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사하는 권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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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0:50 조회3,576회 댓글0건본문
죄를 사하는 권능
죄를 사하는 권능
2013년 06월 30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9:1~8
마가복음 2장 1~12절에 보면, 본문의 내용과 동일한 내용이 보다 자세하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 28~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가다라 지방에서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귀신이 쫓겨날 때, 돼지 떼에 들여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으로 하여금 돼지에게 가라고 하셨을 때, 돼지들은 삽시간에 바다로 달려가 몰사하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한 영혼이 귀신에게 사로잡혀 있다가 구원 받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를 모르고, 몰사한 돼지만 생각하며 아깝게 여겨 예수님을 찾아와 떠나시기를 간구했습니다.
마태복음 9장에 보면, 그 지방에서 떠나신 예수님은 배를 타시고, 가버나움이라는 동네에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가정에 들어가셨는데,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오셨다는 소문이 금방 퍼져서 많은 사람들이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왔습니다.
그때 일어나지도 못하는 중한 상태의 한 중풍병자를 침상에 누인 채로 네 사람이 침대 째 들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아 예수님 앞에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지붕을 뜯어 중풍병자가 누운 침대를 아래로 내렸습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아마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들은 서기관들은 ‘이 사람이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하지. 이것은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다. 죄를 사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신데, 사람으로서 하나님 대신 죄를 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예수님은 이 시간에도 저와 여러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아주 잘 아십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다 아십니다. 우리의 죄와 우리의 부족함도 아시고, 걱정거리가 무엇인지도 아시고, 해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아십니다. 우리가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주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서기관들이 예수님에 대해 불평하며 ‘이것은 신성모독이다.’라고 예수님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하는 것을 주님은 아셨습니다.
에베소서 3장에 보면, 하나님에 대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엡 3:20).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만 들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평소에 무엇을 생각하는지, 주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예수님을 믿어서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고 있는데, 어렸을 때 생각하기만 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 중에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생각을 많이 해야겠다.”라고 결심했습니다. 생각하기만 해도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좋은 생각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제 아내는 6남매 중 맏이이기 때문에 동생이 다섯 명 있습니다. 제 아내는 학생 시절에 ‘막내가 대학에 갈 나이가 되면 부모님이 연로하실 테니 막내가 대학에 갈 때에는 내가 막내의 학비를 마련해야지.’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좋은 생각을 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생각을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1982년 제가 안식년을 맞아 공부하러 미국에 갔을 때, 부흥회를 인도해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아서 한 주도 쉬지 않고 열심히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례비가 많이 모였습니다.
그 당시 막내 처남이 대학에 합격했는데, 제가 받은 사례비를 막내 처남의 학비로 사용했습니다. 제 아내의 좋은 생각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러분도 좋은 생각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좋은 생각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기도만 들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히브리서 4장 13절에 보면,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구절이 개역한글판에서는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를 상관하시는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가 마치 벌거벗은 것처럼 다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꿰뚫어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숨길 수 없습니다.
본문에 보면, 전지전능하신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생각을 아시고, 서기관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라고 말씀하신 후,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중풍병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 중에 어떤 것이 더 쉽겠습니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는 말은 ‘아멘’으로 받으면 됩니다. 그러나 “일어나 걸어가라”라는 말은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일어나 걸어가라”라고 말하려면, 얼마나 큰 믿음이 필요하고, 얼마나 어려운 것입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라고 말씀하신 후,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중풍병자가 벌떡 일어나 침상을 짊어지고 돌아가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큰 권능을 주셨구나.”라고 말하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는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라고 말씀하신 것은 키가 작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서 ‘작은 자’라는 말은 ‘믿음이 작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네가 믿음이 작지만,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첫째, 우리의 믿음이 아무리 작아도,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귀하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믿음이 작아도,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정말 예수님을 믿는다면, 구원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작아도 안심하세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습니다. 예수님께는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아무리 작아도 정말 예수님을 믿는다면,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구원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예수님의 양 편에 있던 강도들이 똑같이 예수님을 비난하다가 시간이 지나니 예수님의 오른 편에 있던 강도는 예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구나’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는 것이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예수님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편에 있는 강도를 책망했습니다. “너나 나는 이렇게 못 박혀 죽는 것이 마땅하지만, 예수님에게는 의롭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예수님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부탁했습니다(눅 23:42).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3:43).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사세요. 천국에 갈 것이라고 믿으며 사세요. 