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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5장

범죄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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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4 11:47 조회4,1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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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

 

범죄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2002년 12월 29일(주일예배)

본문 / 에스겔 5:5~12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저와 여러분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땅에는 행복하게 사는 사람보다는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문제는 불행하게 사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없어서 불행하고, 또 어떤 이는 출세했으면 떵떵거리고 살 텐데, 출세하지 못해서 행복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건강하지 못해서, 또 다른 사람은 사람을 잘못 만나 이 모양 이 꼴로 산다며 평생 남편을 원망하고, 부인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친구를 원망하며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이렇게 사람마다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돈이나 명예나 사람이나 환경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하면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출세하기 위해 인정사정 보지 않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노력은 인간을 더욱 불행하게 만들 뿐입니다.

 

우리가 불행하게 사는 원인은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불행의 원인은 죄에 있습니다.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깊이 내려가보면, 그 뿌리가 돈이나 권력이나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악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비극에 빠지게 합니다.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보다 더 악을 행하며 타락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에스겔 5장 1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네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혔은즉”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여기서 ‘미운 물건’은 우상을 말합니다. 우상으로 성소를 더렵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본문 에스겔 5장 8~10절에 보면, “내가 너를 치며 이방인의 목전에서 너에게 벌을 내리되 네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내가 전무후무하게 네게 내릴지라 그리한즉 네 가운데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잡아먹고 아들이 그 아버지를 잡아먹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기근으로 인해 부자지간에 먹고 먹히는, 얼마나 무서운 저주의 말씀입니까.

 

본문 에스겔 5장 11~12절에 보면, “네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혔은즉 나도 너를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미약하게 하리니 너의 가운데에서 삼분의 일은 전염병으로 죽으며 기근으로 멸망할 것이요 삼분의 일은 너의 사방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삼분의 일은 내가 사방에 흩어 버리고 또 그 뒤를 따라 가며 칼을 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하게 징계하시고자 하시는, 두렵고 떨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어쩌면 이렇게 타락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들이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아니한 죄가 뿌리를 내려 그들을 이렇게 타락하게 만들었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했습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는, 이들의 죄악의 뿌리가 어떻게 열매 맺고 자라났는지에 관하여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다윗의 경우, 하나님의 훌륭한 종으로 거룩하게 살았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평소에 죄를 범하며 산 사람이라면 몰라도, 어떻게 자신의 충성스러운 부하의 아내를 빼앗을 수 있습니까. 더구나 그 죄를 숨기기 위해 그 부하를 죽이는 악행을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은 누구나 다 죄악의 근성이 있기 때문에 믿음이 약해지면 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무리 경건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믿음이 약해지면 어느 순간엔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죄악의 뿌리가 발동하여 다윗처럼 끔찍한 죄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다윗이 범죄하여 얻은 아내 밧세바를 통해 솔로몬을 낳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잘하겠다고 결심한 첫 마음이 변하여 쾌락을 추구하고 1천 명의 이방여자들을 데려다 살았습니다. 더구나 이방 여자들이 예전에 자기 나라에서 섬겼던 우상을 가져다 섬기는 것을 허락하여 예루살렘 한쪽에 각 나라의 우상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솔로몬의 영화는 끝나고, 아들 대에 이르러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지는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남쪽 유다를 다스렸고, 여로보암이 북쪽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완전히 타락하여 사신우상을 섬기다가 남쪽보다 더 빨리 망했습니다. 남유다도 타락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여호사밧 왕은 신앙이 좋아서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도 죄악이 발동했는지, 어느 날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찾아가 아합의 딸들을 며느리로 데려오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어느 집안이나 여자를 잘 얻어야 합니다. 자식은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입니다. 아합의 딸들로 인해 왕의 자식들이 모두 우상숭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타락을 거듭하다가 므낫세에 이르러 어느 열방 못지않게 타락하게 되었으며,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망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죄는 불행의 원인입니다. 죄악이 점점 자라나 전염되면 결국 망하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경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말미암아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을 통해 경고하실 때 니느웨 백성들처럼 회개하면 아무리 큰 죄를 짓고 못할 짓을 했다할지라도 반드시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신 하나님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 18:21)”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 18: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회개할 때에 용서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끝까지 용서하실 줄 믿습니다. 회개하면 살 길이 열립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데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것은 저주입니다.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고, 회개하지 못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닫기만 하면 믿게 되고 회개하게 되며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되고 살 길을 찾게 됩니다.

