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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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9 17:32 조회3,530회 댓글0건본문
첫 번째 시험
첫 번째 시험
2012년 02월 05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4:3~4
사람은 누구나 먹어야 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신을 주셨기 때문에. 육신은 음식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먹을 것이 아주 풍성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아주 행복합니다.
그런데 물질이 풍성해서, 먹을 것이 많아서 기분이 좋은 것은 잠시 뿐입니다. 조금 있으면 배가 또 고프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행복을 가져다줄 뿐이지, 영원한 만족을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로 가장 많이 걱정합니다. 뭘 먹을까 뭘 마실까 뭘 입을까하는 의식주 문제로 참 많이 걱정합니다. 그래서 시험도 많고, 많이 걱정하는 것이 물질의 문제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 30~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우리가 많이 걱정하는 줄 아시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럴 수 있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런 것 걱정하지 말라 하늘을 나는 새들을 내가 먹여 살리지 않느냐 그저 하루 꽃이 피었다가 저녁에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내가 입히고 기르지 않느냐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된 너희일까보냐. 하나님께서 어찌 너희를 돌보시지 않으시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십니다. 여러분에게 뭐가 필요한지 다 아십니다. 아시기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다 준비해놓으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시다. 나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고, 준비해놓고 계신다.’라고 믿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뭘 먹을까 뭘 마실까 뭘 입을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준비해놓았으니까 너희들은 뭘 먹을까 뭘 마실까 뭘 입을까 걱정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다 더해주시겠다.”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먹고 사는 데 걱정할 것이 없도록 되도록 많은 재물을 모으려고 합니다. 누가복음 12장 16~20절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창고를 더 짓고, 거기에다가 곡식과 물건을 잔뜩 쌓아놓고 먹고 사는 문제는 걱정하지 않으려는 욕심이 마음에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사는 것이 아주 지혜로운 것 같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의 위험이 있습니다.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사람은 이상해요. 돈이 많고 재산이 많고 회사가 창대해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어른이 된 기분이 들고, 자기가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지는 위험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위험은 하나님을 떠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재산이 많다보니 그것을 관리하려면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처리하려니 새벽예배에 나올 수 있나, 주일예배에 나오기도 힘듭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고, 믿음이 점점 없어지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떠나는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솔로몬을 보면, 금은보화를 쌓아놓고 너무 잘 사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방탕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금덩어리로 지어놓고서 성전에 가서 기도하지도 않고, 하나님 앞에 경배하지도 않았습니다. 밤낮 술이나 먹고 외국에서 오신 손님 접대하느라 날마다 술에 취해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믿음이 점점 없어지고, 하나님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부자 되고 싶은 분이 계신다면 미리 잘 준비하세요. 항상 겸손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욕심이 큰 사람일수록 만족함을 얻기 어렵습니다. 욕심이 크다보니 욕심을 다 채울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가진 것이 더 많은데, 불만이 많습니다. 욕심이 크다보니 채워지지 않으니까 항상 만족이 없습니다.
욕심이 많을수록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남들이 볼 때는 학벌도 좋고, 직위도 높고, 재산도 많은데, 왜 그렇게 인상을 쓰고 불만이 많고 불행하게 사는가 하면 욕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늘 만족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기 원합니까? 욕심을 적게 가지세요. 욕심을 버리세요. 욕심이 적은 사람은 아주 쉽게 만족합니다. 하찮은 것에서도 행복을 찾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세요. 사도 바울은 집 한 칸도 없고, 가족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항상 만족했습니다. 항상 기쁨이 넘쳤습니다. 아주 행복했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행복했습니다. 비결은 세상 욕심을 다 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오라고 하시면 나는 천국에 간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죽도록 충성하면서, 주님 앞에 가서 면류관 쓸 것을 생각하면서 항상 기뻐하고 항상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을 지경이 되면 사람들은 이성을 잃게 됩니다. 더 이상 사람이 아닙니다.
