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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6장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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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7 09:33 조회3,9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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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2009년 11월 06일(금요철야)

본문 / 이사야 6:1~7

 

인생을 나그네에 비유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길을 걸어갑니다.

 

그런데 어떤 길을 가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길은 사는 길이지만, 어떤 길은 죽는 길입니다. 어떤 길은 복 받는 길이지만, 어떤 길은 저주 받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길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평생 좋은 길, 복된 길, 사는 길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신명기 30장 15~18절에 보면,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앞에 생명의 길과 복 받는 길이 있고, 사망의 길과 화를 받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하는 것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의 왕의 대부분은 어리석었습니다. 조상들이 잘못된 길로 가다가 망하는 것을 봤으면서도 이스라엘의 왕들은 하나님을 떠나 사신우상을 섬기고 죄 가운데 살다가 고통당했습니다.

소수의 왕들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나라가 번성했고, 백성들이 복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왕이 다윗입니다. 다윗처럼 행한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이들은 길을 잘 선택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상들의 길을 따라갔습니다. 이들은 조상들처럼 우상을 숭배하고, 조상들처럼 죄를 짓다가 나라도 망하고 자신도 망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웃시야 왕은 16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52년간 남쪽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역대하 26장 4~5절에 보면,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종 스가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웃시야가 하나님을 열심히 찾았습니다. 웃시야가 하나님을 찾았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열심히 찾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항상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는 자를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를 섭섭하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는 자를 축복하시고 사랑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복을 넘치도록 안겨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웃시야 왕은 복을 받았습니다. 나라가 강성해지고 부요해졌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에 교만이 들어왔습니다.

잠언 16장 5절에 보면,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8장 12절에 보면,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웃시야에게 교만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역대하 26장 16~21절에 보면,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용맹한 제사장 팔십 명을 데리고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서 웃시야 왕 곁에 서서 그에게 이르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음을 보고 성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당시에는 나병환자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웃시야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성전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면, 얼마나 불행합니까.

왕이 죽을 때까지 나병으로 고생했으니 궁전에 웃음소리, 노랫소리가 있었겠습니까. 왕이 병들었는데, 누가 감히 노래를 부르겠습니까.

 

역대하 26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웃시야는 스가랴가 살아있을 때에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스가랴가 죽은 후에는 웃시야가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살아있을 때에는 웃시야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이 죽으니 웃시야는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웃시야 왕은 나병환자가 되고 난 후 굉장히 낙심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쳐주셨으면 좋겠는데, 하나님께서 고쳐주시지 않으셔서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시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분노를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불신하는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역대하 27장 1~2절에 보면, “요담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루사요 사독의 딸이더라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여전히 부패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말씀을 읽어야 하는데, 웃시야의 아들 요담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여전히 부패했습니다. 웃시야의 영향이 이렇게 나타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었을 때, 이사야 선지자는 걱정이 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사는 길이요 복 받는 길입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에 보면,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50편 15절에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해주십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십니다.

 

기도해서 응답 받으면 간증하세요. 그러면 성도들이 ‘나도 기도해야겠다.’라고 생각하여 기도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기도 운동이 일어나고,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면 간증하세요.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주며 사세요.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체험했으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다.”라고 간증하세요.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함께하시는 것을 간증하세요.

 

저는 1979년에 미국에 처음 갔습니다. 출국하기 전, 세관을 통과할 때의 일입니다. 제 앞에 중국인처럼 보이는 여자가 있었는데, 세관 직원들이 그 여자의 짐을 열어서 하나하나 검토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 것도 저렇게 하면 어떡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망신스러운 일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세관 직원이 그 여자까지만 보고 교대했습니다. 그 여자의 짐을 검사하느라 줄이 많이 밀려있어서 그 후로는 그냥 통과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간증하시기 바랍니다. 고난당할 때에 기도했더니, 환난 당할 때에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건져주셨다고 간증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2~3절에 보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응답하실 뿐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환난이 있을 때, 고난이 있을 때, 괴로움이 있을 때,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너스를 주십니다. 그런데 보너스가 더 큰 축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열심히 부르짖으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보너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은사를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수영로교회를 개척했을 때, 어려움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다리를 뻗고 편하게 잘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강단에 엎드려 울며 기도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죽고 싶은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어려움이 많아 답답했기 때문입니다.

울고 부르짖으며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이 임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보너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큰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큰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 후 교회가 부흥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이런 방법으로 부흥시키셨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 은혜를 받았습니다. 원수 마귀가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교회에 어려움이 생기면 걱정하지 말고 기도하면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모릅니다.

 

본문 이사야 6장 1~5절에 보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기도하다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를 받으니 영안이 밝아져서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와 허물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보는 것도 큰 은혜지만,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달은 것은 더 큰 은혜입니다. 환상을 보고 은사가 나타나는 것이 굉장해 보이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죄와 허물을 똑바로 보고 깨닫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는 깨닫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회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혜가 임합니다.

 

제가 포항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의 일입니다.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어른 한 분이 뒤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에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께 물어봤습니다.

그 교회에서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장로님이라고 했습니다. 십일조헌금도 하지 않고, 주일 성수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이 제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자신이 떼먹은 십일조헌금을 하겠다고 십일조헌금 봉투를 찾아 왔다 갔다 하신 것입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의 역사가 회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자신이 도둑질한 것을 회개했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회개운동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성령의 불이 교회마다, 도시마다 퍼졌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대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으로 성령의 은혜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상상해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의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회개하는 자에게 큰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성령을 선물로 부어주십니다.

사도행전 2장 38~39절에 보면,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약속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회개하면 거룩해집니다. 철저히 회개할수록 거룩해지고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겸손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기만 해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해집니다. 행복한 성도가 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사명을 깨닫습니다. 우리에게 큰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충성스러운 일꾼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열 명, 백 명의 몫을 담당합니다. 귀한 일꾼이 됩니다.

