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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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0:26 조회3,658회 댓글0건본문
우리의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
우리의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
2013년 04월 21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8:14~17
지난 주일에는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라고 칭찬하시며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하인의 중풍병을 말씀으로 고쳐주신 사건을 보며 우리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백부장에 비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하나님을 더욱 잘 믿을 것 같은데, 그들은 안타깝게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 곧 메시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몰랐습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 그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신데, 그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핍박하다가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8장 11~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지금도 수많은 이방나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이스라엘에도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은 모두 구원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이런 일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에서는 성령 받는 역사가 일어나고, 주님께서 꿈을 통해 찾아와주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시므로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집에는 그의 장모가 계셨는데,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났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복을 받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병에 걸렸어도 주님이 손만 대시면 병이 나으니, 예수님이 이 자리에 오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을 모신 가정이 얼마나 복 있는 가정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가정, 예수님을 모시게 되는 가정은 분명히 복 있는 가정인 줄 믿습니다.
만일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저 평범한 어부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을 만나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사도가 되어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장차 우리가 천국에 가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만날 때, 그들은 면류관을 쓰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우리와 만나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복 받은 사람들입니까.
사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 ‘사도 바울’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니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이렇게 큰 축복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만나는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베드로의 가정은 예수님을 모심으로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그 가정에 오시니 열병을 고침 받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모신 가정은 다 복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나 혼인집 주인이 예수님을 혼인잔치에 초청하면서 잘 대접했더니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예수님이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셔서 풍성한 잔치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예수님을 모시면, 물이 포도주가 되듯, 가정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믿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이 찾아오시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나사로, 마리아와 마르다 삼남매는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도 그들을 사랑하셨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가정에 오셔서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살려주셨습니다. 주님을 모시니까 이런 축복을 받았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삭개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삭개오에게는 예수님을 보고 싶은 마음,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 나갔지만, 삭개오는 키가 작아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 중에 삭개오가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9:5).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가시겠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수군거렸습니다. 그때 삭개오는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눅 19:8).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9:9).
삭개오는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사모하십니까? 예수님을 만난 체험이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셨고, 주님은 우리 가운데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난 체험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변하여 새 사람이 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삽니다. 그러면서 아주 행복해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예수님을 만난 체험이 있는 사람은 눈동자가 다릅니다. 신앙 생활하는 모습이 다릅니다.
여러분 모두 주님을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은 예수님을 모시는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믿고 구원 받아 온 가족이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온 가족이 은혜 충만하고, 온 가족이 주님을 사랑하고, 온 가족이 주님을 위해 충성하는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병 고침 받은 베드로의 장모는 즉시 일어나 예수님께 수종 들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베드로의 장모는 연로한 몸이지만 예수님을 잘 대접해보려고 부엌에 들어가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병든 사람들 가운데에는 고침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믿음이 없는 사람도 있지만, 병으로 인해 오히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서 예수님을 섬기다가 죽는, 복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병 고침을 받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모르고, 감사할 줄도 모르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죽을병에 걸렸는데, 하나님이 고쳐주셔서 생명을 15년 연장 받았습니다. 당장 죽을 것 같았는데, 하나님께서 15년 더 살게 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것이 보통 은혜입니까.
그런데 역대하 32장 24~26절에 보면,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죽을병에 걸렸다가 나았는데, 하나님께 감사할 줄도 몰랐습니다.
여기에 보면,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해졌다고 했습니다. 생각을 아주 잘못했기 때문에 교만해진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내 기도가 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셨다.’라고 생각하고, “내 믿음이 좋기 때문에 이렇게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다.”라고 자랑하기만 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여기에 보면,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라고 분명히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느 권사님이 암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제가 기도하는 중에 그 권사님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날따라 권사님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게 하실 때에는 뭔가 역사를 일으키시려나보다.’라고 생각하며 기도한 후, 권사님께 전화를 걸어 확인했습니다.
