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중에 만들어지는 걸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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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6 15:10 조회3,132회 댓글0건본문
고난 중에 만들어지는 걸작품
고난 중에 만들어지는 걸작품
2009년 10월 09일(금요철야)
본문 / 이사야 48:10
세상에는 잘생긴 사람도 있고, 못생긴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잘생겼다고 해서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못생겼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조금 못생겼어도 아주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아름다워집니다. 은혜 받으면 아주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왜 아름다워질까요?
첫째, 은혜를 받으면 기쁨이 충만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은혜를 받았는데, 얼마나 기쁘고 좋았는지, 아무것도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먹을 것이 없고, 집안이 어려워도, 앞길이 막막해도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그 기쁨을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은혜 충만한 가운데 기도하고. 기도하던 곳에서 나와서 세상을 보면, 온 세상이 방실방실 웃는 것 같았습니다. 늘 같은 곳이었지만, 은혜 받고 나면, 새로운 세상인 것 같았습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어떤 때에는 밤을 새워 공부했는데 피곤하지 않고 마냥 기쁘고 좋았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어려움을 가지고 나왔든지, 어떤 문제가 있든지, 은혜를 받으면 아무것도 걱정되지 않습니다. 돌이켜보니 하나님께서는 은혜 받은 저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준비해놓으셨습니다. 제가 갈 길을 다 예비해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길로 준비해놓으셨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아름다워집니다. 기쁨이 충만하기 때문에 아름다워집니다.
둘째, 은혜를 받으면, 마음에 평강이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걱정이 있는 사람은 얼굴부터 다릅니다. 속일 수 없습니다. 불안한 마음이 있으면, 그것이 얼굴에 나타납니다. 화가 나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얼굴에 쓰여 있습니다. 마음이 평안한 사람들은 그 평안함이 얼굴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참 아름답습니다.
셋째, 은혜를 받으면 마음이 감사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넷째, 은혜 받으면 사랑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진짜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은 사랑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은혜 받으면 사랑이 많아집니다.
옛날에는 질투하고 싸움 잘하고 미워하던 사람이 은혜를 받으면, 얼마나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는지 모릅니다.
제가 은혜를 충만하게 받고 보니 미운 사람이 없이 다들 예쁘게 보였습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마음속에 사랑이 충만하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사랑이 충만한 마음으로 마주보면 그 얼굴이 아름답고, 행복감이 넘칩니다. 은혜를 받으면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행복해지기 때문에 아름다워집니다. 은혜를 받으면 행복자가 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주를 위해 살고 싶기 때문에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은혜를 받고 주님을 위해서 목숨이라도 바치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두려움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알곡 신자가 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일꾼이 됩니다.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아주 귀하게 쓰시고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고난 중에 많은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고난 중에 전도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 권사님 중에 한 분은 남편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핍박하는 남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암에 걸렸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자존심도 다 없어지고, 교만한 것도 다 없어졌습니다. 그러니까 권사님이 “여보, 목사님께 기도 받읍시다.”라고 하니 예전 같으면 야단칠 텐데, 순순히 동의했습니다.
목사님이 집에 와서 예배드리고 기도했더니 암이 더 진행되지 않고 멈추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건강하지는 않지만 회복되어서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봉사도 열심히 하고 주의 종들을 잘 대접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당당하고 건방지던 모습이 다 없어지고, 온유하고 겸손하고 주의 종들을 예수님을 대하듯이 하고, 교회에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다 섬겨주셨습니다.
고난은 사람의 마음을 낮아지게 만듭니다. 돌덩어리 같은 마음이 고난을 통해 부서집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의 심령이 가난해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가 됩니다. 고난이 있을 때가 기회입니다.
야고보서 2장 5절에 보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너무 가난해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택하셔서 부르시고 그런 사람들을 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고난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셔서 그들을 구원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고난 중에 많은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고난 중에 기도하게 하십니다. 평안할 때에 기도하지 않던 사람들도 고난이 오면 기도합니다.
