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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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7-01 22:54 조회3,298회 댓글0건본문
가장 행복한 사람
가장 행복한 사람
2005년 01월 28일(금요철야)
본문 / 전도서 2:24~26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도서 6장 2~6절에 보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의 이름이 어둠에 덮이니 햇빛도 보지 못하고 또 그것을 알지도 못하나 이가 그보다 더 평안함이라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재산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자식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오래 산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즐거움이 있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고난이 없고 기쁨만 있는 사람, 슬픔이 없고 즐거움만 있는 사람, 불만이 없고 만족함이 있는 사람, 근심, 걱정, 고민이 없고 마음에 평강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시편 90편 14절에 보면,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세는 주님의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만족하게 해주셔서 우리가 사는 동안 기쁘고 즐겁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잠언 15장 13절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자들은 얼굴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거울 보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예뻐집니까. 시간이 지나면, 주름살이 생깁니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얼굴이 상합니다.
마음에 즐거움이 있으면, 얼굴이 환해지고 아름다워집니다. 마음에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마음이 행복한 사람은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즐거운 사람은 얼굴에서 빛이 납니다.
그러나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심령이 상합니다. 마음이 상하면, 얼굴이 상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얼굴을 보면, 마음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음의 즐거움만큼 좋은 약은 없습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입맛이 좋습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잠이 잘 옵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공부가 잘 됩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무엇을 하든지 잘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늘 즐거운 사람은 몸이 건강합니다. 얼굴이 빛납니다. 행복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평생 기쁘고 즐겁게만 살 수는 없습니다. 영원한 즐거움은 하나님 나라에만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평생 즐겁게만 살 수는 없습니다.
시편 16편 11절에 보면,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누릴 것입니다.
낙(樂)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세상의 낙과 신령한 낙이 있습니다. 세상의 낙은 돈을 많이 벌어 물질이 많아질 때에 느끼는 즐거움입니다. 자녀를 많이 낳고, 건강하고 장수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우리의 심령에 즐거움을 주지 않습니다. 전도서 6장 2절에 보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식이 많아도 자식들이 속을 썩이고, 오래 살아도 몸이 아파 잠을 이룰 수 없다면, 이것은 낙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은 우리에게 잠시 낙을 줍니다. 돈을 벌고, 자녀를 낳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시적으로만 마음을 즐겁게 할 뿐, 마음에 만족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낙으로는 아무도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전도서 2장 3~4절에 보면, “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내가 어떻게 하여야 천하의 인생들이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것이 선한 일인지를 알아볼 때까지 내 어리석음을 꼭 붙잡아 둘까 하여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데 사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육신을 즐겁게 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술로 망한 사람이 이 세상에 많습니다. 사무엘하 13장 28절에 보면, “압살롬이 이미 그의 종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를 자세히 보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그를 죽이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담대히 용기를 내라 한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암논은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하여 흥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압살롬은 그때를 기회로 삼아 암논을 죽였습니다. 암논은 지옥에 갔을 것입니다.
다니엘 5장 1~3절에 보면, “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그 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금, 은 그릇을 가져오라고 명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탈취하여 온 금 그릇을 가져오매 왕이 그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과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큰 일 납니다. 그래서 벨사살 왕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런데 술을 마시고 흥청망청 살면, 그 날이 마지막이 될 수 있습니다. 술로 낙을 구하는 것은 세상의 낙의 표본입니다.
본문 전도서 2장 25절에 보면, “아,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먹고 즐기는 일에 솔로몬만큼 빠진 사람이 있겠습니까. 솔로몬은 지혜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머리를 써가며 쾌락을 추구했습니다.
전도서 3장 22절에 보면,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하루 24시간 주의 집에 살면서 주의 일만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것이 제 평생의 소원이었습니다.
청년이 되었을 때에는 “하루 24시간 하나님의 집에 살면서 하나님의 일만 하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아버지, 언제쯤 제 소원을 이루어주시겠습니까?”라고 기도했습니다.
전도사가 되어 교회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교회에 부임하자마자 목사님께 “목사님, 황소처럼 일하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제게 일을 많이 맡겨주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부임한 주일, 저녁예배 시간에 제가 설교했습니다. 예배 후에 광고 시간에 목사님께서 “내일부터 부흥회를 하겠습니다. 강사는 정필도 전도사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의논하시지 않으시고 그렇게 광고하셨습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부흥회를 인도하느라 애먹었습니다.
