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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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7 23:16 조회2,398회 댓글0건본문
더 큰 복
더 큰 복
2011년 06월 12일(주일예배)
본문 / 시편 119:65~73
누구든지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시민이 됩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거듭난 신자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이 되면,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 중에 중요한 변화는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더 가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얼마나 많이 아느냐, 얼마나 많이 배웠느냐,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거기에 관심을 쏟았는데, 거듭난 후에는 달라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리 알고, 아무리 많이 배우고,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어떻게 사느냐,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합니다.
예전에는 이 세상에서 얼마나 성공했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거기에 관심을 많이 가졌지만, 거듭난 이후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떻게 사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살았지만, 거듭난 이후에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인류를 위해 살 것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치 있게 생각합니다.
은혜 받은 성도들에게서 이런 변화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은 성도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놀라운 변화 중 하나는 고난에 대한 생각의 변화입니다.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고난을 예전에는 아주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고난이 오면,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낙심하고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셨을까?’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은혜 받고, 거듭난 후에는 고난에 대한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고난이 축복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고난이 유익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입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보면,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다 보면,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게 되는데, 죗값으로 인해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죄를 범하므로 붙잡혀가서 감옥에 들어가거나 여러 가지로 고생하게 되는 고난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9~21절에 보면,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가 있어서 고난당하는 것은 부끄러운 고난입니다.
계속해서 죄를 범하면,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는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백성들이 범죄할 경우에는 하나님이 징계하십니다. 이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백성들이 지옥에 갈 짓을 계속 범하는데, 하나님이 가만히 내버려두시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징계하십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잘못 사는데도 징계가 없다면, 그 사람은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닙니다(히 12:8).
어느 탤런트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어려움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그 달에는 십일조 헌금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분의 아들이 밖에서 놀다가 넘어져서 코가 부러졌습니다.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았는데, 십일조 헌금만큼 돈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분이 “십일조 헌금에는 절대 손대지 마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것에는 손대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것은 그만큼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고난 중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있습니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다거나 가난한 집안,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생을 많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부당한 고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자신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차가 달려와서 부딪치는 바람에 사고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여러 가지 재난으로 인해 땅을 잃어버리고, 집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믿음의 시련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을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믿음의 시련으로 고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선한 고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주님과 복음을 위해,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 자원하여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선한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선한 고난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버렸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기도 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헐벗고 굶주리며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로마서 8장 17~18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과 함께 천국을 상속 받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우리는 상속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을 사람들이기 때문에,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 사도 바울과 함께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구원 받게 하기 위해 고난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아름답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고난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그의 아버지가 건축업자였고, 시의회 의원이었습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주 잘 살았다고 합니다.
테레사 수녀는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수녀회에 들어갔습니다. 그 다음 해에 인도 캘커타에 가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폐결핵에 걸려 히말라야 산에 있는 요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봉사해라. 가난한 자들을 위해 봉사해라”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5루피, 우리나라 돈으로 120원 정도 되는 적은 돈을 가지고 빈민가에 갔습니다. 빈민가에 가보니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거지, 노인 등 불쌍한 사람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50년간 거기서 그들을 도왔습니다.
1996년에는 말라리아, 심장병, 폐질환으로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허리를 굽힌 채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다 보니 병에 걸린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1997년 9월, 테레사 수녀는 세상을 떠나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사랑입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노벨평화상, 케네디인권상, 인도 최고의 바라트라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모든 상과 상금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었습니다.
그는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아홉 살 때부터는 예배시간에 오르간 연주를 했습니다.
아버지를 이어 목회를 하려고 신학 공부를 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의학을 공부하여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었지만, 불쌍한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1952년에 노벨상을 받았는데, 그때 받은 상금으로 나환자촌을 지어서 나환자들을 돌봐주었습니다. 1965년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는 고통 받는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고 구원 받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며 살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 선한 고난은 가장 값진 고난인 줄 믿습니다.
고난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가장 흔한 고난은 물질의 고난입니다. 사업이 잘 되지 않거나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는 생활고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물질의 고난, 생활고를 겪게 되면, 금식기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예 죽을 생각을 하고 금식하며 기도하면, 은혜를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주님을 만나게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처럼 생활고로 인해 자살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질병의 고난이 있습니다. 몸에 병이 생기므로 고난을 겪게 되고, 장애인으로 태어나 고난을 겪기도 하고, 사고를 당해 장애를 입게 되기도 합니다.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이것이 질병으로 인한 고난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숀 스티븐슨은 미국에서는 스타 연설가로 아주 유명합니다. 그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자라고 간증합니다.
