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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0장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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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1:14 조회3,4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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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2013년 11월 10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0:7~10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전도하러 보내시며 특별히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본문 7~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8절 끝 부분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고침 받은 사람들은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렇게 귀한 일을 할 때,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그냥 주셨습니다. 돈을 받고 권능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권능을 거저 받았으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금품을 요구하거나 무언가를 받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참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친히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3년 공생애 기간 동안 중요한 일을 하실 때, 가는 곳곳마다 환자들이 몰려와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치료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도 그냥 돌려보내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 앞에 온 사람은 모두 치료받고 돌아갔습니다. 심지어 사람이 너무 많아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았습니다. 얼마나 귀한 일을 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대가를 받으신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문제를 많이 일으킵니다. 이런 사람들은 거짓 선지자이거나 이단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물론 100%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 교회 어느 여자 집사님은 베풀기를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기도하다가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집에 쌀 한 가마니를 보내는 등 베풀기를 좋아하셨습니다. 부자인데도 집에 가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정작 본인은 가진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것이 소문나기 시작하니 목사라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집사님을 찾아와서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집사님이 돈을 쌓아놓고 있기 때문에 남에게 베푸시는 줄 알고, 집사님에게 많은 돈을 요구했습니다.

 

평소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돈이 별로 없습니다. 쌓아놓은 것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돈이 생기는 대로, 자신이 가진 것으로 베푸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에게 목사라는 사람이 집사님을 찾아와 급하다며 많은 돈을 요구했습니다. 이 집사님은 자신이 가진 돈이 없으니 “죄송합니다. 제게 돈이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왜 돈이 없냐며 도리어 욕을 하고, 성질을 냈습니다. 그래서 이 집사님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 집사님께 “좋은 일을 하면서 왜 소문이 나게 하냐. 예수님께서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냐.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사람들이 다 알게 하니 소문이 나서 별별 사람들이 다 찾아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소문나면, 자신이 영광을 다 받게 되고, 천국에 가서는 상 받을 것이 없습니다. 남을 도와줄 때에는 조용히 도와야 합니다.

 

OMF선교회에서는 선교회에 소속된 선교사들에게 누구에게든 아쉬운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남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오직 기도만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어떻게 공급해주시는가를 체험하고, 주님이 주시는 대로 살라고 합니다. 참으로 훌륭한 선교사들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찾아다니며 금품을 요구하는 사람은 잘못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집에 찾아오게 하거나, 다른 사람의 집에 찾아가서 기도해주고 돈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어린 사람들은 돈 봉투를 들고 그 사람을 찾아가서 기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기도해달라고 부탁하며 감사헌금이라며 돈 봉투를 건네주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것이 자신의 본업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신이 하던 일을 다 정리하고, 밤낮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주는 것을 본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 자신에게 기도하라고 하고, 남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지, 자신은 기도하지 않고, 돈 봉투 들고 다니며 기도해달라고 부탁하라는 말씀은 전혀 없습니다.

이것은 점쟁이에게 찾아가서 돈을 주고 점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보니, 기도하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기만 하고, 정작 자신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복을 받지 못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집사였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목사가 되었다는 경우가 있습니다. 6개월 동안 훈련 받으면 목사 안수를 주는 그런 것이 있나 봅니다. 그렇게 목사가 된 후 자신이 목사라며 직장도 그만두고 목사 대접을 받으려고 성도들에게 생활비를 요구하러 돌아다니며 성도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1시간만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빌린 돈을 가지고 도망간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지방으로 도망가서는 거기에서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교회마다 찾아가서 집회를 인도해주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사례비를 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집회를 인도하도록 허락했더니 집회를 인도하며 얼마나 헌금을 강요하는지, 성도들로 하여금 그 자리에서 헌금하도록 만들어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모아 가로챈 일도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일입니다. 그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다가 그 교회에서 헌금이 나온 것은 그 교회의 헌금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집회를 인도했으니까 그 교회에서 얼마를 주든 사례비를 주는 대로 받으면 됩니다.

이런 사람은 사기꾼의 기질이 있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6장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많은 재산을 모아서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님 중에 수십억, 수백억 원의 재산을 가진 경우가 있습니다.