설교하고 심방하는 등 교회에서 모든 것이 제게는 일이 아닙니다. 제 삶입니다. 제 기쁨이요, 행복이요, 즐거움입니다.
언젠가 어느 교역자가 제게 “목사님, 저희도 출퇴근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말하는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교역자가 제게 아침 9시에 출근하고, 오후 6시에 퇴근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종에게는 출퇴근이 없다. 낮이든 밤이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일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전도서 3장 22절에 보면,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처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은 좋은데, 돈 버는 것을 좋아하고, 취미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면 곤란합니다.
역대하 20장 2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이 그 적군을 이김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승리했을 때에 즐거움을 느낍니다.
이사야 66장 11절에 보면,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풍성함이 있으면, 즐거움을 느낍니다.
욥기 20장 5절에 보면, “악인이 이긴다는 자랑도 잠시요 경건하지 못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악한 사람이 승리한 것은 잠시 뿐입니다. 그는 곧 망할 자이기 때문입니다. 경건하지 못한 자는 죄를 지으며 즐거움을 누립니다. 그래서 경건하지 못한 자는 잠깐 즐거울 뿐입니다.
세상의 낙은 잠시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솔로몬을 보세요. 솔로몬은 쾌락을 추구하고, 무엇으로 즐겁게 할 것인가를 연구하며 별 짓을 다 했습니다.
전도서 2장 10~11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솔로몬은 바른 일인가 그른 일인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가 슬퍼하시는가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면 뭐든지 했습니다. 그런데 헛된 짓만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면, 한순간은 즐겁습니다. 잠시 즐겁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바람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전도서 2장 17절에 보면,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봤습니다. 앞으로 더 살아도 해본 것을 할 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더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쾌락과 육신의 즐거움을 추구하면 즐겁습니다. 그런데 즐거움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잠시 즐거울 뿐이요, 그 후에 오는 고통과 고민이 매우 큽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습니다. 하루라도 더 사는 것이 오히려 괴롭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낙을 구하는 사람은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낙(樂)이 있습니다.
첫째, 세상의 낙입니다.
사람은 먹어야 삽니다. 식욕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잘 먹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지,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에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먹어야 합니다.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 당당히 구할 수 있습니다.
식욕이 왕성할수록 건강합니다. 그런데 절제하지 않고, 많이 먹으려고 하고, 고급스러운 것을 먹으려고 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식욕이 왕성하여 잘 먹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래야 주의 일도 잘 할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먹지 않는 것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신다고 생각하고, 잘 먹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잘 먹는 것은 거룩함을 훼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셔서 우리에게 식욕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잘 먹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기도하시더라도 잘 먹으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섰을 때에는 금식하며 기도해서 끝장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평생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입니다.
그런데 자주 금식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자주 금식한다고 해서 거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디모데전서 4장 1~5절에 보면,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거룩해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생활을 통해 거룩하게 살게 됩니다.
어떤 음식물을 먹지 않고, 결혼하지 않는다고 거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하면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 신앙생활하기에 좋습니다.
잠언 5장 15~16절에 보면,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물’과 ‘샘’은 아내를 의미합니다. 자기 우물과 자기 샘은 자기가 먹어야 합니다. 자기가 먹지 않아 물이 넘쳐흘러 이웃집에서 먹어서는 안 됩니다.
남자든 여자든 정욕은 똑같습니다. 남자에게만 정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자에게도 정욕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살게 하셨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신앙생활하기에도 좋고, 사회생활하기에도 좋습니다. 가정도 행복합니다.
잠언 5장 18~19절에 보면,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내를 복되게 하고 즐겁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아내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살라는 의미입니다. 남편이 그렇게 해주면, 아내가 얼마나 행복해하겠습니까.
잠언 5장 20절에 보면,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남편이 이렇게 하면, 남편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는 얼마나 불행해지겠습니까.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잃습니다.
전도서 9장 9절에 보면,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아내’는 단수입니다. 한 명입니다.
부부의 사랑을 통해 누리는 즐거움은 서로 상대방을 즐겁게 해주는 만큼 자신이 즐거워집니다. 이것이 부부생활의 비밀입니다.
그런데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즐거움을 누리려는 사람은 상대방을 불행하게 할 뿐 아니라, 자신도 불행해집니다.