그는 키가 90㎝밖에 되지 않고, 몸무게가 20㎏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는 ‘골성형부전증’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의 뼈는 마치 달걀 껍데기처럼 잘 부러집니다. 그래서 스티븐슨이 태어났을 때, 의사들은 “24시간 내에 죽는 것이 좋다.”라는 진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스티븐슨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마치 전쟁터에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잘못하면 뼈가 다 부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아홉 살이 되던 해의 할로윈데이에 뼈가 부러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그는 “엄마, 왜 하필 저예요? 제가 무엇을 잘못했어요?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아요.”라고 소리 지르며 괴로워했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져 몸도 마음도 아픈 아들에게 그의 어머니는 “얘야, 이번 일이 정말 큰 시련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일까?”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선물’이라는 단어를 듣고, 그의 마음속에 있던 무거운 짐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이렇게 고통을 느끼는 것은 나로 하여금 나만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불행의 종신형을 선택하는 대신, 스스로를 연민의 굴레에서 구출해내고, 자신처럼 험난한 자갈길 같은 길을 걸으며 사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자신의 불행을 생각하며 슬퍼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처럼 고생하는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후로 뼈가 2백 번 이상 부러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수영, 자동차 경주, 윈드서핑 등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시도했다고 합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강연요청이 쇄도하여 그는 전문 강사가 되었고, 심리치료센터를 운영하는 심리학자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얼마나 축복 받은 사람인가를 사람들에게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저서 ‘당신이 축복입니다’에서 그는 독자들에게 “당신은 이미 단 하나의 명작임을 기억하시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존재가 큰 축복임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그는 “오늘이 힘들어도 축복입니다. 아직 끝이 아니기에 축복입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기에 축복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날들이 축복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당신의 존재,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고통 중에 정신적 고통이 있습니다. 핍박과 학대를 받거나 미움을 받아 정신적 고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북한의 동포들은 종합적인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제대로 먹을 수 있습니까. 병들었을 때에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까. 그들에게 자유가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을 자유가 그들에게 있습니까. 북한에 있는 동포들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들을 위해 한시도 빠짐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고통을 줍니다. 그래서 고난이 없는 것이 복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복은 고난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복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라고 고백했습니다(시 119:71). 이것은 참으로 위대한 믿음의 사람의 고백입니다. 시편 기자는 참으로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본문에 보면, 시편 기자는 고난으로 인하여 바르게 살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교훈을 깨달았기 때문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없는 것도 복이지만, 그보다 더 큰 복은 고난이 있으므로 받게 되는 복입니다.
고난으로 인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고난을 당하는 것이 고난을 당하지 않는 것보다 몇 배로 큰 복입니다. 고난이 없었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지옥에 갔을 텐데, 고난으로 인해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게 되었으니, 고난을 당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고난 때문에 회개하게 되고, 고난 때문에 죄를 끊어버리고, 고난 때문에 죄를 버리게 되었다면, 고난을 당하는 것이 큰 복입니다.
고난이 없었으면 기도하지 않았을 텐데, 고난이 있으므로 많이 기도하게 되었다면, 고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도하다보니 은혜를 받게 되고, 능력을 받게 되고, 축복 받게 되었습니다. 고난으로 인해 받은 복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고난 때문에 거룩하게 살게 되었다면, 고난으로 인해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고난 때문에 말씀대로 살게 되었고, 고난을 통해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면, 고난으로 인해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시편 119편 67절에 보면,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10절에 보면,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은 잠깐 당하는 고난입니다. 지옥에 들어가서 당하는 고난은 영원히 당하는 고난이지만,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은 잠깐 당하는 고난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잠깐 고난을 당하지만, 하나님은 그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해주시고, 강하게 해주시고, 더 견고하게 해주십니다. 이것이 더 큰 복입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보면,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순금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복입니까.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을 위해 살게 된 사람은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고난이 없었다면, 밤낮 세상만 따라가며 죄 가운데 살 사람인데,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을 위해 살게 되었다면, 매우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을 통해 큰 복을 받은 사람들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걱정거리, 근심거리, 괴로운 문제, 고통의 문제, 고난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괴로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탄식하거나 원망하며 살지 말고, 절망하지도 말고, 고난이 축복이 되게 하는 성도가 되셔서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축복이라”라고 고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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