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들에게 주신 권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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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1:11 조회3,601회 댓글0건본문
사도들에게 주신 권능
사도들에게 주신 권능
2013년 11월 03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0:1~8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택하신 열두 명의 제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저는 ‘많은 제자를 길러서 전 세계에 빨리 복음을 전하게 하면 좋지 않겠나.’라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명만 제자로 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지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숙식하시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체적으로 교육시키고 훈련시켜야 하기 때문에 열두 명을 제자로 택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제자를 기르려면, 숫자보다 질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열두 명을 제자로 택하셔서 집중적으로 훈련시키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열두 명을 제자로 택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따르기는 했지만,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원수들에게 팔아넘기는 배신자가 되었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다가 결국 목을 매어 자살했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우리가 가룟 유다 같이 배신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고, 제자들을 전도자로 파송하셨습니다.
마가복음 6장 12~13절에 보면,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를 통해 제자들이 아주 놀라운 일을 행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지신 권능은 전지전능하신 권능이지만, 제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해서 망신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 한 마디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마태복음 17장 18절에 보면,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이 한 마디 말씀하시니까 귀신이 아이에게서 나가고, 아이가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이것을 본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마 17:19). 주님은 말씀 한 마디만 하셔도 귀신이 쫓겨나가는데, 자기들은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냐고 질문한 것입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7:20).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너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만 있어도 못할 것이 없는데, 제자들에게는 그만한 믿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시면서 전도하러 보내셨을 때에는 제자들이 많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굉장한 일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권능을 주셨으면, 계속 귀신을 쫓아내고, 계속 권능을 행해야 할 텐데, 제자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요?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기도하면 은혜 받고, 은혜를 받으면 은혜를 받은 만큼 믿음이 자랍니다. 비록 겨자씨만큼 작은 믿음이라고 해도 기도하는 사람은 은혜를 받고, 은혜를 받으면 은혜를 받은 만큼 믿음이 자라서 산을 옮기게 됩니다.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으면, 가지고 있던 믿음마저 없어집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아무 힘도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마가복음 9장 28~29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정확하게 지적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도생활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날마다 기도생활에 성공해야 합니다. 하루 일과 중에 기도하는 시간보다 더 중요한 시간은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생활에 성공하려면, 기도생활을 통해 항상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에베소서 6장 18절의 말씀대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똑바로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작은 사람들은 밤낮 의식주 문제를 놓고 기도합니다. 건강 문제를 놓고 기도합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 이방인들이 하는 기도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30~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신 하나님이 우리가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지냈지만, 굶어죽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농사도 짓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광야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들에게 그런 체험을 하게 하신 줄 아십니까? 하나님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경제적인 문제, 의식주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이방인처럼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첫째,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 받게 하기 위해 열심히 전도하며 “주여, 이 영혼이 꼭 예수님을 믿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똑바로 알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요한일서 5장 14~15절에 보면,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하나님은 항상 응답해주시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기도를 할 때에는 아예 응답 받을 줄 믿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했을 때, 항상 응답 받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영적 호흡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영혼의 호흡이 끊어진 사람입니다. 가끔 기도하는 사람은 가끔 호흡하는 사람입니다. 조금 기도하는 사람은 조금 호흡하는 사람입니다.
제대로 호흡하지 않는 사람이 건강할 수 있겠습니까.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건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해도 불가능합니다.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귀의 종노릇 하게 되고, 밤낮 죄를 범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기도하지 않는 성도들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사생활을 뒷조사해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마귀의 종노릇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숨 걸고 기도생활을 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시간, 정신이 가장 맑은 시간을 골라서 짧게라도 좋으니 전심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해주십니다. 예수님은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마 7:7~8).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지키지 않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바빠지십니다. 우리의 일을 대신하시느라 하나님이 바빠지십니다.
우리의 일을 우리가 하면, 얼마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실수가 없으십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의 일을 자기가 하려고 발버둥치지 않습니다. 기도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일을 대신해주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어떻게 해결하시는가를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48년간 목회하면서 기도의 시간을 점점 더 많이 가집니다. 미국에 집회 인도하러 가서도 새벽 2~3시가 되면 일어났습니다.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이 말씀을 깨닫게 해주셔서 때로는 설교를 다시 쓰기도 합니다.
