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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8장

경건의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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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17 21:55 조회3,2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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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의 울타리

 

경건의 울타리

2006년 10월 20일(금요철야)

본문 / 시편 18:1~6

 

시편 18편은 다윗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하나님을 찬양한 시입니다. 본문 시편 18편 1~3절에 보면,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습니까? 우리의 죽고 사는 것, 흥하고 망하는 것, 이기고 지는 것, 성공과 실패, 부유해지고 가난해지는 것,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29)”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은 위기를 당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구원해주셨습니다.

본문 시편 18편 3절에 보면,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찬송 받으실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본문 시편 18편 2절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시편 18편 4~6절에 보면,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위기 때마다 구원해주셨음을 찬양했습니다. 위기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는 것을 경험할수록 믿음은 더욱 강해지고 확신이 생깁니다.

 

사울이 악했기 때문에 다윗에게 위기가 있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울을 미워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다윗에게 고난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요셉은 형제로부터 미움을 받고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도 갔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요셉과 함께해주셨습니다.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다시 만난 형제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 45:7~8)”라고 말했습니다.

형제들이 자기를 노예로 팔았지만,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는 것을 믿은 요셉은 세상 사람의 눈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보고 판단하고 말했습니다. 절대주권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사울과 수천 명의 군사가 다윗을 죽이지 못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안 됩니다. 요셉을 노예로 팔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1요셉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난 가운데서도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사랑이 많으십니다. 언제나 동일하시고 신실하시고 완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애굽으로 보내신다면 나를 통해 영광 받으시려는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과 같은 믿음을 가지면, 모든 고민이 사라집니다.

 

성경에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기도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죽음의 문턱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사자 굴에 가기 전에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크게 쓰실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죽음의 위기를 당했습니다. 다니엘의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느부갓네살 왕이 만들어놓은 우상 앞에 절하지 않는다고 풀무 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에스더 3장 13~14절에 보면,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맡겨 왕의 각 지방에 보내니 열두째 달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이 명령을 각 지방에 전하기 위하여 조서의 초본을 모든 민족에게 선포하여 그 날을 위하여 준비하게 하라 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각오로 사흘간 금식기도했습니다. 이로 인해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에스더 8장 12~13절에 보면,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에서 아달월 곧 십이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하게 하였고 이 조서 초본을 각 지방에 전하고 각 민족에게 반포하고 유다인들에게 준비하였다가 그 날에 대적에게 원수를 갚게 한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스더 9장 15절에 보면, “아달월 십사일에도 수산에 있는 유다인이 모여 또 삼백 명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스더 9장 21절에 보면, “한 규례를 세워 해마다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을 지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날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큰 축복의 날이 되었습니다.

에스더 9장 22절에 보면,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죽음의 위기가 역전되어 오히려 축복과 승리의 날이 되고, 모든 고민이 사라지는 것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절대 주권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런 고난과 위기를 당하게 하실까요? 은혜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잘되고 평안하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오히려 욕심에 눈이 어두워 우상을 찾습니다. 그러나 돌부처에 기도하는 것은 미련한 짓입니다. 점쟁이와 무당을 찾아가는 것은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권사님은 참 훌륭한 분이신데, 남편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아내를 핍박했습니다. 권사님이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고 엎드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이후에 남편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돌덩이가 깨어진 것 같았습니다. 봉사를 많이 하고, 재물을 아낌없이 드리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에게는 죽음의 위기가 아주 큰 축복이었습니다.

 

죽음의 위기에 처하면, 결사적으로 하나님을 부르짖습니다. 평소에는 하지 못하던 기도를 결사적으로 부르짖다보면 반드시 은혜 받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고난이 작아서 제대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결사적으로, 전심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혜가 임하면 깨닫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사람이 변합니다. 그뿐 아니라 능력을 받아 큰 일꾼이 됩니다.

 

시편 3편 3~8절에 보면,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23편 4절에 보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죽음의 위기에서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시편 27편 1~3절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울 왕이 수천 명을 데리고 와도, 다윗은 두렵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체험의 사람이 되면 간증거리가 많아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게 됩니다.

