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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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26 09:36 조회4,431회 댓글0건본문
나를 보내소서
나를 보내소서
2004년 03월 12일(금요철야)
본문 / 이사야 6:1~8
본문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약 740년 전에 있었던 사건을 기록한 것입니다. 본문 이사야 6장 1절에 보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역대하 26장에 나옵니다. 아버지는 아마샤 왕이었고, 그는 16세에 왕이 되어 52년 동안 왕위에 있다가 68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역대하 26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웃시야가 왕이었던 때에 스가랴 선지자가 있었는데, 이 선지자의 영향으로 웃시야 왕은 기도생활을 잘 했습니다. 그래서 형통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일생 가운데 지금 이 시간이 복된 시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임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되면 남들을 도와주고 베푸는 것만 남습니다. 그리고 이 일 자체가 복을 쌓는 일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고생을 많이 했지만, 하나님 앞에 항상 엎드려서 구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까 하나님께서 많은 축복을 해주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모든 것이 넘칩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일도 나누는 일입니다.
교회가 커지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분도 있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교회를 크게 하신 이유는 크게 섬기라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는 힘들지만 큰 교회는 행사가 있으면 크게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하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하나님께서 잘 되게 해주십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웃시야 왕은 형통하는 복을 받아서 심히 강성해졌습니다. 역대하 26장 7~8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를 도우사 블레셋 사람과 구르바알에 거주하는 아라비아 사람과 마온 사람을 치게 하신지라 암몬 사람들이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치매 웃시야가 매우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웃시야 때를 상상해보십시오. 나라가 점점 강해져서 웃시야 왕이 유명해졌습니다. 망대를 견고히 세우고, 물웅덩이를 많이 파고, 육축도 많아지고, 포도원도 많이 짓고, 족장의 수가 2,600명인데 큰 용사들이었고, 그 수하의 군대가 307,500명이라고 했습니다. 방패와 창과 투구와 갑옷과 활과 물매 돌을 예비하고 많은 무기를 만들고 큰 돌을 날리는 전쟁도구도 만들어 나라가 강해졌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강해지자 교만해집니다. 역대하 26장 16절에 보면,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요하게 하실 때에 교만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남들보다 잘 살고 성공할 때에 교만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교만해지면 악을 행하기 시작합니다. 교만해지면 모두 못나 보이고, 허물투성이로 보입니다. 교만해지면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집니다.
웃시야가 이런 일을 했습니다. 자신의 눈에는 제사장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이 해야 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 순간에 이마에 나병이 생겨 그는 죽는 날까지 별궁에서 혼자 살고 성전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은 혼자 사는 것입니다. 제일 못된 죄수는 감옥에 혼자 가둡니다. 사람은 사랑을 베풀고 사랑을 받을 때에 행복합니다. 그러므로 혼자 있게 되는 것만큼 큰 저주는 없습니다.
웃시야는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았습니다. 또 하나의 벌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웃시야 왕을 나병으로 고생하게 하셨지만 장수하게 하셨고, 나라가 평안하게 하셨습니다. 웃시야 왕은 평생 회개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렸던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육체의 가시로 인해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했지만, 그는 타락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았을 것 같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었습니다. 요담 왕은 슬픔과 근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 웃시야 왕이 나병으로 고생하다가 죽었으니까 백성들도 많이 슬퍼했던 것 같고, 국가적으로 영적으로 눌려있었던 것 같습니다.
역대하 27장 2절에 보면,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여전히 부패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담이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요담이 본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 아니라 두려움과 엄격의 하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왕이 성전에 들어가지 않으니까 백성들도 하나님을 떠나며 사악해졌습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라가 걱정될 때, 이사야는 나라를 위해 특별히 기도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많은 기독인들은 문제가 생겨도 기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믿음이 없어서 근심걱정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라도 그 믿음으로 기도하기 시작하면, 믿음은 커집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겨자씨는 아무리 작아도 땅에 심으면 자라고 새들이 앉을 정도의 나무가 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내가 믿음을 가진 것도 중요하지만, 믿음으로 어떻게 행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고, 행함이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작은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은 더 작아지고 결국 사라집니다. 그리고 스트레스와 낙심만 쌓여갑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이런 상황에서 특별히 기도했습니다. 이사야처럼 기도하면 큰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께서 능력과 은사를 주셔서 하나님의 종으로 크게 쓰임 받습니다.
우리 교회를 개척했을 때의 일입니다. 문제가 너무 많았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일으키는 사람만 자꾸 들어와서 방법이 없었습니다.
너무 속상해서 날마다 강단에 엎드려서 울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교회의 부교역자들이 제 흉내를 냈습니다.
혼자 기도할 때는 하나님 앞에서 그냥 부르짖는 것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다보면 반드시 은혜를 주십니다. 은혜를 받으니까 믿음이 강해지고 원수 마귀들이 인사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부흥했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기도하십시오. 문제로 인하여 능력 받고 축복 받고 하나님의 능력의 종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그 날까지 작은 문제가 생겨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셔서 하나님께서 풀어가시는 것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대해 확신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면 얼굴이 달라집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이루어진 것처럼 기쁨이 생깁니다. 돈이 없어도 돈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시온관을 위해 기도할 때, 응답을 받으니까 돈이 없어도 마치 돈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이루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절대로 거짓말하시지 않으십니다.