저는 기도 시간을 점점 늘려갑니다. 주님이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행하시는 것을 보는 것이 매우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행하심은 아주 완벽하십니다.
기도생활에 성공하기만 하면, 어려운 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보다 천 배, 만 배 더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모든 복이 따라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게 되고,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게 되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복이 따라옵니다.
마태복음 10장 5~6절에 보면,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신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전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제자들에게 전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충성할수록 은사가 더해집니다. 아무리 큰 은사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충성하지 않으면, 그 은사가 다 없어집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은사는 한 영혼이라도 구원 받게 하는 데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은사를 달라고 해서 제자들에게 은사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은사를 달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전도하러 내보내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은사가 없다고, 능력이 없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반드시 은사를 주십니다.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신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전파하셨습니다(마 4:17). 이것은 예수님이 처음으로 전도하신 내용입니다. 예수님처럼 나가서 외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면, 우리의 믿음이 쑥쑥 자랍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축복하시는 것을 날마다 누리며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내보내실 때,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셔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신 것은
첫째, 사람들을 모으기 쉽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면,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둘째,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면, 사람들이 복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데 아주 유익합니다.
그러나 표적과 기사를 보았다고 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표적과 기사는 타종교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거짓 선지자들도 굉장한 표적을 행합니다. 이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표적과 기사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에 생겨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권능이 없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은 말씀이지, 표적과 기사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처음에는 표적과 기사를 많이 행했습니다. 사도행전 14장 8절 이하에 보면, 사도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걷지 못하는 사람을 일으켰습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라고 하며 사도 바울 앞에 제사를 지내려고 했습니다(행 14:8~13).
사도행전 19장 11~12절에 보면,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늙었을 때에는 감옥에서 여러 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그때는 표적과 기사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2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병약한 디모데에게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라고 말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사도 바울이 병을 고쳐줄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20절에 보면,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왜 병든 채로 두었을까요? 예전 같으면, 기도하면 병이 나았을 것입니다.
권능은 성령이 행하시는 것이지, 사람이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의 말년에 왜 기사와 표적이 일어나지 않게 하셨을까요?
첫째, 사도 바울이 순교할 때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둘째, 말씀을 전하는 일에만 힘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날 사도 바울의 서신을 읽습니다. 2천여 년 동안 그 말씀을 듣게 하려면, 기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시적으로 몇 사람을 고치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말씀을 듣고, 은혜 받고, 구원 받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면, 병 고쳐달라는 사람이 줄을 서게 될 것이고, 그 사람들에게 시간을 다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것보다 말씀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마태복음 10장 5~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5~6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처음으로 전도하러 나아가는 제자들에게 전도하기 가장 쉬운, 가까이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서 전도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인데,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의미입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에게 찾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사람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천국에 가서 영생을 얻을 사람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입니다. 죄가 있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죄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다 지불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믿게 되는 사람을 이끌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은 사람이 인도한 것 같지만,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신 사람, 예수님께 보내주신 사람들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뜻이요, 작정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저는 이 말씀을 믿기 때문에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선교사들이 게으름을 부린다고 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편하게 목회하는 사람입니다.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성부 성자 성령께서 다 알아서 하신다고 기록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명령하셨습니까?
첫째, 전도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을 건강하게 유지시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계속 전도하셔야 합니다. 전도에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한 영혼을 구원 받게 할까’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보세요. 우리의 신앙이 항상 건강을 유지하게 됩니다.
둘째, 우리에게 상급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6~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개척했고, 아볼로가 목회했는데, 사도 바울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때문에 그 사람들이 구원 받고, 그 사람들의 믿음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각각 일한 대로 상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내 일’, 즉 주님의 일은 주님이 하시던 일, 복음을 전하는 일,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4절에 보면,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들은 주의 일을 한 사람들, 주의 일을 하다가 고난 당한 사람들, 주의 일을 하다가 순교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장차 천국에서 예수님의 보좌에 앉아 예수님의 일을 심부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전도하는 사람은 큰 상을 받습니다. 목사가 되지 않아도 됩니다. 열심히 전도하면 됩니다. 평신도라도 선교지에 가서 일하고, 전도하러 다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되고, 부흥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교회는 병든 교회가 되어 밤낮 분쟁에 시달리게 되고, 약해집니다.
열심히 전도하세요. 기도생활에 성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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