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건 신앙(2010년 09월 19일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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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7 20:24 조회3,236회 댓글0건본문
목숨을 건 신앙
목숨을 건 신앙
2010년 09월 19일(주일예배)
본문 / 다니엘 3:15~18
명절을 맞이하면, 흩어져있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우리가 잘살게 된 것이 조상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죽은 조상 앞에 절하는 가정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 것을 ‘효도’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집에서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죽은 조상 앞에 열심히 절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절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절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믿음이 약한 분들은 마음에 확신이 없어서 그런지, 명절이 되면 제사문제로 골치 아프고, 싸우기도 하고, 덕이 되지 않으니 절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절에 행하는 것을 미풍양속이라고 여기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여러 가지 제사가 나오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드리는 제사, 즉 우상 앞에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에 대해 고린도전서 10장 2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라고 기록했습니다.
우상 앞에 제사 지낼 때, 우상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우상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죽은 조상 앞에 제사 지낸들 죽은 조상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그런 제사는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귀신과 교제할 수 있냐고 말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이 주는 포도주와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우상 앞에 제사지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목숨을 걸고, 죽을 각오를 하고, 그것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채소만 먹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건강하게 해주시고, 다니엘의 얼굴이 빛나게 해주시고, 다니엘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영감과 은사를 주셔서 다니엘을 뛰어난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또 한 가지 제사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 중에는 감사하며 드리는 제사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제사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제사는 속죄제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소나 양 등의 짐승을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리므로 죄 사함을 받는 제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제사 중에 가장 중요합니다.
구약시대의 제사는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예표합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속죄의 제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보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사람들에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소개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 속죄 제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은 우리의 과거의 죄만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앞으로 죄를 범할 수 있는데,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완전하게 대속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후에는 속죄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순간, 모든 것이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에 드리던 모든 제사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후에는 끝났습니다. 제사는 다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와 여러분은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립니다.
히브리서 9장 11~14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0~14절에 보면,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죽은 조상에게 제사지내려고 하지만, 조상은 한두 명이 아닙니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등 조상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가장 말째 조상에게 제사지내야 합니까? 가장 첫 번째 조상에게 제사지내야 합니까?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복음 3장에 보면, 우리 조상의 이름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3장 38절에 보면,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아담이 나옵니다. 아담의 위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려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죽은 조상에게 효도하는 마음으로 제사지낸다고 하지만, 과연 제사가 효도가 됩니까?
효도는 부모님을 잘 섬기고 봉양하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이미 죽었는데, 죽은 부모님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이미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 버렸는데, 무엇을 알겠습니까. 음식을 차려놓아도 죽은 부모님이 그 음식을 맛보겠습니까. 전혀 손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돌아가신 분에게 일방적으로 제사지내는 것은 효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진심으로 효도하고 싶다면,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에 효도해야 합니다. 돌아가신 분에게 제사지내지 말고, 살아계실 때에 잘 해야 합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고 난 후, 할아버지의 제사 때가 되어도 저는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께서 얼마나 섭섭해 하시는지, “이놈의 자식, 너 나 죽어도 절하지 않을 거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할머니께 “할머니, 돌아가신 후에 제가 절하면 할머니가 알아요?”라고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어떻게 알아? 죽었는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래서 제가 절하지 않는 거예요. 제가 절하기 싫어서 절하지 않는 것이 아니에요. 제가 절하지 않아서 섭섭하세요? 그러면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에 미리 절할게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미리 절 받으세요. 돌아가시면 절하지 않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할머니께 절했습니다. 그 다음 날, 학교 가기 전에 할머니 방에 가서 “할머니, 미리 절 받으세요.”라고 말하고 절한 후에 학교에 갔습니다. 날마다 아침에 할머니 방에 가서 절한 후에 학교에 갔습니다.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나니까 할머니께서 감동을 받으셔서 “이제 그만해라. 나도 예수 믿을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예수님을 잘 믿으시다가 천국에 가셨습니다.
살아계신 분께 잘해야지, 돌아가신 후에 아무리 제사지낸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살아계신 부모님을 섬길 줄 모릅니다.
자식이 많지만, 아무도 부모님을 돌보지 않아서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연로하신 부모님 두 분이 같이 사는 경우에는 대화하기도 하고 낫지만, 혼자 계신 분을 돌보지 않으니까 혼자 있으면 밥해먹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먹고 맙니다. 연로하신 분이 혼자 사는 것은 감옥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는 부모님을 돌아보지 않다가 돌아가신 후에 제사지내며 효도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슨 효도입니까.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에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결혼한 후에는 하나님께 십일조헌금을 드리고, 십일조헌금의 액수만큼 양가부모님께 용돈으로 드립니다. 그리고 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장인, 장모님께 다 드렸습니다. 그리고 매주 한 번 이상 장인, 장모님과 통화하며 한 주간 있었던 일을 다 보고하고, 기도제목을 부탁드리고, 같이 기도합니다.