열왕기하 6장 24~30절에 보면, 이스라엘 여호람 왕 때,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 성을 포위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성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성 안에 있던 곡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이제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식을 삶아먹었습니다. 옆집 사람과 “오늘은 내 아들을 삶아먹고, 내일은 네 아들을 삶아먹자.”라고 의논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한 집의 아들을 삶아먹었는데, 다음 날 옆집의 아들을 삶아먹어야 하는데, 옆집 사람이 아들을 감춰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여호람 왕이 지나갈 때, “우리를 도와주소서”라고 하며 억울한 사정을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왕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왕은 이 여인의 말을 듣고 자신의 옷을 찢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사건이 많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북한에서도 너무 배고프고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니까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체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삶아먹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광야에 가셔서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시장하셨겠습니까. 이때 마귀가 찾아와서 세 가지 시험을 했습니다.
첫 번째 시험은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하는 시험이었습니다.
마태복음 4장 3절에 보면,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마귀를 가리켜 ‘시험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시험하는 자입니다. 우리에게 시험이 찾아왔다면, 그것은 마귀가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귀가 시험할 때에는 언제나 목적이 있습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에게 의심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의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저버리게 만듭니다. 죄 짓게 만들고, 타락하게 만듭니다. 마귀는 이런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을 의심하고, 말씀을 의심하고 범죄하도록 하기 위해 온갖 거짓말을 합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도둑’은 마귀를 가리킵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찾아올 때는 목적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도둑질해갑니다. 믿음을 도둑질하고, 재산을 도둑질하고, 모든 것을 도둑질해갑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도둑질해가려고,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지옥의 멸망을 당하게 하기 위해 찾아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대적 마귀를 물리쳐야 합니다. 믿음으로 굳게 무장하여 마귀를 물리쳐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를 직접 시험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적당한 사람을 사용하여 우리를 시험합니다. 우리를 시험할 자를 마귀가 보냅니다.
아담의 경우에는 하와가 아담을 시험합니다. 아담은 가장 사랑하는 아내 하와에게 시험을 당했습니다. 하와는 뱀에게 속아 선악과를 따먹고, 남편 아담에게도 줬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시험입니까.
요셉의 경우,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며 시험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죄짓게 만들려고 시험했습니다.
열왕기상 13장에 보면, 여로보암 왕 때 하나님의 사람이 유다에서 벧엘로 올라가서 여로보암에게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누가 먹을 것을 줘도 먹지 말라. 물도 마셔서는 안 된다. 내가 전하는 이 말만 그대로 전하고, 그대로 돌아와야지, 무엇이든 먹어서는 안 된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대접하려고 할 때, 대접받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벧엘에 있는 나이 많은 선지자가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왕상 13:18).
그 말에 속아서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을 먹고 마셨습니다. 그래서 돌아가다가 사자를 만나 물려서 죽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선지자 같은 사람도 시험하는 자로 찾아와서 골탕 먹이는 수도 있습니다.
제 경우에도 그런 시험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토요일마다 설교 준비할 때쯤 되면 전화해서 “목사님, 언제 어디서 우리가 모였는데요. 아무개 집사가 목사님 욕을 많이 합디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성도들에게 은혜 끼치려고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이간질을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예, 알았습니다.”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일주일 후 토요일에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또 전화해서 “아무개 집사가 목사님 욕을 많이 합디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마음이 상하면 설교를 준비할 수 없어요. 욕을 하고 싶고, 악담을 하고 싶었습니다.
1주일 후 토요일에 또 전화가 왔습니다. 그때야 ‘마귀가 이 사람을 통해서 나를 시험하고 있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전화가 왔을 때 “이런 전화 다시 하지 마세요. 나는 그 집사님을 사랑합니다. 그 집사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기도하는데, 나한테 이런 전화 하지 마세요.”라고 야단쳤습니다. 그랬더니 다시는 전화하지 않았습니다.
마귀가 사람을 통해서 그렇게 시험합니다.