여러분들이 나와서 기도하시고 응답 받으시고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날마다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는 기도하다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사야 6장 1-4절에 보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황홀하고 빛나는지, 천군천사들이 찬양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모습과 자신의 모습을 비교해보니 자신은 죽을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달았습니다.
이사야가 영안이 밝아져 두 가지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보게 되는 영광스러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임을 깨달았습니다.
천국을 다녀오고 신비한 체험을 해도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영안이 열려서 자기 자신을 바로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자기 자신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본문 이사야 6장 5절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회개했습니다.
큰 은혜는 회개로부터 시작합니다. 큰 부흥의 시작 역시 회개로부터 시작됩니다. 큰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은 갑자기 불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회개로부터 시작됩니다.
자신의 죄를 생각하며 부끄럽고 억울하게 느끼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은혜의 역사의 시작입니다. 여기에서 큰 부흥이 시작됩니다.
포항에 있는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의 일입니다. 그 교회에 장로님들이 많은데, 그 중에 주님을 만나지 못한 분이 계셨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고집이 센지, 무엇이든 자기 고집대로 하려는 분입니다. 목사님의 말도 듣지 않고, 교회에 대한 소문을 좋지 않게 만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서 집회를 하던 셋째 날, 낮 공부시간에 뒤에서 어느 분이 왔다 갔다 하시면서 부목사님과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녁예배 시간에 설교하기 전 단상에 올라가니 아주 두툼한 봉투가 있었습니다. 약 3백만 원 정도 들어있었던 것 같은데, 봉투를 보니 “그 동안 떼먹은 십일조 드립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 장로님이 헌금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말씀에 회개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장로님이 헌금한 것을 보고 그 교회 목사님이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그런 역사가 일어나면 시간마다 얼마나 은혜롭고, 교회가 얼마나 복을 받는지 모릅니다. 그런 역사가 시간마다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본문 이사야 6장 6~7절에 보면,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가 회개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이처럼 저와 여러분이 회개할 때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베드로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말했습니다.
내 죄가 사함 받아 정결해지면, 성령께서 아주 기뻐하시고 급히 오십니다. 불같이 오십니다. 회개해도 성령의 불을 받는 회개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기 전에는 회개해도 죄 사함 받은 확신이 없습니다.
제가 대학생이었을 때, 교회 장로님의 자녀를 가르쳤습니다. 아주 훌륭하신 장로님이었습니다. 새벽에 장로님 부부와 새벽기도를 하고 돌아오면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식사하고 학교에 갔습니다.
어느 날 아침,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장로님 내외분이 우셨습니다. 기도 내용을 들어보니까 아들이 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자기가 사고 싶은 것을 샀던 것입니다.
돈이 없어져서 돈을 찾으면서 물어봐도 아무도 가져간 사람이 없었는데, 가만히 보니까 그 아들이 사주지도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한 행동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꾸중한 것이 아니라 장로님 부부가 우시면서 회개하셨습니다. 아들을 야단치지 않고, 부모가 울며 회개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들이 아버지 앞에 자백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다 용서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끝나지 않고, 자신이 훔쳤던 것에 대해 계속 용서를 구한다면 부모님이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주셨는데, 우리가 그것을 놓고 날마다 용서해달라고 빈다면 하나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이유는 마음이 꺼림칙하고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회개 기도하는 중에 성령의 불을 받으면 죄 사함 받은 것에 대한 확신이 생깁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 죄를 회개하지 않게 됩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해주실 뿐 아니라,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이렇게 회개하는 자에게 오는 축복은 거룩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깨끗한 그릇이 됩니다. 그리고 겸손한 인격의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더 큰 은혜와 사랑, 축복을 받게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죄와 허물을 몰라서 회개하지 못합니다. 죄 사함 받지 못하고, 큰 은혜와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죄가 막힌 담 역할을 합니다. 기도응답이 되지 않게 하고, 축복을 받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죄를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큰 은혜를 받고 영안이 밝아져서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문제라도 해결되고, 기도 응답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본문에 보면,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이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죄 사함 받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에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축복하실 때에도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창세기 14장 18절에 보면,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때에 멜기세덱을 보내셨습니다.
야곱에게 축복하실 때도 응답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을 찾아갈 때에는 라헬을 만나서 죽을 때까지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잘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축복하시기 위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끌어내셨습니다. 모세라는 지도자가 나타난 것 자체만으로도 축복입니다.
엘리 제사장 때에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점령당해서 힘들 때, 사무엘을 보내셔서 블레셋을 무찌르고 나라를 든든히 세우게 하시고 다윗에게 기름 붓게 하셨습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셔서 다윗 때에 나라가 가장 강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로 생활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다니엘을 총리로 세우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돌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바사 왕 고레스를 왕으로 세워서 왕을 통해서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44장 28절에 보면,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 그를 목자로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 다윗과 같은 대통령과 지도자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들을 이 나라의 지도자로 세워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실 때에도 사람을 세워서 하십니다. 사울 왕의 경우, 악신을 직접 보내셔서 망하게도 하시지만,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매를 사용하십니다.
