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택함 받은 자)의 특강(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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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3-31 09:40 조회3,212회 댓글0건본문
하나님의 자녀(택함 받은 자)의 특징(3)
하나님의 자녀(택함 받은 자)의 특징 3
2020년 04월 12일(주일예배)
본문 / 에스겔 18:21~23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죄를 반드시 회개합니다. 죄를 회개하여 죄를 사함 받고 천국 시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회개하고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됩니다.
요한복음 5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가지 부활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지금 낙원에 있는 성도들은 가장 먼저 예수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몸으로 예수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살아있는 성도들은 그 후에 예수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한 사람,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부활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천년왕국이 이루어진 후에 큰 심판이 있을 것인데,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때서야 부활할 것입니다.
그들은 심판 받기 위해 부활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행한 대로 심판을 받고 영원한 불못에 들어갈 것입니다.
불못에 들어가면 불 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불못에 들어간 사람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당할 것입니다.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입니다(막 9:48). 지옥에 가는 것은 영원히 죽는 것입니다. 지옥의 고통은 영원히 계속되는 고통입니다.
평생 교회를 다녀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회개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아무나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회개합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본문 에스겔 18장 21절에 보면,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에서 돌이켜 떠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개했음에도 반복해서 죄를 짓는 사람, 변화되지 않는 사람은 온전히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형식적으로 회개했을 뿐입니다.
회개했음에도 변화되지 않고 반복해서 죄를 짓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사함 받는 회개, 하나님께 상달되는 회개를 한 것이 아닙니다. 회개했다면 죄에서 돌이켜 떠나야 합니다.
회개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라 해도, 죄가 많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다 할지라도, 회개하면 사는 길이 열립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매우 중요합니다.
본문 에스겔 18장 22절에 보면,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죄를 범한 사실을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죄를 범한 적 없는 사람과 똑같이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상달되는 회개를 하면, 모든 죄에서 자유로워집니다.
분명히 죄를 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범한 죄를 하나도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과거를 따지지 않으십니다.
탕자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탕자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탕자가 집을 떠나 죄를 얼마나 많이 범했겠습니까. 그러나 탕자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과거를 묻지 않았습니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죄인 한 사람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올 때, 천국에서는 잔치가 벌어집니다.
본문 에스겔 18장 23절에 보면,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을 모두 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23:31). 이 말씀을 보고 하나님이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 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나안 족속은 모두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한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심판을 받아 죽게 되어있습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용서하십니다.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마치 죄가 없는 것처럼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죄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죄 가운데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악한 사람을 심판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마음 아파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죄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악한 사람을 멸하실 때에 얼마나 마음 아파하시겠습니까.
탕자는 거지같은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탕자에게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을 용서하실 뿐 아니라, 회개하는 사람에게 보너스를 주십니다.
요엘 2장 25절에 보면,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잘못해서 맞았습니다. 잘못해서 재앙을 당했습니다. 잘못해서 기근을 겪고 망했습니다. 그런데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재앙으로 인해 잃은 것을 다 회복시켜주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사람은 큰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 멸망하지 않고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소원이요,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것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죄를 뉘우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고 자기 마음대로 살던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고 돌이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다 보면 실수할 때도 있고, 자기 멋대로 살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돌이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이켜 죄를 사함 받고 구원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태복음 21장 28~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맏아들은 바리새인, 서기관, 유대인 등 회개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을 내세우고,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위선자입니다. 그들은 죄를 많이 범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 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리와 창녀는 더러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회개하면 됩니다.
세리와 창녀는 회개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세리와 창녀는 구원 받았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들이 범한 죄를 생각하면, 그들은 심판 받아 마땅합니다. 멸망해야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을 멸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이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도 금식하며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를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금식하며 회개한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했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했을 때,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이게 하여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에서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해올 때, 하나님께서는 큰 우레를 발하셔서 그들을 어지럽게 하셨습니다. 블레셋이 혼비백산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을 쳐서 물리쳤습니다. 잃어버린 땅을 되찾았습니다.
금식하며 회개할 때, 응답 받습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회개하면 살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면 응답 받습니다.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큰 손이 움직이면, 홍해를 가르셔서 육지처럼 건너가게 하십니다. 한순간에 홍해가 갈라집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한 번 역사하시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우리가 기적을 경험하려면, 금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니느웨 백성들처럼,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금식하며 기도하면,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죄 사함 받으면, 성령의 선물을 받습니다. 회개하여 성령의 선물을 받아야 죄 사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밤낮 회개하는데도 마음이 거림직해서 또다시 회개합니다. 회개하고 죄 짓기를 계속 반복합니다. 형식적으로 회개하기 때문입니다. 밤낮 형식적으로 회개하는 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회개가 하나님께 상달되어야 합니다. 회개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죄를 용서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습니다.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마음이 거림직해서 교회 지하실에서 기도했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죄로 인해 마음이 무거울 때에는 기도가 잘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새벽 1시가 되니 피곤하고 추웠습니다.
