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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9장

왜 고난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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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4 20:30 조회2,5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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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난이 있는가

 

왜 고난이 있는가

2003년 06월 22일(주일예배)

본문 / 시편 119:67~77

 

이 세상에서 살다 보면, 기쁘고 즐거울 때도 있지만, 슬프고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또 모든 일이 잘되어 형통할 때도 있는 반면에, 이상하게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애간장을 태울 때도 많습니다. 또 건강하게 태어나는 사람도 있으나, 이와 반대로 허약하게 태어나 일평생 고통을 몸에 지니고 힘겹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에 고난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크고 작은 고난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위대한 사람들은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4선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은 어렸을 때에는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었고, 시력도 좋지 않아 돋보기를 써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식을 앓고 있어서 때때로 호흡곤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그가 11세가 되었을 때, 어느 날 그의 아버지는 “아들아, 너는 다리도 절고 시력도 나쁘고, 천식까지 앓고 있으니, 만일 그것이 너를 실패하게 하거든 그것을 잘 극복하고, 하나님을 믿으며, 그의 도우심을 구하거라. 그리하면 너는 누구보다 더 크고 훌륭한 인물이 될 거야.”라고 말하며 어린 아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아마비나 시력이나 천식의 장애에 연연해하지 않고,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부지런히 공부하여 23세 때 뉴욕 대표의회의 의원이 되었고, 28세 때에는 뉴욕시장에 출마했으며, 그 후 뉴욕 주지사와 부통령이 되었고, 마침내 26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열악한 환경과 불행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더욱 겸손했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공로를 세운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게 되었습니다.

 

세계 문학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는 러시아가 낳은 천재 작가입니다. 그는 가난한 군의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렵게 성장했습니다. 그의 나이 16세 때 어머니는 폐병으로 돌아가셨고, 18세 때 아버지가 농노들에게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정신발작 증세를 일으켰으며, 그 후 고아처럼 외롭게 지냈습니다.

청년 때 사회주의 결사대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황제의 특별 사면으로 총살직전에 극적으로 구조되었습니다. 대신 시베리아로 유배되어 4년간 징역살이를 하며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결혼생활도 평탄하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었습니다.

그 후 재혼하여 아들을 하나 얻었으나, 그 기쁨도 잠시뿐, 아이는 시베리아의 극심한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병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자신 또한 간질병으로 쓰러져 정신을 잃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극심한 고통과 시련과 빚쟁이에게 쫓기는 참담한 처지에 있었으면서도 그는 <죄와 벌>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비롯하여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백야> 등 많은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프랑스의 수학자요 사상가인 파스칼(Blaise Pascal) 은 선천적으로 몸이 몹시 허약하여 종종 심한 복통과 두통을 앓았으며, 결핵성 복막염까지 앓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병약한 몸이었지만, 그는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그의 39년 인생 중 비교적 건강했던 기간은 겨우 2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그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가 찾고 구하는 것은 하나님뿐입니다. 육체의 병이 영혼의 약이 되었습니다. 내가 아는 지식은 단 하나, 주님을 따르는 것은 선이요 주님을 거역하는 것은 악이라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글을 써서 5년간 924개의 단상(斷想)을 남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팡세>입니다. 병은 신체의 장애일 뿐, 의지의 장애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면, 자신에게만 고통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더구나 그 고난 때문에 이렇게 불행하게 산다고 낙심하기 쉽습니다.그러나 위대한 인물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고난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살며 위대한 일을 해낸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고난이 가져다주는 고통은 누구에게나 똑같지만,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고난이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 어거스틴(Sanctus Aurelius Augustinus)은 그의 저서 <하나님의 도성>에서 “고통이란 동일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고통이란 있고, 고통은 동일한 것이로되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동일하지 않다. 악한 사람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비방하고 원망하고 모독하지만, 선한 사람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알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고난을 당할 때 어떤 자세를 가지느냐에 따라 결과도 달라지고, 고난의 의미도 달라집니다. 고난이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71절),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75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을 통해 말씀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말씀이 귀하고, 얼마나 축복이 되는가를 알았기 때문에 늘 말씀을 사모하며 말씀대로 살았고, 고난을 통해 말씀의 은혜를 받고 보니 너무나 기쁘고 좋아서 오히려 고난을 기뻐하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러시아의 과학자들이 특별한 실험을 했습니다. 편안한 삶이 생명을 단축시키는지 그렇지 아니한지를 실험했습니다.

