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를 드림보다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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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31 17:22 조회5,630회 댓글0건본문
황소를 드림보다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감사
황소를 드림보다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감사
2006년 07월 02일(주일예배)
본문 / 시편 69:30~31
데살로니가전서 5장 15~1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감사하며 살라고 명하시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축복이 되고, 행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지킬 수 있고,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명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지킬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지키라고 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고, 행하려는 마음만 가진다면, 그대로 행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리할 때 기쁨이 있고,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아예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순종하려 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한두 번 순종해보다가 옛날로 다시 돌아갑니다. 자연히 많은 시련과 연단을 겪게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가리지 말고 무조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더구나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크리소스톰은 항상 복음을 전하면서 감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로마 황제는 기독교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법을 만들어 공포했습니다. 그리하여 크리소스톰은 이 법을 어겼다는 죄명으로 체포당하여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하나님, 감옥에 갇힌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이곳에 파송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사형언도를 받고서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순교라고 하였는데, 저 같은 사람을 순교의 반열에 동참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사형을 집행하려는 순간, 갑자기 사형을 중지하라는 명령이 내렸습니다. 크리소스톰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종이 할 일이 아직도 더 남아있군요. 죽도록 충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해군 장교인 가와기미 기이치 씨가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불평 불만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자 이상하게도 그의 몸이 굳어져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후치다 씨는 그에게 “하루에 1만 번씩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세요. 감사의 마음이 당신의 병을 치료해 줄 것입니다.”라고 처방했습니다. 그는 의사의 지시대로 병석에서 하루 종일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어느 날 그 아들이 감 두 개를 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때 그는 “감사합니다”라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불평과 불만. 원망과 저주는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특효약입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갑니다.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항상 감사가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본문 시편 69편 30~31절에 보면,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값 비싼 황소를 감사의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값비싼 제물을 드리느냐보다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느냐가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즉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색한 마음으로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감사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도의 왕이 궁전에서 나가다가 거지를 만났습니다. 거지는 습관대로 무엇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왕은 거지에게 “네가 나에게 무엇이든 주면, 나도 네게 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한참 생각한 끝에 거지는 옆집에 가서 강냉이 한 홉을 얻어왔습니다. 그리고 동냥 주머니에서 강냉이 다섯 알을 꺼내 왕에게 내밀었습니다. 왕은 하인에게 강냉이 알만한 금덩이 다섯 개를 꺼내 그에게 주라고 명했습니다. 그 거지는 감사하다며 받았지만, 내심 ‘강냉이를 몽땅 드렸다면 더 많이 받았을 텐데’라고 후회하며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에 보면,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셔서 잘 되게 해주시면 감사하고, 어려움을 당하면 원망 불평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조건부로 감사해서는 안 됩니다.
한 마을을 정하여 동네 사람들에게 매일 100달러씩을 주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첫날, 마을 사람들은 몹시 의아해하면서도 멈칫하며 그 돈을 받아갔습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아예 현관 앞에 나와서 돈 주는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넷째 주가 되자 돈 받는 일이 당연시되었습니다.
드디어 실험기간이 끝나고 돈을 나누어주던 사람은 다른 날과는 달리 그냥 길을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우리 돈은 어디 있는 거요? 왜 오늘은 100달러를 안 주는 겁니까?”라고 소리쳤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비와 햇빛과 공기를 무상으로 주는 데도 감사하지 않다가 비가 조금만 오지 않거나 더 많이 오면 “하나님도 무심하시지”라며 하나님을 원망 불평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감사를 잊고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감사는
첫째, 무엇을 받아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의 총장을 지냈던 워터폰 목사님이 목회하던 때의 일입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장로님이 “목사님,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교회를 오는 길에 마차가 낭떠러지로 굴러 마차가 박살났는데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서 이렇게 다치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던 목사님은 “저는 장로님보다 더 갑절이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장로님은 놀란 표정으로 “무슨 큰 사고 중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으셨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아뇨, 저는 비탈길을 1년이면 수백 번씩 마차를 타고 다녔는데도 사고 한 번 나지 않고 그 길을 무사히 다녔으니 장로님보다 더 갑절로 감사해야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것만을 기적으로 알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사고 없이 지켜주신 것은 더욱 감사한 일이 아닙니까.
