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의 일생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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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6 13:58 조회3,336회 댓글0건본문
히스기야의 일생이 주는 교훈
히스기야의 일생이 주는 교훈
2009년 06월 12일(금요철야)
본문 / 이사야 38:16~20
히스기야는 참으로 중요한 시기에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앗수르의 침략으로 북이스라엘은 멸망했습니다.
열왕기하 18장 9~12절에 보면, “히스기야 왕 제사년 곧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칠년에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삼 년 후에 그 성읍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 왕의 제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제구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두었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의 언약과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다스리던 때에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나라가 없어져버렸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앗수르의 군사는 남유다까지 포위하고 항복하라고 했습니다.
열왕기하 18장 31~33절에 보면,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의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 내가 장차 와서 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기리니 그 곳은 너희 본토와 같은 지방 곧 곡식과 포도주가 있는 지방이요 떡과 포도원이 있는 지방이요 기름 나는 감람과 꿀이 있는 지방이라 너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히스기야가 너희를 설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히스기야에게 듣지 말라 민족의 신들 중에 어느 한 신이 그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이때 히스기야는 모든 위기를 기도로 극복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응답을 전해주었습니다.
열왕기하 19장 6~11절에 보면,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라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앗수르 왕이 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 함을 듣고 립나로 가서 앗수르 왕을 만났으니 왕이 거기서 립나와 싸우는 중이더라 앗수르 왕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 함을 듣고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 너희는 유다의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네가 믿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겠다 하는 말에 속지 말라 앗수르의 여러 왕이 여러 나라에 행한 바 진멸한 일을 네가 들었나니 네가 어찌 구원을 얻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열왕기하 19장 14~20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보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한 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하면, 열왕기하 19장 32~37절에 보면,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가 얼마나 강했는지, 모든 어려움을 기도로 해결했습니다. 쳐들어온 앗수르 군사는 전멸했습니다. 왕은 아들의 칼에 의해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들이 왕이 되었습니다.
역대하 32장 22~23절에 보면,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주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니 모든 사람이 와서 축하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히스기야에게 보물을 갖다주었습니다. 그리하여 히스기야는 모든 사람이 보기에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역대하 32장 27~30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지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온갖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 떼의 우리를 갖추며 양 떼와 많은 소 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 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부터 다윗 성 서쪽으로 곧게 끌어들였으니 히스기야가 그의 모든 일에 형통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는 기도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히스기야는 기도하여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히스기야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역대하 32장 24절에 보면,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38장 1절에 보면,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이제 너는 병들어 죽을 테니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불러 가시려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에 일어난 일을 보면, 이때 히스기야가 죽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기뻐하며 죽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만약 히스기야가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면, 기뻐하고 찬양하며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했는지, 히스기야는 죽는 것을 슬퍼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이사야 38장 2~3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 동안 자신이 하나님을 얼마나 잘 섬기고 좋은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를 기억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통곡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히스기야의 믿음이 부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병들어 죽게 되었다면, 가장 먼저 자신의 죄가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하나님 앞에 겸손히 회개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갑자기 병들어 죽게 하시는 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38장 16절에 보면, 히스기야는 “주여 사람의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에 있사오니 원하건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무조건 치료해달라고, 무조건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죽을병을 고침 받고 좀 더 살기 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살려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하나님 앞에 말씀드려야 했습니다.
자신이 더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더 살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를 하나님께 말씀드리며 “여생을 이렇게 살기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라면 살려주옵소서.”라고 기도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병을 치료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자신이 선을 행한 것을 기억해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언제 죽든지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릴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이 세상의 고생은 모두 끝납니다.
기쁨과 평강이 넘치는 가운데 날마다 기뻐 뛰고 즐거워하며 찬양하는 가운데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화여대 초대(初代) 총장 김활란 박사님은 “내가 죽은 후에 울지 마라. 나는 더 좋은 곳에 간다. 내가 죽은 후에는 찬송을 불러라.”라고 유언하시고 아주 행복한 모습으로 눈을 감으셨습니다.
천국의 소망이 분명한 사람은 이 세상을 일찍 떠나는 것을 슬퍼하지 않습니다.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찬송하며 천국에 갈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자신이 더 살아야 하는 이유를 깨닫지 못한 채 단지 더 살고 싶은 욕심에만 사로잡혀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통곡했습니다.
