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필도목사_두가지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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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8 16:21 조회3,596회 댓글0건본문
두 가지 시험
두 가지 시험
2003년 01월 24일(금요철야)
본문 / 마태복음 4:1~11
사람의 일생은 일평생 인생의 배를 타고 시험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날은 화창한 날씨로 바다가 잔잔하다가도,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파도가 몰아치는, 그야말로 변화무상한 것이 해상의 날씨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하루하루 살다보면 예상하지 못한 시험과 어려움을 당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약할 때에만 시험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을 때에도 시험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생활을 잘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시험이 오는 것이 아니라, 깨어 기도하는 사람에게도 시험이 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 가셔서 40일이나 금식하며 기도하셨으나, 시험이 왔습니다.
죄를 짓고 바르게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만 시험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죄 없이 바르게 사는 사람에게도 시험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욥이 당한 시험도 바르게 살지 못하거나 죄를 범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가리켜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라고 칭찬하셨습니다(욥 1:8). 그만큼 욥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욥도 무섭게 시험을 당했습니다. 아마 욥은 인간이 당한 시험 가운데 가장 심한 시험을 당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 보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가리켜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라고 한 것을 보면, 무엇이든지 시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며칠 동안 굶어 배가 고프면, 본의 아니게 훔쳐서라도 먹고 싶고, 강도짓을 해서라도 남의 것을 빼앗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런 배고픔도 큰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돈이 없어서 시험이 될 수도 있지만, 돈이 많은 것도 큰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대체로 돈이 많으면 안심이 되고, 왠지 오래 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돈이 많아서 기도하지 않게 되고, 돈 쓰는 맛으로 세상에 빠져 주일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면, 이보다 더 큰 시험이 없을 것입니다.
사실 돈이 많으면,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지고, 유혹하는 사람도 많아집니다. 그래서 얼마나 시험이 많아지는지 모릅니다. 돈이 많은 것과 돈이 없는 것, 모두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서는 날마다 일용할 양식이 있어서 그날그날 편안히 먹고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시험이 오는 것과 시험에 드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시험이 왔다고 해서 누구나 시험에 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찬바람이 분다고 누구나 감기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병약한 사람은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감기에 걸리지만, 건강한 사람은 찬바람이 불면 도리어 시원하다고 좋아합니다.
마찬가지로 똑같은 시험이 찾아와도 야단법석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시험이 와도 시험이 되지 않는 사람은 영적으로 건강하고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별로 시험거리가 되지 않는 일에도 시험이 들어 괴로움을 당합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시험에 잘 드는 이유는?
첫째, 욕심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13~15절에 보면,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테스트하시기 위해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셨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슨 일에나 하나님으로부터 시험이 왔다고 단정 짓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시험이 되지 않을 일 앞에서 시험에 빠지는 것은 자기의 욕심에 끌려서 미혹되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가나안 땅을 쳐들어갔을 때, 여리고는 첫 번째 성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무엇이든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여리고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누구든지 손대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간은 욕심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경고와 여호수아의 주의를 무시하고 외투 한 벌과 금과 은을 아무도 모르게 자기 집에 감춰두었습니다. 그 결과 아간을 비롯하여 온 가족이 돌에 맞아죽었습니다.
우리도 “아무도 안 보니까 괜찮겠지. 한 번쯤이야.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이 생각은 마귀가 주는 속임수라는 것을 알고 속지 말아야 합니다.
열왕기하 5장에 보면, 엘리사는 나아만의 나병을 고친 다음, 그가 사례로 주는 금은보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돈 벌라고 은사를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은사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너무 아깝게 여긴 엘리야의 시종 게하시가 나아만이 돌아갈 때 뒤따라가서 거짓말을 하고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받아왔습니다. 하나님을 속인 게하시는 나병에 걸리는 무서운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욕심이 생기면, 그때부터 시험에 들게 됩니다.
사실 많은 근심은 욕심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욕심을 버리고 포기하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먹어도 좋고 먹지 않아도 좋고 온전히 주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당하실 때에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욕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를 지려는 생각 밖에 없었기 때문에 마귀가 “돌이 떡이 되게 하라.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 뛰어 내려라. 나에게 절하면 천하 만국을 주겠다.”라고 유혹했지만, 예수님께는 전혀 시험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아버지 뜻대로 순종하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높이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9~11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둘째, 교만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절대로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약 4:6).
교만한 사람은 시험 들 만한 일도 아닌데, 시험에 들다보니 회개하기 어렵습니다. 불순종하며 감사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할 줄도 모르고, 하나님께 영광도 돌리지 않습니다.
셋째, 기복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기복적인 신앙은 대체로 일반 종교인들의 신앙입니다. 특별히 미신을 믿는 사람,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는 사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기복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오직 돈과 건강과 성공과 명예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기복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생활의 목적이 “어떻게 하면 축복 받아서 돈을 많이 벌까, 건강해질까, 성공하고 이름을 얻을까.”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점쟁이를 찾아다닙니다. 솔직히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으로 구원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아직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천국의 소망도 희미합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건강이나 성공, 그리고 명예나 자기 가족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잘하다가도, 돈에 손해를 본다거나 건강이 나빠진다거나 성공에 지장이 있다거나 자존심이 상하기라도 하면 하나님을 헌신짝처럼 쉽게 잊어버립니다.