둘째, 아무리 많은 것을 잃었어도 아직 남아있는 것을 보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독일 역사에 마티 바덴이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유주의적 사상이 있다고 해서 극보수파에서 밀려나 젊은 시절에 고생을 많이 한 정치가입니다.
하루는 한 지방에 여행 갔다가 돈이 없어 값싼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깨어보니 구두가 없어졌습니다. 그는 화가 잔뜩 나서 ‘어떤 놈이 내 신발을 훔쳐 갔지.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나같이 가난한 사람의 신발을 훔쳐 가게 하시다니….’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마침 이 날이 주일이라 그는 헌 신발을 빌려 준 친구를 따라 마지못해 교회에 끌려가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교회 의자에 앉아 예배드리는 사람 가운데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기쁜 얼굴로 찬송을 부르더니,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마티 바덴은 마음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저 사람은 두 다리를 잃어버렸으니 신이 있어도 신을 수 없네. 잃어버린 신발이야 또 사서 신으면 되지만, 난 남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으니….”하고 후회했습니다.
그로부터 마티의 인생은 달라졌습니다. 항상 감사할 것을 찾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국민의 존경을 받는 재무장관이 되어 국가에 크게 봉사하는 정치가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교회의 십일조 간증집 가운데 현재 미국에서 제일 많은 십일조를 하는 ‘A. A. 하아디’라는 억만장자의 간증이 실려 있습니다.
그는 평탄하고 잘 먹고 잘 살 때에는 감사라든가 십일조 같은 것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처절하게 실패하고, 수천만 달러의 부채를 지고서 교회에 나와 울고 있을 때, 목사님이 무조건 감사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는 한참 동안 감사할 조건을 생각하다가 도무지 감사할 것이 없어서 감사하다는 말만 그저 반복적으로 고백하며 기도했습니다. 바로 그때 성령의 감동으로 감사와 함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가정과 사업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실패 중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건강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실패 중에서도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자식들이 비뚤어지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한 시간쯤 감사하고 일어서면서 십일조를 작정했습니다.
기업의 경영원칙을 보면, 우선 부채를 갚고 나서 자선 사업을 하고, 십일조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입니다. 그러나 그는 빚더미 속에서 십일조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때 직원들이 입을 모아 “이것은 윤리원칙에도 어긋납니다.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 부채 상환을 우선적으로 해야지 십일조를 우선적으로 하는 것은 위선입니다.”라고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지금 윤리적 원리보다 영적원리가 더 중요하며, 나는 부채상환보다 도덕적 신앙적 상환이 더 중요하다네.”라고 말했습니다. 직원들이 놀라며 “무슨 말씀입니까? 사장님이 어디서 도적질을 했습니까?”라고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그때 하아디는 성경의 말라기서를 펴놓고 “나는 하나님의 십일조를 훔친 도적놈이었소.”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하아디는 어떤 형편에 있든지 철저한 십일조를 하나님 앞에 드리고 감사생활을 하면서 빚을 갚았습니다. 현재 그는 미국에서 십일조를 가장 많이 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셋째, 우리가 병들거나 죽게 된다고 해도 예수 믿어 구원 받게 된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북경에 어느 나병환자 노인이 선교사에게 “저는 제가 나병환자가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교사들이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자, 그는 “이 병 때문에 병원에 오게 되었고, 이곳에서 선교사님을 만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게 되었으니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머지않아 천국에 가는 날 깨끗한 몸으로 변화되어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닥터 밥 존슨은 “믿음의 동산에 피는 꽃 중에 가장 사랑스러운 꽃은 감사의 꽃이다. 마음의 동산에 감사가 사라질 때, 그 사람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했습니다.
아이작 윌튼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두 곳 있는데, 하나는 천국이요, 다른 하나는 감사하는 마음이다.”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성령이 역사하지만, 원망불평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악령이 역사합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감사만 하며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감사생활을 통해서 기적을 체험하고 축복을 받으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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