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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5장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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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9 18:30 조회5,7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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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2012년 07월 29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5:13~16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성품도 완전하시고, 말씀도 완전하십니다. 계획도 완전하시고, 뜻도 완전하시고, 행하심도 완전하십니다. 하나님은 아주 완전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 되셔서 저와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후, 제일 먼저 축복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축복하시고, 만물을 축복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잘 되기를 원하시고, 복 받기를 원하시고, 복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복 있는 사람,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받을 사람이 누구인지 여덟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3절 이하에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3~10).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억울하게 욕먹고, 세상에서 박해를 받을 때, 고민하거나 괴로워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상이 크다고 했습니다(마 5:11~12).

예수님 때문에 고난 받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 복 받을 자들인 줄 믿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소금과 같은 존재, 빛과 같은 존재로, 사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세상에 대해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고, 빛의 역할을 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는 이 세상이 더럽고 타락했기 때문에 더러운 세상에 살기 싫다고 하며 세상 사람들과는 가까이하지 않고, 되도록 교회에서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해보니 죄악이 얼마나 많고, 죄 지을 일이 많이 생기는지, 그래서 직장생활을 그만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더러운 세상에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취직하여 먹고 살게 된 것은 좋은데, 주일에도 출근하라고 하고, 술을 마시는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신앙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여 직장생활을 그만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중요한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입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을 떠나거나 세상에서 도피하려고 하지 말고, 이 세상 속에 들어가서 소금과 빛이 되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을 피하려고 하고, 세상에서 도망가려고 하면 안 됩니다. 세상이 더럽고, 악하고, 우리를 괴롭힌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 속에 들어가서 소금이 되고, 빛이 될 때, 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게 되고, 이 세상은 우리로 말미암아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소금이 되어 소금처럼 살라는 의미입니다.

 

소금은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합니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 소금이 꼭 필요합니다.

예수님 당시 아랍 사막에서는 바위 같은 소금 덩어리 암염을 곳곳에 쌓아놓고, 지나가는 양이나 낙타들이 그것을 먹도록 했다고 합니다. 낙타나 양이 먹는 소금의 양은 적지만, 그것을 먹지 않으면 낙타나 양이 죽기 때문입니다.

밀림에서 사는 코끼리도 염분을 꼭 섭취해야 합니다. 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염분을 섭취하지 못하면 살지 못합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소금이 너무 흔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소금을 귀하게 여기지 않게 여기기 쉬운데, 소금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했습니다. 의인 10명이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소돔 고모라를 멸망시키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여러분과 같은 성도들이 있는 한, 이 나라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소금이라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여러분의 집안이 망하지 않고, 여러분으로 인해 여러분이 사는 부산이 망하지 않고, 이 나라가 복 받는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소금은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 가운데 소금으로 절인 음식이 많습니다. 왜 음식을 절여서 먹는가 하면, 소금에는 방부제 역할을 하는 성분이 있기 때문에 소금에 절이면 썩지 않습니다. 소금이 부패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디에 가든지 그곳에서 방부제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 세상은 아주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부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세상은 점점 더 썩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부패하는가 하면, 인간의 마음이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17장 9~11절에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 만물이 점점 부패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만물보다 더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 부패한 인간이 사는 이 세상은 부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왜 그렇게 부패합니까?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떠날수록, 멀리할수록 인간은 더 타락하고 부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군사력이 아무리 강하고, 부강한 나라라고 할지라도 부패하기 시작하니 여지없이 망해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는 전 세계를 지배하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가 부패하기 시작하니 마치 썩은 나무가 부서져버리는 것처럼 망하고 말았습니다.

썩은 나무가 힘이 없듯이 부패한 나라는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지없이 망하고 맙니다.

 

창세기 6장 5~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노아가 살았던 시대에는 죄악이 꽉 차있어서 땅에 더 이상 둘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멸망할 수밖에 없었지만, 노아의 여덟 식구 때문에 하나님이 그동안 참고 계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기 때문에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노아의 삶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온전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습니다.

그동안 노아의 여덟 식구 때문에 멸망하지 않고 있었지만, 더 이상 내버려두면 노아의 여덟 식구마저 위험했습니다. 노아의 식구마저 살아남을 수 없는 형편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홍수로 심판하게 되었습니다.

 

살아있는 물고기 여덟 마리와 썩어서 냄새가 나고, 벌레가 꼬이는 생선 백 마리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살아있는 물고기를 왜 택합니까? 살아있는 물고기는 계속 알을 낳아 번식하여 나중에는 엄청나게 많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썩은 생선은 냄새만 날 뿐,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빨리 치워버려야 합니다.