같은 시간에 앉아 똑같이 설교를 들어도 설교가 들리는 사람이 있고, 도무지 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씀이 깨달아지는 사람이 있고, 깨달아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 있고,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3장을 보면, 주님께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향해 말씀하실 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7, 11, 17, 29, 3:6, 13, 22)”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귀 있는 사람’은 말씀이 들리는 사람입니다. 깨달아지는 사람입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9~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3:9)”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를 의아하게 생각하여 예수님께 “알아듣기 쉽게 말씀하시지 왜 비유로 말씀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의 이 물음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 13:11~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들어도 들리지 않고, 보아도 깨닫지 못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죄악으로 가려져 있어서, 듣는 귀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되고 깨닫는 자가 되어 은혜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설교를 들어도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고 깨달아지지 않아 염려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열심히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언제인가부터 들리기 시작하고 깨달아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를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며 축복하십니다. 아무리 죄가 많아도 하나님 앞에 나오면 살 길이 열립니다.

 

이사야 1장 15, 18절에 보면,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반드시 은혜를 베푸셔서 말씀이 들리게 하시고 깨달아지게 하셔서 회개하므로 살 길이 열립니다.

여러분 회개한다는 것은 보통 은혜가 아닙니다. 회개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입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할 줄 아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와 문명이 극도로 발달되고 물질이 풍요해지므로 해서 살기가 매우 편리해졌고 생활 형편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타락의 속도가 얼마나 빨라졌는지,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겁이 납니다.

저는, 아이들이 대학생이었을 때는 전도하기 힘들고 신앙을 갖게 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늦어도 고등학생 때까지는 은혜를 받게 해야겠다, 그래야 평생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시는 집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중학교 2학년만 되어도 타락하고 얼마나 말을 안 듣는지 모른다고 탄식하셨습니다. 심지어 초등학생의 경우 늦어도 4학년이 되기 전까지 예수 믿게 하고 은혜 받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집 아이들은 다 깨끗하고 착하고 문제없다고 안심할지 모르지만, 인터넷으로 유포되는 음란물 공세로 인해 요즘 아이들의 타락의 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깜짝 놀랄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인류의 타락은 멸망을 재촉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타락하고 있는데도 도무지 감각이 없습니다.

 

‘겡글리뉴로파디(ganglineuropathy)’라는 희귀한 병명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 병에 걸리면 부딪혀 머리에 멍이 들어도 아프지 않고 몸에 상처가 나도 아프지 않으며, 심지어 손목이 부러져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더 불행한 것은 이 병은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한센씨병을 천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병균이 중추신경계를 침범하여 마치 마취주사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모든 신경이 마비되어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썩어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치료시기를 놓치게 되어, 어느 날 갑자기 손가락 발가락이 뚝 떨어지고 코가 문드러지게 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영적으로 이 병에 걸려있다고 진단할 수 있습니다. 이는 죄에 대하여 무감각해졌기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인격이 파괴되고 가정이 파괴되고 사회가 파괴되고 세상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망하고 있는데도 전혀 감각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죄에 무감각한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여 사해에 깊숙이 묻혀있습니다. 이들이 멸망한 이유는 사회적으로 죄 짓는 일이 일반화되어 집단적으로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멸망시키기 전에 두 천사를 보내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동성애가 일반화된 사회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태리 남부 나폴리 연안의 한 도시였던 폼페이는 주후 70년 베스비우스 산의 화산 대폭발로 순식간에 도시 전체가 화산재로 파묻혔습니다. 화산재로 6미터나 깊이 파묻힌 도시를 1748년에 발굴해냄으로 해서 그 존재가 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얼마나 잘 살았는지, 집이며 거리며 심지어 도로들이 대리석으로 깔릴 정도여서 그 당시 호화롭게 산 증거들이 온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더구나 벽화나 화석을 통해 이 사람들이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처럼 얼마나 음란하게 살았는지도 드러났습니다. 이 같은 실례들은 죄악으로 가득하고 회개하지 않는 나라나 백성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 이 사회가 급속도로 타락하는 것을 볼 때에,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북한의 핵 사태는 잘못하면 이라크보다 더 위험합니다.

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이러한 때에 저와 여러분과 이 민족이 살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첫째,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내 힘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날마다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성도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려면 먼저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모든 죄를 사함 받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둘째,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다 망하고 다 타락하는 것 같아도 우리 성도들이 이 사회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가면 반드시 이 나라가 삽니다.

 

셋째, 나라와 민족을 위해 부르짖는 것입니다.

에스더처럼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 전심으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에 포위되어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했을 때 밤새도록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18만 5천명의 적군들이 모두 죽어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 한 사람의 부르짖음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듯이, 우리 성도들의 부르짖음도 능히 이 민족을 살릴 줄 믿습니다. 성도들의 부르짖음이 있는 한 이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죄악이 가득하고 세상이 타락해도 우리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고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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