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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8장

오래 산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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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5 11:54 조회3,2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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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산다는 것

 

오래 산다는 것

2003년 10월 26일(주일예배)

본문 / 이사야 38:1~8

 

성경을 보면, 사람들 중에 가장 오래 산 사람으로 므두셀라라는 인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969세로 생을 마쳤으니 31년 모자라는 1천년을 산 사람입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사는 동안 과연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았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오래 산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무조건 오래 사는 것보다, 짧게 살았든지 길게 살았든지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밤낮 죄 가운데서 부끄럽게 산다면, 빨리 죽는 것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범죄한 이후로 죽음이 있게 하셨습니다.

잠언 10장 27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수명은 짧아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처럼 인류가 타락할수록 인간의 수명도 짧아졌습니다.

 

미국의학협회에서 장수비결에 관햐 발표하면서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100세 이상의 장수자들과 인터뷰한 결과를 토대로 그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조사하여 “대부분 태평스럽고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였고, 유머감각이 뛰어났으며, 가능한 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무엇인가에 몰두하며 부지런히 사는 사람들이었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은 교회에 오랫동안 출석한 독실한 신앙인이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원로목사님 중 한 분은 어찌나 몸이 빼빼하고 약해 보이셔서 장수하실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90세가 넘도록 장수하시며 강건하게 사십니다.

반면 평소에 건강하다고 자부하시고 젊은이들을 만나면 팔씨름을 걸기도 하시며 그렇게 탄탄해 보이시던 동년배의 목사님은 벌써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처럼 오래 살 것 같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일찍 돌아가셨을 것 같은 뷴이 생존해있는 것을 보면, 우리의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 악한 사람들 중에도 장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의 고통을 맛보며 오래 사는 것을 축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도 왜 오래 살게 하시는지 의문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회개하고 예수 믿어 구원받게 하시려고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줄 믿습니다.

 

성경을 보면, 웃시야는 52년 동안 유다의 왕으로 있으면서 나라를 잘 다스려 나라가 강성해졌습니다.

그러나 말년에 교만해져서 대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향단에 분향하는 일을 자신도 해보겠다고 나섰다가 이를 말리는 제사장에게 극도로 화를 내는 순간 나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 날 이후, 웃시야는 별궁에서 혼자 지내다가 쓸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창세기 47장을 보면, 야곱이 애굽에 내려갔을 때, 바로가 그에게 “네 나이가 얼마냐(창 47:8)”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야곱은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라고 말했습니다. 즉 그가 130년이나 살고 있지만, 과거에 몇 백 년이나 산 조상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며, 자신의 삶 또한 매우 힘들었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야곱의 일생은 시련과 연단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평범한 사람이었으나, 나이가 들수록 점점 은혜를 받고 거룩해져서 선지자처럼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역대하 33장을 보면, 므낫세는 55년간 왕 노릇을 했습니다. 그는 우상숭배를 심하게 했으며, 의로운 백성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징계로 앗수르의 침공을 받아 적군의 쇠사슬에 묶여 산 채로 바벨론으로 잡혀가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이때 나라와 자신의 신변에 큰 위험이 닥친 므낫세는 급히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회복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역대하 33장 12~13절을 보면,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후 므낫세는 이방신과 우상을 모두 제거하고 여호와의 제단을 보수하고 하나님 앞에 화목제와 감사제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 온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고 명했습니다. 사람이 오래 살아도 이런 바람직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하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역대하 14장에 보면, 아사는 41년 동안 왕으로 있으면서 처음에는 신앙생활을 잘했습니다. 그는 구스의 백만 대군이 유다를 침공했을 때, 전심으로 기도하여 적군들을 물리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아세라 목상을 만들자 모후의 위를 폐할 정도로 철저히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처럼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므로 하나님께서 사방에 평안을 주셔서 그의 재위 35년 동안 나라에 전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재위 36년째부터는 하나님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선지자 하나니가 왕의 잘못된 태도를 책망했습니다.

그러나 아사는 그의 충언을 듣지 않고 그를 투옥시켰으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백성들을 학대했습니다.

 

재위 39년에 아사는 발에 큰 병이 들었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이 문제를 전능하신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의원들을 의존하다가 재위 41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아사는 처음에는 하나님과 관계가 좋았으나, 인생 말년에 하나님을 떠나 살다가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히스기야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그는 29년 동안 왕으로 재직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앞에 정직했습니다. 모든 우상을 철저히 없앴습니다.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만 잘 섬기도록 권면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켰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언제나 히스기야와 함께 하심으로 어디로 가든지 형통했습니다(왕하 18:7).

