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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이기신 예수님(2012년 01월 29일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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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9 17:29 조회3,5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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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이기신 예수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

2012년 01월 29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4:1~2

 

마태복음 4장 1절에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성령에게 이끌려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려고 광야로 가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 보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개역한글판 성경에서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시험 받을 것이 뭐가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죄 없는 분, 거룩한 분, 성령에게 이끌리시는 분, 은혜 많이 받은 분에게는 시험이 없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했다면, 마귀에게 시험 당하지 않을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 다 시험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친히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 보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마 6:13).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아버지, 오늘도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루하루 살다 보면, 시험거리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명심하세요. 시험거리가 많은 것과 시험에 드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구덩이가 많다고 해서 다 구덩이에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구덩이를 잘 피해갑니다. 그래서 구덩이에 빠지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구덩이가 아무리 많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구덩이가 하나뿐인데도 그곳에 빠집니다. 눈감고 가도 빠지지 않을 텐데….

그러므로 구덩이가 많은 것과 구덩이에 빠지는 것은 전혀 상관없습니다. 구덩이가 많다고 해서 구덩이에 잘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구덩이가 하나밖에 없어도 빠지는 사람은 그곳에 빠집니다.

찬바람이 분다고 해서 다 감기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감기 걸리는 사람도 있지만, 찬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 “야, 날씨가 선선해서 좋다.”라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시험이 많은 것과 시험에 빠지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떨어질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도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그곳으로 데려가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너무 피곤했는지, 잠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세 번이나 돌아와서 그들을 깨우시며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큰 시험이 다가올 것을 아셨지만, 그 시험을 이기는 방법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 결사적으로 기도하셨고, 제자들에게도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시험을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는데, 그것은 깨어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시험을 치릅니다. 문제가 쉽든 어렵든 모든 문제에는 정답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크고 작은 시험이 온다 해도 그 시험을 피할 길은 반드시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것은 우리에게 오는 시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크고 작은 시험이 아무리 많아도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항상 깨어 기도한다면,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고, 피할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다 보면, 반드시 해결됩니다.

기도하는 믿음과 기도하지 않는 믿음은 다릅니다. 기도하는 믿음은 산 믿음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힘이 있습니다. 살아있습니다. 기도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시험을 이기지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의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것 같으나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되는 위기 속에서도 기도생활을 멈추지 않고, 죽을 각오를 하고 계속 기도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이기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다니엘은 죽을 때 죽더라도 기도하는 것이 큰 시험을 피하는 길이고, 승리하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에 결사적으로 기도해서 사자의 입이 봉해지고, 원수들이 대신 죽는 전화위복을 경험했습니다.

 

히브리서 2장 18절에 보면,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으셨는데, 시험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고난을 얼마나 당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하신 가장 큰 시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고난의 시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지 않을 수도 있는 분이십니다.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불러 원수를 멸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고발한 죄가 하나도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주님께서는 끝까지 고난을 피하지 않으시고, 잘 참으시고, 잘 감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순간은 실패하는 순간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를 짐으로 온전히 승리를 얻는 순간입니다.

 

큰 시험이 왔을 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무엇이 승리하는 것이고, 무엇이 패배하는 것인가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승리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 패배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피하는 것은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드리는 길이라면, 기쁨으로 그 길을 가는 것이 승리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시험은 우리에게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시험을 많이 당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시험은 우리에게 고난이 되지만, 시험을 잘 참고 견디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요셉을 보세요. 요셉은 큰 시험을 당했습니다. 노예로 팔려가고, 죽을 뻔하고, 감옥에 들어가는 등 어려운 시험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시험을 잘 참고 견디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시고, 총리가 되게 하시고, 그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형님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의 축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4장 1절에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마 3:16~17).

여러분, 이 광경을 상상해보세요. 예수님의 머리 위에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신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그런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기뻐하시는 순간입니다. 이 순간이야말로 가장 힘 있고, 훌륭하고, 영광스럽고, 안전하게 보이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4장 1절에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에게 이끌림을 받는 사람도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성령이 인도하시면 마귀가 왔다가도 도망간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에게 이끌려서 광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때,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축복하시는데, 감히 마귀가 내 근처에라도 올 수 있겠나.’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가 축복을 받을 때에도 마귀가 나를 시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큰 은혜를 받았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은혜를 받았으니 이제 마귀가 멀리 떠났으리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마귀는 은혜 받은 사람도 얼마든지 시험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가 은혜 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겁먹고 시험하지 않겠습니까.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 보면,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대결하여 멋지게 승리합니다. 우상숭배 하는 선지자들이 몇 시간 동안 별 짓을 다 해도 불이 내리지 않았지만,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순간, 불이 임했습니다. 그래서 850명의 목을 베어죽입니다. 멋지게 승리했습니다.