그의 믿음이 부족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사야 38장 5~6절에 보면,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실 것에 대한 증거로 아하스의 해시계의 해 그림자를 뒤로 10도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15년 더 살게 되었습니다. 유다는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지 않고, 120년 더 연장되었습니다. 이런 점으로 보면, 히스기야는 유다 역사에 크게 공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15년 더 살게 되었지만, 삶의 목적이 무엇이며, 더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지 못한 채 살았습니다. 이것이 히스기야의 약점입니다.
우리에게도 히스기야와 같은 약점이 있습니다. 사업이 잘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만, 사업이 잘 되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사업이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거나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한 대로 응답되어 사업이 잘 되면 타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업이 잘 되면, 더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목표가 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질을 어떻게 쓸 테니 사업이 잘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이 할 일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업이 잘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사업이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도 타락하기 쉽습니다.
죽을병에 걸린 사람이 병을 고쳐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병을 고쳐달라고 하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병이 나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더 살려고 하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병이 나으면 무엇을 하겠다는 등의 구체적인 계획 없이 무조건 고쳐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기도한 대로 응답되어 건강이 회복되면, 잠시는 기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습니다.
히스기야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15년 더 살았습니다. 그러나 차라리 15년 전 병들었을 때에 그냥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히스기야는
첫째, 삶의 자세가 잘못되었습니다.
죽을병에 걸렸다가 병이 나았지만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15년 연장해주셨으니 죽을 인간이 다시 산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하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오히려 교만해졌습니다.
역대하 32장 24~26절에 보면,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해졌다고 분명히 기록되어있습니다. 죽을 사람을 하나님께서 살려주셨는데, 히스기야는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이것이 교만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공기 중에 무서운 균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우리의 몸속에 암세포가 얼마나 많이 생기는지 아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다녔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안수집사님의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아이가 착하고 건강했습니다. 건강의 축복을 받아 병원에 간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했습니다.
여름에 동네에서 아이스케키를 사먹었습니다. 비위생적으로 만든 아이스케키였는지, 그것을 먹고 배가 아팠습니다. 그런데 평소 늘 건강했던 아이였기 때문에 가족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동네에 있는 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에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창자에 균이 들어가 창자가 썩었다고 했습니다. 대수술을 받았지만, 살아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우리가 아무리 건강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건강하다고 해서 오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건강하다 해도 자다가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잘 나서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해서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교만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둘째, 언행이 지혜롭지 못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열심히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혜롭지 못했습니다.
열왕기하 20장 12~19절에 보면,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이르되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하니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었으면, 자신이 어리석은 짓을 했음을 깨닫고 통회자복하며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말해주고, 바벨론이 쳐들어와 모든 것을 빼앗아갈 것이라고 말해주고, 왕의 아들이 환관이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으니 가슴을 치며 울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히스기야는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라고 말했습니다.
역대하 32장 31절에 보면,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벨론의 사신들이 히스기야를 찾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떠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히스기야가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죽을병에 걸렸다가 살아난 이후, 히스기야는 영적으로 매우 잘못되어있었습니다. 말과 행실이 지혜롭지 못했습니다. 어리석었습니다. 분별력이 없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병 고침을 받은 후 3년 되었을 때에 아들 므낫세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므낫세가 행한 것을 보면, 히스기야가 15년 더 산 것이 오히려 화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15년 더 살지 않고 죽었다면, 이런 자식을 낳지 않았을 것입니다. 므낫세처럼 악한 왕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역대하 33장 1~13절에 보면, “므낫세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 동안 다스리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모든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영원히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전에 제단들을 쌓고 또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의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으며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목상을 하나님의 전에 세웠더라 옛적에 하나님이 이 성전에 대하여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이 성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지라 만일 이스라엘 사람이 내가 명령한 일들 곧 모세를 통하여 전한 모든 율법과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의 조상들에게 정하여 준 땅에서 옮기지 않게 하리라 하셨으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모든 나라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열두 살 된 왕이 무엇을 알아서 철저히 우상을 숭배했을까요? 므낫세가 이렇게 행동하게 된 것은
첫째, 히스기야가 믿음의 본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믿음의 본을 보였더라면, 므낫세가 이런 짓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둘째,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6장 4~9절에 보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말씀을 강론하여 아이가 말씀으로 잘 자라게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나라가 망했고 고통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녀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2장 6~10절에 보면,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수아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왜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까요?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사사기 2장 11~15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우상을 섬겼습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십니까? 신앙교육은 어렸을 때에 하는 것이 좋습니다.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들기 위해 흙을 반죽합니다. 흙을 반죽한 후에 바로 토기를 만들면,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모양의 토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흙을 반죽한 후에 묵혀두면, 흙이 굳어버립니다. 오래 묵힐수록 흙은 더 굳습니다.