사사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믿음이 없는지,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숭배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원수들이 쳐들어와서 식량도 빼앗아가고, 노예로 끌고 가고, 죽이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고통이 심하고, 고난이 많으니까 믿음이 없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사사를 보내어 나라를 위기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서 기도하게 만드십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에 보면,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난은 기도하라는 사인입니다. 고난을 품고 세월을 그냥 보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나를 차라리 불러가 주세요.”라고 울부짖으세요. 우리를 기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기도하지 않고, 병원에 가고, 사람을 찾아가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고민하고 걱정하기만 하면서 세월을 보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사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고난이 왔을 때에는 기도로 승부를 거십시오.
저는 어렸을 때 매우 가난하고 고난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은혜 받은 체험이 있기 때문에 고난이 올 때마다 항상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보다 중학교 때 고난이 더 심해지고, 중학교 때보다 고등학교 때 더 심해지고, 대학생이 되니까 더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목숨 걸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고난이 더해질수록 목숨을 걸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고, 얼마나 많은 체험을 했는지 모릅니다.
더 어려운 고난을 주신 이유는 바로 세게 기도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기도하다가 불을 받게 하시고, 주님을 만나게 하시고, 주의 음성 듣게 하시고, 기적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더 심해지는 고난 가운데 기도가 더 세어지니까 체험이 더 많아졌습니다. 체험적인 믿음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 고난을 통해 더 깊은 기도생활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왔을 때 기도하면, 고난은 큰 은혜 받을 좋은 기회가 됩니다. 고난 자체는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왔을 때 기도하면, 고난은 축복이 됩니다. 은혜를 받을 기회가 됩니다. 주님을 만날 기회가 됩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다 보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데, 성령이 역사하시면 성령의 빛이 우리의 영을 비추어주시며, 영안이 밝아집니다. 그래서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 깨달음이 옵니다. 은혜 받기 전에는 깨닫지 못했는데, 은혜 받는 순간에 깨달음이 옵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죄와 허물이 깨달아지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됩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5:7).
그런데 우리는 내 죄가 무엇인지, 내 허물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밤낮 그 모습 그대로 삽니다. 얼마나 속상합니까. 깨닫지 못하므로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고 성령이 역사하면 영안이 밝아지면서 어느 순간에 죄를 깨닫게 하시는데 한순간에 깨닫게 하십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한 죄 때문에 막힌 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죄를 깨닫는 순간 회개하면서 막혀있는 것이 다 없어집니다. 열립니다. 그러므로 깨닫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저는 저 자신을 잘 깨닫는다고 생각했는데도 참 늦게까지도 깨닫지 못한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반장도 하고, 우등상을 받다 보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 ‘나는 특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교만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를 가난하게 하시고, 제게 어려운 고난을 많이 주셔서 묵사발을 만드셨습니다. 교만의 코를 납작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겸손하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어려운 형편이니까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면서 기도 많이 하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때인가 중등부 담당 집사님께 “애들이 저보고 교만하다고 하는데, 제가 교만합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응. 교만하지.”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나는 교만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나를 사랑하는 집사님의 말씀에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해서든지 겸손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대학교 공부할 때에도 앞으로 목사가 될 사람이니까 영어와 독일어 원서로 공부하고, 헬라어와 히브리어, 라틴어도 공부하고, 교회사(敎會史)도 영어 원서로 공부하고, 그때부터 신학교 준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그러니까 신학교에 가서 보니 제가 배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게 “너는 신학교 3년 동안 겸손을 배워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표를 겸손 하나로 두고 공부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교 3년 동안 겸손한 주의 종이 되려고 노력했는데, 저는 제 자신이 겸손하지 않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제 안의 교만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교만한 성품이 남아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0여 년 전에 태국 파타야에서 선교사수양회를 했는데, 제가 새벽과 저녁에 설교를 했습니다. 그때 저는 선교사들에게 “사랑이 없이는 선교사 자격이 없다,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선교를 해야 선교를 할 수 있다. 선교사들끼리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선교할 수 없다.”라고 설교한 후에는 서로 안아주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들 중 한사람만 기도하지 않고 앉아서 마치 독사 같은 눈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다른 선교사들은 끌어안고 기도하는데 그 선교사만 가만히 있었습니다.
‘저 선교사 저 모습 그대로 선교지에 돌아가면 꼭 죽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제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찾아가서 그 선교사를 안아주었습니다. 안아주고 기도했는데, 돌덩어리를 안은 것처럼 반응이 전혀 없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도 자꾸 걱정되어서 그 선교사를 위해서 특별히 기도했습니다. “그 선교사를 살려주세요. 그 마음을 녹여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마치 번갯불이 번쩍하는 것 같더니 저의 어두운 영을 빛으로 밝혀 주셨습니다.
