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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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0:45 조회3,693회 댓글0건본문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신 예수님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신 예수님
2013년 06월 23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8:28~34
병원에 가보면, 아픈 사람이 참 많고, 병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가를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은 갈수록 살기 좋아지는데, 왜 그리 아픈 사람이 많고, 병의 종류가 많은지….
그런데 병 중에서 가장 나쁜 병은 귀신 들린 병입니다. 다니엘 4장에 보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말을 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를 정신병에 걸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은 들짐승처럼 들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살았습니다. 왕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니까 왕궁에서 살지 않고, 들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살았습니다.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히브리서 12장 5~8절에 보면,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징계하십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私生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하나님의 구원 받은 자녀들이 잘못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징계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징계 가운데, 가장 큰 징계는 육신을 사탄에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징계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이런 징계를 하시는 줄 아십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나쁜 죄를 범하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완악한 마음을 가지면, 그 몸을 사탄에게 내어주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몹쓸 병에 걸려 만신창이가 되어 고생하다가 죽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5장 1~5절에 보면,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무리 큰 죄를 범하고, 아무리 죄가 많아도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면, 자비하신 하나님은 무조건 용서해주십니다. 죄를 범한 인간이라도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엎드려 회개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려다가도 멈춰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열왕기상 21장에 보면, 아합 왕은 바알 신을 섬기고, 못된 짓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 엘리야 선지자가 아합의 집안이 얼마나 비참하게 멸망할지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아합이 엘리야의 말을 듣고, 자신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며. 굵은 베에 누우며 풀이 죽어서 다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왕상 21:29).
아합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악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그 죗값으로 처참하게 멸망할 것을 예언하며 책망하니, 아합은 겸손하게 회개하는 자세로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의 겸손한 모습을 보시고, 아합의 시대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회개하는 자는 복을 받습니다.
병 중에 가장 큰 병은 귀신 들린 병입니다. 30여 년 전에 국군통합병원의 정신과 병동에 가보았습니다. 정신과 병동에 입원한 군인들은 짐승 취급을 받습니다. 환자를 대하는 사람들은 환자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몽둥이를 가지고 환자들을 두들겨 팼습니다.
그 환자들의 부모가 그 모습을 본다면, 아들이 군대에 가서 짐승처럼 두들겨 맞고, 정신없이 끌려 다니는 것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생각해보면, 가장 큰 저주는 귀신에게 사로잡혀서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고생하다가 망하는 것인 듯합니다.
성경에 보면, 귀신의 정체를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2~3절에 보면,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용’, ‘옛 뱀’, ‘마귀’,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표현이 다를 뿐, 이 넷은 같은 종류로, 악령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마귀를 ‘도둑’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도둑이 무엇을 도둑질해갑니까? 도둑은 좋은 것을 도둑질해갑니다. 값있는 것을 도둑질해갑니다. 도둑은 지옥으로 멸망시킬 목적으로 찾아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귀신이 얼마나 다른가를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보면,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마귀의 정체를 똑바로 알아서 항상 믿음으로 무장하고, 마귀를 대적해서 마귀가 물러가게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대적하면, 원수 마귀는 피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귀신 들린 사람은 군대 귀신 들린 사람입니다. 원어로 살펴보면, ‘Λεγιών(레기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는 일개의 군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일개의 군대와 같은 많은 귀신 들린 사람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과거에 일곱 귀신 들렸는데, 예수님이 고쳐주셨습니다(막 16:9).
마태복음 12장 43~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곱 귀신이 들어가도 얼마나 괴로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귀신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악한 영입니다. 거짓의 영입니다. 자꾸 거짓말을 해서 속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귀신은 얼마나 사나운지, 사람들이 그 길을 지나갈 수 없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있는 마가복음 5장에서는 이 귀신을 가리켜 ‘더러운 귀신’이라고 했습니다(막 5:2). 이 귀신 들린 사람은 무덤 사이에 살았는데, 쇠사슬에 묶여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힘이 얼마나 센지, 고랑과 쇠사슬을 다 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소리를 지르며 돌로 자신의 몸을 해쳤습니다. 마귀의 못된 성격이 그 사람에게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정신이상자들을 보면, 성질이 사납습니다. 우리 교회가 수영로터리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교회 주변에 사는 젊은 여자가 귀신이 들렸는데, 얼마나 사나운지,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악신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한 청년은 평소에는 멀쩡했습니다. 그런데 기분이 조금이라도 상하면, 화를 내는데, 얼마나 악해지는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속에 악신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쉽게 화내지 마세요. 자꾸 화내다 보면, 처음에는 자신이 화가 나서 화냈는데, 나중에는 악신이 들어가서 사로잡히게 되면, 아무도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악한 신에게 사로잡히면, 제정신이 아닌 상태가 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함부로 큰소리치거나 쉽게 화내지 마세요. 웃시야 왕은 나라가 강성해지니 교만해져서 제사장들이 행하는 분향하는 일을 웃시야 왕이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80명의 제사장이 “왕이여, 그것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만 하는 것입니다.”라고 책망했습니다. 그러자 웃시야 왕이 화를 냈습니다. 그 순간 웃시야 왕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습니다. 16세에 왕이 되어 52년간 왕 노릇했던 웃시야 왕이었는데, 별궁에서 평생 혼자 살다가 죽었습니다(대하 26:16~23).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혈기를 부리고, 큰소리를 치면 안 됩니다.