 

문제는 응답이 되지 않고 고난이 길어질 때입니다. 성경을 보면, 응답받아 축복받은 사람들의 간증을 보는데, 나에게는 고난이 길 때가 문제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고난은 한순간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왕이었던 40년 동안 위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고 은혜 받아 기쁘고 좋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더 가난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 믿음이 얼마나 작기에 저를 이렇게 물질로 시험하십니까.”라고 기도했습니다.

상급학교에 진학할수록 더욱 가난해졌고, 대학교에 갔을 때에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는 하나님께서 조금씩 풀어주셨습니다. 점점 여유롭게 하셨습니다.

 

저는 고생했던 시절을 기억하기 싫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고난의 때에 목숨 걸고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기도하다보니 은혜를 받았고, 믿음의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고난이 제게 경건의 울타리가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제게 그런 고난이 없었더라면, 저는 열심히 기도 생활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은혜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난들이 저로 하여금 경건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지켜주었습니다.

 

대학교 졸업식이 끝난 후, 교회에 가서 무릎 꿇고 “하나님, 저는 이게 뭡니까?”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묶어놓지 않았다면, 네가 목사가 될 수 있겠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한눈팔지 못하도록 저를 경건의 틀 안에 묶어놓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밤낮 가정교사 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어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4년 동안 대학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하루에 다섯 시간도 잘 수 없었습니다. 튼튼했던 몸도 나빠졌습니다.

육신이 너무 건강하면, 경건한 생활에 오히려 적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강한 육체를 부드럽게 만드셨습니다.

 

고난의 때는 기도의 때요, 경건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때입니다. 고난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은 그것 때문에 경건의 울타리 안에서 살 수 있습니다. 이 비밀을 깨달아야 합니다.

고난 가운데에서 기도하고 은혜 받습니다. 고난이 얼마나 유익한가를 체험한 사람은 시편 기자처럼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19편 67절에 보면,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보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남쪽을 군사적으로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불안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철야기도, 금식기도 등으로 무장했습니다. 이것이 남한의 교회가 부흥한 원동력입니다. 그러므로 김일성 부자에게 고마운 점도 있습니다. 그들로 인하여 기도를 많이 하고 은혜를 받아 교회가 부흥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있을 때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고난이 경건의 울타리가 됩니다. 핵까지 만든 북한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면, 전화위복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를 아주 많이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아브라함 때는 열 사람의 의인의 기도로 하나님께서 성을 멸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수천 명의 기도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로 인해 부산의 귀신들이 벌벌 떱니다. 부산에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당과 점쟁이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스님들도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로 말미암아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역사하십니다. 기도하는 민족은 망하지 않습니다. 기도의 사람과 가정은 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가까워오면, 이 세상에 큰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6~8)”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난이 일어난다 해도,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우리를 손댈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환난과 재난을 허락하신다면, 그것으로 인해 더욱 뜨겁게 기도하면 됩니다. 그러면 환난과 재난이 경건의 울타리가 되고,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에 보면, 세례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마태복음 3장 4절에 보면,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왜 광야에서 가난하게 살았을까요? 광야는 믿음의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기도의 처소요, 은혜 받는 처소요, 능력 받는 처소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광야 출신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부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싶으신 분은 광야로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광야에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려는 특별한 계획이 있습니다. 광야는 기도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40년 동안 광야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도하지 않고 원망 불평만 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등은 원망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아 가나안 땅을 정복했습니다.

 

광야를 걷는 분은 원망 불평하지 말고, 사람을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습니다.

절대로 원망 불평하지 말고 깨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부르짖으면, 광야가 경건의 울타리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와 능력을 받을 것입니다. 체험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어 축복을 받아 큰 일꾼이 될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에 집이 너무 어려워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예비해놓으신 복을 놓치지 않고 다 누릴 수 있었습니다. 생각을 잘 해야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기도했는데 응답되지 않아 속상하십니까? 광야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분량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고난에도 끝이 있습니다. 낙심하지 마세요. 절망하지 마세요.

오늘밤이 그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도가 응답되고, 문제가 해결되고, 기적이 일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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