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에 합당한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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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7 11:59 조회3,632회 댓글0건본문
회개에 합당한 열매
회개에 합당한 열매
2004년 10월 10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3:5~10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부교역자로 사역할 때만 해도 교회마다 1년에 두 차례씩 대심방을 했습니다. 그때 담임목사님을 모시고 심방하러 다니며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습니다.
가난한 성도가 많은 교회에서는 하루 종일 심방을 해도 교역자를 대접할 가정이 없어서 짜장면을 사먹고 심방을 계속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형편이 나은 성도들이 출석하는 교회는 교역자들의 위장이 혹사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점심식사를 약속해놓은 가정이 있는데도 사전에 양해를 구하지 않고 식사를 준비하는 가정이 있어 점심식사를 두세 번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집집마다 전화가 있지 않았던 때라 성도들이 몇 시에 심방을 받는지 몰라 하루 종일 목사를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보에 심방순서를 실어서 성도들로 하여금 몇 시쯤 심방을 받는지 짐작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점심식사를 약속한 가정 외에는 식사준비를 하지 못하도록 당부했습니다. 식사 대신 차나 과일을 준비하도록 했습니다.
대구에 계신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교회에 음성 나환자가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그분의 가정을 심방했을 때, 그분이 식사준비를 해놓았습니다.
그분의 언니가 목사님께 “목사님, 이 음식은 동생이 준비한 것이 아니라, 제가 준비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언니 역시 음성 나환자였지만, 언니는 동생보다 양호했기 때문에, 동생이 음식을 준비했다고 하면, 목사가 꺼림칙하게 여길까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정상인이 보기에는 두 사람 다 음성 나환자인데, 차이가 크게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에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떤 사람은 바르게 사는 것 같고, 어떤 사람은 바르게 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죄가 많은 것 같고, 어떤 사람은 죄가 적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인간은 모두 죄인입니다. 허물이 많고 죄가 많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입니다.
로마서 3장 10~18절에 보면,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3장 20절에 보면,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바르게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 의롭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소망이 없는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라는 말씀은 우리가 회개하기 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주셨습니다.
로마서 5장 9~10절에 보면,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전 못된 인간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아에 화목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그러므로 주 예수를 믿기만 하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죄가 많습니다만, 죄 중의 가장 큰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입니다. 아무리 많은 죄를 범했어도,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소망의 문이 열립니다.
죄를 범하지 않고 의롭게 한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죄 사함 받을 길이 없습니다.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죄가 많아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멸망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아무리 죄가 많은 자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남은 문제는 회개하느냐 회개하지 않느냐입니다. 회개는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관심도 없고, 하나님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것이 회개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버지를 멀리 떠나 허랑방탕하게 살던 아들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탕자는 먼저 자신의 죄를 깨닫고 뉘우쳤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잘못을 아버지께 고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께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고 하며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탕자의 말과 행동을 통해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세례 요한에게 나오는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죄를 자복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죄인과 세리들과는 달리 자신들이 아주 깨끗하고 거룩하게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이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 3:7)”라고 무섭게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 3:8~10)”고 경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모두 죄인입니다. 그러나 죄의식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는 자신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죄의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두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죄를 지적하고 들춰내고 멸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악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 보면,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초인주의라는 잘못된 사상에 휘말렸습니다. 그는 돈밖에 모르는 전당포의 노파와 같은 인간 쓰레기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그런 자를 제거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노파를 도끼로 내리쳐 살해하고 전당포에서 훔친 물건을 감추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깊은 죄의식에 빠졌습니다. 그 후 그는 살인을 정당화했던 초인주의가 매우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살인으로 인한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의 비극은 과거에 비해 악독한 죄를 더 많이 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의식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두려움과 죄에 대한 거부감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면 회개할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한 뉘우침이 없는 회개는 진실한 회개가 아닙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참으로 회개하는 자는 교만하지 않습니다. 겸손합니다. 죄로 인해 징계 받는 것을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징계를 달게 받습니다.
고통을 당한다 할지라도 남의 탓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받는 대가로 알고 자신을 돌아볼 줄 압니다.
본문 마태복음 3장 8절에 보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한 것으로 다 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려면, 죄를 끊어버려야 합니다.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죄를 미워해야 합니다. 죄 지은 것에 대한 통분함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악한 마음이 착한 마음으로, 불의한 마음이 의로운 마음으로, 거짓된 마음이 진실한 마음으로, 교만한 마음이 겸손한 마음으로 변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새 사람이 되는 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회개하는 자는 죄 사함을 받습니다. 이사야 43장 25절에 보면,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지도 않으시고 죄를 도말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했다면, 회개한 죄를 다시 기억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잃어버린 복이 모두 회복됩니다.
죄 사함을 받으면,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첫째, 감사의 눈물이 있습니다.
작곡가 리스트가 어느 날 독일의 작은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마침 그 마을에 사는 한 소녀가 피아노독주회를 했는데, 소녀는 사람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려고 “리스트에게 사사 받은 아무개가 피아노독주회를 가집니다.”라고 쓴 광고지를 여기저기에 붙였습니다.
그런데 독주회 전날, 작곡가 리스트가 그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소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 소녀는 리스트의 얼굴을 본 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녀는 리스트의 숙소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저는 고아 출신으로 혼자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독주회를 계획하던 중 선생님의 고귀한 이름을 도용하여 선생님의 제자라고 광고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리스트는 웃으며 “큰 실수를 했구먼. 누구나 실수할 수 있지. 이리 와서 피아노를 한 번 쳐봐요.”라고 말했습니다. 소녀는 피아노 앞으로 가서 한 곡을 연주했습니다. 리스트는 “여기는 이렇게, 저기는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리스트의 제자라고 말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리스트는 “연주회에서 마지막 곡을 연주할 테니 내가 나오면 ‘나의 스승 리스트가 연주한다’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죗값으로 죽어 마땅한 저와 여러분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시고, 믿는 자다다 의롭다 하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째, 기쁨이 있습니다. 구원의 즐거움이 회복됩니다.
셋째, 평강이 있습니다.
넷째, 용서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무조건 용서합니다.
다섯째,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여섯째, 자원하는 심령이 됩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 싶어 합니다. 주님을 위해 드리고 싶어 합니다. 주님을 위해 충성하려는 마음이 중심으로부터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회개하는 것 자체가 큰 은혜요 축복입니다. 회개하는 것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증거입니다.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과거의 죄에 매이지 말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자원하는 마음으로 충성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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