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지금의 나를 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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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6 14:02 조회4,040회 댓글0건본문
하나님은 지금의 나를 보신다
하나님은 지금의 나를 보신다
2009년 06월 19일(금요철야)
본문 / 에스겔 18:21~24
어느 목사님은 과거에 폭력배였습니다. 사람을 죽인 후 감옥에서 생활하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감옥에서 출소한 후, 신학교에 가서 공부하여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통 목회자가 아니었습니다. 성령 받은 목회자였습니다. 말씀의 능력이 있는 목회자가 되어 전국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변화되어 부흥강사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대구에서 집회를 인도하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이더랍니다. 그 날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그 여자가 달려오더니 “예전에 주지 않았던 술값 내놔”라고 하더랍니다. 술집 여주인이 예수님을 믿고 부흥회에 참석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죄가 드러난 죄인, 죄가 드러나지 않은 죄인이 있습니다. 다 죄인입니다. 그런데 죄가 세상에 드러나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죄인이 있는가 하면, 죄가 많지만 죄가 드러나지 않은 죄인이 있습니다. 드러났는가 드러나지 않았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 다 죄인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 없는 의인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의인인 척 행세하는 위선자가 있을 뿐입니다. 실제로는 죄를 많이 범하면서도 마치 의인인 척 행세하는 위선자가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아주 미워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나 창녀와 같은 드러난 죄인은 미워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죄인이면서도 의인인 척 행세하는, 외식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예수님께서는 가장 미워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5~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3~11절에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자신도 돌에 맞아죽어야 마땅한 인간이면서도 마치 죄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간음하다 붙잡혀온 여인을 돌로 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리하여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11)”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좋은 분이십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 해도 죄 가운데 있다가 죽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조금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죄가 많은 죄인이라 할지라도 죄의 길에서 돌이켜 살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본문 에스겔 18장 23절에 보면,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악인이라 해도 그가 죄 가운데 죽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조금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악한 자라 할지라도 그가 돌이켜 살기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 받는 것을 원하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의인이나 악인이나 어느 민족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본문 에스겔 18장 21~22절에 보면,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에스겔 18장 24절에 보면,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를 보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현재 모습만 보십니다. 아무리 죄를 많이 범한 악인이라 할지라도, 죄에서 돌이켜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정의를 행하고 공의를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과거에 범한 죄를 하나도 기억하시지 않으십니다. 죄에서 돌이켜 공의를 행하고 정의를 행하며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그 사람을 반드시 살게 하십니다.
반대로 지금까지 바르게 살아온 사람,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살아온 사람이라도 거기서 돌이켜 악을 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과거에 행한 의를 하나도 기억하시지 않으십니다. 그 사람은 현재 죄 가운데 사는 것으로 말미암아 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를 보시지 않으시고, 현재를 보십니다.
누구든 부끄러운 과거가 있습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며 부끄러운 것이 한 점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부끄러운 죄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를 보시지 않으십니다. 과거는 과거로 끝났습니다. 오늘 현재 지금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현재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내 모습을 보십니다.
마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두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마 21:28~3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아들이 아버지께 어떻게 대답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두 아들이 어떻게 행동했는가가 중요합니다. 맏아들은 아버지께 잘 대답했지만, 아버지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아버지께 싫다고 대답했지만,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포도원에 가서 일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아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31~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 같은 사람들은 끝까지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리와 창녀는 죄가 많았지만, 그들은 뉘우치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창녀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과거가 어떠하든지 깨닫는 즉시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이라도 잃어버리는 것을 않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5장 4~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죄 가운데서 멸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탕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눅 15:11~32)”고 말씀하셨습니다.
탕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즉시 아버지께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죄를 깨닫는 즉시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탕자는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첫째, 아버지의 집을 떠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집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타락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를 떠나면 안 됩니다. 교회를 떠나면 죽습니다.
나무에서 가지가 떨어지면, 가지는 말라죽습니다. 가지는 나무에서 떨어지면 안 됩니다. 떨어지면 죽습니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있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교회를 떠나면 안 됩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제가 늘 같이 다녔던 친구 중 한 명이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 교회에 나오지 않는가를 알아보니 그 친구의 어머니께서 아들을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합격하게 해서 아들을 법관으로 만들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주일에도 아들이 학원에 가서 공부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 친구는 그때부터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합격하기 위해 주일에 교회에 가지 않고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출세하려고 하나님을 등지고 교회를 등졌습니다. 이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잘 될 리 있겠습니까. 목표한 대로 대학교에 합격한다 해도,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떠난 것 자체가 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친구는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시험을 쳤으나, 세 번이나 낙방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교회에 가지 않으니 신앙을 다 잃었습니다. 평생 방황하며 살았습니다.
제 친구는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교회에 가서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예배를 열심히 드렸습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떠났으니 잘 될 리 없습니다.
여러분은 매 주일 교회에 나아와 앞자리에 앉아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주일이 되면 반드시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겠다고 결단하시고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결심한 대로 실천한다면, 절대 타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범죄할 수는 있겠지만,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것을 목숨 걸고 지키는 신앙을 우리가 가지면, 마귀가 쓰러뜨리려고 해도, 우리는 오뚝이처럼 일어날 것입니다.
둘째, 고통과 불행의 원인이 죄임을 깨달았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 먼 나라에 가서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재산이 다 없어졌습니다. 친구들도 다 떠났습니다. 헐벗고 굶주렸습니다. 그래서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모든 고통과 불행의 원인은 죄입니다. 죄는 겉에는 설탕이 발라져있어 달콤합니다. 속에는 사람을 죽이는 독이 들어있습니다. 죄가 달콤하다고 해서 죄 가운데 빠지면 안 됩니다.
