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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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9 17:26 조회5,758회 댓글0건본문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2012년 01월 22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3:13~17
본문 마태복음 3장에 보면, 우리가 받는 물세례가 세례 요한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물세례를 줄 때, 많은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본문 7절에 보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도 세례를 받으러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그 당시 최고의 지식계급이고, 최고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도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고, 십일조를 정확히 드리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기도를 하며, 자기들이 아주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자기들만이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오만과 교만에 빠져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항상 조심하셔야 합니다. 기도 많이 하시는 분들, 열심히 전도하시는 분들, 열심히 봉사하시는 분들은 잘못하면 오만과 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내가 예수 제일 잘 믿지.’, ‘내가 제일 충성하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제일 바르게 살지.’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또 바리새인들은 이중인격자들이었습니다. 위선자들이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굉장히 경건하게 사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입니다.
마태복음 23장 15절에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마태복음 23장 23절에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마태복음 23장 25~28절에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33절에 보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무섭게 책망하셨는지 모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됩니다. 신앙생활에서 정직을 잃어버리면 그 사람은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속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겉은 깨끗하게 했는데, 속은 더러우면 되겠어요?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데….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사두개인들은 제사장들이거나 공회원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은 모세오경만 믿습니다. 부활이나 천국은 믿지 않습니다. 내세를 믿지 않습니다. 그냥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다가 편안히 죽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믿지 않습니다. 지옥의 멸망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삶과 똑같았을 것입니다.
심판도 믿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도 믿지 않고, 부활도 믿지 않고, 그냥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이 사람들은 아주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그저 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들도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도 세례를 받으러 왔습니다. 세상적으로 지위가 아주 높은 사람들, 출세한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러 왔으니까 세례 요한이 예의를 지키고, 그들을 환영했을 것 같은데, 세례 요한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책망하신 것처럼 세례 요한도 그들을 책망합니다.
마태복음 3장 7~10절에 보면,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참 무섭게 책망합니다.
왜 이렇게 책망하는 줄 아십니까?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책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예수님은 무조건 책망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과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의 경우를 보면, 예수님은 죄가 많은 여인들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회개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죄가 아무리 많아도 회개하는 마음, 자기 자신이 죄인인 줄 알고,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주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그들을 맞아주시고, 사랑을 베푸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죄를 자복하면서 세례를 받는데,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죄 사함 받을 길이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자신의 죄를 스스로 다 짊어져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용서받을 길이 없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면할 수 없습니다.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회개 없이 교회 다니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마치 비가 쏟아지는데, 물통 뚜껑을 열지 아니함으로 물통에 빗물이 한 방울도 들어가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죄 사함을 받을 길이 없고, 은혜 받을 길이 없고, 축복받을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이와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비가 와도 물통 뚜껑을 닫아놓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뚜껑을 연 다음에야 물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회개한 다음에야 죄 사함 받을 길도 열리고, 구원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라고 말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첫째,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죄인인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 통회자복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깨달을 뿐만 아니라 그 죄를 범한 것이 하나님 앞에 너무 죄송하고, 마음 아파서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하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열매가 나타납니다.
옛날에 하던 짓을 자꾸 한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회개해도 열매가 없습니다. 회개의 열매가 없는 사람,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은 도끼가 그 나무뿌리에 놓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찍어 불에 던져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열매까지 나타나야 합니다.
회개했으면 사람이 달라져야 합니다. 회개했으면 삶이 달라져야 하고, 마음가짐이 달라져야 하고, 말하는 것이 달라져야 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자기네들이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니까 자기네들은 하나님의 구별된 선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회개해야 구원 받는다고 했습니다. 회개해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3장 9~10절에 보면,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라고 말했습니다.
회개라는 것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게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됩니다. 성령의 은혜로 됩니다.
회개해야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회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게 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령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면 죄 사함 받게 되고, 죄 사함 받게 되면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됩니다.
마태복음 3장 11~12절에 보면,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알곡 신자’는 회개의 열매가 있는 사람입니다.
누가 알곡 신자가 됩니까? 회개가 있는 거듭난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다 보면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되고,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되면, 주님을 모시고 살게 되는데, 점점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고, 주님의 성품을 닮게 되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경건의 능력이 생깁니다.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환난 시험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는 경건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바로 알곡 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쭉정이’는 누구일까요? 회개의 열매가 없는 사람입니다.