천국에 가서 주님을 만날 것을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라고 생각하며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이 중풍병자를 침상 째 들고 온 네 사람은 ‘물러서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믿음이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몇 번 기도해보고 응답 받지 못하면 포기해버립니다. 그것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약속이 많은데, 기도하여 왜 응답 받지 못합니까? 성령의 불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왜 성령의 불을 받지 못합니까?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제가 기도하여 응답 받은 간증을 많이 합니다. 저는 꼭 응답 받아야 하는 문제가 생기면, 그 자리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며칠씩 금식하며 끈질기게 기도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생각으로 기도합니다. 그렇게 해서 응답 받고, 불 받고,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중풍병자를 침상 째 들고 간 네 사람의 믿음은 대단합니다. 이들은 물러서지 않는 믿음,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과부와 같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불의한 재판장을 찾아가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자꾸 찾아가 그를 번거롭게 했습니다. 너무 번거롭게 하니 재판장은 ‘귀찮아서라도 들어줘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속 괴롭게 하겠구나.’라고 마음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판장이라도 계속해서 조르면 마음의 변화가 생기는데, 하물며 하나님께 밤낮 부르짖는 택한 백성들의 원한을 하나님께서 풀어주시지 않으시겠느냐”라고 말씀하시며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그 문제를 안고 살려고 하지 마세요. 작정하고, 만사를 제쳐놓고, 응답 받을 때까지 끈질기게, 하나님이 귀찮게 여기실 정도로 부르짖으세요. 주님은 그런 믿음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고,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을 주님이 원하시는 이유는 간절히 기도하다 보면,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지만, 반드시 은혜를 받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은혜 받는 것입니다. 성령 받는 것입니다. 그때 믿음이 자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이루어집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을 귀찮게 여기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그런 사람에게 상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사람에게 상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졸라대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그런 사람에게 상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셋째, 믿음이 작아도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사람이 합심하여 중풍병자를 들고 와서 예수님 앞에 나아왔을 때, 합심한 믿음으로 인해 큰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믿음으로 받는 복은 참으로 큽니다.
첫째, 구원의 복을 받습니다.
구원의 복을 받는다는 것은 죄 사함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 사함 받을 때에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회개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죄를 사하는 권세가 예수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든 저주를 속량 받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시민이 되고,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을 통틀어 ‘구원의 복’이라고 말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함께해주시는 복을 받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해주시는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해주시는 복을 받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창 39:2). 요셉이 억울한 일을 당하여 감옥에 들어갔는데도 전화위복되어 나중에는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기는 것은 그 후에 더 큰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자라면,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에 보면,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을 붙잡으세요.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있더라도 이 말씀을 붙잡으면 살아납니다.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으세요.
셋째, 기도 응답의 복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7장 7~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7:11).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인 부모의 사랑보다 못하겠습니까.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이신데, 무엇이 아까워서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3~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상상하세요. 이루어지기 전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상상하세요. 그렇게 하면 그대로 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말로만 믿는다고 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약 2:26).
자신에게 정말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행함으로 믿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첫째,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회개합니다.
회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제일 먼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4:17).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실 뿐 아니라, 기억하지도 않으시고, 완전히 도말해주십니다.
이사야 43장 25절에 보면,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죄를 고백하지 마세요. 사람은 기억하지 않을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만 회개하세요. 피해를 준 사람에게 가서 용서를 빌어 용서를 받으면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죄를 고백하지 마세요.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도말해버리십니다. 흔적도 없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해버리십니다. 그리고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둘째, 변화가 일어납니다.
말하는 것이 달라지고,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지고, 예수님을 믿는 자세가 달라지고, 예배드리는 자세가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성품이 달라집니다.
악독했던 사람이 착해지고, 불의했던 사람이 의로워지고, 교만했던 사람이 겸손해지고, 거짓되던 사람이 진실해집니다. 그러므로 믿음만큼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원수까지도 사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받는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사랑이 없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알려면, 그 사람에게 사랑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인가, 아니면 사람이 모인 사교모임과 같은 교회인가를 알려면, 교회에 사랑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가 너무나 많습니다. 교회가 사랑을 잃어버렸다면, 교회가 아닙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구별하는 것은 형제를 사랑하고 형제에게 불의한 짓을 하지 않는 자라야 하나님의 자녀이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오히려 미워하고 싸우고 분쟁하고 불의한 짓을 하는 사람은 마귀의 자녀입니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닮게 되어있습니다. 흉내 내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전하기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행동이 어떻게 완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빛의 아들과 어둠의 아들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증거입니다.
중풍병자는 작은 믿음이었지만, 믿음으로 복을 받아 건강이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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