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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7 21:34 조회3,1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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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키

 

마스터 키

2002년 09월 20일(금요철야)

본문 / 잠언 4:23

 

건물 안의 많은 문들마다 다양한 키가 있어서 모든 키를 들고 다니려면 힘듭니다. 그러나 마스터 키 하나만 있으면, 어떤 문도 마음대로 열고 닫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마스터 키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떤 일이 생겨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러한 지혜는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지혜를 우리에게 축복으로 주시면, 어떤 일이 우리에게 와도 그것을 축복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에게 이 지혜를 주셔서 자신의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시고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며 “내 뜻을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 13:22).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모든 뜻을 이루게 하시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잠언 4장 23절에 보면,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어떤 태도, 어떤 자세로 사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각 사람마다 마음의 생김새는 다 다릅니다. 우리의 마음을 그릇으로 비유한다면 둥근 그릇은 무엇을 담아도 둥글게 담기지만, 찌그러진 그릇은 무엇을 담아도 다 찌그러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곧고 아름다운 사람은 어떤 일이 생겨도 아름답고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지만,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은 어떤 일이 생겨도 결과는 그릇 모양대로 비뚤어집니다.

어떤 마음자세를 갖느냐에 따라 생명을 가져다 줄 수도 있고, 죽음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행복이 될 수도 있고, 불행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재물을 가지는 것이 누구에게나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재물이 많으면 좋은 일도 많습니다. 필요한 것들을 풍족하게 살 수 있고, 좋은 일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물이 많아진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재물이 있으니 찾아와 졸라대는 사람들도 많고, 재물을 노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재물 때문에 피곤해지기 쉽고, 스트레스가 많이 쌓입니다. 유혹도 많아 많은 죄를 짓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많은 재물들이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탕자는 아버지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아 한순간에 많은 재물을 가지게 되었지만, 아버지로부터 많은 재산을 받은 후 먼 나라로 가서 마음껏 먹고 놀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며 허랑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이 탕자에게는 많은 재물이 축복이 아니라 바로 저주입니다. 육신도 병들게 하고, 인격도 병들게 하고, 인생을 망치고, 나중에는 재산도 없어지고, 영혼도 지옥 밑바닥에 내려갈 수밖에 없는 인간이 되고 맙니다. 영육 간에 아울러 저주가 되었습니다. 마음을 잘못 갖는 순간에 그 재물이 완전히 저주가 되고 말았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습니다. 그의 대문 앞에 있던 거지 나사로는 비록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는 거지였습니다. 그래도 나사로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서 낙원에 가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지옥에 갔습니다. 지옥이 얼마나 뜨겁고 목이 마른지,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눅 16:24)”라고 부탁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처럼 밤낮 먹고 마시고 좋은 옷 입고 허랑 방탕하는 사람에게는 재물이 많다는 것이 전혀 축복이 되지 않고 오히려 저주가 됩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재물이 많아도 허랑 방탕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집에서 일하고 얻어먹는 식구가 수천 명 되는 굉장한 부자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평생 하나님을 잘 섬기고 나그네에게도 정성을 다해 대접했습니다. 그 아브라함의 마음가짐, 겸손히 섬기는 마음은 많은 재물이 축복이 되게 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엄청난 부자로 살았지만, 그들은 허랑 방탕하거나 교만해지거나 방자해지지 않고 마음을 언제나 잘 지켰습니다.

이처럼 재물이라는 것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자세로 재물을 다루느냐에 따라 복이 될 수도 있고 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호사밧이 죽기 전에 금은보물과 성물과 성읍들을 자식들에게 후히 주고 장자인 여호람에게는 왕위를 주었습니다. 여호람은 아버지가 죽은 뒤에 점점 세력이 강해졌습니다.