어느 청년이 군대에 가기 전에는 교회에서 충성했는데, 군대에 가서 타락했습니다. 한 여자를 알게 되어 죄를 많이 범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신앙생활을 같이 했던 친구들은 그 청년이 타락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 청년에게 권면했습니다. 그러자 이 청년은 친구들에게 “너희들은 이 맛을 몰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청년을 가만히 두시겠습니까. 어느 순간 거꾸러져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마귀에게 속지 마세요. 죄의 맛이 달콤하다 해도, 죄는 모든 불행을 끌어옵니다. 모든 고통을 가져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죄악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거룩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축복 받는 길입니다.
셋째,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살 길임을 깨달았습니다.
살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은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그것이 살 길입니다.
요엘 2장 12~14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미 매 맞기 시작했습니다. 환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재앙이 시작되었습니다. 궁지에 몰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금식하며 기도하면, 울며 애통해하면,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면 산다는 것입니다.
늦었다 할지라도 금식하고 울며 회개하고 돌아오면,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 인애가 크신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셔서 재앙을 멈추시고, 오히려 복을 내려주셔서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탕자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옴으로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즐겁게 했습니다. 아버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탕자의 비유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얼마나 좋은 분이신가를 깨닫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허락하십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 중에서 자신에게 돌아올 분깃을 달라고 아버지께 말했을 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살림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아들이 달라는 대로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에게도 햇빛과 비를 내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인에게도 똑같이 햇빛을 내려주시고, 비를 내려주십니다. 이것을 ‘일반은혜’라고 합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 중에서 자신에게 돌아올 분깃을 달라고 아버지께 말했을 때, 아버지는 아들의 말대로 허락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기계처럼 움직이는 존재로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게 하시고,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도 있고, 불순종할 수도 있었습니다. 사랑할 수도 있고, 미워할 수도 있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을 수도 있고, 따먹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종하는가 순종하지 않는가는 우리의 자유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는 우리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모든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모든 저주를 받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기다려주십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날마다 기다렸습니다. 참으로 좋은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날마다 기다렸습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시지 않으시고, 참아주시고 기다려주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리석고 악합니다. 전도서 8장 11절에 보면,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셔서 참아주시고 기다려주십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것을 악용합니다. 하나님께서 즉시 징벌하시지 않으시니 사람은 징벌이 없다고 생각하고 더 악한 짓을 담대히 행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 하는데, 재림하시지 않으십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여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도 재림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에 보면,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5절에 보면,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참고 기다려주셨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래 참아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습니다. 오래 참아주시고 오래 기다려주신 예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죽어야 마땅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멸하시지 않으시고, 참고 기다려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다려주셔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습니다.
우리가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면, 우리는 한 줌의 흙이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 살아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받아주십니다.
아들이 재산을 다 날려버리고 거지가 되어 돌아왔지만, 날마다 아들을 기다린 아버지는 기쁨으로 아들을 받아주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어떤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받아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예수님의 십자가 우편에 있는 십자가에 못 박혔던 강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있는 동안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9~43절에 보면,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평생 강도짓을 하고 못된 짓을 하다가 사형 언도를 받은 강도라도 돌아오니 하나님께서는 받아주셨습니다.
과거가 어떠하든지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받아주십니다. 원수 마귀는 우리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주지만, 우리는 속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돌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살려주십니다.
역대하 33장에 보면, 유다 왕 므낫세는 우상숭배를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책망하셔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역대하 33장 9~13절에 보면,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모든 나라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무리 죄를 많이 범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돌아와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는 받아주셨습니다.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므낫세를 왕위에 다시 오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아무리 죄가 많다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받아주십니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과거를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아들의 과거를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온 것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어떤 죄인이든 회개하는 마음으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과거를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과거의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죄를 도말해주시고,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이사야 43장 25절에 보면,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에게 허물이 얼마나 많습니까. 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허물을 도말하십니다. 없애버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기억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도 범죄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인자하십니다.
시편 103편 10~14절에 보면,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은 연약합니다.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마귀에게 속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를 처벌하시지 않으십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기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시편 130편 3~8절에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다 속량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받아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다섯째, 하나님께서는 회복시켜주십니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혔습니다. 허랑방탕하게 죄 가운데서 살다가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혔습니다.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아들은 잃어버린 것이 다 회복되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입었습니다. 손에는 가락지를 꼈습니다. 발에는 신을 신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습니다. 누가복음 15장 24절에 보면,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것을 다 회복시켜주십니다. 잃어버린 신분도 회복시켜주십니다.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골짜기 가운데에 있던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마른 뼈처럼 소망이 없는 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군사로 다시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십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렸던 여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였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끄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었고, 자랑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귀신이 다 쫓겨나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는 열심으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끄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수가 성의 여인은 과거에 남편 다섯이 있었고, 남편이 아닌 사람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천한 사람입니까. 부끄러워 낮에는 바깥으로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것을 여인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수가 성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수가 성의 여인은 천하고 부끄러운 여인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회복시키셨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후, 잃어버린 것이 회복되는 것도 축복이지만, 온전한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것은 더 큰 축복입니다.
마른 뼈가 큰 군대가 된 것처럼, 막달라 마리아가 존귀한 일꾼이 된 것처럼, 수가 성 여인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이 된 것처럼 변하여 새 사람이 되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이사야 43장 18~21절에 보면,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왔다면, 과거에 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죽을죄를 지었다 해도 회개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셨습니다. 죄를 모두 도말해주셨습니다. 기억하지도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시고 도말해주시고 기억하지 않으시는데, 과거에 매이면 안 됩니다. 과거를 훌훌 벗어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 감사하시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는 일꾼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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