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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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21 18:33 조회5,471회 댓글0건본문
공의와 사랑
공의와 사랑
2003년 06월 13일(금요철야)
본문 / 예레미야 5:1~9
예레미야 5장에 보면, 예루살렘이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전적으로 부패했고 타락했기 때문에 결국 저주를 받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강대국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불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지 않고 죄 가운데 방탕하게 살았기 때문에 암흑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 망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한 분 한 분이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나만 바르게 살고 구원받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민족의 운명이 달려있습니다.
의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예루살렘에는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어 결국 망했습니다.
노아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노아의 여덟 식구들을 의롭게 보시고 칭찬하셨습니다. 세상이 너무 타락하고 악하니까 노아의 여덟 식구를 위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시고 노아의 식구를 중심으로 인류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올바른 성도 한 사람이 수많은 죄인보다 더 소중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의인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거룩하게 살아야 되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서도 그것을 멸시하고 죄악에 빠져있었습니다.
본문 예레미야 5장 3절에 보면 “여호와여 주의 눈이 진리를 찾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들의 얼굴을 바위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그들의 타락상을 알 수 있습니다. 거의 멸망하게 됐는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얼굴을 바위보다 굳게 했다는 것은 철면피라는 의미입니다. 마음이 얼마나 완악했는지 모릅니다.
예레미야 13장 23절에 보면,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구스인은 아프리카 흑인입니다. 시커먼 피부를 희게 할 수 없고, 표범의 반점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구스인의 피부를 희게 할 수 있고 표범의 반점을 바꿀 수 있다면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너무 악독해서, 악에 익숙해서 바르게 살 소망이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본문 예레미야 5장 5절에 보면, “내가 지도자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하는 것은 올바른 것 같은데, 나중에 그들의 타락한 본래의 모습이 드러났다는 의미입니다.
6절에 보면,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본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반역이 심함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결국에는 그들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악을 행하고 악하게 살면 망하게 되어 있고 바르게 살면 축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잠언 3장 33절에 보면,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4장 18~19절에 보면,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5장 21~23절에 보면,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사람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시느니라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죽겠고 심히 미련함으로 말미암아 혼미하게 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0장 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0장 6~7절에 보면,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나니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게 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0장 9절에 보면,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0장 16절에 보면,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0장 24~25절에 보면,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0장 28절에 보면,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0장 30절에 보면, “의인은 영영히 이동되지 아니하여도 악인은 땅에 거하지 못하게 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1장 5~8절에 보면, “완전한 자의 공의는 자기의 길을 곧게 하려니와 악한 자는 자기의 악으로 말미암아 넘어지리라 정직한 자의 공의는 자기를 건지려니와 사악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이 없어지느니라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으나 악인은 와서 자기의 길로 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1장 10절에 보면,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1장 18~19절에 보면,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공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1장 21절에 보면,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1장 23절에 보면,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1장 30~31절에 보면,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2장 3절에 보면, “사람이 악으로서 굳게 서지 못하거니와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2장 7절에 보면, “악인은 엎드려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2장 13절에 보면,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말미암아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2장 21절에 보면, “의인에게는 어떤 재앙도 임하지 아니하려니와 악인에게는 앙화가 가득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2장 26절에 보면,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2장 28절에 보면,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3장 5~6절에 보면,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하나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여 부끄러운 데에 이르느니라 공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고 악은 죄인을 패망하게 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3장 9절에 보면,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3장 19절에 보면, “소원을 성취하면 마음에 달아도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3장 21~22절에 보면,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 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3장 25절에 보면, “의인은 포식하여도 악인의 배는 주리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4장 32절에 보면,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려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4장 34절에 보면,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5장 6절에 보면, “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어도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5장 8~9절에 보면,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5장 29절에 보면,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6장 8절에 보면,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1장 3절에 보면,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1장 12절에 보면, “의로우신 자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환난에 던지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4장 1~2절에 보면, “너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들의 입술은 재앙을 말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4장 16절에 보면,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4장 19~20절에 보면,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8장 12절에 보면,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8장 28절에 보면,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고 그가 멸망하면 의인이 많아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9장 2절에 보면,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9장 16절에 보면, “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지나니 의인은 그들의 망함을 보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악하게 사는 것이 좋은 줄 알고, 악하게 살아도 되는 줄 알고, 악을 버리지 못하고 악을 떠나지 않는 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잠언 3장 33절에 보면,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5절에 보면, “다시는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천국에는 밤이 없습니다. 등불이나 햇빛이 쓸데없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밝게 해주시는 빛이 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빛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빛에 속한 자로서 온 세상을 밝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빛의 자녀들은 빛의 열매를 맺습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습니다(엡 5:9).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착하게 의롭게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바르게 의롭게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자기 자신만 바르게 의롭게 살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남이야 어떻게 살든 그 사람은 그 사람이 알아서 할 것이고 그저 나만 바르게 살면 된다.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쓸 것 없다.’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 뿐 아니라, 나아가 가족, 동네 사람들, 교회 성도들, 시민, 나라의 백성들이 바르게 살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둘째, 자기 자신만 의롭다고 생각하고 남을 판단하고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롬 3:10). 아무리 의인이라고 해도 100% 의롭게 살았다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아담의 자손은 의롭게 살아갈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려고 애쓸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훌륭하고 바르게 사는 성도다’라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만 의롭게 살려고 하지 말고, 자기만 의롭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고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르게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한 단계 더 위의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바르게 살고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될 뿐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사람은
첫째, 나누며 사는 사람입니다.
