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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07장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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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08 16:19 조회5,7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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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
2008년 04월 25일(금요철야)
본문 / 시편 107:9~12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매우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주 커서 우리가 그 사랑을 다 측량할 수 없습니다. 매우 크기 때문에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3장 18~2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위해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만큼 행복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만큼 감사함이 충만해지고, 찬양이 터져나오며, 기쁨이 넘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우리는 모든 저주로부터 속량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실까요? 그 이유를 우리는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감개무량합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면, 한심하고 부족한 것이 많은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저와 여러분을 특별히 창조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창세 전부터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구별하실 때에는 우리를 통해 영광 받으실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육신의 옷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구원 받을 하나님의 백성이 구별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의 자녀들에게 고난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마치 정금을 만들기 위해서 용광로, 풀무 속에 넣어서 고통당하게 하듯이 그렇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너무 괴로워서 죽고 싶을 마음에 울어보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고 싶도록 괴로우면 술을 마십니다. 그리고 약을 먹습니다. 자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죽고 싶도록 괴로울 때,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울부짖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 사람의 차이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으면서 웁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성령의 불을 받기도 하고,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주님을 만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어느 개척 교회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의 사모님이 아주 억울한 일을 당해 죽고 싶은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뼈아픈 눈물을 흘리며 죽고 싶은 마음으로 기도할 때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왜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지 아니? 그것은 내 원수를 사랑해서가 아니고,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란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지 않으면, 마음이 지옥이 되어 버려 마음이 고통을 당하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모든 고민이 해결되고, 마음이 치료 되었습니다.

저도 너무나도 괴로워서 금식하다가 죽을 생각으로 울부짖으며 기도하다가 “나를 위해서 살아줄 수 없겠니?”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저를 인도하시고 축복하시고 책임져주십니다. 아주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실 때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 위해서 우리를 귀하게 쓰시려고 하실 때, 고난으로 연단하십니다.
그래서 욥기 23장 10절에 보면, 욥은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욥은 큰 시험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시험하시는 목적이 무엇인지 똑바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욥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나오리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일에 저와 여러분을 귀하게 쓰시기 위해 큰 고난을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시는 목적은
첫째,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정결하게 하십니다.
금덩어리를 용광로 속에 집어넣어 순금을 만들면, 순금은 그만큼 가치가 있고, 귀히 쓰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22절에 보면,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셔서 고난을 통해 정결하게 하십니다. 깨끗한 그릇이 되게 하시고, 귀한 일에 쓰십니다. 이렇게 고난을 통해 정결하게 되는 만큼 복 받을 그릇이 됩니다.

다윗은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시편을 보면, 다윗이 얼마나 고난을 많이 당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고난당할 때, 원망불평하고 신세타령한 것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 깊은 기도를 한 것에 있습니다. 다윗은 고난 가운데 기도하면서 은혜를 얼마나 받았는지 모릅니다.
열왕기상 15장 5절에 보면,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은혜를 받게 되니 하나님을 위한 소원과 목표와 꿈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욕심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위한 소원을 가지고 무언가 해드리고 싶고, 영광 돌리고 싶은 사람은 욕심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넘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사니까 갈수록 거룩해졌습니다.
다윗은 선지자입니다. 시편을 읽어보면, 다윗이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많은 계시를 받았습니다. 어떤 구절은 메시아를 예언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윗은 갈수록 축복을 받아서 재산이 늘어나고, 금은보화가 많아지고, 나라가 강해지고 커졌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받은 고난은 고난으로 끝난 게 아닙니다. 다윗은 고난을 통해 정결한 그릇이 되었습니다. 복 받을 그릇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그릇이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보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넘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기도에 응답 받지 못할까요? 우리가 자신만 생각하고, 자신만을 위해서 살기 때문입니다. 자기만 생각하다보니 욕심의 노예가 되고, 죄를 얼마나 많이 범하는지 모릅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보면,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죄악을 품으면, 그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습니다. 축복과 은혜 받을 길을 가로막아 기도 응답이 되지 않습니다.

시편 94편 9절에 보면,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 소리를 듣고 계시고, 우리의 형편을 아십니다. 또 우리의 소원과 생각을 아십니다. 우리에게 뭐가 필요한지, 어디가 아프고, 어떤 걱정을 가지고 있는지 다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눈을 지으시는 하나님이 어찌 우리를 못 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눈은 우리의 겉모습과 속까지 꿰뚫어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응답하지 않으십니까? 우리 마음속에 죄악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이 정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 살고, 출세하고, 영광 받는 것보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인해 영광 받으시고, 우리를 귀하게 쓰시는 것이 복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 고난을 주시고 연단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겸손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아주 싫어하십니다. 잠언 6장 16~1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6장 5절에 보면,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아주 싫어하시고, 미워하십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 보면,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 보면,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원수 대하듯이 대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아지게 하십니다. 잠언 29장 23절에 보면,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망하게 하십니다. 그 집을 헐어버리십니다. 잠언 15장 25절에 보면,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다 망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했습니다(잠 16:18, 18:12).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왜 싫어하실까요?
첫째, 교만한 자는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감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수 있습니까? 아버지, 어머니의 말씀에도 불순종하면, 못된 자식인데 어떻게 감히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불순종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교만한 인간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저주를 받게 됩니다.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신 28:15).