그러자 모든 아우들과 그 편에 서는 방백들 몇 사람을 다 죽여 버렸습니다.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물려받은 여호람은 동생들을 잘 살게 해줘도 자신이 잘 살 수 있었지만 자신이 힘이 생기니까 동생들을 다 죽여 버렸을 뿐만 아니라, 바알을 섬기는 아합의 딸인 아내를 따라 아합의 집과 같이 우상숭배했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임할 것을 엘리야 선지자가 응답받은 것을 편지로 써서 보냈습니다.

역대하 21장 12~15절에 보면, “선지자 엘리야가 여호람에게 글을 보내어 이르되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네 아비 여호사밧의 길과 유다 왕 아사의 길로 행하지 아니하고 오직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음행하듯 하며 또 네 아비 집에서 너보다 착한 아우들을 죽였으니 여호와가 네 백성과 네 자녀들과 네 아내들과 네 모든 재물을 큰 재앙으로 치시리라 또 너는 창자에 중병이 들고 그 병이 날로 중하여 창자가 빠져나오리라 하셨다 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언대로 여호람은 32세에 즉위하여 8년을 치리하다가 40세에 죽었습니다. 모든 이가 잘 죽었다고 말하며, 아까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역대하 33장에 보면,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도 왕이 되자마자 우상 숭배를 하고 여기에 반대하는 성도들은 피가 시내처럼 흐를 정도로 다 죽이는 등 아주 못된 짓만 했습니다.

왕이 된다는 것, 많은 재산과 명예와 권세를 얻는다는 것은 많은 세상 사람들이 축복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왕권과 명예와 재산이 있어도 마음을 잘못 먹으면 그것은 다 저주가 됩니다.

명예와 권세와 재물 등을 손에 쥐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그것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고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고 행복하게 될 수도 있고 불행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축복해주셔서 주변의 대적을 물리치게 하시고 그 사람들이 종을 바침으로 웃시야가 심히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점점 강해지고 부요해지자 웃시야는 교만해져서 악을 행했습니다.

역대하 26장 16~21절에 보면,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용맹한 제사장 팔십 명을 데리고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서 웃시야 왕 곁에 서서 그에게 이르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음을 보고 성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무리 유명해지고 강해지고 부요해져도 마음이 비뚤어지면, 그 시간부터 범죄하고 타락하고 저주를 받습니다.

나라가 강해지고 유명해지는 것은 좋지만, 마음을 잘못 가지고 마음자세가 비뚤어지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저주로 바뀝니다. 그러므로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히스기야 왕은 왕위에 오르자 거룩운동을 펼치고 하나님께 영광돌렸습니다. 역대하 29장 2~5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첫째 해 첫째 달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동쪽 광장에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성결하게 하고 또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역대하 29장 15~16절에 보면, “그들이 그들의 형제들을 모아 성결하게 하고 들어가서 왕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명령한 것을 따라 여호와의 전을 깨끗하게 할새 제사장들도 여호와의 전 안에 들어가서 깨끗하게 하여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을 끌어내어 여호와의 전 뜰에 이르매 레위 사람들이 받아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갔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읍의 귀인들을 모아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속죄제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제물을 드리는데,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넘치도록 드렸습니다.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보발꾼을 보내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신우상 섬기는 것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는 일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이스라엘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대하 30:26).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 기뻐하시는 하나님과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큰 기쁨을 주십니다.

 

그래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백성들을 축복하는 기도를 했더니 그 기도가 하나님 앞에 다 상달되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 앞에 돌아와 은혜의 생활을 시작한 백성들이 기쁨으로 자원해서 얼마나 많이 가져왔는지 모릅니다.

 

역대하 31장 4~7절에 보면, “또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을 명령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몫의 음식을 주어 그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힘쓰게 하라 하니라 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첫 열매들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으며 유다 여러 성읍에 사는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들도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왔고 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릴 성물의 십일조를 가져왔으며 그것을 쌓아 여러 더미를 이루었는데 셋째 달에 그 더미를 쌓기 시작하여 일곱째 달에 마친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부요하게 하는 것, 그것 자체가 부요해지는 비결입니다.

