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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23장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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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03-24 11:27 조회2,4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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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하시는 하나님

2021년 08월 08일(주일예배)
본문 / 시편 23:1~4

본문 시편 23편에는 표제가 ‘다윗의 시’라고 붙어있습니다. 시편 중 다윗이 기록한 시가 많이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을 목자에, 우리를 양에 비유했습니다. 양은 어리석고 미련한 동물입니다.
양은 목자를 떠나면 살 수 없습니다. 양이 목자를 떠나면 길을 잃습니다. 그리고 이리의 먹이가 됩니다. 그러므로 양은 목자의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양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안위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를 항상 받아야 합니다.

양이 풀만 보고 가다 보면, 낭떠러지에 이를 때가 있습니다. 이때 목자는 지팡이를 양의 목에 걸어 잡아당겨 양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합니다. 양이 다른 곳으로 도망갈 때, 목자는 막대기로 양을 때립니다.
양을 지키는 목자가 지팡이와 막대기로 양을 보호하고 인도하듯, 하나님께서는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본문 시편 23편 1~4절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시므로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의미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울이 죽는 날까지 다윗은 마음 편히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닌다고 표현했습니다.
고통의 시간이 오래되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다윗은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마음의 고통으로 인해 다윗은 불안했습니다.
고통의 시간에 다윗은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무엘하 11장에 보면, 이스라엘과 암몬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군대는 전쟁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왕궁에서 잠을 잤습니다. 저녁에 다윗이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여인이 누구인가 알아보게 하여 그 여인이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우리아 장군은 전쟁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밧세바를 왕궁으로 데려와 동침했습니다. 밧세바는 임신했습니다. 다윗은 우리아 장군을 집으로 오게 하여 밧세바와 동침하게 하려고 했으나, 우리아 장군은 집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우리아 장군은 다윗에게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삼하 11:11)”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냈습니다. 다윗이 요압에게 쓴 편지에는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삼하 11:15)”고 기록되어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아 장군은 전쟁터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원래 다윗은 은혜 받은 사람이요,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다윗은 악한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후에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와서 다윗을 책망하기 전까지 다윗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공격을 계속 받았습니다. 다윗은 간음하고 살인했습니다. 이 둘 중 무엇이 더 위험합니까? 사울의 공격을 받는 것보다 영적으로 타락하여 간음하고 살인한 것이 더 위험합니다.
다윗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셔서 다윗을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회개하게 하심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다윗을 건져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를 항상 평안하고 형통하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환난과 시험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를 연단하실 때가 있습니다. 환난과 시험을 겪는 것이 우리에게는 고난입니다. 괴롭습니다. 힘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고난을 주십니까?
첫째,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우리의 뜻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뜻대로 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 하나님의 뜻을 똑바로 알기 위해 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전심으로 기도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사람을 가만히 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사람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여호사밧 왕은 훌륭한 왕입니다. 그는 다윗의 길로 행했습니다. 그는 다윗처럼 살려고 했습니다.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역대하 17장 1~4절에 보면,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어 스스로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어하되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또 유다 땅과 그의 아버지 아사가 정복한 에브라임 성읍들에 영문을 두었더라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역대하 18장 1절에 보면,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합은 바알을 철저히 섬겼습니다. 선지자들을 죽이는 등 나쁜 짓을 많이 했습니다. 참으로 고약한 사람입니다. 그런 아합 가문과 혼인하는 것은 제정신이 아닌 행동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행동입니다.

그 후,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역대하 18장 2절에 보면, “이 년 후에 그가 사마리아의 아합에게 내려갔더니 아합이 그와 시종을 위하여 양과 소를 많이 잡고 함께 가서 길르앗 라못 치기를 권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때 거짓 선지자들은 승리할 것이라고 거짓 예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미가야 선지자는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역대하 18장 28~34절에 보면,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 왕이 변장하고 둘이 전쟁터로 들어가니라 아람 왕이 그의 병거 지휘관들에게 이미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나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하고만 싸우라 한지라 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아서서 그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가게 하신지라 병거의 지휘관들이 그가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보고 추격을 그치고 돌아갔더라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왕이 그의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나를 진중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이 날의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이스라엘 왕이 병거에서 겨우 지탱하며 저녁 때까지 아람 사람을 막다가 해가 질 즈음에 죽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역대하 19장 1~2절에 보면, “유다 왕 여호사밧이 평안히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그의 궁으로 들어가니라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선견자 예후는 여호사밧 왕을 무섭게 책망했습니다.

역대하 20장 1~4절에 보면,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어떤 사람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전하여 이르되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하니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압과 암몬, 마온의 연합군이 유다를 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사니 문제가 계속 발생했습니다.
두려워한다는 것은 믿음이 병든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면 두렵습니다.