사울 왕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는 축복을 받았지만, 왜 버림과 저주와 멸망을 당했을까요? 아말렉을 칠 때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까지 다 멸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사울은 욕심에 눈이 멀어서 살진 소와 양을 죽이지 않고 다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불순종한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그를 버리고 떠나셨으며, 악신이 들어와서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더 악해지고, 마음의 지옥이 이루어져 결국 망하고 맙니다.
하나님이 왜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느냐하면 교만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교만한 자는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원망 불평이 많고, 감사할 줄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알지 않고, 당연히 복 받을 줄 알고, 당연히 성공할 줄 알아서 자신의 분수를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원망 불평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합니다.

셋째,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가로챕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성공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축복 받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했는데, 자기가 똑똑해서, 자기가 훌륭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다니엘 4장의 느부갓네살 왕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다가 아주 큰 고통을 당합니다.
다니엘 4장 10~17절에 보면, “내가 침상에서 나의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이 이러하니라 내가 본즉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높이가 높더니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으니 그 모양이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이 그 그늘에 있으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고 육체를 가진 모든 것이 거기에서 먹을 것을 얻더라 내가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 가운데에 또 본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그가 소리 질러 이처럼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자르고 그 잎사귀를 떨고 그 열매를 헤치고 짐승들을 그 아래에서 떠나게 하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 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풀 가운데에 두어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땅의 풀 가운데에서 짐승과 더불어 제 몫을 얻으리라 또 그 마음은 변하여 사람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내리라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이니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아주 희한한 꿈을 꿉니다. 어떤 환상을 보는데, 땅 중앙의 아주 큰 나무에 관한 꿈을 꿉니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다니엘 4장 22~27절에 보면,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이는 왕이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시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심이니이다 왕이 보신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어 없애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 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풀 가운데에 두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또 들짐승들과 더불어 제 몫을 얻으며 일곱 때를 지내리라 하였나이다 왕이여 그 해석은 이러하니이다 곧 지극히 높으신 이가 명령하신 것이 내 주 왕에게 미칠 것이라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또 그들이 그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1년 쯤 지나니까 꿈을 통해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다니엘 4장 29~30절에 보면,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랬더니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옵니다. 다니엘 4장 31~34절에 보면,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바로 그 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교만했던 느부갓네살 왕이 겸손해졌습니다. 그래서 다니엘 4장 36~37절에 보면, “그 때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의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찾아오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받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자기가 다 했다하며 스스로 영광 받고 높아져 착각 속에 빠져듭니다. 그런데 벨사살 왕도 교만해서 망했습니다. 망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 5장 18~24절에 보면,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 그에게 큰 권세를 주셨으므로 백성들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였으며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완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의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의 영광을 빼앗기고 사람 중에서 쫓겨나서 그의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나귀와 함께 살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의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사람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자리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에 이르렀나이다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아직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자신을 하늘의 주재보다 높이며 그의 성전 그릇을 왕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구리, 쇠와 나무, 돌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날 밤 벨사살 왕이 죽임을 당합니다. 다니엘 5장 30~31절에 보면,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버지가 교만하여 혼난 것을 자기 눈으로 봤는데도 불구하고 벨사살 왕은 똑같이 그런 짓을 하다가 죽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싫어하시고 미워하시고 망하게 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축복을 받았으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금껏 살아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넷째,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 충고를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잠언 15장 10~12절에 보면, “도를 배반하는 자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요 견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니라 스올과 아바돈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리요 거만한 자는 견책 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교만한 자들은 견책을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꾸짖더라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웃시야 왕이 그런 왕이었습니다. 역대하 26장 16~21절에 보면, 웃시야 왕에 대해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용맹한 제사장 팔십 명을 데리고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서 웃시야 왕 곁에 서서 그에게 이르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음을 보고 성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얼마나 처참합니까. 성소에서 화를 냈다가 그 즉시 나병이 생겼습니다. 교만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니까 그런 일이 생겼습니다.

다섯째, 교만한 자는 미련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기 때문입니다.
잠언 14장 3절에 보면,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지혜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만한 소리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고 매를 맞게 됩니다. 건방지고 방자한 소리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자는 멸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기뻐하십니다. 베드로전서 5장 6절에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잠언 15장 32절에 보면, “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잠언 29장 23절에 보면,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2장 4절에 보면,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 22:4)
하나님께서는 항상 겸손하게 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재물의 복을 주십니다. 또 영광의 복을 주셔서 세상에서 명예롭고 영광을 얻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생명의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겸손한 자를 축복하실까요?
첫째, 겸손한 자는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불순종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에게 모든 복이 임하고, 순종하는 자가 모든 복을 누리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신 28:1~14)

둘째,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잘 섬기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섬기는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모릅니다. 어디서든 잘 섬기는 사람이 머리가 됩니다. 잘 섬기는 사람이 가장 존경 받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잘 섬기는 자를 높이시고, 잘 섬기는 자를 통해 영광 받으십니다.