사무엘하 7장 14절에 보면,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때에 진노의 몽둥이 역할을 하는 사람을 보내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만 보고 미워하지 말고, 기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사야 10장 5절에 보면,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앗수르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주 괴롭혔습니다. 결국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실 때에도 사람을 사용하시고, 진노하실 때에도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듣고 기도하십시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바뀌시는지 볼 수 있습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이방여자와 통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을 돌이키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열왕기상 11장에 보면,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사랑하고 이방 여자들을 좋아하는 잘못을 범합니다.
열왕기상 11장 3절에 보면,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열왕기상 11장 5절에 보면,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열왕기상 11장 7~11절에 보면,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사람 몽둥이가 솔로몬에게 나타납니다. 14절에 보면, 에돔 사람 하닷이 나타나 솔로몬의 대적이 됩니다. 2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키십니다. 26절에 보면, 솔로몬의 신히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반역하고 대적합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의 신하 노릇을 해야 할 사람들이 원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때에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축복의 도구로 쓰임 받는 것은 축복이지만, 악한 도구로 쓰임 받는 인생 막대기는 그 사람 자체가 악하기 때문에 그렇게 쓰입니다. 그래서 남을 해하는 사람들은 반역자들이요 악한 사람들입니다.
잠언 24장 21절에 보면,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와 더불어 사귀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가까이 하면 같이 망하기 때문입니다.
사람 막대기로 사용된 자들은 다 망합니다. 이것은 아들이 말을 듣지 않아 몽둥이를 가지고 와서 때리는 것과 같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들과 몽둥이 중 무엇이 더 귀합니까? 몽둥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몽둥이는 아들 때릴 때에만 사용되고, 언젠가는 아궁이 속에 들어갑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남을 망하게 하고 괴롭혀서 곤혹스럽게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가만히 보면 인생막대기로 사용되는 것인데, 그 사람은 결국 제일 먼저 하나님 앞에 버림받습니다. 기도하실 때에 축복의 막대기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잠언 16장 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가룟 유다 역할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가 예수님을 팔아야 했습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우리를 위해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악한 인간을 악한 일에 적당히 골라 사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가리켜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 26:24)”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불행하게 하고 손해 보게 하는 일에는 절대 쓰임을 받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사사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을 몽둥이로 사용하십니다. 주변의 많은 이방 민족들을 사람 막대기로 사용하셔서 괴롭힙니다. 최고의 악한 사람 막대기는 스탈린과 히틀러, 김일성 같은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명예가 좋고 부귀가 좋아도 이런 데 쓰임 받는 것은 결코 좋지 않습니다. 이런 지도자가 나와서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남한에도 위기의 순간이 참 많았습니다. 6ㆍ25전쟁 때도 부산 외에는 모두 점령당해서 공산국가가 될 뻔했습니다. 그 때 초량교회에서 모인 목사님들과 장로님들, 성도님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이 나라를 지켜주셨습니다.
이 나라가 부족한 것이 많지만,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셔서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한인 교회의 장로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를 불쌍히 여기시고, 예수 믿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세우셔서 제헌국회가 열렸을 때 기도하고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국회의원들 중에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 후 대통령들은 부족한 부분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교회는 계속해서 축복 받았습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기독인들이 많아져서 지나고 보면 전화위복되고 극복하고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려고 하지 않습니까! 비록 정치적으로나 백성들의 무질서와 방탕이 후진성을 가지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아주 발전하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나라에는 기도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어서 나라가 어려우면 하나님 앞에 밤새 부르짖는 목사님들과 성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무시하시지 않으십니다. 오늘 우리나라의 위기도 전화위복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유대를 축복하시기 위해 축복의 도구를 찾으셨습니다. 이사야 6장 8절에 보면,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선지자가 되어 충성했습니다.
이사야 1장 1절에 보면,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계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담이 왕위에 16년 동안 있었고, 아하스도 16년 동안, 히스기야는 29년을 왕 노릇 하였는데, 이사야는 웃시야가 죽던 해에 부름을 받아 61년 이상을 선지자로 사역했습니다.
다윗과 같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가 있는 것은 축복입니다. 이들은 축복의 도구로 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축복하시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죽고 아들 므낫세가 왕이 되자마자 선지자들을 죽이고 악을 행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7절에 보면,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므낫세 시절에 이사야 선지자가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 때 죽은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첫째, 우리는 이 백성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 나라가 너무 음란하고 방탕한 나라가 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증오심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보수파와 개혁파로 갈라지며 싸우는 모습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도 다 도둑같이 보이는데, 서로 욕하는 것을 보면 증오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백성들은 음란하고 방탕하고 서로 원수가 되어 너무 악해졌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은 이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셔서 이 나라에 성령의 불이 일어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증오심이 사라지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다윗과 같은 지도자가 생기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이사야 선지자와 같은 주의 종들이 많이 나와서 축복의 도구로 사용되어 그들을 통해 축복받는 일이 생기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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