 

역대하 31장 10절에 보면, “사독의 족속 대제사장 아사랴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백성이 예물을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 시작함으로부터 우리가 만족하게 먹었으나 남은 것이 많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그 남은 것이 이렇게 많이 쌓였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언제나 쓰고도 남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리고 감사예물을 드릴 때에 점점 많이 드리게 되는 자체가 벌써 축복입니다.

 

역대하 32장 6~8절에 보면, “군대 지휘관들을 세워 백성을 거느리게 하고 성문 광장에서 자기 앞에 무리를 모으고 말로 위로하여 이르되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저그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침략해올 때, 히스기야는 믿음의 말을 했습니다. 온 백성이 이 믿음의 말을 듣는 순간, 믿음이 생겨 마음이 편안해졌고 안심했습니다.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포위하니까 히스기야와 이사야가 함께 성에 들어가서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한 천사를 보내셔서 앗수르 왕의 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장관들을 멸하셨습니다. 아침에 보니 18만 5천 명이 모두 시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은 망했지만, 남쪽 유다는 히스기야와 이사야의 기도로 말미암아 나라가 망하지 않고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히스기야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히스기야 32장 27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지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렇게 축복을 받은 히스기야도 교만해져서 실수했습니다.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묻자 바벨론 방백들을 데리고 가서 보물은 다 보여주었습니다. 마치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된 것처럼 자랑할 때,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떠나셨습니다(대하 32:31).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떠나시자 저주를 받았습니다. 역대하 32장 24~25절에 보면,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으로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잘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우리의 생명도 건강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겸손해야 되는데, 교만해지면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보답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진노하셨습니다.

히스기야가 교만한 마음을 뉘우치고 회개하여 히스기야 생전에는 진노가 임하지 않았지만, 교만한 가운데 행한 그 죄악의 씨가 그 후대에 나타났습니다. 바로 그 아들 므낫세입니다.

 

15년간 생명을 연장 받은 히스기야가 죽을 때 므낫세가 12살이었으니 죽을병 걸렸다가 나은지 3년 만에 낳은 아들이 므낫세입니다. 죽을병에 걸렸다가 나았으면, 덤으로 사는 15년 동안 오직 하나님을 위해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히스기야는 젊은 여자를 얻어 므낫세를 낳아 왕으로 세웠습니다. 이 열두 살짜리가 자기 엄마를 따라 사신우상을 섬겨 나라 전체가 우상 숭배하는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의 자세가 바로 되어있을 때에는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와도 상관없고 죽을병에 걸려도 상관없습니다. 마음의 자세만 잘 가지고 대처하면, 어려움도 축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간증거리가 생깁니다.

그런데 마음이 병들고 교만해지면, 그 다음부터 문제가 됩니다. 축복이 다 물거품이 되고, 모든 것이 불행과 저주로 바뀝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자마자 날마다 기브온 산당에 가서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섬기는 것을 첫째로 알고, 먼저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해서 나라를 다스리고 살아갈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지혜를 구했을 때, 그가 구하지도 않은 부귀와 영광을 다 주셨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너무 잘 살게 되었을 때에 두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는 이방 여자를 좋아한 것입니다. 애굽 왕 바로의 딸을 비롯하여 모압, 암몬 여자 등 천 명의 여자를 데리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쾌락을 추구하여 육신에 쾌락이 되는 것은 뭐든지 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타락했습니다. 예루살렘 언덕 한쪽에 각 나라 우상을 세우고 우상숭배를 하도록 허락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두 번이나 나타나셔서 책망하셨지만, 솔로몬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회개할 때가 지나버렸습니다.

그러자 반란자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나라가 북쪽은 이스라엘, 남쪽은 유다로 갈라졌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북쪽 이스라엘이 먼저 망하고, 유다는 나중에 망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재물이나 명예와 권세가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마음과 어떤 자세를 갖느냐입니다.

 

성공에는 일시적인 성공과 영원한 성공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은 다 일시적인 성공입니다. 좋은 학교에 합격하는 것이나 돈 버는 것, 대통령이 되는 것 역시 일시적인 성공입니다.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잘못하면 아무도 그 사람을 성공한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성공자가 되려고 발버둥치는데, 그것은 다 일시적 성공입니다. 영원한 성공은 죽을 때에 결정됩니다.

