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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장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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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12-27 11:17 조회3,7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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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2016년 12월 25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18~23

 

마태복음 1장 1절에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한 그리스도, 메시아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우리에게 증거하기 위해 마태복음 1장 1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기 22장 17~1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네 씨’는 ‘네 자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네 씨’는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 보면,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장차 메시아가 네 자손 가운데서 나올 터인데, 그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 즉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복은 크게 두 가지를 가리킵니다.

첫째,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셔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의롭다함을 받게 되는 복을 가리킵니다.

마치 죄를 범한 적 없는 것처럼, 모든 죄를 대속함 받고, 의롭다함을 받게 되는 복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 복을 받았습니다.

 

둘째, 모든 저주를 속량 받는 복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유대인에게만이 아니고, 이방인들, 우한국 사람들에게까지 복이 미치게 하기 위해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중에 메시아가 탄생할 것을 다윗에게도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사도행전 13장 22~23절에 보면,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사무엘하 7장 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의 자손이 계속 왕이 되었지만, 망하고 말았습니다. 영원히 보전되는 나라, 영원히 견고한 나라는 바로 그리스도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즉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지는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히 영원히 견고하리라는 의미입니다.

 

누가복음 1장 31~33절에 보면, 천사가 마리아에게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를 가리킵니다. 세상의 나라 중에 무궁한 나라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세우시는,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히 무궁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누가복음 2장 10~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밤새도록 양을 지키던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은 천군천사들이 나타나 찬송할 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창세기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고 저주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죄는 저주를 받게 합니다. 그러므로 죄는 모든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인간이 고통과 슬픔을 당하며 고생하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죄가 저주를 불러옵니다. 그러므로 모든 불행은 죄에서부터 옵니다. 뿐만 아니라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불못에서 영원히 고통당하게 됩니다.

 

인간이 지옥의 멸망을 당하는 것보다 더 큰 저주는 없습니다.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다가 죽는 사람은 불행하게도 저주를 받은 사람입니다.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 당하는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런 불행을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전도합니다. 전도해서 예수님을 믿게 하고, 구원 받게 하려고 애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주님을 믿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려면, 우리 대신 죽어야 합니다. 우리 대신 죽으려면, 죄가 없어야 합니다. 죄 있는 인간이 어떻게 구세주가 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롬 3:10). 모두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석가모니도 죄인이요, 공자와 맹자, 그리고 마호메트도 죄인입니다. 죄인이 아닌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할 수 없이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독생자 예수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셔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것은 약 7백 년 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사 7:14)”라고 예언하신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어떻게 처녀가 아기를 낳습니까. 우리는 가능하지 않지만,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으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못 하실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본문에 보면, 요셉은 자신과 약혼한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했습니다. 요셉은 착하고 의로운 사람입니다. 악한 사람이 아닙니다. 악한 사람은 화를 내고 돌로 쳐 죽이려고 했을 것입니다.

요셉이 조용히 끊으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주의 사자가 요셉의 꿈속에 찾아와서 요셉에게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0~23)”고 말했습니다.

주의 사자는 요셉에게 이사야서에 예언된 대로 되었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마태복음 1장 24~25절에 보면,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셉은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깨닫고 사는 사람에게는 눈물이 있고, 감사가 있고, 찬양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어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크다는 것을 확증시켜주셨습니다(롬 5:8).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롬 5:10).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 고통 중에 신음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신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3년 동안 이 세상에 계시면서 많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약하셔서 고통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4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눈에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셨습니다.

 

죽은 자를 향하여 예수님께서 “일어나라(막 5:41)”고 말씀하시니 죽은 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광풍이 일어난 바다를 향해 예수님께서 “잠잠하라 고요하라(막 4:39)”라고 말씀하시니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바다 위를 걸으셨습니다.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고 열두 바구니가 남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향하여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막 5:8)”라고 말씀하시니 귀신이 나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이 왔을 때, 베드로가 제사장의 종의 귀를 쳐서 귀가 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사장의 종의 귀를 다시 붙여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이것도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한 도마는 예수님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만져보고, 옆구리에 있는 창자국을 만져보며 확인한 후에야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라고 고백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 보면,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마르다는 예수님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7)”라고 고백했습니다.

