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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8장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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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0:38 조회3,6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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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2013년 06월 02일(주일예베)

본문 / 마태복음 8:23~27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은 다른 것을 다 가지고 있어도 믿음이 없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을 가진다’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모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김일성도 교회에 다닌 사람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권사님이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이 큰 사람, 믿음이 부족한 사람, 믿음이 아예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그 사람의 믿음이 어떠한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환난과 풍파가 일어났을 때, 그 사람이 믿음이 좋은 사람인지, 믿음이 약한 사람인지, 믿음이 없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알 수 없다가도 어려움에 부딪칠 때, 그 사람의 믿음의 진가(眞價)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물이 배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고, 배가 침몰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너무나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깨우며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마가복음 4장 40절에 보면,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탄식하셨습니다.

누가복음 8장 25절에 보면,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제자들의 믿음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이 매우 작은 사람들은 마치 믿음이 없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큰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큰 믿음을 가져야 하지만, 무엇보다 올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사람의 믿음이 올바른지 올바르지 않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도,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우리 마음대로 믿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똑바로 알아야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똑바로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이 큰 은혜를 받았다고 흥분하여 방언기도를 한다고 하지만, 성경을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그러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속에서 역사하는 영이 성령인지 미혹의 영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성경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올바른 믿음의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성경을 열심히 읽고, 배워야 합니다. 1년에 신ㆍ구약성경을 한 번 이상 통독해야 합니다. 자신의 나이만큼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20장 30~31절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요한복음에 기록한 것 외에도 예수님이 하신 일이 굉장히 많은데, 그것을 다 기록하면, 기록한 것을 둘 데가 세상에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똑바로 알게 하기 위해서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그리스도, 메시아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올바른 믿음을 가지려면, 세 가지 조건을 구비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똑바로 아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믿음이 자랄수록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되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성경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이 어떻게 함께하시는가를 체험하게 되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믿음이 자랄수록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게 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믿음이 자랄수록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자랄수록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됩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제자들을 책망하시고, 바다와 바람을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제자들이 그것을 보고 놀랍게 여기며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똑바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풍랑이 이는 바다를 보고 무서워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어떤 분이신지 아십니까?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모두 한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라고 말하니 예수님께서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8~9). 예수님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있지만,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볼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33년을 사셨지만, 성부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다 위를 걷기도 하시고, 38년 된 병자를 향해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말씀하시니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요 5:8).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에게 “나사로야”라고 부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왔습니다(요 11:43).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시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마가복음 4장 39절에 보면, 큰 광풍이 일어나는 바다를 향해 예수님께서 “잠잠하라 고요하라”라고 말씀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졌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다를 향해 “잔잔하라 고요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만 해도 바람과 바다가 순종했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실 때, 첫째 날,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시니까 빛이 생겼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이 똑같이 하셨습니다. 한 마디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되었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똑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다만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메시아이십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어서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합니다. 죽지 않고, 썩지 않고, 늙지 않고, 아프지 않고, 영생하는 몸,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주를 해결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저주를 속량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메시아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하기만 해도 감사하고, 기뻐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의 가족들은 처음에는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족들은 예수님이 귀신 들렸다고 생각하여 예수님을 붙잡으러 오기도 했습니다.

요한복음 16장에 보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는 사람들을 출교하기로 결정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6:2~3).

유대인들은 하나님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모르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족들도 처음에는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이심을 몰랐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요한의 두 제자가 이 말을 듣고 즉시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알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요한의 두 제자 중 한 사람은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였습니다. 안드레는 자신의 형제 베드로에게 찾아가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안드레는 베드로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보시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35~42).

 

요한복음 1장 45~51절에 보면,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에게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자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를 두고 마을로 달려가서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하여 그 사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요 4:25~30). 그리하여 사마리아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 40~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곳에 이틀 동안 더 머무셨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믿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라고 말했습니다.

수가 성 사람들은 천대 받는 사람들인데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후에 예수님께서 오시니 마르다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요 11:21~22).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마르다는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요 11:17~27).

이를 통해 우리는 마르다도 예수님이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똑바로 알고, 믿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7~28절에 보면,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친히 오셔서 손을 내미시며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도마는 그제서야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깨닫고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똑바로 알고 있다면, 예수님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갖고 계신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은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은 세상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은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8~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환난 풍파가 일어난다 해도 죽고 사는 것은 환난 풍파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의미입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주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의미입니다.

 

누가복음 21장 17~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나 순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순교자의 반열에 설 영광스러운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우리의 머리털 하나도 상하게 할 자가 없다는 것을 믿으며 사시기 바랍니다.

죽고 사는 것, 흥하고 망하는 것은 세상에 달린 것이 아니고, 주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것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풍랑이 일어나니 풍랑을 바라보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성령의 세례를 받은 후에는 이들에게서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사도행전 4장 18~21절에 보면,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4장 31절에 보면,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니까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무서워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부끄러울 것도 없었습니다. 담대하게 전도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스데반이 순교한 후에 사도들 외에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습니다. 그들이 도망가서 숨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했습니다(행 8:1~6).

그리고 안디옥에 가서도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행 11:26).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님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를 핍박했습니다. 죽이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사도 바울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전도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서도 풍랑을 보고 무서워한 제자들처럼, 지금도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환난 풍파가 일어나면,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작은 사람은 이 세상이나 사람들만 바라봅니다. 그러니까 근심이나 두려움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큰 사람은 이 세상이나 사람을 보지 않고, 주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합니다. 그러므로 환난과 풍파가 일어나도 항상 담대하고, 평안합니다.

 

여러분 중에 근심거리를 가지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자꾸 걱정 되고, 근심 된다는 것은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해결책은 기도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기도하면 은혜 받게 되고, 은혜 받으면 믿음이 성장하고, 믿음이 성장하면 걱정 되지 않습니다. 담대해집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에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무리 큰 근심거리가 있어도 근심 되지 않고, 마음이 평안해질 때까지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걱정거리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하나님이 주신 복을 세어보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축복하셨지. 그때는 절망적이었지만, 하나님이 이렇게 해결해주셨지.’라고 생각하며 감사할 것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이것도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시겠구나.’하는 믿음이 생깁니다.

 

지금은 지구의 종말이 가까운 때입니다. 환난과 풍파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큰 믿음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믿음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가깝다는 것을 알고,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성령 충만한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은 환난과 핍박이 심하지만, 어디를 가든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전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렇게 살면, 주님이 우리와 함께해주시고, 우리를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며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근심과 불안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주님만 바라보며 사세요. 열심히 전도하세요. 주님이 함께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걱정거리는 주님이 대신 맡아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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