저의 교만의 뿌리를 보여주시는데, 어렸을 때부터 제가 어떻게 교만하였는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저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를 괜히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사람들은 아주 못된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저의 교만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평가하는 교만이 제게 있었습니다. 제가 신인 것처럼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했습니다. 좋게 평가한 사람은 제가 그 사람을 존경하고 좋아하니까 그 사람도 저를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좋지 않게 평가한 사람은 제가 그 사람을 좋지 않은 눈으로 보니 그 사람은 저만 보면 이상하게 거부감을 가졌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그것이 얼굴에 나타납니다. 마음의 모습이 얼굴에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속일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사람을 판단하는 제 책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사람을 판단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회개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이 저를 축복하셨습니다. 목회도 축복하시고, 대인 관계도 좋아졌습니다.
미국에서 많은 목사님과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 전에는 저는 “목회는 이렇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흑백을 가려서 강의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강의할 때에는 강의를 듣는 목사님들의 얼굴이 시커멓게 되었습니다. 강의를 들을수록 목회에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니 절망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은혜 받고, 깨달은 후에는 제가 그분들의 입장에 서서, 힘들고 앞길이 막막하고 답답한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강의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 위로하는 마음, 그들을 안아주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어주는 마음으로 강의했습니다. 그러자 얼마나 은혜를 받는지, 많은 목사님들이 힘을 얻고 새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저에게 교만의 뿌리가 남아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달으면 아주 수지맞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깨달음이 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깨달아지면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할 일이 이것이구나. 남은 인생을 이것을 위해 살아야겠다.’라고 자기의 사명을 깨닫게 되어 충성스런 삶을 살게 됩니다. 이렇게 깨달은 사람들에게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은혜 중에 가장 큰 은혜는 성품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잘 변하지만, 성품은 변화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은혜 받아 성품의 변화가 왔다면 정말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 제일 큰 문제가 쉽게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믿은 지 오래된 사람일수록 쉽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교회 나온 지 오래되었으니 중직자가 되었는데, 성질은 오히려 더 나빠지고 변화되지 않습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보니 성품이 변화되는 것, 마귀의 성품을 가진 사람이 예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는 것처럼 큰 은혜는 없습니다.
성품이 변화되면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고, 말하는 것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을수록 예수님의 성품을 닮게 되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됩니다.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쓰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과 함께해주시고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는 경건의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의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의 능력이 있습니다. 전도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조각가이십니다. 조각가가 돌을 하나 갖다놓고 끌로 쳐서 돌을 깎아냅니다. 조각가가 능숙한 손길로 돌을 두들기고 깎아 아름다운 조각품으로 만드는 것처럼,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걸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15절에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환난 중에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서 그 환난에서 건져주실 뿐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걸작품이 되게 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떤 고난이 있든지 ‘지금 하나님이 나를 걸작품으로 만들고 계시구나.’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저는 고난 가운데 하나님이 기도를 많이 하게 하셔서 기도하다보니 은혜 받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다보니 주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고난이 아니었다면 제가 기도했을까요? 너무 괴로우니까 목숨 걸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에는 성령의 불을 받기도 하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문제만 있으면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좋은 습관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 응답 받은 경험이 없는 분이 있다면, 결사적으로 부르짖어보십시오. 몇 시간동안 열심히 기도해보세요. 불이 임하든지, 주님이 말씀해주시든지, 기적이 일어납니다.
저는 기도하는 가운데 응답 받은 간증이 많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고,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는 것 같으면, 결사적으로 기도합니다. 해결될 때까지 기도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말씀해주시던지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반복되어 쌓이고 쌓여 제 마음속에 믿음이 더 견고해지고, 어떤 일이 있어도 결과를 내다볼 수 있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고난의 때는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고난의 때를 고난의 때로 보내지 마십시오. 고난의 때를 은혜 받는 기회로 만드십시오. 주님을 만나는 기회로 만드세요. 주님의 음성 듣는 기회로 만드세요. 축복 받는 기회로 만드세요.