그 순간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밤을 새며 회개하는 저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셨던 것 같습니다. 새벽 1시에 성령의 불이 임했습니다. 기쁘고 좋았습니다. 그 후로는 기도가 터져 나왔습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기 전까지는 형식적으로 회개합니다. 기도에 힘이 별로 없습니다. 변화도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데 성령께서 임하시면 많은 죄를 깨닫습니다. 죄인 줄 몰랐던 죄까지 깨닫습니다. 불덩어리가 되어버립니다.
우리 마음대로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할 수 있습니다. 회개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회개하다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면, 자신에게 죄가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임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잘못 살았음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교만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회개하다가 불을 받으면,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죄까지 깨닫습니다.
회개하다가 은혜를 받으면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모든 것이 새로워 보입니다. 세상이 방실방실 웃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행복합니다.
회개가 하나님께 상달되어야 우리의 죄를 용서 받습니다. 그리고 변화됩니다. 새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말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생각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행동이 달라집니다. 삶의 목적과 목표가 달라집니다.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무엇보다 성품이 달라집니다. 사람이 착해집니다. 의로워집니다. 진실해집니다. 겸손해집니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사랑이 많아집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을 때,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거룩해집니다. 사랑이 많아집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성령은 사랑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으면, 빛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어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어거스틴은 죄를 많이 범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어거스틴이 회개하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과거를 언급하지 마세요. 과거에 어떠했든지 지금 어떻게 변화되었는가가 중요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등을 보면, 모두 결점이 있습니다. 실수한 적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볼 때, 사람의 결점이나 실수한 것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거룩하게 살았고 하나님을 잘 믿었던 것을 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인 것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천 명이 회개했습니다. 이들은 초대 예루살렘교회에서 기둥과 같은 일꾼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1~47절에 보면,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천국 같은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마음이 더욱 완악해져서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베드로와 스데반 두 사람 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설교를 듣고 자신의 죄를 깨달았으니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설교를 듣고 회개한 사람은 예루살렘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설교를 듣고 마음이 완악해져서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마음대로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은 사람은 오히려 완악해졌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성령의 선물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변화됩니다. 변화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 하나님의 자녀는 다 변화됩니다.
형식적으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상달되는 회개를 하여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변화됩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습니다.
죄와 싸워 이길 능력이 생깁니다.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성령이 임해야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세상을 이기고, 환난과 시험을 이기고, 세상의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을 때까지 금식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이보다 강한 기도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금식하며 회개하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회개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을 용서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성령의 선물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선물을 주시면, 깊은 죄까지도 회개할 수 있습니다. 버릇이 되어 죄인 줄도 몰랐던 것까지 회개합니다. 죄를 끊어버립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실망하여 공부를 포기하려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제게 신학교에서 겸손을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로 저는 신학교에서 말도 조심하고, 행동도 조심했습니다. 얌전하게 공부했습니다.
이 성전을 다 짓고 입당예배를 앞두고 있었을 때입니다. 마음이 기뻐야 할 텐데, 마음이 기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제게 겸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로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제 자신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도 제 안에 교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 와서 혼자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왜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못된 목회자와 장로들을 위해 울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축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죄인인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제 안에 교만한 마음이 있어 다른 사람을 판단했는데, 저는 그것이 죄인 줄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손을 들고 그들을 축복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를 괴롭히던 사람이 저를 사랑해주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저를 대적하던 사람이 협력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싫어하십니다. 자기가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교만한 생각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헤롯이 교만해지자 벌레에게 먹혀 죽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바이러스가 사람을 죽입니다. 바이러스는 벌레와 비교할 수도 없이 작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살려주셔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의 회개가 하나님께 상달되어야 합니다. 철저히 회개해서 죄를 사함 받고, 성령의 불을 받으면, 성령의 은혜 가운데 더 깊이 회개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언제 죽든 상관없습니다. 죽는 날은 세상 고생이 끝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생명의 부활을 하여 영원히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빨리 죽는 것이 오히려 축복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이 임했을 때, 고센 땅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재앙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장자를 멸하는 재앙이 임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대로 했습니다. 어린 양을 잡아 문설주에 피를 발랐습니다. 그랬더니 재앙이 넘어갔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빨리 죽을수록 좋습니다.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하나님께 상달되는 회개를 하게 하시고, 죄 사함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새 사람으로 우뚝 서게 해주시기 원합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여 회개하지 못하는 것이 많은데, 성령의 은혜가 아니면 깨달을 수 없사오니 우리가 버리지 못한 죄, 미련하고 어리석은 죄를 다 깨닫도록 은혜를 주시고 책망해주시옵소서. 온전히 회개하여 새 사람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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