시험 가운데 가장 물리치기 어려운 시험은 바로 아담이 당한 시험입니다. 생각해보세요. 하와는 선악과를 이미 따먹었습니다.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했으니, 하와가 죽었어야 하는데 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담에게 선악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니 아담은 여러 가지로 고민했을 것입니다. 결국에는 아담이 선악과를 받아먹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시험합니다. 시험하는 자를 이기려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 순서가 바뀌면 안 됩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예수님의 마음에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시험을 했어요. 의심은 신뢰관계를 깹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십니까? 100% 신뢰합니까? 우리의 믿음은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느냐와 정비례합니다. 하나님을 100% 신뢰한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대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100% 신뢰하는 사람은 무조건 순종하면서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100%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 12:2). 그런데 아브라함은 100세가 될 때까지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사라는 경수가 끊어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이제 자식을 낳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이 아들을 통해서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진다고 하셨는데,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들을 번제로 드려도, 다시 살려서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순종했습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에 보면, 시험하는 자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마 3:16~17).
그런데 마귀가 예수님에게 와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의심하게 만드는 질문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뱀이 하와에게 찾아와서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질문했습니다. 이때 하와가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라고 대답합니다.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여 가감하고 있습니다. 뱀이 이것을 이용하여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뱀의 말을 듣고 그 나무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열매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주어서 먹게 했다고 했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시험할 때 때때로 의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어느 목사님은 청년 시절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은혜 받아서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열심히 전도하고, 봉사하며 주님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은혜 충만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밤마다 마귀가 찾아와서 시험하니 한숨도 잘 수 없었습니다. 마귀는 “네가 믿는 것이 다 거짓말 아니냐? 지금 최면술에 걸린 것 아니냐? 젊었으니 한번 그렇게 해보는 것 아니냐?”라고 하며 의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마귀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라고 한 것은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돌이 떡이 되게 해서 증명해봐라”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가 시키는 대로 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믿겠습니까? 돌이 떡덩이가 되게 했다고 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믿을 것 같습니까? 천만에요.
가룟 유다를 보세요. 바리새인들을 보세요. 예수님이 3년 동안 말씀을 전하고, 기적을 얼마나 많이 행했습니까. 오병이어의 기적, 죽은 자를 살린 기적, 앉은뱅이를 일으킨 기적, 나병환자를 고친 기적, 맹인의 눈을 뜨게 한 기적…. 그렇게 표적을 많이 보여줬지만, 믿지 않을 사람은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마귀가 예수님께 와서 돌이 떡이 되게 하라고 한 것은 예수님이 40일간 금식하신 것을 이용하여 시험한 것입니다. 40일간 금식하셨으니 배가 고파서 떡이 너무나 먹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니 웬만하면 걸려들기 쉬운 시험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듯이 돌이 떡이 되게 해서 먹어봐라”라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뭐라고 대답하십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비결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대답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에 대해 예수님의 경험이나 생각을 따라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경험을 통해서 아무리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내 경험에서 얻은 지식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아닙니다.
또 자기의 생각도 믿을 것이 못 됩니다. 사람의 생각은 실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진리의 말씀입니다. 완전하신 말씀입니다.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마귀의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려면,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아서 말씀대로 된다는 것을 날마다 체험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아니하는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떡을 부인하지 않으셨어요. 떡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을 주님도 아셨습니다.
다만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다 보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행동을 하게 되고, 악을 행하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 하나님께서 때마다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말씀, 여기서 ‘모든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을 가리킵니다.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말씀, 지금 나의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에도 언제나 함께해주시고, 말씀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 4절에 보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따라서 그대로 순종하며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서 때마다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그 말씀을 좇아 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날마다 성경을 열심히 읽고,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그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해주시는지를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어야 합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대로 살면,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야고보서 4장 13~16절에 보면,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은혜에는 관심이 없고, 하나님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주시는가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고, 먹고 사는 데만 관심을 갖고, 인간적인 계획만 세우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빌립보서 4장 11~1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은혜 충만한 가운데 사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니까, 믿음이 충만한 가운데 사니까 어떤 형편에 처해도 늘 자족하면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장 13절에 보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날마다 주님을 모시고 사는 가운데 그 영혼이 항상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가 우리에게도 먹고 사는 문제를 가지고 시험할 때가 많은데,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말씀의 은혜 가운데 살아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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