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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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7-01 22:43 조회6,143회 댓글0건본문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자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자
2005년 01월 14일(금요철야)
본문/ 마태복음 7:21~23
본문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3장 31~35절에 보면, “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분석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면, 우선 하나님의 뜻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5~19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19절은 지혜로운 사람의 모습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8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음욕은 가장 큰 죄를 짓게 하는 이유입니다. 요즘 사람들의 가장 흔한 죄입니다. TV도 음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음란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길 수 있던 것은 뿌리치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순간에 떠나야 합니다. 정말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면,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왜 그러십니까?”라고 물을 것이 아니라, 뿌리치고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4절에 보면, 사람은 육신을 가졌으므로 모두 정욕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어야 없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정욕을 적당히 풀면서 죄짓지 않고 거룩하게 살도록 결혼제도를 만드셨습니다. 세상이 음란할수록 부부는 결합해서 한눈팔지 않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색욕을 따라 멸망의 길을 갑니다.
레위기 11장 44~45절에 보면,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를 거룩한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자의 하나님이 되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거룩하게 사는 것, 곧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 41~48절에 보면,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인의 뜻은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므로 항상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은혜 받은 말씀을 내게 맡겨주신 사람들에게 나눠줘서 그들로 하여금 신앙생활 잘 하게 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 욕심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13~15절에 보면,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유는 뱀의 시험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그 뿌리는 욕심에 있습니다. 욕심을 품는 순간, 마귀가 찾아옵니다. 시험거리가 아무리 많아도, 욕심이 없는 사람은 시험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를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제 아내와 제가 택시 합승을 했습니다.
그런데 뒤에 탔던 사람이 광안리쪽에 먼저 내렸는데, 돈이 가득 든 종이 가방을 두고 내렸습니다. 아내는 그 사람을 불러서 돈 가방을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어서 그렇게 돈을 돌려줄 수 있었습니다. 마음에 욕심이 생기면 무엇이든지 시험이 됩니다.
사무엘하 15장에 보면, 사울에게 아말렉을 다 죽이고 짐승도 다 죽이라고 했는데, 가장 좋은 양과 소를 죽이지 않고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울에게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혼란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든지 욕심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의 뜻에 사로잡히지 못합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 보면,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울은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려는 욕심이 생겨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고, 악신에게 사로잡혀 나쁜 짓하다가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사사기 6장 1~6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 메뚜기 떼 같이 많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낙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악을 섬긴 이스라엘에게 원수들의 손에 붙이는 벌을 행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난해지고 고통이 심해져서 하나님을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셔서 부름에 응답하시고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사사기 8장 22~23절에 보면, “그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는지라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가 문제입니다. 사사기 8장 24~27절에 보면, “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므로 금 귀고리가 있었음이라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하고 겉옷을 펴고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그 가운데에 던지니 기드온이 요청한 금 귀고리의 무게가 금 천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또 초승달 장식들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색 의복과 또 그 외에 그들의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계산하면 20kg의 금이 나옵니다. 그 결과가 그 후에 나옵니다.
사사기 8장 29~35절에 보면,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돌아가서 자기 집에 거주하였는데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명이었고 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나이가 많아 죽으매 아비에셀 사람의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묘실에 장사되었더라 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서서 바알들을 따라가 음행하였으며 또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이스라엘 자손이 주위의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또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이 이스라엘에 베푼 모든 은혜를 따라 그의 집을 후대하지도 아니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사기 9장 5절에 보면,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 곧 자기 형제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으되 다만 여룹바알의 막내 아들 요담은 스스로 숨었으므로 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한 명이라도 잘 길러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의 이유는 에봇이었습니다. ‘이것 하나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올무가 되었습니다.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힘듭니다. 예수님께서는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막 10:25)”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은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욕심이었습니다. 사라의 욕심이 컸습니다. 그래서 자식 욕심에 몸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얻으려고 아브라함에게 제의했습니다.
사라의 제의는 분명 아브라함에게 시험이 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역시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형제였지만 싸우지 않습니까!
가장 큰 욕심은 돈에 대한 욕심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6~12절에 보면,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이 주시면, 하나님을 위해 좋은 일을 하십시오. 저는 잘 먹는 것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미련이 없습니다.
어느 분은 저를 비싼 식당으로 데리고 가시려고 하시는데, 저를 곤욕스럽게 만듭니다. ‘교인들이 나를 대접 잘하나 안하나’라는 생각은 사람을 섭섭하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만족하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지금 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면, 그 후에는 별 짓을 다 하게 되고, 시험이 많아지고, 죄를 많이 짓게 되고, 믿음이 흔들립니다.
둘째,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부족하므로 믿음대로 살지 못합니다. 믿음의 분량만큼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섬기려면 결단해야 합니다.
다니엘 1장 8절에 보면,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의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믿음의 결단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어정쩡하게 흔들립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는 믿음의 결단으로 금식하고 왕에게 나아가서 민족을 살렸습니다.
시편 107편 10~11절에 보면,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 29~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게 하되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은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 28~31절에 보면,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에스겔 18장 21~23절에 보면,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의 주기도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요한일서 5장 14~15절에 보면,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사람에게는 축복을 넘치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시편 40편 8절에 보면,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열왕기상 14장에 보면,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이 들었습니다. 여로보암은 죄를 많이 저지른 왕이었습니다.
그에게 속한 사람은 무덤에 들어간 자가 없었는데, 오직 아비야는 예외였습니다. 그는 장례식을 잘 하고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왕상 14:13).
선한 뜻은 하나님께 맞는 생각이라는 의미입니다. 뜻대로 행한 것이 아니라, 뜻을 품었을 뿐인데도 그렇게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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