사랑은 관심과 정비례하는데,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사랑입니다. 이웃 가운데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나눠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서로 나누며 살면, 거기에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고 사랑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친척에게 전도하고 싶다면 조금이라도 나누면서 살아보십시오. 그것이 사랑입니다. 형편이 어려워도 나누며 살 때, 거기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된 이유는 받기만 하는 자는 잘 되는 것 같지만 사해처럼 됩니다. 그러나 항상 나누며 사는 사람은 갈릴리 바다와 같습니다. 항상 나누며 살면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고 삶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성령 충만함을 받은 예루살렘교회는 사랑이 충만했습니다. 그 사랑은 나누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재물이 있는 사람은 교회에 가지고 와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항상 나누며 사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둘째, 이웃을 섬기며 사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20장 25~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기는 종의 마음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섬기되 목숨까지 내어주는 섬김의 삶을 사셨습니다.
사랑과 섬김은 정비례합니다. 우리는 기꺼이 섬기는 것으로 사랑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린 자식을 지극한 정성으로 키우는 것이나 연로하신 부모님을 마음을 다해 모시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 나누면서 섬기려고 할 때, 세상은 밝아지고 천국이 됩니다.
빌립보서 2장 25절에 보면,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사도 바울을 잘 섬겼습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에 빌립보교회의 대표로 헌금을 가지고 가서 사도 바울의 쓸 것을 도와주며 받들어 섬겼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사모하고 얼마나 정성껏 섬겼는지, 병들었을 때에도 목숨을 돌보지 않고 사도 바울을 섬겼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섬김으로 나타납니다. 섬기는 자세를 보면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23~24절에 보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을 섬길 때도 주를 섬기듯이 마음을 다해 섬겨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5~7절에 보면,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직장에서 복음화운동을 일으키려면, 먼저 잘 섬겨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 14~15절에 보면,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끄러운 병이 있어서 잘못하면 교인들에게 시험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을 업신여기지 않고 저버리지도 않고 하나님의 천사처럼, 그리스도 예수처럼 영접해서 대접했습니다.
게다가 사도 바울이 눈이 어두워 편지 쓸 때에는 다른 사람이 받아쓰고 마지막 부분의 인사하는 말만 자기가 쓰는 것의 증거로 사인만 했습니다. 그러니 성도들은 ‘할 수 있다면 내 눈을 떼어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할 도로 사도 바울을 사랑하고 섬겼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에는 가난한 성도들을 섬기는 연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서 연보해서 미리 준비했다가 도와주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교회입니까.
고린도후서 9장 13~15절에 보면,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그들이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후하게 넘치게 연보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섬김, 이것이 사랑입니다.
셋째,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사랑이 넘치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아나게 하므로, 사랑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축복이 있습니다.
사랑은 살리는 힘이 있고, 사랑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나타납니다. 죽어야 할 인간인데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면 죽일 수 없고 불쌍히 여깁니다. 그래서 사랑이 생기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은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고 끝까지 외면하면 결국 원수로 남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는 용서하게 되니까 원수와도 화평하게 되고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은 중보자의 마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게 됐을 때, 그들을 살려달라고 멸하지 말아달라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습니까.
에스더는 자기 민족이 죽을 수밖에 없을 때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생명을 걸고 기도하고 왕 앞에 나아가서 기어코 살려냅니다. 자기 민족을 위해 사흘 동안 금식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기도하고 나아가는 것, 이것이 곧 사랑입니다.
사랑은 존귀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우리에 있는 99마리의 양을 두고 산 넘고 물 건너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죄인 하나가 회개해서 돌아오면 회개할 것 없는 의인 99명을 인하여 기뻐하시는 것보다 더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죄인이라도 죄 가운데 멸망하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그 죄인이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사랑입니다.
기독교에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로마를 굴복시키고 세계화될 수 있었던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로마는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기독교인들을 찾으면 화형시키고 사자굴에 던져 다 죽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많아졌습니다. 결국 로마황제까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기독교가 인정을 받고 세계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첫째, 노예를 형제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로마에는 노예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노예는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노예는 재산 목록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똑같은 믿음의 형제로 대접해주니 노예들이 생명을 걸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기독교가 아무리 핍박을 당해도 없어지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걸고 믿어서 복음이 더 전파되었습니다.
둘째, 여자를 사람으로 대접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여자들은 무시당하고 남자의 부속물로 여겨졌지만, 기독교는 남녀평등을 주장했습니다. 성경에도 여자들을 귀히 여기고 아내 사랑하기를 주님이 교회를 사랑해서 목숨을 주신 것처럼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생명 걸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멸시천대 받는 세리들과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세리 마태의 집에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 식사하셨고 마태를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그 당시 세리는 욕을 가장 많이 먹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리를 사도 중의 한 명으로 삼으셨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멸시천대 받는 사람이라고 해도 기독교에서는 멸시천대하지 않으니까 이런 사람들은 목숨 걸고 예수 믿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존귀한 여인이 되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에 제일 먼저 만나주셨습니다.
세상에서 죄인이고 천대받던 사람일수록 목숨 걸고 예수님을 믿게 되고 순교하니까 로마를 정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사는 의로운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나만 의롭게 살면 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나만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교만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바르게 사는 의인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올라가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맛보고 체험한 사람이 비로소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감격하여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사람은 나누며 살고, 섬기는 자가 되고, 죽어가는 자를 살리는 자가 되어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고, 용서하고, 중보자의 마음을 가지고, 존귀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많은 영혼들을 살려내는 사람이 됩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복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행복이 따라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의 사람이 될 뿐 아니라 사랑의 사람이 되셔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 민족을 살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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