회개가 없으니까 성령의 선물을 받지 못했습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지 못했으니까 변화도 없고, 경건의 능력도 없습니다. 그래서 죄를 이기지 못하고, 마귀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환난 시험을 이기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알곡 신앙입니까, 쭉정이 신앙입니까?
마태복음 3장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려고 오셨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이 때에’라고 한 것은 누가복음 3장 23절에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라고 기록된 것과 연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30세가 되니 세례를 받으러 세례 요한에게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30년간 침묵을 지키시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는 반드시 정한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때에 맞춰서 행동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4절에 보면, 가나 혼인 집에 가셨을 때 포도주가 떨어지니까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실 때가 아직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3년 동안 공생애를 하실 때에 마음대로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맞춰서 모든 것을 행하셨습니다.
30세가 되니 세례를 받으시고, 때가 되니 피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40년 동안 애굽 궁전에서 자라나게 하셨어요. 40세가 되니 80세까지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게 하셨어요. 80세가 되니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게 하시고, 120세가 되니 아직도 건강하고 눈이 밝아 일하는 데 조금도 지장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가셔서 모세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무작정 행동하시는 분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다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하나님이 계획을 이루실 때에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맞추어서 모든 것을 이루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어떤 때는 당장 이루어졌으면 좋겠지만 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는 가장 좋은 때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모자라지만,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가장 좋은 때를 정해놓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때를 따라 행하십니다.
마태복음 3장 13절에 보면,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러 온 사람이요, 그는 예수님의 신발끈을 풀기도,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할, 다시 말하면, 종 노릇도 할 수 없는, 그렇게 부족한 사람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3장 14절에 보면,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라고 말했습니다.
마태복음 3장 15절에서 예수님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라고 말합니다.
세례 요한은 죄를 자복하는 사람들을 요단 강물에다가 머리끝까지 집어넣었다가 끄집어내는 방법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세례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첫째, 죄를 씻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푹 담갔다가 꺼내는 이 행위는 모든 죄를 씻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이것은 죄인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그 회개의 표로서 죄를 씻어 정결하게 하는 예식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옛 사람이 완전히 죽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다시 거듭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는가 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려고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죗값을 대신 치르셨어요.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의롭다 함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이 세상에 계실 때에는 특별한 대접을 받으시려고 하지 않으셨어요. 예수님은 마치 죄인인 것처럼, 죄인들이 죄를 자복하고 세례 받는 곳에 오셔서 세례를 받으시려고 하셨습니다. 겸손히 종의 모습으로 사셨고, 겸손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섬기는 자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교회에서 대접받으려고 하지 말고, 겸손히 다른 사람들을 대접하고 섬기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례 요한은 주님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이 아주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지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6~17절에 보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어요. 하늘에서 소리가 분명히 들렸습니다.
사도행전 2장 2~4절에도 보면, 성령이 임하실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분명히 들을 수 있었고,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은 성경에나 있는 이야기지. 21세기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저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곳에서 성령의 불이 임하시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달리 설명할 수 있을까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속에서 기도하는데, 불이 임할 때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할렐루야,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다보니 해가 떴습니다.
중학생이었을 때는 추운 겨울에 혼자서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난로도 없이 떨면서 기도하는데, 갑자기 위에서부터 따뜻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따뜻한 담요로 감싸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체험을 하면서 밤새도록 행복한 마음으로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또 주님께서 제게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살아계십니다. 성경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모두 성령의 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딸이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너를 통해 내가 영광을 받으리라. 너를 내가 사용하리라”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불을 받으면 담대한 믿음이 생겨요. 얼마나 강한 믿음이 생기는지 몰라요. 너무 행복해요. 너무 좋아요.
이 험한 세상, 악한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려면 성령의 불을 받아야 됩니다. 주의 음성을 들어야 됩니다. 주님을 만나야 됩니다.
특별히 성경을 읽고,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은혜 받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눈물이 쏟아지고, 성경을 읽다가 몸이 뜨거워져서 하나님 앞에 몸부림치며 회개하고 기도하는 그런 분들은 참 아름답게 은혜 받는 분들입니다.
살아계신 주님, 우리 가운데 함께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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