 복음 전하는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서 충성 봉사하고, 기쁨으로 헌금하고, 복음 전하는 사람들에게 잘 대접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말한 ‘합당한 자’에 속합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적은 수였지만 이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16장 1~2절에 보면,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겐그레아교회의 뵈뵈라는 여인은 사도 바울이 그 교회에 오기만 하면, 꼭 자기의 집에서 주무시게 하고,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사도 바울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오면, 그들을 대접하는 일을 책임졌습니다. 뵈뵈는 그 교회에 찾아오는 주의 종들을 잘 받들어 섬겼습니다.

 

로마서 16장 3~4절에 보면,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라는 부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을 가리켜 ‘나의 동역자’라고 했습니다.

브리스가는 보통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브리스가가 처음 사도 바울을 만났을 때에는 장막 치는 일을 같이 했습니다. 그리고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사도 바울이 마음껏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하며 사도 바울을 도왔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부부에 대해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집이 교회였습니다. 이 부부의 집에서 항상 예배를 드렸습니다.

 

로마서 16장 13절에 보면,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루포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힘이 없어 쓰러지고 넘어지시니까 루포가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갔습니다. 루포는 그만큼 예수님을 잘 믿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사도 바울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준비해주고, 친아들처럼 대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를 가리켜 “내 어머니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 25절 이하에 보면, 사도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3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라고 기록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교회를 대표하여 빌립보교회에서 헌금한 것으로 로마 감옥에 있는 사도 바울을 잘 섬겼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주의 일을 하다가 병들게 되자 사도 바울과 빌립보교회에서 에바브로디도를 위해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에바브로디도를 살려주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3~15절에 보면,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루디아의 집에 찾아갔기 때문에 루디아가 사도 바울을 자신의 집으로 영접한 것이 아닙니다. 루디아가 사도 바울에게 “제발 우리 집에 와서 머물러 있다가 가라”라고 강권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루디아의 집에 있는 동안, 루디아는 사도 바울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루디아는 빌립보교회에서 기둥 같은 일꾼이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에게 사랑을 베푼 교회나 성도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빌립보교회는 아주 특별한 교회입니다. 빌립보서 4장 15절 이하에 보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시초에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빌립보교회의 성도들만이 사도 바울에게 여비를 주고 후원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두 번이나 사도 바울의 쓸 것을 보내주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8~19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라고 기록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예언적으로 축복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교회, 이렇게 대접해준 성도들은 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그 교회를 위해 기도하게 되고, 자신을 후원하는 성도들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제가 신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 개척 교회에서 사역했던 적이 있습니다. 개척 교회이다보니 성도가 몇 명 되지 않고, 심방을 해도 심방비를 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나이도 어린데다가 주일 낮, 주일 저녁, 수요일 저녁, 매일 새벽 등 매주 열 번씩 설교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평일에는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신학교에 가서 공부해야 하니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지, 그래서 저는 날마다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제게 어머니 같은 성도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분은 자녀들이 다 장성했고, 물질이 넉넉한 분이었습니다. 은혜 충만하고, 성령 충만한 분이고,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교회에 여전도사님이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 같은 집사님과 함께 심방을 다녔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혼자 다닐 때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이분이 얼마나 뜨겁게 기도하시는지, 함께 심방을 다니며 제가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차비도 언제나 집사님이 내어주시고, 점심 식사도 언제나 집사님이 사주셨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책을 사보라고 하시며 제게 봉투를 주셨습니다. 그때 샀던 책을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돕는 천사를 붙여주신 것입니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없는 전도사를 위해 이분이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해주시는지, 어떤 때에는 저를 위해 한 주간 금식하며 기도하셨는데, 눈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돕는 자를 제게 붙여주시니까 성도 수가 3개월 만에 1백 명을 넘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역자와 선교사를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섬깁니다.

 

마태복음 10장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크든지 작든지 하나님이 쓰시는 주의 종들은 주님이 붙잡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오른 손에 그들을 붙잡고 쓰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들을 절대 홀로 두지 않으시고, 세상 끝 날까지 함께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약속은 신실한 약속입니다.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을 사랑해야 하고, 귀히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전도하러 다니며 합당하지 않은 자들을 만나게 될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0:14~15).

제자들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도 영접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0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들을 영접하지 않고 그들의 말도 듣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예수님을 저버리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소돔 고모라보다 더 큰 심판을 받게 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8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어느 날 낮에 자기를 찾아온 세 사람을 영접하고, 그들에게 정성껏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를 찾아온 사람들을 겸손한 자세로 정성껏 섬겼습니다. 창세기 18장 1~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매우 겸손한 자세로, 정성을 다해 그들을 영접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을 찾아온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창세기 18장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나타나셨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1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라고 말씀하시며 소돔 고모라가 멸망할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어떻게 축복하실 것인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구 같은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주십니다. 이사야 41장 8절에 보면,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을 가리켜 ‘하나님의 벗’이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18장 22절에 보면,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9장 1절에 보면,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두 천사만 소돔 고모라로 갔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서있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호와’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도 예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22장 41~46절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성령 충만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말씀하시는 놀라운 사건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면, 주님께서는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실 수 있고, 선지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실 수도 있고, 때로는 작은 자의 모습으로 찾아오실 수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아기로 태어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평소에 나그네를 영접하던 습관이 있어서 마리아가 만삭이 되어 해산하려 할 때에 영접해준 사람이 있었다면, 역사에 그 이름이 남았을 것이고, 천국에서는 영광이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들레헴 사람들 중에는 나그네를 대접할 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합당한 자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오죽하면 예수님이 마구간에서 탄생하셨겠습니까.

 

마태복음 25장에 기록된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양은 합당한 자를 가리키고, 염소는 합당하지 않은 자를 가리킵니다.

오늘날에도 복음 전하는 자들을 귀하게 여기고 존경하는 분이 있는 반면, 그들을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 전하는 자들을 왜 함부로 여기고 업신여기는 것일까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교회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주의 종들을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리새인과 서기관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들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보면,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5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믿음을 저버린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의를 행하지 않는 자,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마귀의 자녀, 즉 염소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양은 영생에, 염소는 영벌에 처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염소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염소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많은 선교사들과 주의 종들이 우리 교회를 방문하지만, 그들을 섬기는 것은 장로님들이나 열심 있는 직분자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니까 자신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평생 교회생활을 했어도 염소 같이 살면, 주님은 그 사람에게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형제에게 사랑을 베푸느냐 사랑을 베풀지 않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 양인지 염소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모두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2:14).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믿음의 증거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회개할 줄 압니다. 말씀을 듣다가 깨달으면 회개합니다.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은 변화됩니다.

그리고 믿음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믿음의 열매는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10장 41~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영접하는 사람은 상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선지자가 아니라 해도 선지자를 영접하고 선지자에게 잘 대접하는 사람은 선지자와 똑같은 상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의인들을 구원 받은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에 반가워하며 잘 영접한 사람은 의인의 상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이기 때문에 그를 영접하고 그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면, 상을 잃지 않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지 아십니까?

마가복음 10장 28~31절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4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제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제자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줄 것이 없어서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결단코 상을 잃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상’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복이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8절에 보면,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천국에서 받을 영광이 우리의 복이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고난을 받지만, 장차 우리가 받을 영광은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들을 잘 영접하는, 합당한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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