대군이 쳐들어왔습니다.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은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도 기도하게 했습니다.
역대하 20장 21~26절에 보면,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들뿐이요 한 사람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탈취할새 본즉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으므로 각기 탈취하는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거두어들이고 넷째 날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사밧이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음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아합과 이세벨이 낳은 딸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후손들이 자식들을 믿음으로 키웠겠습니까.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역대하 21장 1~6절에 보면, “여호사밧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아우들 아사랴와 여히엘과 스가랴와 아사랴와 미가엘과 스바댜는 다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들이라 그의 아버지가 그들에게는 은금과 보물과 유다 견고한 성읍들을 선물로 후히 주었고 여호람은 장자이므로 왕위를 주었더니 여호람이 그의 아버지의 왕국을 다스리게 되어 세력을 얻은 후에 그의 모든 아우들과 이스라엘 방백들 중 몇 사람을 칼로 죽였더라 여호람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삼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는데, 여호사밧은 자기 생각대로, 자기 뜻에 따라 결정했습니다. 자손이 타락했습니다. 그리고 나라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지 마세요.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믿음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온전하려면, 믿음이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계속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평안하고 만사가 잘 될 때에는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현상 유지하기도 힘듭니다. 환난이 오고, 시험이 오고, 고난이 오고,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고 매달리다 보면, 은혜를 받습니다. 믿음이 생깁니다.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본문 시편 23편은 고난을 경험한 다윗이 쓴 시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기는 위기 속에서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쓴 시편 23편은 우리에게 은혜가 됩니다.

6ㆍ25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가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먹고살기 어려웠습니다. 예배가 끝나도, 성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당시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교회 갔다가 어른들이 기도하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믿으면 이렇게 기도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IMF 금융 위기였을 때, 우리 교회는 지금의 교회 건물을 지었습니다. 돈을 걱정하지 않고, 오직 기도했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을 키우기 위해 대대적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헌금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돈이 남았습니다. 기도하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고난이 왔을 때에 기도하면, 고난은 복을 가져옵니다. 고난으로 인해 믿음이 좋아집니다. 복을 받습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보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이 복이 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고난으로 인해 말씀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고난으로 인해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보면, 욥은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고백했습니다.
고난은 용광로와 같습니다. 용광로는 뜨겁습니다. 그러나 용광로 속에서 찌꺼기가 없어집니다. 순금이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난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온전해집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고보서를 기록한 야고보 사도는 시험을 당할 때에 온전히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시련을 가리켜 ‘믿음의 시련’이라고 했습니다. 시련이 믿음을 키워줍니다. 그러므로 고난으로 인해 우리가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저는 중학생이었을 때부터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고난 겪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자라면서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저는 기도하다가 많은 것을 체험했습니다.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살아가는 동안 제게 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고난이 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는 사람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2. 무슨 일이 있어도 감사해야 합니다. 전화위복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으로 인해 많은 유익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감사해야 합니다.
3. 입 다물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말하면 안 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말하면 믿음이 약해집니다.

셋째, 영적으로 잠들었거나 믿음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와서 북쪽을 완전히 점령했습니다. 남쪽은 예루살렘 성만 남았습니다. 예루살렘만 점령하면 이스라엘은 완전히 없어집니다. 위기입니다.
이때 히스기야 왕은 성전에서 밤새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집중해서 기도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이기 때문입니다. 졸 수도 없었습니다.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18만 5천 명을 쳤습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어있었습니다.

열왕기하 20장에 보면,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때 히스기야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왕하 20:3)”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히스기야에게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왕하 20:5~6)”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라가 부강해지고 걱정거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생명을 15년 연장해주셨으니 히스기야는 15년 동안은 죽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생명을 연장 받은 후로는 히스기야가 기도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히스기야의 믿음이 병들기 시작했습니다.

죽을병에 걸렸다가 살았고 하나님께서 앗수르 군사를 멸해주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합니다.
역대하 32장 24~26절에 보면,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는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히스기야는 교만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일이 잘 되면, 마치 자신이 잘 나서 일이 잘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자랑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습니다. 히스기야가 그렇게 했습니다.
이사야 39장 1~2절에 보면,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히스기야에게 글과 예물을 보낸지라 히스기야가 사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그들에게 보물 창고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 주었으니 히스기야가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는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역대하 32장 31절에 보면,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떠나셨습니다. 이것이 저주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에게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사 39:5~7)”라고 예언했습니다.
복 받았을 때에 제대로 기도하지 않다가 믿음이 없어지니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은혜에 보답할 줄 몰랐습니다. 오히려 교만해졌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하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생명을 왜 연장해주셨습니까? 자신을 위해 살라고 연장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연장해주신 15년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기도할 줄 몰랐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여자와 살았습니다. 아들 므낫세를 낳았습니다.

므낫세는 왕이 된 후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고 바알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여신상을 만들고 해와 달과 별들을 숭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연장해주신 15년 동안 히스기야가 자신만을 위해 살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히스기야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기도해서 응답 받았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면 이 병을 고쳐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는다면 지금 데려가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무조건 살려달라고 기도했지,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해야 응답 받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을 감동시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3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섯째, 말세에 우리가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환난과 시험은 커집니다. 지진, 화산, 폭우, 우박, 산불 등으로 전 세계가 난리를 겪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21장 34~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13장 11~14절에 보면,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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