앗수르 군사가 포위해서 항복하라고 위협하고 있을 때, 히스기야는 성전에 들어가서 앗수르 왕이 보낸 편지를 펼쳐놓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서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던 18만 5천 명이 다 죽어있었습니다.
여러분,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 주장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세요. 세상 사람처럼 걱정하며 살지 마십시오.
우리가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영생하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게 할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왜 이렇게 하십니까? 말씀해주세요.”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까지 기도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주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안개가 사라지는 것처럼 문제가 해결되고, 걱정이 해결되고,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너를 거두어 가시려고 하니 유언이나 하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는 벽을 향해 앉아서 울부짖으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시고, 15년을 더 연장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해시계가 뒤로 10°나 물러가는 큰 표적이 일어납니다.
고난의 때에 기도하면, 놀라운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헤롯이 베드로를 감옥에 집어넣었을 때, 베드로는 이제 곧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기가 큰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때 성도들이 기도하니 옥문이 열리고 사슬이 풀리고 하나님의 천사의 손에 이끌려 무사히 나왔습니다.
이런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도 이런 간증을 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성경에서 일어난 기적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언제나 고난이 있을 때 문제가 있을 때 고난으로 보지 말고 문제로만 보지 말고 이때야말로 내가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십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습니다. 동생이 중학생이었는데 다음 날까지 학비를 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돈이 어디 있습니까? 동생이 우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성전에 가서 기도할 때마다 동생의 학비를 달라고 기도했는데, 다음 날이면 학비 납부 마감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하늘을 쳐다보며 “아버지, 주실 때가 되었는데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보니까 아주머니 한 분이 와계셨습니다. 어떻게 오셨는가 물어보니 제게 아들을 하루에 두 시간씩 공부를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주머니를 따라가서 두 시간 공부하고 저녁을 먹고 돌아오려는데, 한 달 사례비를 미리 주셨습니다.
집에 와서 봉투를 열어보니 동생의 학비를 세 번 납부할 수 있는 액수의 돈이 들어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넘치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 제게 찾아온 고난은 탈선을 막아주는 울타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렸을 때 고생하는 것은 절대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젊었을 때 고생하는 것을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고난이 많고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하루에 세 번씩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대학생 때에는 더 어려워서 하나님 앞에 결사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저는 대학생 때, 입시생 과외를 했습니다. 5명에게 입주과외를 했습니다. 집에 가자마자 공부를 시작하여 12시까지 공부합니다. 다섯 시에 일어나서 또 2시간 동안 공부합니다. 그리고 밥 먹고 학교에 갑니다. 그렇게 생활하다보니 한눈 팔 시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학교 공부하지 않는 주일에는 예배드리러 교회에 가고, 평일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학교에 갔습니다. 학교에서 휴강될 때에는 도서관에 가서 공부했습니다. 그 시간이야말로 나에게는 황금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공부하여 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졸업식 후 교회에 가서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왜 저는 대학 4년을 이렇게 보내야 합니까?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잠도 충분히 자지 못하고 이게 뭡니까?”라고 하소연하듯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그렇게 묶어놓지 않으면 네가 목사가 될 것 같으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종이 되도록 한눈팔지 못하게 묶어놓으셨다고 하셨습니다.
대학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평생을 후회하는 목사님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이 평생에 문제가 됩니다. 목회가 안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저를 향한 계획이 있기 때문에 비록 고생스럽지만 딴 짓 못하도록 묶어놓으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오늘날 여러분에게 고난이 있다면, 그 고난 때문에 겸손해지고, 고난 때문에 기도 많이 하고, 하나님을 많이 찾으면서 여러분들이 탈선할 수 있는 것을 하나님이 막아주신다는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고난 때문에 더 깨어 기도하게 되고, 고난 때문에 겸손해집니다. 고난 때문에 한눈팔지 않게 되고, 고난 때문에 더 거룩해지고, 고난 때문에 더 경건한 생활을 하게 되고, 고난 때문에 하나님의 종으로 무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사야 48장 1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종,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목숨 거는 귀한 종을 만들기 위해서 고난의 풀무 불속에 집어넣어 연단하십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고난의 풀무 불 가운데 들어가 있는 분이 계십니까? 낙심하지 마시고, 절망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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