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모르신다고 하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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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7 10:34 조회3,573회 댓글0건본문
주님이 모른다고 하실 사람
주님이 모른다고 하실 사람
2010년 02월 05일(금요철야)
본문 / 마태복음 10:32~33
평소에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모처럼 찾아갔는데 그 사람이 여러분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때 기분이 어떠할까요? 그분이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찾아갔는데, 상대방이 전혀 모른다고 말한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같이 전혀 모르는 손님이 찾아와도 정성을 다해 영접하고 대접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상 그렇게 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저는 목사지만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이 악하고 험하다 보니 별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잘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것이 겁납니다.
우리는 사랑을 베풀고 싶지만, 상대편이 어떤 사람인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정성을 다해 대접해야 하지만, 아브라함처럼 해야 하지만, 그렇게 못하고, 그것으로 인해 마음 아플 때가 많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제직만 해도 수천 명이 되다 보니 얼굴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실수한 적이 있습니다.
출국하려고 공항에서 걸어가는데, 두 명의 남자가 맞은편에서 걸어왔습니다. 제가 모르는 사람이라서 저는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두 명의 남자가 제게 다가와 인사를 했습니다.
저는 제가 여러 교회를 다니며 집회를 인도하니 제가 집회를 인도한 교회의 성도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인사했습니다.
그런데 한 분이 예전에 김해공항에서 7년 동안 근무했는데, 그때 우리 교회에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나를 몰라주는 일이 많습니다. 나를 몰라주면 기분이 나쁘고 마음에 상처가 될 수도 있지만, 그때만 잘 넘기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장차 하나님 앞에 갔을 때,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 너는 나와 상관없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이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에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시는 사람은 영원히 지옥에서 살게 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를 환영하시고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내 딸아, 세상에서 나를 위해 사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았느냐.”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인정해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모른다고 말씀하시는 불행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인정하시고 사랑하시고 축복하셔서 천국에 갔을 때에 끌어안으시고 환영해주시고 칭찬해주시고 면류관 상급을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열 처녀 비유가 나옵니다. 등만 준비하고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다섯 처녀는 신랑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찾아갔지만,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마 25:12)”고 말씀하셨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등만 준비했지,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기름이 없는 등은 등이 아닙니다. 불을 켜야 등의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불을 켜지 못하는 등은 등이 아닙니다. 아무리 멋있는 등을 가지고 있어도 기름이 없으면 불을 켤 수 없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굉장한 신자 같지만, 예수님께서 모른다고 하신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이 말씀에서 깨닫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깨어 있다가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신다고 할 때, 그때서야 난리를 쳐봐야 소용없습니다. 기회는 더 이상 없습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갑자기 오시기 때문에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께서 모른다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24장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순간, 들려 올라갑니다. 그러므로 남아있는 사람은 끝난 것입니다. 다시는 기회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 서둘러봐야 기회를 찾을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4장 41~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깨어 있어 충성하고 신앙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갑자기 오셔도 우리가 충성하는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열 처녀 비유에 나오는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거듭난 성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는 거듭나지 못한 신자를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모른다고 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는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 중에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 마태복음 22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구원 받은 거듭난 신자는 많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엉터리 신자,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첫째, 믿음이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그런데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믿음이 없습니다.
둘째,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13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처음에는 어머니의 배에서 태어났지만, 두 번째는 하나님의 아들딸로 거듭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요,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혼인 잔치 비유가 나옵니다. 임금이 아들을 장가보내며 혼인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11~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아직도 옛 사람이 있어서 더러운 옷을 그대로 입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에 하던 행동을 그대로 합니다. 변화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셋째, 회개하지 않습니다.
회개한 사람만 천국에 들어갑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짐을 지고서는 천국의 문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좁은 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거듭난 증거가 나타납니다. 회개의 눈물이 그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여, 제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회개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회개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런데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회개한 사람에게는 열매가 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3장 7~10절에 보면,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4~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다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옷이 더러워집니다. 옷이 더러워지면 세탁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거듭난 사람은 회개합니다.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회개는 구원 받은 증거입니다.