성경에 보면, 사울 왕은 아주 악한 왕이었습니다. 아들에게 악담(惡談)하는 내용을 보면, 입에서 어떻게 그런 악한 말이 나올 수 있나 싶습니다. 결국 사울 왕은 악신에게 사로잡혀 멸망하게 됩니다.
본문의 내용과 동일한 내용이 기록된 누가복음 8장에 보면, 귀신 들린 이 사람은 오랫동안 옷을 입지 않고, 집에 거하지도 않고, 무덤 사이에 거했다고 합니다(눅 8:27).
벌거벗고 있었지만, 부끄러운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무덤은 시체가 있는 곳입니다. 악령에 사로잡히면, 가출하게 되고, 썩은 냄새가 나는 곳에서 죄를 짓다가 망하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귀신을 쫓아내주셨습니다. 그대로 두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멸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2장 14~15절에 보면,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를 범한 인간들은 죗값으로 죽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죽음의 세력을 잡고 있는 마귀를 멸하기 위함입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에 보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 귀신 들린 사람들을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귀신을 다 쫓아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귀신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이 사는 길은 예수님께 나아오는 길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멸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보면,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보자 소리를 지르며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라고 말했습니다.
이 귀신은 예수님이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똑바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때를 알았습니다. 여기서 ‘때’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을 말하고, 마귀가 무저갱에 들어가는 때를 말합니다.
이 귀신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자기네들은 무저갱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은 모두 공중으로 올라가 주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먼저 주님께 올라가고, 살아남은 우리가 그 다음으로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원수 마귀는 무저갱에 들어가 꼼짝 못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은 땅 위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귀신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귀신은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귀신은 예수님도 알고, 하나님도 알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거나 사랑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못된 짓을 하고, 하나님의 자녀를 망하는 길로 인도하는 악령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을 섬기면, 점점 악해져서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귀신과 함께 멸망하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사실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귀신은 도둑질하게 하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영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을 섬기면,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심판의 날입니다. 그래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
본문에 보면,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라고 부탁합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부탁대로 “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돼지들이 바다로 달려가 몰사하고 말았습니다.
마가복음 5장 13절에 보면,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 33~34절에 보면,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입니까. 돼지만 귀한 줄 알고, 한 영혼이 구원 받은 것이 귀한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병만 고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귀신도 쫓아내주시고, 우리의 구원의 복을 주시는데, 이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께 “제발 떠나주십시오.”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가복음 5장 15절에 보면,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나간 후에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귀신 들렸을 때는 옷을 벗고 다니면서도 부끄러운 줄 몰랐는데, 정신이 온전해지니까 옷을 입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벌거벗은 수치를 모르는 라오디게아교회의 성도들에게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흰 옷’은 회개하여 죄 사함 받은 사람의 옷입니다. 이 옷을 입지 않고 사는 사람은 밤낮 죄를 범하고 살면서도 수치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회개하여 흰 옷을 입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9장 8절에 보면,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합니다.
로마서 13장 11~14절에 보면,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생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에베소서 6장 11절에 보면,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1~14절에 보면, 아들을 위해 혼인잔치를 베푼 임금의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잔치에 많은 사람을 초청했지만, 사람들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군대를 풀어서 사람들을 동원하여 결국 잔칫집이 가득 찼습니다.
임금이 손님들을 살펴보니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임금은 그 사람에게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임금은 사환들에게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예복’은 믿음의 옷을 뜻합니다. 거듭난 자의 거듭난 믿음의 옷을 의미합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지옥에 던져진다는 의미입니다.
평생 교회생활을 했는데, 지옥에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겠습니까. 예수님을 똑바로 믿지 않은 것을 후회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8장 38~39절에 보면,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그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귀신 들렸던 사람이 정신이 온전해진 후에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누구든지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하라, 간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예수님이 나를 이렇게 고치셨다.”라고 자기 집에만 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는 동네에 다니며 전파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받은 은혜와 축복을 간증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이렇게 복 받았다. 너도 예수 믿어라.”라고 전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날마다 은혜를 사모하고, 날마다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고, 은혜와 축복을 간증하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사명을 다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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