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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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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4-15 15:15 조회2,0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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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2010년 12월 19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3:16~17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땅의 짐승과 가축,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고, 그것을 보시고는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 1:26)라고 하시며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라고 축복하셨습니다(창 1:28).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시고, 제일 먼저 하신 일이 사람들을 축복하신 일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잘되기를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축복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모든 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면,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시편 73편 28절에 보면,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멀리하여, 하나님 뵙기를 두려워하고 숨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만복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멀리하면, 하나님의 축복에서도 멀어집니다. 결국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져서 저주를 받고 맙니다. 저주는 축복을 가로막고, 받은 축복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저주는 비 오는 날 뚜껑을 덮어놓은 물탱크와 같습니다. 뚜껑을 열어놓아야 물이 담길 텐데, 아무리 축복하려고 해도 뚜껑을 덮어놓으니 물이 담기지 않습니다.

또 저주는 밑이 깨진 물독과 같습니다. 아무리 물을 부어도 새어나갑니다. 이것이 저주입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버는 것 같고, 잘 되는 것 같아도 밑이 깨져서 전부 빠져나갑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게 되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 아파하셨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본래 계획대로 우리들이 잃어버린 축복을 다시 받게 하기 위해서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어디를 가시든지 가르치셨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모든 병과 연약함은 저주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은 어디를 가시든지 환자를 만나면 고쳐주시고,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눈을 뜨게 하시고, 귀신들린 자를 만나면 귀신을 쫓아주시고, 심지어는 죽은 사람을 만나면 살려주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도 살리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신 순간, 빛이 생긴 것과 같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시니까 할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먹고, 열두 바구니가 남았습니다(마 14:13~21, 막 6:30~44, 눅 9:10~17, 요 6:1~13). 광풍이 일어나는 바다를 향해서 “잠잠하라”라고 하시니 잠잠해졌습니다(마 8:23~27, 막 4:35~41, 눅 8:22~25).

예수님은 바다 위를 걸어오셨습니다(마 14:22~27, 막 6:45~52, 요 6:16~21). 마태복음 14장 33절에 보면,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본, 배에 있는 사람들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모든 기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고, 증거합니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나 예수님을 믿지 않은 자들은 이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신격화하기 위해서 꾸민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혁명가나 성인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과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 13~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나오실 때 하늘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성령이 마치 비둘기와 같이 내려 예수님 위에 임하시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라고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고, 예수님 위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예수님 위에 성령이 임하신 것은 곧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셨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 구절 속에 모두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마지막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썼습니다. 이 구절은 목사님들이 축도할 때 사용하는 구절입니다.

여기에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교통하심’이 나오는데, 이 구절에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비한 것은 성부, 성자, 성령이 모두 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입니다.

 

또 신비한 것은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을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오셔서 영원히 함께하시겠다고 한 성령이 하나님의 영이기도 하고, 그리스도의 영이기도 한 것은 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14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라고 기록되어있니다. 하나님의 영, 곧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라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신비한 것은 요한복음 12장 45절의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보는 것은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신비한 말씀입니까.

요한복음 14장 8~10절에 보면,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얼마나 신비합니까.

 

예수님을 보는 것이 하나님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은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셔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고,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예수님을 보는 것이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비한 일입니까.

우리의 작은 머리로 그 깊은 영의 세계를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천국에 가면 확실해질 것입니다. 성경말씀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빌립보서 2장 5~11절에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 없는 육안으로 보면,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서 고생만 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하시면서도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만물이 무릎을 꿇게 하시고, 예수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2~3절에 보면 사도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라고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천지만물을 예수님이 지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18절에 보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신비한 말씀입니까.

 

그런데 마태복음 28장 1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예수님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35~36절에도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왜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만물과 권세를 모두 예수님에게 주셨기 때문에 예수를 믿어야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에게 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서기관들이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라고 생각하자, 전지전능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과 중심을 아시고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라고 말씀하시며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라고 말씀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시니 그가 일어나 자기가 누웠던 상을 들고 걸어 나갔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놀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막 2:1~12).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라고 하자 빛이 생긴 것처럼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믿지 않는 것은 믿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믿어지십니까. 이것이 믿어지는 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믿어지지 않습니까? 그것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도응답의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기도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이라도 통곡하며 회개하고 부르짖는다면 반드시 주님을 만나고, 성령의 불을 받고, 거듭나게 됩니다.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고 찾아와주시는지, 경험해보면 압니다.

 

예수님 당시의 대부분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즉,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고, 종교행위만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종교행위는 철저하게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을 버린 것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5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믿음이 있고,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사랑함으로 행하는 모든 것이 예배이고, 헌금이고, 봉사입니다. 모두 믿음으로 나타나는 열매이고,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위선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5~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참으로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책망하셔도 이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회개는 축복이며 성령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고 축복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진노가 멈춥니다.

회개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믿습니까.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아무리 죄가 많아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5:7).

 

그런데 회개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하는 것은 보통의 은혜가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저주까지 속량해주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고 저주를 속량받고, 하나님의 본래의 계획대로 영생을 얻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축복을 회복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시간, 예수님을 믿은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은 나의 주가 되십니다. 예수님만이 그리스도 구주이십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가 되시고, 창조주요, 심판주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재산, 몸, 생명도 주님의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요, 구주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를 믿어야 얻습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양자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므로 자녀라고 일컬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고 항상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과 함께 살면,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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