넷째,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은 돌밭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13장 20~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언뜻 보면, 예수님을 잘 믿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살려고 하다 보면, 환난과 핍박이 옵니다. 어려움이 옵니다. 환난과 핍박이 오면,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은 믿음의 뿌리가 없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뿌리가 있어야 살 수 있는데, 믿음의 뿌리가 없으므로 구원의 확신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위기가 오면 다 넘어집니다.
마태복음 10장 32~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안할 때에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지만, 환난이 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다 죽인다고 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교회에 가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 척 하지도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붙잡으러 다닌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확신이 있으면, 잠시 받는 고통을 기쁨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죽으면 천국에서 눈 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환난과 핍박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 5~8절에 보면,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짐승 앞에 굴복하지 않고 우상 숭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우상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 11~15절에 보면,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도 짐승의 우상에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순교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9~11절에 보면,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짐승 앞에 무릎을 꿇고 짐승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모두 지옥 유황 못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은 어떻게 큰 환난과 핍박을 이기고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킬 수 있을까요?
거듭난 사람은 그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기 때문에 이길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짐승이 핍박하고 사람을 죽이면, 어떻게 신앙의 지조를 지킬까라고 걱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은 승리합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도 땅도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이 세상을 심판하실 이가 누구십니까?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악한 인간, 귀신, 사탄이 아무리 많아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모든 권세는 예수님께 있습니다. 죽고 사는 것, 흥하고 망하는 것도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됩니다. 예수님께 붙어있으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이기시기 때문에, 우리는 덩달아 이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승리의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모른다고 하실 사람은 미련한 다섯 처녀 같은 사람, 가인과 같은 사람입니다. 요한일서 3장 10~12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가인과 같은 악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면 하나님께서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사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제사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으시는 것으로 인해 가인은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습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여 결국 아우를 죽였습니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지 못해 축복을 받지 못했으면 회개해야 할 텐데, 가인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동생을 죽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가인처럼 불의한 짓을 하고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모두 마귀의 자식입니다. 마귀의 자녀를 하나님께서 안다고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어떤 일을 당한다 해도 사람을 미워하거나 사람에게 불의한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사랑을 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에게는 사랑할 의무가 있지, 미워할 자유는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미움이 생기고 악한 마음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귀가 충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에게 지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가라.”고 마귀를 물리쳐 이기시기 바랍니다.
가인은 아주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악은 마귀의 속성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의 속성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살인자의 악한 마음입니다. 또 하나는 거짓말쟁이입니다.
타락한 아담의 자손인 우리에게는 악의 속성이 조금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거듭난 자가 되어 성품이 변화됩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우리가 어두움에 속해 있었지만, 거듭난 후에는 빛에 속한 자가 되었기 때문에 변하지 않으려 해야 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5장 8~12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거듭난 사람이 됩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진 사람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입니다.
변하지 않으려고 해도 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옛날에는 우리 안에서 마귀가 왕 노릇을 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행세를 하지만,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증거가 나타납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불의한 짓을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에 본성이 드러납니다.
요한일서 3장 13~15절에 보면,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는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할 줄 모르고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할 줄 모르고 미워하고 악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장차 예수님 앞에 섰을 때에 예수님께서 모른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누가복음 13장 22~28절에 보면,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과거에 행악한 자였다 할지라도 정말로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면 변화됩니다. 악이 점점 사라집니다. 점점 더 착해지고 의로워지고 진실해집니다. 그러므로 거듭났는가 거듭나지 못했는가는 자신이 압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 4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13장 41~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모두 거두어들여 영원한 지옥에 던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법은 죄악 된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불법을 행하는 사람이 어떻게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할 수 있는가 의문을 가질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하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도 그렇게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9~12절에 보면,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마귀의 자녀입니다.
이들은 불의한 짓을 좋아합니다. 이들은 사탄의 역사로 일어나는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 속임에 미혹을 받아 거짓 선지자를 따라가 멸망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들을 심판하시는 방법입니다.
아무나 미혹 받아 넘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를 믿는 사람, 즉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그 안에 성령께서 계시고, 성령께서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마태복음 24장 23~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종들만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 선지자, 거짓 그리스도, 사탄에게 사로잡힌 사람도 큰 표적을 보여주고 기이한 일을 행합니다.