 

사사기 8장에 보면,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워서 이긴 후에 백성들에게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라고 부탁합니다.

승리한 후 원수의 물건을 다 빼앗았으니 금 귀고리 하나를 줄 수 없겠습니까. 그래서 기드온에게 다 가져왔더니 1천 7백 세겔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대략 20kg이 된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에봇을 만들었는데, 에봇은 본래 대제사장이 입는 예복에 다는 것입니다. 에봇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사용하는 것인데, 20kg이나 되는 것을 옷에 달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이 에봇을 자신의 고향인 오브라에 갖다놓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소문이 나서 에봇이 우상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하게 되니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자신의 형제들을 한 바위에서 다 죽여 버렸습니다. 자신이 왕이 되려는 것입니다. 막내아들은 도망갔습니다만, 집안이 한순간에 망해버렸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주님의 말씀을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것은 주님을 저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을 저버린 것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7장 15~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마음에 들면 그대로 행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대로 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주시고도 사례비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감사표현을 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다 고침 받았는데, 사마리아 사람 한 명만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절하며 사례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17~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을 칭찬하시며 “감사하는 믿음으로 너는 구원 받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이 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하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면,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 받은 것이 감사합니까? 그것이 감사하다면 그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것이 그 사람에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여줍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감사합니까? 건강하지 못하면 교회에 나올 수 없습니다. 북한 동포들이 이렇게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클수록 그 사람은 믿음이 굉장히 성숙하고 장성한, 좋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 감사하세요.

저는 어렸을 때 예수님을 믿고 은혜 받고 나서 눈깔사탕을 하나 먹더라도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한 후에 먹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은혜를 받으니까, 믿음이 생기니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가 평소 하나님 앞에 헌금할 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사하는 믿음으로 헌금해야 합니다.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체면치레로, 형식적으로 해서도 안 됩니다. 언제나 자원해서 기쁨으로,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8장 1~3절에 보면,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이 대단했습니다. 환난이 많고, 시련이 많은데도 항상 기쁨이 있었습니다. 건강한 믿음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믿음이 건강한 사람들입니다.

걱정거리가 있다고 얼굴을 찡그리고 다니는 사람은 믿음이 작거나 믿음이 없는 증거입니다. 걱정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줄 믿고, 걱정거리가 오히려 축복이 될 줄 믿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대단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마게도냐교회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헌금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풍성하여 쓰고도 남을 정도로 헌금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힘대로 헌금한 것이 아니라, 힘에 지나치도록 헌금했고, 자원해서 헌금했다고 사도 바울이 칭찬했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5~7절에 보면,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헌금하는 자세에 대해 말했습니다.

 

첫째, 마음에 정한 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연말이 되면, 새해의 목표를 세웁니다. 새해의 목표를 세울 때, 1년 동안 하나님 앞에 이렇게 헌금해야겠다고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정한 대로 평소에 미리 준비해서, 항상 준비된 헌금을 하는 정성이 필요합니다.

 

둘째, 절대 인색한 마음으로 헌금해서는 안 됩니다.

인색한 마음이 있으면, 마치 자신의 것을 빼앗기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청지기이고,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역대상 29장 14절에 보면, 다윗은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기도합니다. 다 주님이 주셔서 받은 것이고, 다 주님의 것입니다. 다윗은 엄청난 금은보화를 바치면서도 자신의 것을 바친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헌금은 다 주님의 것인데, 그 중의 일부를 드리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셋째, 즐거운 마음으로 헌금해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헌금 시간에 박수를 치고 웃으며 좋아합니다. 하나님 앞에 드릴 헌금이 있는 것이 축복이고, 드릴 수 있는 믿음이 있는 것이 축복이고, 헌금을 드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축복이고, 헌금을 드렸을 때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니 기쁘기 때문입니다.

