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의 복 > 마태복음5장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마태복음5장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의 복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9 18:24 조회5,951회 댓글0건

본문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의 복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의 복

2012년 06월 24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5:10~12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누구나 복을 받으면서 살기를 원하고, 고난 받으며 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살다 보면, 고난이 참 많습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데도 고난이 많이 찾아옵니다.

 

고난이 왜 많을까요?

첫째, 죄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이 세상에 고난이 많습니다. 바르게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르게 살지 못하니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문제가 생기고, 바르게 살지 못하니까 이 세상에서 일이 자꾸 꼬입니다. 가정에도 문제가 많이 생기고, 직장에도 문제가 많이 생기고, 이 세상에 문제가 많이 생기는 이유가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바르게 살지 못하기 때문에 고난이 많이 생깁니다.

베드로전서 2장 20절에 보면,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지 못해서 고난을 많이 당합니다.

 

둘째, 이 세상에 악한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입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에게 속한 마귀의 자녀가 어떻게 구별되는가 하면, 마귀의 자녀는 의를 행하지 않고 불의한 짓을 합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형제를 미워하고 괴롭히는 짓을 합니다.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귀에게 속한 사람이 불의한 짓을 하는 사람을 미워한다면,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롭게 사는 사람까지 미워하는 것은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의롭게 사는 사람을 보면, 사랑하고 좋아하고, 기뻐하고 칭찬해야 하는데, 의롭게 사는 사람까지 괴롭히고 미워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외롭게 사는 사람까지 미워하고 괴롭히는 것은 그 사람이 그만큼 악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사람들은 남이 잘 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잘 되면 좋아하지만, 남이 잘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싫어합니다.

가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 앞에서 각각 제사를 드렸는데,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열납하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열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가인은 반성하고 회개하고, 아벨처럼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제사를 드리면 될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벨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축복을 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었는데, 자신은 그렇게 되지 못했으니까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남을 미워할 자유가 없습니다. 미워해도 괜찮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마음으로 미워해도 살인한 것입니다. 모든 살인은 미움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3장 12절에 보면,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아우의 행위는 의로워서 죽였다고 하니 참 나쁜 인간입니다. 동생이 자기와 똑같이 행동해주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같이 나쁜 짓을 했으면 좋겠는데, 아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생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악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이 가인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죽을 만한 잘못을 범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들을 만나면 고쳐주시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해주시고, 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해주시고, 좋은 일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백성들이 예수님을 존경하고, 예수님을 따르니까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시기 질투하는 마음에 견디지 못했습니다.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네들이 영광을 받아야 하는데, 자기네들은 대접 받지 못하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보고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15~18절에 보면,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총독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총독은 예수님의 잘못이 하나도 없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남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는 악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고난이 많습니다.

그런데 고난 중에는 복된 고난이 있습니다. 복을 가져오는 고난이 있습니다. 천국에 가서 상급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고난이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의를 위하여 받는 고난, 주님을 위하여 받는 고난이 복된 고난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를 위해 고난 받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의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은 천국을 소유하는 복이 있고,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은 큰 상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려고 할 때, 받게 되는 고난은 복된 고난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게 되면, 누구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려고 애쓰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삶의 자세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고, 핍박을 받게 됩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창고관리 책임자가 되신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집사님은 믿음이 좋고, 정직하고, 충성된 분입니다. 병원이 굉장히 크니까 병원 창고도 굉장히 큽니다. 창고 안에는 약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기계와 값진 물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창고열쇠를 이 집사님이 갖고 있습니다.

이 집사님이 창고 책임자가 되기 전에는 창고의 물품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약을 빼돌리고, 물건을 빼돌려서 매월 몇 백 만원의 수입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이 창고 책임자가 되고 난 후에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부정한 방법으로 수입을 챙기던 사람들의 수입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정한 방법으로 일하던 사람들이 이 집사님을 한 골목으로 끌고 들어가, 계속 병원에 있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사표를 제출하고 병원에서 나왔습니다.

바르게 살려고 하니까, 직장생활을 바르게 해보려고 하니까 부패한 인간들이 합세하여 박해하는데, 얼마나 기막힌 노릇입니까.

 

갈라디아서 4장 29절에 보면,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난 사람입니다. 이삭은 성령을 따라 난 사람, 약속의 자녀입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괴롭힌 것처럼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을 괴롭히는 인간 자체가 나쁜 인간입니다. 마귀의 자손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려고 하다 보면,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르게 살려고 하다 보면, 세상에서 미움을 받고, 왕따를 당하고, 박해를 받습니다.