그러므로 마음 정리를 잘 해야 합니다. 표적이 일어나고,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이 나타난다고 해서 모두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는 아니고, 사탄도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무당들도 귀신을 쫓아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을 때, 애굽의 마술사들도 똑같이 행한 것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7장 10~12절에 보면,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출애굽기 7장 20~22절에 보면,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바로와 그의 신하의 목전에서 지팡이를 들어 나일 강을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니 애굽 사람들이 나일 강 물을 마시지 못하며 애굽 온 땅에는 피가 있으나 애굽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출애굽기 8장 5~1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강들과 운하들과 못 위에 펴서 개구리들이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라 할지니라 아론이 애굽 물들 위에 그의 손을 내밀매 개구리가 올라와서 애굽 땅에 덮이니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대로 그와 같이 행하여 개구리가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였더라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여호와께 구하여 나와 내 백성에게서 개구리를 떠나게 하라 내가 이 백성을 보내리니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것이니라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내가 왕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위하여 이 개구리를 왕과 왕궁에서 끊어 나일 강에만 있도록 언제 간구하는 것이 좋을는지 내게 분부하소서 그가 이르되 내일이니라 모세가 이르되 왕의 말씀대로 하여 왕에게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니 개구리가 왕과 왕궁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떠나서 나일 강에만 있으리이다 하고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떠나 나가서 바로에게 내리신 개구리에 대하여 모세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개구리가 집과 마당과 밭에서부터 나와서 죽은지라 사람들이 모아 무더기로 쌓으니 땅에서 악취가 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표적과 기사는 하나님만 행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표적과 기사에 미혹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해 예수님을 믿게 구원 받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은 표적과 기사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표적과 기사를 보면 예수님을 믿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진리를 믿어야 구원 받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 보면,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참 선지자인지 거짓선지자인지 아는 방법은 마지막 열매를 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의 일생의 마지막이 어떻게 끝나는가가 중요합니다.
히브리서 6장 4~8절에 보면,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옛날에 박태선이라는 사람이 타락하여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은혜를 많이 받아 부흥회를 많이 인도했습니다. 이분은 와이셔츠 차림으로 말씀을 열심히 전했습니다. 그리고 기적도 막 일어났습니다.
제가 아는 권사님은 병이 걸려 수술하려고 했는데, 의사가 손대지 못할 정도로 병이 악화되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권사님을 모시고 박태선에게 가서 안수기도를 받았습니다. 권사님한테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박태선이 배에 손을 대지 않고 기도하는데, 불이 확 오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그 권사님은 신앙생활 잘 하시다가 천국에 가셨습니다.
그런데 박태선은 나중에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고, 마치 정신병자처럼 한심한 짓을 하다가 죽어버렸습니다.
아무리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고 굉장하다 해도, 나중 열매를 보니 하나님의 종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타락하니 온갖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며 하나님과 예수님을 욕했습니다.
마지막을 보니, 그 사람은 택한 받은 자가 아닙니다. 사탄이 쇼를 얼마나 잘했습니까. 부흥회도 잘 했습니다. 남산에서 대부흥회를 인도할 때에는 우리나라의 모든 교파가 연합하여 아주 넓은 곳에서 집회가 열렸습니다. 수십만 명이 모였습니다.
그때 헌금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이 은혜 받고 시계와 금반지를 빼어 헌금했습니다. 그래서 각 교단의 대표 목사님들이 “우리가 연합해서 집회했으니 한국 교회의 부흥을 위해 쓰자”고 결의했습니다.
그런데 박태선은 “아니요. 이것은 내가 집회해서 내가 헌금을 거둔 것이니 내 것이요.”라고 하며 가져갔습니다.
그 후, 박태선은 교회와 이별했습니다. 본색이 드러났습니다. 거짓된 종은 돈과 음란한 짓을 좋아합니다. 불법을 행합니다.
과거가 좋아야 하지만, 과거는 이미 지났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현재가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입니다. 마지막 열매가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는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합니다.
과거는 다 지나갔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사함 받았으니 우리도 그것을 용서해주고 우리도 다 잊어야 합니다. 과거는 묻지도 말고 매이지도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입니다.
마라톤 경주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골인할 때입니다. 골인선 앞에서 넘어지면 안 됩니다. 마지막 때에 좋은 열매를 거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마지막까지 신앙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갈수록 더 좋아지고, 갈수록 더 아름다워지고, 갈수록 더 좋은 열매를 맺고, 갈수록 더 좋은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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