셋째, 겸손한 사람은 항상 감사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깨닫기 때문에 원망 불평할 시간이 없습니다. 또 범사에 감사하며 살다보니 원망 불평할 시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넷째, 겸손한 사람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가 영광 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잘된 일이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이고, 주님이 해주셨다고 얘기합니다.
여러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십시오. 자녀들이 잘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되었다고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겸손한 사람은 충고를 잘 받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충고를 달게 받고, 고마워합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잠언 11장 2절에 보면,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일에 우리를 쓰시기 위해서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고, 겸손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정결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신 목적이 거기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받은 은혜가 너무 많고, 깊은 계시를 받고, 죽은 지 14년 된 사람도 만나는 아주 특별한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자신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사탄의 사자, 육체의 가시를 자신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고후 12:7). 그래서 하나님께서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하게 하시니까, 그것이 없어지기를 세 번 구했더니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고후 12:9).
우리가 겸손하게 될 수 있다면, 어떠한 고난을 받아도 그 고난은 복이 될 줄 믿습니다. 그 고난 자체가 축복입니다. 교만해지면 버림 받고 망합니다. 차라리 고통을 당하더라도 겸손해진다면 그것이 축복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할 때 핍박을 당하고, 40에 하나 감한 매를 몇 번이나 받고, 헐벗고, 굶주렸던 고난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만일 사도 바울 같은 하나님의 종에게 고난이 없고 건강했다면, 전 세계를 휩쓸고 다니며 복음을 전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고난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고난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과 같이 위대한 종에게 왜 고난을 허락하셨을까요?
항상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언제 순교할지 모르니까 세상에 대한 아무런 욕심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저 빨리 천국에 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도, 아무런 욕심도 없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정결했을까요.
그 뿐만 아니라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기적입니다. 언제 죽을지 몰랐기 때문에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도 바울을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데, 신약성경 중에서 13권이 사도 바울이 쓴 서신입니다. 이 복음이 전해지므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그를 정결하게 하고, 그를 겸손하게 만드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게 쓰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요셉과 같이 귀한 사람이 왜 그렇게 고난을 받았습니까?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갈 때 쇠사슬에 묶여서 끌려갔습니다. 보디발의 집에 들어갔다가 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 고통을 당하고 언제 죽을지 몰랐습니다. 13년 동안 고난을 당했습니다.
시편 105편 17~23절에 보면, 요셉의 고난에 대해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였도다 그를 그의 집의 주관자로 삼아 그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게 하고 그의 뜻대로 모든 신하를 다스리며 그의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 이에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감이여 야곱이 함의 땅에 나그네가 되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자 하는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 고난 가운데 요셉이 얼마나 많이 기도했겠습니까.
그래서 아무도 없을 때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해도 단호하게 물리칠 수 있는 경건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정결하게 하신 것입니다. 거룩한 자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밑바닥, 즉 노예 생활을 통해 겸손해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셔서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살아남게 하고, 자기의 동족을 잘 먹여서 처음에는 몇 명 되지 않았지만, 후에는 대민족으로 커졌습니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일에 쓰시기 위해 그를 정결하게 하시고,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서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저도 자랄 때 가난 속에서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나니 그 고난을 주신 하나님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 고난 때문에 하루에 세 번씩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철야기도하고, 산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고난 가운데서 살다보니 저도 모르게 기가 죽었습니다. 그 고난이 아니었다면 제가 얼마나 교만한 인간이 되었을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죽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부르짖게 되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다 보니 은혜를 받고, 회개해서 정결해지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다 보니까 나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제게 주셨던 그 고난을 몇 배로 더 주셨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고난을 주시는 목적은 다른 데 있습니다.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 겸손해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종이 되게 하기 위해 고난을 주십니다.
지금 고난 받는 분이 있습니까?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입니까? 그래도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특별히 만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손을 대고 계시는 것입니다. 손대시는 목적은 정결하게 하고,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정결하고 겸손해야 하나님이 쓰시고 영광 받으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교만의 껍데기가 좀처럼 벗겨지지 않습니다. 교만하면서도 교만한 것을 모릅니다. 남을 판단하고, 남의 허물을 보고 말하는 것이 교만인 줄도 모릅니다.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것이 다 옳은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타인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교만한 것인지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언제나 타인의 허물이 보이면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고, 더 저주를 받을 인간이고, 죄인 중에 괴수다.’라고 생각하며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함부로 남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문제는 자신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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