그 후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고생했는데, 엘리야가 기도하니 비가 내렸습니다. 이처럼 엘리야는 굉장한 선지자였습니다.

엘리야는 우상숭배 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다 없애버리고, 3년 6개월 동안 가물었던 땅에 비가 내리게 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열왕기상 19장 1~5절에 보면,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세벨은 독사 같은 여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그렇게 일어났다는 말을 들었으면,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할 텐데, 오히려 독이 올라서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그 말을 듣고 낙심하여 도망칩니다. 엘리야는 죽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서 잤습니다. 마귀는 큰 기적이 일어나고, 큰 은혜가 임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손대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귀가 누구에게나 시험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3층천에 올라가는 신비한 체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계시를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받은 은혜가 얼마나 많고, 받은 계시가 얼마나 큰지, 그것을 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다 말한다 해도 사람들이 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많이 받은 사도 바울이 자만심을 가지고 교만해질까봐 사도 바울에게 사탄의 사자, 육체의 가시를 주셔서 사도 바울이 자만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육체의 가시는 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도 바울은 육신을 괴롭히는 질병이 떠나기를 세 번이나 기도했지만,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너무 많이 받은 바울이 교만할까봐 질병의 시험을 주셔서 교만하지 않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이 약하다고 해서 영도 약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많이 받았을 때, 우리가 방심할까봐 하나님께서는 은혜 많이 받은 자에게도 시험을 주십니다. 깨어 기도하라고, 방심할까봐, 교만해질까봐 시험을 주십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루디아를 전도하고,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이 얼마나 멋졌겠습니까.

그런데 큰 시험이 왔습니다. 사도행전 16장 22절 이하에 보면,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서 벗기고 매로 쳐서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이 나타났다고 해서 마귀가 시험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이 나타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마귀가 시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기도로 승리했습니다. 이처럼 기도하면 승리합니다.

사도행전 16장 25절에 보면,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큰 시험을 당하여 감옥에 들어가 있으니 몸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기도하는 것만이 승리하는 길인 줄 알았던 사도 바울과 실라가 한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니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리고, 사슬이 풀려서 도망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간수와 그 집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 믿게 됩니다.

 

요즘 큰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요즘 사업이 잘 되십니까? 요즘 모든 일이 잘 되십니까? 이때 방심하지 마십시오. 교만하지 마세요. 마귀가 큰 시험거리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 겸손한 마음으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마귀만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시험과 하나님의 시험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목적이 다릅니다. 마귀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시험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타락하게 하고, 죄짓게 해서 넘어뜨려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고, 망하게 하기 위해서 시험합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요셉을 넘어뜨려서 타락하게 하려는 사탄이 보디발 아내의 마음속에 나쁜 생각을 주어서 요셉을 유혹하게 한 것입니다.

뱀이 하와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선악과를 따먹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해서 저주 받게 만들려고 유혹한 것처럼, 마귀의 목적은 항상 나쁩니다. 그래서 악신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죄짓게 하고, 말씀대로 살지 못하도록 하고, 교회에 가지 못하게 만들어서 망하게 하는 것이 사탄의 목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을 더 온전하게 만들어주시고,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시고, 성도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려고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브라함을 망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죄짓게 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을 낳았으니 그 아들을 얼마나 사랑했겠습니까. 그런데 아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멋지게 승리했습니다.

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가를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100세에 낳은 사랑하는 아들이라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바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믿음을 인정받게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받게 됩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결과가 더 좋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시험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 시험을 통해 믿음이 더 좋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욥도 어려운 시험을 잘 통과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도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시고, 크게 들어 쓰시고,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다윗도 얼마나 많은 고난과 시험을 당했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선지자 중의 선지자로 하나님의 거룩한 종이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오는 시험은 결과가 좋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에서는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는 것은 믿음의 시련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낸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인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말은 끝까지 참고 견딜 수 있는 믿음이라면,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오는 여러 가지 시험은 오히려 우리에게 인내심을 길러줘서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로 성장하게 해서 온전한 자가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기뻐해야 합니다.

 

욥은 아주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욥이 시험을 멋지게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욥이 시험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욥은 처음에 찬송했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찬송했습니다(욥 1:21).

그런데 욥이 날마다 찬송하고 기뻐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날마다 기뻐하며 살려면,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다가 은혜 받으면, 감사할 것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욥이 항상 기뻐하며 끊임없이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리게 되었을 것이고, 끝까지 참고 견디며 시험을 잘 통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어떤 시험이 와도 오히려 기뻐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 가지만 지킨다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축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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