그러나 그에게도 환난이 찾아왔습니다. 앗수르 군대는 북쪽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이어 남쪽 유다도 멸망시키기 위해 유다를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즉위 14년인 39세 때, 히스기야도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히스기야는 낙심하지 아니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 앞에 울며 부르짖었습니다. 이 모습이야말로 믿음의 사람의 바람직한 모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결과 히스기야는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히스기야가 밤이 새도록 기도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보니 앗수르 군대 18만 5천 명이 전멸되어 있었습니다. 싸움 한번 해보지도 않고 승리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도 죽을병에서 고침을 받아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았습니다. 그 증표로 해시계가 10도나 뒤로 물러가는 놀라운 기적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기적을 보여주시고 축복하심으로 부과 영광이 극에 달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대하 32:2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살고 말씀대로 살아도 어려움이 오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형통의 복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낙심하지 말고 히스기야처럼 믿음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모든 시련이 끝나고 유명인사가 되어 열국의 눈에 존대한 인물이 되었으며 부와 귀가 극에 달하게 되었을 때, 불행하게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역대하 32장 25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참으로 인간은 그렇게 간사할 수 없습니다. 대체로 믿음이 좋고 하나님 앞에 기도생활을 잘 하던 사람도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지고 너무 잘 살고 잘 되고 유명해지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한마디로 교만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벧전 5:5). 우리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집니다. 나 자신이 남보다 받은 복이 많고 남보다 더 잘 되고 남보다 더 잘 살게 되었다고 하면, 그들보다 감사해도 더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해지면 남보다 잘 되고 잘 살게 된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할 뿐 감사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이처럼 받은 축복만큼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 교만해진 증거입니다. \

 

히스기야의 경우, 망할 나라를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셨고, 죽을병에서 고쳐주셨는데도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쳐 하나님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임하지 않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고 육신의 정욕을 따라 향락을 추구하며 하나님 섬기는 일을 등한히 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쌍한 영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연장해주신 15년은 히스기야 자신을 위해 살라고 주신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덤으로 주신 15년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거나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의 인생을 즐기며 향락에 빠져 사는 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자연히 하나님과 멀어졌고 기도생활도 등한히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히스기야는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지 3년 만에 얻은 축복으로 주신 아들인 므낫세를 믿음으로 양육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42세에 뒤늦게 얻은 아들이니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히스기야는 자식을 옥이야 금이야 귀여워하고 사랑할 줄만 알았지, 아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는 것과 하나님의 계명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상숭배가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의 결정적인 실수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실제로 맛본 체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역사하시고 이렇게 축복하시고, 죽을 수밖에 없었을 때 이렇게 살려주셨다고 간증하며 하나님을 섬기고 기도해야 한다고 똑바로 자식을 가르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이 세상의 부귀영화에 빠져 사는 동안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어느덧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15년 만에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12세밖에 되지 않은 아들 므낫세가 왕이 되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방인의 가증한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고,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고, 바알과 아세라 목상과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면서 성전 안에서 악을 행했습니다. 이 죄가 유다의 멸망을 앞당기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건강한 몸과 여유로운 시간과 많은 물질을 주시면 그 시간과 재산과 몸을 드려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입고 싶은 대로 입을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여행도 자주 할 수 있고, 물건도 사고 싶은 대로 다 살 수 있습니다.

사실 풍족하면 무엇을 하든지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집니다. 이렇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시간과 재산을 주시고 기회를 주셨을 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8절에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솔로몬 왕은 특별히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부와 영광을 받았으니 이 세상 누구보다도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꿈꾸는 특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얻은 좋은 기회를 선용했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물질과 지혜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심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다시 말해, 하나님을 위해 사는 기회인 줄 알고,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성경을 연구하여 만민에게 말씀을 잘 풀어서 전파하고, 기도생활도 열심히 하여 하나님의 비밀을 가르쳐주며,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열왕들과 사절단들에게 열심히 전도하여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나님을 증거했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그러나 솔로몬은 불행하게도 모든 기회를 육신의 향락을 즐기는 데 사용했습니다. 자신의 육체를 위하여 심었습니다. 그리하여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었고, 하나님과 멀어졌으며, 우상숭배를 하게 되었고 그의 아들 대에 나라가 둘로 갈라지는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사실 솔로몬은 누구보다도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으며,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본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단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면 할수록 더욱 불행해졌습니다.

전도서 2장 11, 17절에 보면,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하면 행복할까, 저렇게 하면 행복할까 고민하며 행복을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았으나, 하면 할수록 쓸데없는 짓이고 무익한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나중에는 괴로움만 더하여 살아있는 것을 미워하고 차라리 죽기를 원했습니다.

행복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사는 사람에게는 행복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행복은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살 때, 얻어지는 만족한 결과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15년을 더 살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면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어떤 목적을 가지고 무엇을 위해 사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본래 사람을 만드실 때 영생하는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음으로 해서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죽고 나이가 젊은 사람도 죽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가 아닙니다. 이 세상은 하루하루 살기 위해 수고하다가 떠나는 광야와 같은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우리가 영원히 가서 살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곳에서 우리가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인해 믿음으로 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앞으로 얼마를 더 살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살아감으로 날마다 천국을 맛보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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