본문 이사야 6장 5~7절에 보면,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회개한 이사야 선지자를 용서해주셨을 뿐 아니라 거룩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이사야 6장 8절에 보면,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사명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크게 들어 쓰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야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본문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난은 기도하라는 사인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온 것은 기도하라는 사인입니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기도하면 고난은 축복으로 바뀝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몸부림치면, 문제가 해결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너스를 부어주십니다. 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축복해주시고, 하나님께서 들어 쓰십니다.

 

둘째, 고난을 통해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얼마나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얼마나 큰 일을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 보면,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지만,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을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면, 세상에 이보다 부끄럽고 답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일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사람은 유리 속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많은 사람들이 압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은혜 받은 사람인가 아닌가를 압니다. 우리가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사람들은 압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좋게 느껴졌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고약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되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믿을 만한 사람인가, 믿지 못할 사람인가 사람들이 압니다. 얼마나 충성스러운 사람인가 사람들이 압니다. 주님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사람들이 압니다.

 

셋째,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철저히 회개해야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변하여 새 사람이 됩니다. 철저히 회개해야 죄를 끊어버리고,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타락한 성품이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타락한 성품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자신이 범한 죄를 회개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성품 때문에 울며 회개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타락한 성품이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전도서 7장 20절에 보면,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인간은 연약하여 다 죄를 범하며 삽니다.

의인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죄인이라도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는데도 타락한 성품이 남아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타락한 성품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타락한 성품을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타락한 성품은

첫째, 악독한 마음입니다.

악독한 마음은 사탄의 성품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악독이 남아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 악한 성품이 남아있으면, 사탄이 역사했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큰 죄를 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것을 미워하십니다. 그러므로 악한 성품을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 불의한 마음입니다.

마음에 불의가 있으면, 불의한 짓을 많이 합니다. 왜 불의한 짓을 합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돈에 눈이 어두워져서 불의한 짓을 합니다. 그래서 죄를 많이 범합니다. 명예에 욕심이 있어서 불의한 짓을 합니다. 술수를 씁니다. 못된 짓을 합니다.

 

셋째, 진실하지 못한 마음입니다.

이것 역시 사탄의 성품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경건하게 사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다 위선이었습니다.

그들은 외식하는 자였습니다. 겉과 속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위선적으로 선을 행하고, 위선적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아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성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진실하지 못한 성품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그러므로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넷째,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우리에게 교만이 남아있으면,

1. 섬기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어른 행세를 합니다.

2. 수고하려 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봉사할 때에도 힘든 것은 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고급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에 우아한 일만 해야 한다고 착각합니다. 교만하여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을 할 때에 빛납니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3. 남의 허물을 잘 봅니다. 사람을 비판하고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사람들과 화목하지 못하고, 밤낮 다툽니다.

4. 자신의 부족함을 모릅니다. 자신이 허물 많고 부족한 사람인 것을 모릅니다.

5.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르치려고 합니다.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6. 자기자랑이 많습니다.

7. 남을 무시합니다.

8. 사과할 줄 모릅니다.

9. 자신은 항상 은혜가 충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은혜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10.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셔도, 자기 힘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얼마나 싫어하시겠습니까.

 

다섯째, 너그럽지 못한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너그러우신 분이셨습니다. 사람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돌로 치려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11)”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리와 죄인의 친구(마 11:19, 눅 7:34)’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 죄인과 함께 지내시고, 그들과 함께 식사하시기도 하셨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다섯 명 있었고, 지금 남편이 아닌 남자와 함께 사는 수가 성 여인을 예수님께서는 찾아가셔서 만나주시고,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인을 통해 수가 성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과거가 깨끗하고 훌륭한 사람이 목회자가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과거가 깨끗하고 훌륭한 사람만 들어 쓰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너그러운 성품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그럽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여섯째, 남을 미워하는 마음입니다.

 

열심 있는 것, 좋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실수하는 것보다는 지혜로운 것이 낫습니다. 열심은 있는데, 지혜가 없는 사람과 열심은 없으나 지혜 있는 사람 중 지혜 있는 사람이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열심보다 지혜 있는 것이 낫습니다.

 

교회 안에서 일할 때에는 항상 은혜 받으며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은혜를 끼치며 일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통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사랑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며 일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이 없고 미워하는 것은 타락한 성품입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일곱째, 혈기 부리는 것입니다.

웃시야 왕, 사울 왕처럼 혈기를 부려서는 안 됩니다. 모세는 화를 내며 반석을 두 번 내리쳤습니다. 이로 인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여덟째, 게으른 성품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 게으른 것은 타락한 성품입니다. 예레미야 48장 10절에 보면,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배드리는 것도 하나님의 일이요, 찬송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이요, 기도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이요,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이요, 전도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게을리 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게으른 성품은 타락한 성품입니다.

 

아홉째, 음란한 성품입니다.

음란하게 말하고, 음란한 것을 생각하고, 음란한 영화를 좋아하고, 음란한 책을 좋아하는 것은 고약한 성품입니다. 마귀가 좋아하는 성품입니다.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열째, 완악한 성품입니다.

순종하지 않습니다. 회개하지 않습니다. 완악한 성품은 고약한 성품입니다. 완악하기 때문에 매를 많이 맞습니다.

 

타락한 성품은 우리의 원수입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타락한 성품은 우리를 망하게 하고, 넘어지게 하고, 실패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슬프게 합니다. 그러므로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타락한 성품은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고 탄식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성령께서는 하실 수 있으십니다. 성령의 불을 받으면, 타락한 성품이 없어집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불은 우리의 죄악을 모두 해결할 뿐 아니라, 우리를 죄와 싸워 이기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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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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