 

헌금하는 자세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개척한 후 30여 년을 지나면서 땅을 여러 번 사고, 건물을 여러 번 짓고, 많은 일을 하면서도 헌금을 작정하지 않고, 가난한 성도들이 “아버지, 주시면 헌금하겠습니다.”라고 마음에 정한 대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리하여 헌금이 넘치게 들어와서 성전을 다 짓고도 헌금이 많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다 지은 후에도 2년 동안 건축헌금이 계속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교육관을 짓기로 하고 9천 평의 교육관을 지었습니다.

헌금 작정을 하지 않았지만, 돈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가 부흥하는 비결이고, 우리 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구상에 이런 교회가 있겠습니까. 40년 가까이 된 교회에서 헌금 작정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자원하여 기도하며 즐겁게 헌금하여 일한 교회, 그럼에도 헌금이 넘치게 들어오는 경우가 지구상에 또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큰 믿음을 가진 여러분들에게 여러분의 믿음대로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헌금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헌금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의 수준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들이 헌금하는 것도 보셨는데,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아주 적은 액수를 헌금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니 모든 사람의 형편을 알고 계셨습니다. 부자는 많은 돈이 있는데도 조금 헌금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 즉 동전 두 개를 헌금했지만,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과부를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과부를 왜 칭찬하셨는지 아십니까? 적은 액수를 헌금했지만, 생활비 전부를 드렸으므로 그의 믿음이 매우 귀하기 때문에 과부를 칭찬하신 것입니다.

 

나병환자 나아만은 병 고침 받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갈 때, 금은보화를 잔뜩 가지고 갔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병을 고침 받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예 감사할 준비를 해서 엘리사를 찾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그것을 하나도 받지 않았습니다. 병을 고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권능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거저 받았으므로 거저 주고, 아무것도 받지 않았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0장 9~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7~1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장막을 치며 복음을 전하고, 사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데 장애가 생길까봐 그렇게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13~1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는 주의 종들이 생활비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는 교회에서 주의 종들을 대접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빌립보교회는 예외였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에게 언제나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빌 4:15). 빌립보교회 외에는 사도 바울에게 생활비를 준 교회가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라고 말했습니다(빌 4:16~19).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축복했습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는 교회들이 주의 종들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습니다. 로마서 16장에 보면, 겐그레아교회의 뵈뵈라는 여 집사는 주의 종들을 다 보호하고, 생활을 지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사도 바울처럼 장막 치는 일을 했는데, 사도 바울이 마음껏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6장 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복음 전하는 자들을 위해 복 받을 사람들을 준비해놓으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들을 돕고, 대접하는 것 자체가 큰 축복입니다.

누가복음 4장 25~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과부는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먹을 곡식가루와 기름밖에 없는, 아주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그 과부에게 보내셔서 엘리야를 대접할 수 있는 기회를 과부에게 주셨습니다.

과부는 자신이 먹을 마지막 음식으로 엘리야를 대접했습니다. 그랬더니 3년 6개월 동안의 흉년이 끝날 때까지 그의 집에 곡식이 떨어지지 않고,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자신과 가족만 먹은 것이 아닙니다. 소문이 났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먹었겠습니까. 아무리 먹고, 아무리 퍼줘도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채워주셨습니다.

주의 종을 대접할 수 있는 기회는 엄청난 축복을 받을 기회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때, 방 한 칸을 내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마구간에서 해산(解産)했습니다. 예수님은 짐승 냄새가 나는 곳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자기가 마구간에 가서 자더라도 예수님에게 방을 내어드렸다면, 그 사람의 이름은 성경에 기록될 뿐 아니라, 그 사람이 천국에서 받을 상급과 영광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런데 베들레헴의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0장 11절 이하에 보면, 합당한 자를 찾지 못해서 어느 집의 문을 두드렸더니 거절당했습니다. 베들레헴 사람들처럼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거절했습니다.

주님은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아시고,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0:14~15).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이 잘 데가 없고, 먹을 데가 없어서 찾아왔는데, 그의 말을 듣지도 않고, 거절하고, 내쫓아버렸습니다.

그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이런 사람을 가리켜 ‘염소’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마지막에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됩니다.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는 살아가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복음 전하는 주의 종들을 대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믿음이 있는 것이 축복인 줄 믿습니다. 이것은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들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저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을 대하듯이 대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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