“권사님, 암에 걸리셨다던데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건강해지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침에 기도한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며칠 후 권사님은 남편과 자녀들을 다 데리고 저를 찾아오셔서 고맙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데, 많은 액수의 헌금을 하셨습니다.
암으로 계속 고생했다면, 그 돈이 치료비에 들어갈 수도 있는데,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그 헌금은 좋은 일에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했습니다.
죽을병에 걸렸다가 나았다면,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은혜에 보답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의사가 치료를 잘 해서 나았다. 좋은 약 먹고 나았다.’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좋은 의사에게 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다 사는 것은 아닙니다. 수술이 잘 되었다 했는데, 의식이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좋은 약을 썼다고 해서 다 낫는 것은 아닙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히스기야 왕과는 달랐습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예수님을 대접하며 섬겼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렇게 하는 사람은 극히 적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 열 명을 고쳐주셨을 때, 집에 가서 좋아하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잔치를 벌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열 명 중 사마리아인 한 사람은 집으로 가지 않고, 예수님께 돌아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큰 절을 하며 고쳐주심을 감사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7:17~19).
이 사건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감사할 줄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해있습니까?
아무쪼록 하나님 앞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만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데리고 온 귀신들린 자와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아마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퍼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 중에 한 사람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이사야 53장 4절에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라고 예언한 대로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고, 우리의 병을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셨다는 의미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저주를 받아서 죽게 되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죽게 되었습니다.
병은 죽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저주까지 속량해주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어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는 저주가 없습니다.
그런데 징계는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가 바르게 살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징계하십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라고 했습니다(히 12:8). 그러므로 우리에게 징계는 있을 수 있지만, 저주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실 때, 우리의 죄뿐만 아니라, 저주를 다 속량해주셔서 죽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병을 다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므로 병이 있는 분들은 모든 병에서 치유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간증하세요. 감사하세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세요.
사람은 병들어서 죽기도 하지만, 건강한데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이 남아있는 사람은 죽을병에 걸렸어도 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은 혹시 병이 생겼다 할지라도 죽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살아있는 동안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김정준 목사님은 폐병에 걸려서 3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마산요양소에서 가장 중한 환자들이 있는 병실에 들어갔습니다. 김 목사님은 죽는다는 생각을 하며 누워있지 않았습니다. 전도하고, 설교하고, 환자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피를 토하는 환자들의 피를 닦아주고, 피를 씻어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죽으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나도, 6개월이 지나도,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양소에서 퇴원했습니다. 그리고 장수하셨습니다.
병에 걸렸다고 해도 앓아눕지 마세요. 일어나세요. 살아있는 동안 주님을 위해 사명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이 받은 은혜가 너무나도 커서 교만해질까봐 하나님께서 사탄의 사자, 즉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고후 12:7).
복음을 전하는데 몸이 건강해야지, 몸이 아프면 어떡합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간절하게 세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병은 고쳐주시지 않으시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사도 바울은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라고 말했습니다(고후 12:9~10).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교만입니다. 자기가 잘 나서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받은 은혜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자만할까봐, 스스로 높은 체하고, 스스로 자신이 특별한 사도라고 생각할까봐 주님께서 자신에게 병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 이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고전 3:6~7).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함께해주셔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 들어 써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연약하게 하셔서 자신이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붙잡아주시지 않으시면 살 수도 없고, 일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은 바울을 크게 강하게 써주셨습니다.
몸이 약해서 항상 겸손할 수 있다면, 몸이 약한 것이 축복으로 바뀔 줄 믿습니다.
저는 항상 “아버지, 저는 병들어죽지 않게 해주세요.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복음 전하다가 주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죽는다면, 순교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기도하세요.
병들어서 돈과 시간을 써버리지 마세요. 여러분 모두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복음 전하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죽는다면 순교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병을 주님이 짊어지셨습니다. 모두 고침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강건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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