아브라함, 요셉, 사도 바울 등은 영원한 성공자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고생을 많이 하고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리가 천국에 가서 그들을 만날 때 과연 그들은 성공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영원히 면류관을 쓰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어떤 마음을 갖느냐 어떤 자세를 갖느냐에 따라 이 세상에서의 성공이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성공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때부터 축복의 길이 아니라 저주의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공했을 때 더 겸손하고 더 하나님께 무릎 꿇고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공했다고 해서 그것이 다 축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은 크게 죗값으로 당하는 부끄러운 고난과 애매한 고난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무슨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고난을 당하면 억울합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요셉이 당한 고난은 억울한 고난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죄도 없이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제자들이 소크라테스를 따라가며 “선생님, 억울합니다!”라고 울자, 소크라테스가 뒤를 돌아보고 “내가 억울하게 죽어야지, 죄가 있어서 죽어야 하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죄가 있어서 죽으면 세상에 그보다 더 부끄러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억울한 죽음도 많고 억울한 고난도 많습니다.

세 번째 고난은 선한 일로 인해 당하는 고난입니다. 선한 일을 위해 당하는 고난은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우리가 어떤 고난을 당하든지 고난은 누구에게나 동일합니다. 그런데 고난이 왔을 때에 어떤 마음을 갖느냐, 어떤 자세를 갖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고난이 왔을 때, 악한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비방합니다. 그리고 점점 더 악해집니다. 그들은 고난이 오면 화가 납니다.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하고 왜 이렇게 잘 안 되는 거냐?”라고 하나님께 대적하고 악령에 충만해집니다.

그러나 선한 사람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고난은 같지만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갖느냐 어떤 자세를 갖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그렇게 달라집니다.

 

고난이 축복이 되게 하려면, 고난이 왔을 때에 고난을 주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 허락 없이는 되지 않습니다.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고난이 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기 때문에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고난을 통해 자신의 죄와 교만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고 사람이 겸손해집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하며 하나님께 찬양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고난을 통해 자기의 사명을 깨닫고 큰 일꾼이 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악하고 죄가 많고 과거가 용서받기 힘들 정도로 못된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고난이 왔을 때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면 살 길이 열립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됩니다.

 

고난이 왔을 때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절망하면 안 됩니다. 고난이 왔을 때 절망하면, 고난이 더 고통스럽게 느껴지고, 고난이 저주가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왔을 때에 절대로 낙심하거나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난이 왔을 때 엎드려 기도하라는 사인인 줄 알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고난의 의미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고난이 왔어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가운데 고난의 의미를 깨달으면, 그 사람에게는 고난이 놀라운 축복이 됩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너무 가난하고 고생하면서 자랐습니다. 남들처럼 좋은 집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길가에 있는 판잣집에서 저랑 동생이랑 최고의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나올 때 얼마나 부끄러운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더욱 가난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극한 상황에까지 몰아가셨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생명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은혜가 많았습니다. 많은 체험을 했습니다.

그 고난 속에서 주님을 만나고 “너는 이제 죽었느니라.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주님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용광로 속에서 점점 더 뜨겁게 하셨습니다.

 

그런 과정이 목회에 얼마나 큰 축복이 되는지…. 하나님께서 아무리 나를 부요하게 하시고, 아무리 많은 것을 제게 주셔도, 그것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시고, 다 주님을 위해 바칠 수 있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제가 고난 속에서 자란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감사하고 영광이고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과거를 불행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순간 한순간 마음가짐을 바르게 갖지 못하고 살았던 그 순간이 억울하고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고난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고난당하는 것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갖느냐, 어떤 자세를 갖느냐에 따라서 고난이 축복이 되고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을 깨닫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잘 소화하고 마음에 새기면 여러분에게 얽히고설킨 크고 작은 문제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만드는 지혜를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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