대체로 이런 사람들은 돈 앞에 벌벌 떨고, 건강을 잃어버릴까봐, 성공하지 못할까봐,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봐 두려움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신앙생활 하다가 핍박을 당하거나 조그만 어려움이 있어도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기복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이기적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시험이 되기 때문에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주님을 만나야 변화되고, 믿음의 사람이 되어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넷째,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좋았던 사람도 기도하지 않으면 점점 믿음이 약해집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믿음이 건강한 줄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믿음이 점점 약해지면 시험이 되지 아니할 것도 시험이 되어 마음이 지옥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눅 22:40). 기도해야 믿음이 강해지고 믿음이 강해져야 시험이 와도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시험에는 씁쓸한 시험과 달콤한 시험이 있습니다.
씁쓸한 시험이란
한 마디로 말해서 고통이 되는 시험입니다. 야곱이 당한 시험이 이런 시험에 속합니다. 야곱은 형 에서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에 살면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습니다.
다니엘은 모함을 받아 사자굴에 들어가게 된 시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금신상에게 절하라는 왕의 명령을 어김으로 시험을 당했습니다. 이것을 씁쓸한 실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욥이 당한 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산이 모두 없어지고, 몸은 병들어 만신창이가 되었고,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괴로운 시험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삭의 경우와 같이, 그랄 사람들의 시기질투로 여러 번 쫓겨 가야 하는 인내의 시험도 괴로운 시험이었습니다.
이들 모두 믿음으로 당당히 시험을 이기고 승리했지만, 얼마나 어려운 시험이었습니까?
달콤한 시험이란
요셉이 보디발의 집의 총무가 되었을 때,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날마다 유혹했습니다. 또 다윗이 대낮에 바람 쐬러 궁전 지붕에 올라갔다가 벌거벗고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는 순간 당하는 시험과 솔로몬이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먹고 부요해지고 유명해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가운데서 점점 타락하는 시험이 바로 달콤한 시험입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마다 응답을 받게 되자 교만해져서 시험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나라가 앗수르에 포위당했을 때 하나님 앞에 결사적으로 기도했더니 18만 5천 명이 하루아침에 다 죽어 있었습니다.
또 죽을병에 걸렸을 때도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는 그의 수명을 15년이나 연장해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왕이 사절단을 보내고 높아질 대로 높아지고 유명해졌을 때, 그것이 그에게 큰 시험이 되었습니다.
역대하 32장 24~25절에 보면,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는 교만하여 영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신 15년의 생명을 하나님만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아브라함도 달콤한 시험을 당했습니다. 사라가 아들을 낳지 못하게 되자 하갈을 첩으로 남편에게 주었습니다. 사라를 통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자손이 번창하리라는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지만, 인간적인 조급함으로 하갈을 받아들여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결국 아브라함도 달콤한 시험을 당한 것입니다.
이스마엘의 자손이 오늘날의 아랍 민족으로 아브라함의 약속의 자손인 이스라엘과 여인의 자손인 이스마엘이 오늘날까지 원수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씁쓸한 시험보다 달콤한 시험이 엄청난 불행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씁쓸한 시험보다 달콤한 시험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도 달콤한 시험에 넘어지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씁쓸한 시험은 오히려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고, 연단을 낳아 믿음을 더욱 성장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고통스런 시험을 통서 겸손해지고, 기도를 많이 하게 되며, 은혜를 받고, 회개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인내심이 강해져서 신앙과 인격이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다 믿음의 시련을 많이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이와 달리 달콤한 시험은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오는지 모릅니다.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다윗도 달콤한 시험에 넘어가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수치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솔로몬도 달콤한 시험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졌습니다.
시험은 괴로운 것이지만, 이기면 복이 됩니다. 시험을 이기면, 유익이 많습니다. 인격도 훌륭해지고 신앙도 훌륭해지며, 지혜도 더해지고, 믿음이 성장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습니다. 시험을 이기면 더 큰 일꾼이 됩니다.
시험을 이기는 비결은
첫째, 열심히 교회에 나와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오히려 시험이 있을 때에 열심히 교회에 나오십시오. 말씀의 은혜를 받으면, 믿음이 강해집니다. 믿음이 강해지면 시험을 잘 이깁니다.
둘째, 끝까지 기도하면서 참고 견뎌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기도하며 참으면 믿음이 강해집니다. 은혜가 충만해지면 시험을 이깁니다.
시험은 무작정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시험이든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특별히 기도할 때 생명 걸고 기도하면 이기지 못할 시험이 없습니다(약 1:12).
셋째, 낙심하지 말고 도리어 기뻐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도 시험이 오면 “내 믿음이 더 좋아지겠구나. 더 성숙하겠구나.”하는 믿음을 가지고 기뻐하면 웬만한 어려움도 쉽게 이깁니다.
넷째,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시험이 왔을 때 감사할 수 있다면 굉장한 믿음입니다. 다니엘은 더 이상 기도하면 사자굴에 들어가는 줄 알면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하루에 세 번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단 6:10).
다섯째,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시험거리가 생겼을 때, 큰 고난이 왔을 때에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바울과 실라는 전도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지만, 이들은 한밤중에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들의 기도와 찬송을 하나님만 들으신 것이 아니라, 간수장도 죄수들도 다 들었을 것입니다. 드디어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괴로울 때나 슬플 때나 시험이 왔을 때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돌리며 어떤 시험이 와도 믿음으로 이기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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