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찬양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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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7 21:36 조회3,532회 댓글0건본문
감사와 찬양의 생활
감사와 찬양의 생활
2010년 11월 21일(주일예배)
본문 / 시편 69:30~31
본문 시편 69편은 다윗이 쓴 시입니다. 다윗은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많은 고난을 겪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함께하심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시가 시편 곳곳에 있습니다.
다윗이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감사할 이유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 생사화복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니 죽을 고비를 당해도 죽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역대상 29장 11~14절에 보면, 다윗은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과 온 백성들이 정성껏 드릴 힘이 있었던 것은 드릴 수 있는 믿음과 물질도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예물과 찬양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다윗은 항상 이렇게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 13:22)라고 하시며, 그에게 큰 축복을 내려 주셨고, 다윗을 귀하게 써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다윗의 신앙을 본받아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고, 다윗이 받은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할 이유는
첫째, 감사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좋은 일뿐만 아니라 어려운 일에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두 책임지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운 일 앞에서도 무조건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둘째, 우리가 감사하면서 살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아마 배고프고, 매 맞은 자리도 아프고,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세상에서 복을 받고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하는데, 오히려 매 맞고 감옥에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는데도 그들이 감사하고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감동받으시고 그 밤에 지진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옥문이 열리게 하시고, 간수장과 그의 온 식구가 믿음을 얻고 세례를 받아서 빌립보교회를 세우는 기둥이 되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도 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하신 것에 감사하고, 찬양할 때도, 기도할 때도, 헌금할 때도 감사하면서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우리가 봉사해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한다면, 하나님께서 감동받으실 줄 믿습니다.
셋째,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에게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매우 감사해하고,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감사하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예뻐 보이는지 더 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전심으로 감사할 때, 기뻐하시고 복에 복을 더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면서 살면 ‘건강’에도 좋습니다. 칼 힐티는 “감사는 사람을 젊게 한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감사하는 마음, 흡족해하는 마음을 가지면 엔도르핀보다 4천 배나 더 강한 다이돌핀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다이돌핀은 암도 낫게 한다고 합니다. 날마다 감사해서 삶이 천국이 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자에게는 ‘성공’의 복이 열립니다. 미국의 파월 콜린은 뉴욕 빈민가 출신의 흑인이었지만, 1991년 걸프 전쟁의 영웅이며, 다국적군 총사령관으로,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17세 되던 해에 여름방학에 음료수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백인 학생에게는 기계 앞에서 콜라를 담은 일을 주고, 흑인인 그에게는 걸레질이 맡겨졌습니다. 그래도 그는 불평하지 않고, 최고의 청소부가 되기로 마음먹고, 열심히 걸레질을 했다고 합니다. 방학이 끝나자 감독관이 파월에게 일을 참 잘한다고 칭찬하자, 파월은 오히려 “저에게 일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해의 방학 때에 또 일하러 갔는데, 이제는 콜라를 담는 일을 하게 되었고, 그 다음 해에는 부감독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뉴욕 빈민가 출신의 흑인소년이 오늘날의 빛나는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며 최선을 다한 삶의 태도에 있었습니다.
감사하면서 살면 ‘행복’이 옵니다. 부부 사이에도 항상 “여보, 고마워요. 나와 살아줘서 고마워요.”라며 서로 고맙게 여기고, 아껴주고,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감사하면서 고맙게 여기면 이런 가정은 저절로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넷째, 우리는 예수 믿어 구원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얻은 사람이기 때문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비록 신앙을 지키다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거나, 순교하더라도 천국에 가서 누릴 영광을 생각할 때, 우리는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믿음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믿음으로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자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그 유업을 이을 자입니다.
문제는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보다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건망증이 매우 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인도하신다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증거입니다. 전지전능한 분이 임재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눈으로 보면, 얼마나 흥분되고, 감사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굽 군사들이 쫓아오자 그들은 홍해 앞에서 모세에게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라고 말하며 원망 불평했습니다(출 14:11~12).
열 가지 재앙을 내릴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별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상하지 않고, 죽지 않게 하셨는데 그들은 그것도 새까맣게 잊고, 그 상황만 보고 원망 불평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를 갈라서 육지같이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라며 하나님께 찬양하며 감사하고 기뻐했습니다(출 15:1~2).
그런데 막상 광야 길을 가다 보니, 물이 없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되어도 물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마라라는 곳에 다다랐을 때, 물이 있었습니다. 사흘 만에 물을 만났으니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런데 이 물은 써서 먹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모세에게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신 하나님을 또 잊어버렸습니다. 건망증이 심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참으시고, 쓴 물을 단물로 변하게 하셔서 그들이 물을 먹게 하시고,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15:26).
이들은 이렇게 은혜와 하나님을 잊고, 원망 불평하는 것을 40년간 계속 반복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전지전능하심을 보고 체험해도,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원망 불평 했습니다. 그러다가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대한 믿음,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전부 책임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불 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도, 큰 표적과 기사를 보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신다는 것을 믿지 않았고, 마치 절망에 빠진 사람처럼 원망 불평했습니다. 믿음이 없으니 쉽게 절망에 빠지고 원망불평하다가 결국 멸망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들과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면서 삽니다. 어려운 역경이 와도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실 뿐 아니라,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실 줄 믿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감사하면서 살다 보면, 원망 불평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날마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했더라면, 40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건망증이 심해서 과거의 축복에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감사의 절기를 만드시고 그들에게 반드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신명기 16장 3절에 보면, “유교병을 그것과 함께 먹지 말고 이레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함께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네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것을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셨음을 항상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명기 16장 9~12절에 보면,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역대하 32장 24~26절에 보면 사람이 교만해지면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죽을병에 걸렸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15년을 더 살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은 것은 그의 교만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교만해진 증거는 감사할 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교만해지면 자기 힘으로 사는 줄 알고,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고, 감사하는 데 인색합니다.
또한, 교만해진 증거는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기도생활을 게을리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결정하고 처리합니다.
히스기야는 바벨론 왕이 보낸 사절단을 맞았을 때, 기도하지 않고 있다가 그들에게 침략을 당해서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교만해지면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불행해집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원망불평을 많이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있고, 받을 축복을 잃어버리므로 불행해집니다.
욥은 큰 시험이 끝난 후에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욥이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가장 후회한 것이 있다면, 고난 당할 때, 감사 찬양만 하면서 살지 못했던 것일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가장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날마다 감사 찬양하면서 살지 못한 것일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살지 못한 것이 후회되지만, 이제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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