 

둘째, 예수님을 잘 믿으려고 할 때에 받게 되는 고난도 복된 고난입니다.

예수님을 적당히 믿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믿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고난은 복된 고난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8~19절에 보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보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경건하게 잘 믿으려고 하면, 이 세상에서 박해를 받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일 성수를 하려고 할 때, 얼마나 어려움이 많습니까? 주일에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주일 하루만이라도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은데, 주일에도 쉬지 않는 직장에서 일하다 보면, 직장에서 나가라고 하면서 괴롭히는 일이 있어서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취업을 위해 자격증을 따려고 하는데, 자격증 시험을 주일에 치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잘 믿는 성도가 시험을 포기하는 것을 봤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도적으로 주일을 무시해버리고, 주일에 자격증 시험을 치는 바람에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은 자격증을 취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 동네에 있던 어느 교회 목사님의 아들이 공부를 잘 해서 일류 중학교에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그 학교에서는 합격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입학 구두시험을 주일에 치렀습니다. 그러니 이 목사님의 아들이 학교를 포기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더라도 적당히 믿는 것이 아니라 주일 성수를 제대로 하려고 하니까 얼마나 불이익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어려움을 당하는지 모릅니다.

 

예전에 우리 교회 안수집사님이셨던 분이 미군부대에서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셨습니다. 그런데 미군부대에서 일하는 버스 기사들이 기름을 빼돌려서 그것으로 부수입을 챙겼습니다. 그러니 부정한 짓을 같이 해야 발각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이 은혜를 받고 나니 부정한 짓을 도저히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집사님 혼자 부정한 짓을 하지 않으면, 부정한 짓을 하는 다른 사람들의 부정한 짓이 다 들통 나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집사님은 변두리에 가서 다른 사람들이 부정한 부수입을 올리는 만큼 기름을 버렸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우상숭배 하지 않으려고 할 때, 어려움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집안에서 제사를 지낼 때, 절하지 않는다고 얼마나 욕을 먹고 핍박을 당합니까.

일제시대에는 다들 신사에 참배할 때, 신사에 참배하지 않겠다고 한 사람들이 감옥에 들어가서 고문당하고, 순교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타협하는 사람은 그런 고난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똑바로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고난이 많습니다. 이 고난은 복된 고난입니다.

 

셋째,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려고 할 때에 받는 고난은 복된 고난입니다.

마가복음 10장 28~30절에 보면,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려다 보니 희생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사람들은 현세에도 100배의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상급이 있습니다. 고난을 받아도 복된 고난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4~26절에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받는 상급은 잠시뿐입니다. 한때 박수 받고 끝납니다. 이 세상에서 받는 고난도 잠시뿐입니다. 그러나 장차 천국에 가서 받는 상급과 영광은 영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라면 죽는 것도 각오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3~24절에 보면,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참 위대한 사도입니다. 사도행전 21장 8~13절에 보면,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라면, 죽을 것도 각오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위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첫째, 구원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천국의 소망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에서 눈을 감으면, 천국에서 눈 뜬다는, 천국에 대한 소망이 확실했기 때문에 고난 많은 세상에서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더 좋은 천국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순교하는 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살다가 순교하는 것이 가장 큰 영광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죽는 것을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5장 40~42절에 보면,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매를 맞고 어떻게 기뻐하고 좋아할 수 있습니까? 모든 것이 복된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어 잘 되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은 신앙이 어린 사람입니다. ‘주님을 위해 살다가 죽어도 좋다. 매 맞아도 좋고, 순교하면 영광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신앙의 최고 경지에 이른 사람입니다. 목숨 걸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 목숨 걸고 충성하는 사람은 가장 위대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 고난을 피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난을 받으면 괴로워하고, ‘고난이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고난을 기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라면 고난을 받아도 좋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난이라도 기뻐하리라”라는 각오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둘 중 어느 쪽입니까? 그저 고난을 피하고 고난 없이 편안하게 살기 원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고난이라도 무릅쓰고,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라면 고난을 기꺼이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성도입니까? 자신을 생각해볼 수 있기 바랍니다.

 

의를 위해 고난을 받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인하여 고난 받는 사람에게 큰 상급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옛날 선지자들도 다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고난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여덟 가지 복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는 것으로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복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될 수 있습니다. 내 노력으로는 안 되지만,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사는 사람들은 여덟 가지의 복을 다 받는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을 머릿속에만 넣어두지 마시고, 이 말씀대로 살아서, 이 말씀대로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23장

24장

25장

26장

27장

28장

 

 


접속자집계

오늘
1,020
어제
1,471
최대
7,648
전체
1,343,936
회사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Copyright © dalant.or.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