 

이 세상이 타락할수록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은 귀한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악해질수록 부패할수록 여러분들을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은 부패한 세상에 살면서도 이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의 역할을 해야 할 줄 믿습니다.

영국이 점점 혼란에 빠지고, 부패해졌을 때, 요한 웨슬레와 친구들이 ‘홀리클럽(Holyclub)’ 라는 기도모임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서너 명이 모여서 항상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자리에 성령이 임하시고, 기도하다가 능력 받고, 기도하다가 마음이 뜨거워져서 공원에 나가서 전도하기 시작했는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후에 이 사람들은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영국을 변화시키고, 미국에까지 가서 전도하고 영향을 끼쳤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속화되면 안 됩니다. 바다에 떠있는 배가 물속에 들어가면 안 되고, 물 위에 떠가듯이, 우리는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 속에 빠져서 세속화되지 않고, 세상에서 방부제 역할을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소금은 맛을 내는 역할을 합니다.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납니다. 예를 들어 설렁탕에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맛이 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소금을 적당히 넣어서 먹어야 제 맛이 납니다.

 

어느 임금이 세 명의 딸을 불러놓고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이 뭐냐?”라고 질문했습니다. 큰 딸은 “금입니다.”라고 대답했고, 둘째 딸은 “보석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셋째 딸은 “소금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임금은 “흔한 것이 소금인데, 소금이 뭐 그리 귀하냐?”라고 다시 질문하니, 셋째 딸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 날 저녁, 셋째 딸은 임금의 밥상을 준비하는 요리사에게 모든 음식에 소금을 집어넣지 마라고 말했습니다. 임금이 식사하는데, 진수성찬이 차려졌지만, 맛이 없었습니다.

셋째 딸이 임금에게 “아버지, 하찮은 것이지만, 제가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보여드릴까요?”라고 하며, 음식에 소금을 넣었습니다. 그때서야 임금은 “금이나 보석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소금은 없으면 못 살겠구나.”라고 말했습니다.

 

맛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사명입니다. 맛없는 세상을 맛있는 세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면 맛이 나듯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 때문에 살기 좋은 세상이 되고, 맛있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9장 50절에 보면,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소금이 맛을 내는 것처럼, 너희들은 소금 역할을 해서 서로 화목하라는 말씀입니다. 음식을 맛있게 해주는 소금처럼, 너희들이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해서 서로 화목하라는 말씀입니다.

 

골로새서 4장 6절에 보면,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말을 할 때, 은혜로워야 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말도 은혜롭습니다.

 

우리가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려면

첫째, 소금이 음식에 들어가 녹아져서 사라져버리듯이 저와 여러분이 죽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녹아져야 합니다.

혈기가 살아있으면 안 됩니다. 이기심이 살아있으면 안 됩니다. 옛사람이 살아있으면 안 됩니다. 내가 죽어야 합니다.

언제나 나를 세우고, 나를 유익하게 하는 생각을 버리고, 내가 희생할 때, 내가 녹아질 때, 맛을 내게 되는 줄 믿습니다.

 

둘째, 소금처럼 변함없어야 합니다.

소금은 뜨거운 음식에 들어가든 찬 음식에 들어가든 짠 맛이 변하지 않습니다.

소금이 어떤 조건에서도 변치 않는 짠 맛을 내는 것처럼, 하나님의 언약도 영원히 변함없기 때문에 ‘소금언약’이 있습니다.

레위기 2장 13절에 보면,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 소금을 치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소금언약’이라고 합니다. 소금이 변치 않는 것처럼, 영원히 변함없는 언약입니다.

 

민수기 18장 19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역대하 13장 5절에 보면, 유다 왕 아비야가 이스라엘 여로보암 왕과 전쟁할 때 유다의 40만 군대와 이스라엘의 80만 군대가 맞붙어 싸우려고 할 때, 유다 왕 아비야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 자손에게 나라가 영원하리라고 약속하신 소금 언약을 알 것이 아니냐고 하며 전쟁했는데,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2배나 되는 군사와 싸우면서도 승리했습니다.

그 날 북이스라엘 군대 중 죽은 사람이 50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항복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땅을 찾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소금이 변함없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잘 하려면, 변함없어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도들은 소금의 역할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소금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한다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게 되고, 조롱받게 됩니다. 짓밟히게 됩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그들과 손잡으면, 처음에는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데, 그들과 타협하여 그들이 하자는 대로 다 하면, 나중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버림받게 됩니다.

그러나 욕을 먹으면서도 그들과 타협하지 않고 신앙의 지조를 지키면, 존경받게 됩니다. 오히려 빛이 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세상에 나아가서 타협하지 말고, 소금의 역할을 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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