마르다의 믿음이 대단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짋어 지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뿐만 아니라 의롭다함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받는 복 중에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많은 죄를 지으며 살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나 마치 죄가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죄를 범한 적 없는 사람처럼, 정결한 처녀의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

 

로마서 3장 23~26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5장 1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5장 18절에 보면,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려면, 모든 사람과 화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보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좋은 사람과만 화평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사람, 지옥에 갈 인간들,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나를 괴롭히는 원수들과도 화평해야 합니다. 우리는 싸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사람과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를 볼 수 없습니다. 구원 받지 못합니다.

 

로마서 12장 18절에 보면,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우리가 모든 사람과 화목하려면, 용서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먼저 용서해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용서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으면, 우리는 그 사람과 화목하게 됩니다. 이 땅에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줄 믿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19절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목하게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 직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화목하게 하는 말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잠언 16장 7절에 보면,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은 원수들과도 화목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보면, 자기의 가정에서도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중에도 평화가 없는 교회가 있습니다. 부끄럽게 사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왜 이렇게 될까요?

예수님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해야 하는데, 예수님의 계명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평화가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마귀의 자녀라고 했습니다(요일 3:10).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에베소교회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에베소에 있는 교회에게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사랑을 잃어버리면,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교회에게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셨습니다. 에베소에는 교회가 없습니다. 교회가 없어졌습니다. 교회가 사랑을 잃어버리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만약 에베소교회가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회복했다면, 교회가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에베소도 이슬람권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여 교회다운 교회가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왜 촛대를 옮기시겠습니까.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는데,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셨습니다.

교회에 다니지만, 사랑을 잃어버린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마귀의 자녀입니다. 이런 사람이 아무리 많이 모인다 한들 소용없습니다. 이런 교회는 없어집니다.

 

마태복음 6장 14~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용서하지 못했더라도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되는데, 에베소교회의 교인들과 같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것을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아무리 큰 죄를 범했다 해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용서하십니다.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실 뿐 아니라,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완전히 도말해주십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려고 하다가도, 하나님께서는 다 중단하십니다. 오히려 축복을 내려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에베소교회가 에베소에 외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교회도 망하지 않았을 테고, 에베소도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얼마나 큰 위기인가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우리나라는 위기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가 회개하고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하면 교회도 살고 이 나라도 살 줄 믿습니다.

사랑을 잃어버리면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시면, 교회만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가 망해버립니다.

 

이 나라와 이 백성이 잘 살게 된 것은 하나님 덕분입니다. 한국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할 때,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왜 어려움을 당합니까? 교회들이 사랑을 잃어버리고 부끄러운 짓을 하니까, 교회만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라 경제도 점점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세상을 바라보고 걱정하지 마세요. 자신을 걱정하세요. 자신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인가,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사람인가 걱정하세요.

 

수영로교회가 사랑으로 불덩어리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수영로교회 때문에라도 우리나라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다른 교회를 탓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 됩니다.

 

에베소교회가 회개하고 돌이켰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들이 용서하지 않고 서로 미워하고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상태로 있으니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죄를 용서 받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회개 없이는 천국도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고 외치셨습니다.

 

에베소교회의 교인들 같은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믿음의 사람입니다(약 2:17, 26). 죽은 믿음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의 은혜 받는 것을 모릅니다.

 

수십 년간 교회에 나왔어도,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특징은 회개가 없습니다. 믿음도 없고, 변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눈물도 없고, 감사도 없습니다. 마음이 냉장고 속처럼 차갑습니다. 마음이 메말랐습니다. 옛날 성질을 버리지 못하고, 평생 그 성질대로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고,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 원망 불평을 많이 합니다. 교회에 대해서도 원망 불평이 많습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들은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오늘 이 순간에 용서하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마음의 평화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아직까지 계속해서 괴롭히고 있는 박해자가 있다면,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할 수 있는 대로 그들과도 화목하려고 애쓰고, 그들을 축복하며 기도해주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순종하기 참으로 어렵지만, 순종하는 순간에 성령의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그래서 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그동안 응답되지 않던 기도제목이 해결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로마서 12장 17~2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성탄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원수들에게도 사랑이 담긴 카드나 선물을 보내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말, 축복의 말을 담아 보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는 임마누엘의 축복이 임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5장 21~24절에 보면,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오늘 이 순간은 에녹이 60세가 되었을 때부터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한 그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까지 주님께서 내 안에 계셔서 나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복을 받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는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듣는 자만 되지 말고,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여주셔서 이 모든 축복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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