그리고 친척 중에 가난한 분, 연로하신 분, 몸이 아프신 분에게 용돈을 보냅니다.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효도하고 싶어도 효도할 수 없습니다. 살아계실 때에 효도해야 합니다.
제가 아는 어느 집사님은 부모님에게 좋은 아파트를 사드리고, 부모님의 집 근처에 자기 가족이 삽니다. 그래서 퇴근할 때 부모님의 집에 들릅니다.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합니다. 손주들이 할아버지 집에 와서 놀기도 하고, 냉장고가 비었으면 장봐서 채워드리고, 자동차가 낡았으면, 새 차로 바꿔드립니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도 늘 왕래하며 사니까 부모님이 외롭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집사님을 축복하셔서 이 집사님은 불경기를 모릅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에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은 살아계신 분께는 절해도 되지만, 그 외에는 어떤 형상 앞에서든, 사진 앞에서라도 절하면 안 됩니다. 제사지낼 때, 조문 갔을 때, 절대 절하면 안 됩니다.
본문에 보면, 바벨론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을 때, 온 백성들이 금 신상 앞에 절해도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과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출 20:4~6). 하나님의 계명을 아는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금 신상 앞에 절할 수 있겠습니까.
우상은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허망한 것입니다. 이사야 44장 9~절에 보면,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상은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그 나무로 우상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신이라고 여기고 그 앞에서 비는 것입니다. 철공이 철로 연장을 만들기도 하고, 그 철로 우상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신이라고 여기고, 그 앞에서 복을 달라고 비는 것입니다.
나무와 철에게 생명이 있습니까. 눈이 있습니까. 들을 수 있습니까. 말할 수 있습니까. 무슨 힘이 있습니까. 그것이 어떻게 신이 될 수 있습니까. 사람이 돌로 조각해서 우상을 만들어놓고 그 앞에서 아무리 절한들 돌이 복을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상숭배하는 것은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화가 나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단 3:14~15).
그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들은 목숨을 건 신앙을 가지고, 죽을 각오를 하고 대답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다스릴 때, 강제로 신사에 참배하게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사에 참배했지만, 주기철 목사님을 비롯해 믿음의 선조들은 신사에 참배하지 않았습니다.
일본군에게 끌려가서 고문당하고, 매를 맞고, 감옥에서 생활하다가 순교한 사람이 많습니다. 우상 앞에 절하지 않고, 순교하며 흘린 피가 이 땅에 있기 때문에 이 나라에 있는 교회가 부흥되는 줄 믿습니다.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기면,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크게 들어 쓰십니다.
광림교회의 김선도 목사님이 다섯 살 때의 일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산신령 앞에 제사지내기 위해 소를 잡으려고 집집마다 돈을 걷었습니다. 김선도 목사님의 가정은 예수님을 믿는데, 어떻게 그 일에 동참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부모님이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라고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이 집은 산신령을 화나게 했으니 큰 일 났다”라고 하며 걱정하더랍니다.
그런데 다섯 살이었던 김선도 어린이가 폐렴에 걸려 열이 40도가 넘어가고, 헛소리를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산신령을 화나게 해서 그렇다. 무당을 데려와서 굿을 해야 한다.”라고 야단법석이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선도야, 너는 죽을 테면 죽어라. 하나님이 주셨다가 하나님이 데려가시면 할 수 없지. 너를 잃을지언정 나는 예수님을 버릴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산 위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아버지 하나님, 나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해주옵소서. 내 아들은 잃을지언정 내 믿음은 잃지 않게 해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가운데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어느 노인이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습니다. 어떤 풀을 삶아 찜질하면 낫는다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그 풀을 삶아 찜질했습니다.
30분이 지나고 나니 아들이 재채기를 하더니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1시간이 지나고 나니 과일을 먹기도 하고, 식사도 제대로 하게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선도의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 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앙의 지조를 지킨 그 가정을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그 후손들이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어떤 핍박이 와도 목숨을 건 신앙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축복 받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귀하게 쓰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명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제사지내지 말고, 추모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찬양을 부르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조상이 남긴 유훈을 되새기면서 그대로 살기로 다짐하고, 조상 가운데 훌륭한 분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어서 아이들이 본받을 수 있게 해주세요. 조상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좋은 이야기만 하세요. 조상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이 좋은 결심을 한다면, 은혜 충만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명절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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