부부가 평생 행복하게 살려면, 남편은 아내를 즐겁게 해주려고 애쓰고, 아내는 남편을 즐겁게 해주려고 애써야 합니다. 상대방을 즐겁게 해주는 만큼 자신이 즐거워지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즐겁게 해주는 만큼 자신이 즐거워집니다. 즐거움을 같이 누립니다. 그러므로 서로 상대방을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한다면, 그 부부는 움막에서 살아도 하루하루 꿀맛 같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 신령한 낙입니다.
신령한 낙은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시편 35편 9절에 보면,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의 구원을 기뻐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61장 10절에 보면,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신령한 낙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기쁘고 즐거운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입니까.
하박국 3장 17~18절에 보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은혜 충만한 사람입니다. 먹을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지만, 하나님을 생각하면 즐겁습니다. 이런 신령한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시편 51편 10~12절에 보면,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즐거움 중에 가장 큰 즐거움은 구원의 즐거움입니다. 내버려두면 죽을 것 같은 위험 가운데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셔서 살게 해주셨습니다.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런데 이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있습니다. 지옥으로 가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셔서 구원해주신 구원의 즐거움입니다. 영원히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밖에 없는 큰 즐거움입니다.
다윗은 죽음의 고비를 많이 겪었습니다. 죽음의 고지가 이를 때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구원의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 압니다.
그런데 죄를 범한 후, 구원의 즐거움이 없어졌습니다. 희한한 일입니다. 죄 가운데 살면, 기쁨이 없어집니다. 즐거움이 없어집니다.
술을 마시며 즐거움을 누려보려 해도 즐거움을 느낄 수 없습니다. 고민이 많아지고, 고통이 많아집니다. 괴롭습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 나아왔을 때, 세상에서 즐거움을 누린 것은 그때 잠시뿐이요,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얼마나 괴로운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고 즐거워했던 구원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 51:10~12)”라고 기도했습니다.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사야 11장 3절에 보면,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이렇게 고백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즐겁습니까? 예배드리는 것이 즐겁습니까? 은혜 받은 사람이 아니면, 이런 즐거움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즐겁고, 하나님의 집에서 봉사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말씀으로 즐거워하는 것이 신령한 낙입니다. 시편 1편 1~2절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낮이든 밤이든 말씀을 암송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신령한 낙입니다.
시편 112편 1절에 보면,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율법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시편 119편 14절에 보면,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이 재물을 얼마나 좋아합니까. 그런데 모든 재물을 즐거워하는 것처럼, 주의 증거들의 도, 즉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시편 119편 18절에 보면,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119편 24절에 보면, “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충고자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증거하신 말씀이 즐거움이 되고,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마다 말씀을 통해 해결한다는 의미입니다.
시편 119편 70절에 보면,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119편 77절에 보면,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내가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119편 92절에 보면,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큰 고난을 당했지만, 고난 속에서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119편 143절에 보면,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119편 174절에 보면,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안식일을 즐거워하는 것이 신령한 낙입니다. 이사야 58장 13~14절에 보면,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에서 높여주시고, 야곱에게 주신 축복을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주의 날을 맞이할 때마다 즐거운 날, 존귀한 날이라 여기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즐겁게 예배하고 봉사하고, 주일을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무궁무진한 즐거움을 누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했습니다. 로마서 5장 3~4절에 보면,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5장 11절에 보면,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매를 맞고 빌립보 감옥에 들어가 핍박을 받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 41절에 보면,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13절에 보면,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고, 주님을 위해 살다가 고난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영광 중에 나타나실 때에 우리로 하여금 즐거워하게 하시고, 기뻐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해 살면서 고난 받는 사람들은 영광 중에 주님께서 오실 때에 큰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그때를 생각하며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잘 참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부끄러움을 잘 참으셨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우편에서 누릴 영광,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누릴 즐거움을 위해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죽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 같았습니다. 돌에 맞아죽는 것으로 아픔은 있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누릴 즐거움을 생각하니 좋아 천사의 얼굴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하기가 힘들고, 어려움이 많아도,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에 누릴 즐거움과 영광을 생각하며 끝까지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5장 21. 23절에 보면,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에게 주인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받으시는 영광과 즐거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주님을 위해 충성한 사람들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됩니다.
썩어질 세상에서 즐거움을 찾지 마시고, 언제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즐거워하시고, 하나님의 날을 하나님 앞에서 보내며 즐거워하며 살다가 주님 앞에 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신명기 16장 11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신명기 16장 15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나에게 복 주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기만 해도 즐겁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즐거워하고, ‘하나님’이라는 말만 들어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워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이 말씀이 우리 평생에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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