과학자들은 먼저 동물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의 동물은 아주 좋은 환경에서 먹이도 충분히 먹으며 편안히 살도록 했고, 다른 그룹의 동물은 항상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가운데 약간의 음식만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좋은 환경에 살던 동물들이 먼저 병들기 시작했고, 생기가 없어졌으며, 빨리 죽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 가운데 고난과 긴장이 있는 것은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생기 있는 삶을 살게 하고, 유익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인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는 “참고 기다려라. 이 힘든 고난은 땅에서 솟아오른 저주가 아니라, 어둡게 변장한 모습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축복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의 보화를 보내주실 때, 고난이라는 검은 보자기에 싸서 보내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자기만 보고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고난의 보자기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축복과 보화를 볼 줄 아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고난은 괴로운 것이지만, 고난을 이기면 자신에게 복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고난을 이기면 강한 자가 되고, 위대한 인물이 되며, 하나님이 높이 들어 쓰시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못 생각하면 고난은 하나님을 모르고 죄 가운데 사는 사람들에게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잘 믿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고난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욥기 2장 7~10절에 보면, 욥이 고난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의 아내가 욥을 욕하는 모습과 이에 대한 욥의 반응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사실 우리도 욥의 아내와 같이 잘못된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왜 내게 고난이 있는지 하나님을 원망하다보면, 자연히 낙심하게 되고, 더 큰 불행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히려 고난을 통해 더 큰 축복을 받을 줄 믿고, 욥과 같이 “하나님이 내게 많은 축복을 받았으니 고난도 주시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첫째,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만 때문에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또 죄의 습성이 좀처럼 없어지지 않아서 덕이 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 교만이나 죄악의 습성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 고난은 경건의 큰 유익이 됩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사도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했습니다(약 1:2~4).

여러 가지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기 위한 시련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고난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내하고 또 인내하다보면 인내하는 만큼 우리의 믿음이 더욱 더 온전해지고 좋아집니다.

요셉을 주목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를 애굽에 노예로 팔리게 하시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당한 13년간의 인고(忍苦)의 세월은 오직 그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기 위한 시련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원망불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믿음으로 잘 이겨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때가 되매 그를 총리로 세우시고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리처드 범브란트(Richard Wurmbrand) 목사님의 책 중에 <옥중에서 만난 그리스도>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그가 겪은 실화를 소개한 글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감옥에서 고생을 많이 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석방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생활을 다 정돈하고, 촌부(村夫)로 여생을 조용히 살겠다며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농사를 지으며 살던 어느 날 들녘에 서서 “하나님, 저의 믿음을 온전하게 해주세요.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때 하늘로부터 그에게 “너는 온전하게 되기 위해 다시 감옥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깜짝 놀란 이 사람은 지난 날 감옥에서 너무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다른 것은 다 해도 감옥에 들어가는 것만은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으로부터 “그러면 온전해지기를 구하지 말라”는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자나 깨나 하나님의 그 말씀이 계속 들려왔습니다. 그의 마음은 갈등과 고민으로 도무지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다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하나님, 저를 온전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그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그 후 그는 비밀경찰에게 체포되어 잡혀갔습니다. 굶주리고 매 맞고 욕을 당하며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지하 독방에 갇히는 고독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기도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감방 벽의 조그마한 틈을 통해 옆방 사람과 고작 몇 마디를 비밀스럽게 나누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죄수들이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서로의 이름과 무슨 죄목으로 들어왔는지를 묻곤 했는데, 어느 날 자신과 같은 이름을 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귀를 의심한 그는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그 이름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아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우리 부자로 하여금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고난이 오면 무조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중대한 계획과 뜻을 이루기 위해 특별히 우리를 고난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므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에 보면,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난은 기도하라는 사인입니다. 기도하다보면 은혜를 받게 되고, 깨달음을 얻으면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그리고 더 큰 믿음을 가지게 되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특별히 고난 중에 기도하다가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큰 기쁨이 있습니다.

 

화가로 활동하던 솔멘이라는 사람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임파선결핵에 걸려 의사로부터 3개월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의 아내는 임신 중이었습니다.

솔멘이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고민할 때 아내는 “여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말고, 3개월이나 남았다고 생각하세요. 이 3개월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십시다.”라고 말하며 진정으로 그를 위로했습니다.

솔멘은 믿음 좋은 아내와 함께 기도하며 기쁨으로 예수님의 초상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얼마나 예수님의 초상화를 은혜롭게 잘 그렸는지, 그의 그림은 수백만 장이나 복사되어 팔려나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병이 다 낫게 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둘째,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장차 하늘나라에서 면류관 상급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기쁨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며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는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행 7:60).

스데반이 당한 고난은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회가 되었고, 하나님 앞에 가서는 면류관 상급을 받는 영광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어떤 고난이 있든지 항상 기도로 승리하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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