신앙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렸을 때에 신앙교육을 시작할수록 성공률이 높습니다. 효과가 큽니다.
요즘은 아이들이 컴퓨터에 빠져있어서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아이가 자랄수록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이가 어렸을 때에 신앙교육을 시작해야 합니다. 아이가 말을 배울 때부터 아이에게 찬양을 가르치고, 기도하게 해야 합니다. 아이가 글을 배울 때에 아이로 하여금 성경을 읽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아이가 세상지식을 받아들이기 전에 성경지식을 받아들이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의 자손들에게 신앙교육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열두 살이었던 므낫세가 철저히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므낫세가 성전에 우상을 갖다놓고 우상을 섬기는 것을 만약 히스기야가 볼 수 있었다면, 히스기야는 15년 더 살았던 것을 후회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에 그냥 죽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녀가 장성하기 전에 신앙으로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신앙교육을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공부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은 공부보다 더 중요합니다.
1주일에 한 번 교회에 오고, 1주일 내내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아이에게 신앙이 어떻게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저는 중학교 1학년이었을 때부터 하루에 세 번씩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아침에 학교에 갈 때에 교회에 가서 기도한 후에 학교에 갔습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회에 가서 기도한 후에 집에 갔습니다. 저녁 먹고 난 후,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교회에서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예배에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예배를 다 드렸습니다. 주일낮예배, 학생예배, 수요예배 등 예배를 꼭 드렸습니다.
성경을 하루에 한 장 이상 읽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수십 장을 읽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며 자랐습니다.
부흥회할 때에는 학교에 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1주일 내내 부흥회를 했습니다. 부흥회에 참석하느라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목회자가 되겠다고 일찌감치 결심했기 때문에 말씀을 들으며 말씀을 다 받아썼습니다.
기도하는 것을 공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공부보다 더 귀하게 생각했습니다. 성령께서 저를 길러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며 자란 것이 평생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이 임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받았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체험했습니다.
둘째, 타락한 어머니와 타락한 신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의 신하들은 히스기야가 살았을 때에는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는데, 히스기야가 죽자마자 어떻게 이렇게 돌변했을까요? 히스기야가 살았을 때에는 히스기야의 비위를 맞추며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거듭나지 못한 신자의 특징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신자는 신앙생활을 형식적으로 합니다. 기분에 따라 신앙생활을 합니다. 언제 돌변할지 모릅니다.
히스기야는 죽을병에 걸렸다가 생명을 15년 연장 받은 것은 자신을 위해 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라고 하나님께서 연장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에게는 하나님을 위한 계획이 없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단지 자신의 병이 나은 것으로 인해 흥분했습니다. 15년 더 살게 된 것만 생각했습니다. 15년 동안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도 몰랐습니다. 이것이 병든 신앙입니다.
죽을병에 걸렸다가 나았다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바벨론 왕이 신하를 보냈을 때에도 그는 언행이 경솔했습니다. 역대하 32장 31절에 보면,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떠나셨다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시작은 좋았으나, 마지막은 참으로 불행했습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한 대로 응답되어 15년 더 살게 되었을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했다면, 히스기야는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15년 연장해주신다면, 15년은 나를 위해 사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첫째, 국가적으로 기도운동과 말씀운동을 일으켜서 우상숭배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자녀들을 신앙으로 철저히 교육시켜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말씀으로 무장시켜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생을 어떻게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가기 원하십니까?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합니다. 여생 동안 무엇을 위해 살기 원하십니까?
저는 남은 생에 대한 생각이 분명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가 분명합니다. 저는 할 일이 분명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목표를 분명히 정해놓고 살았습니다. 저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여 이 나라를 복음화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다가 주님 앞에 가기 원합니다. 저는 살기 위해 살지 않습니다. 저는 소원이 분명합니다. 목표가 분명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여생에 대한 계획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분명해야 합니다. 삶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면, 우리의 여생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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