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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23장

거룩과 겸손을 위한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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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6 14:07 조회3,5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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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과 겸손을 위한 고난

 

거룩과 겸손을 위한 고난

2009년 06월 26일(금요철야)

본문 / 욥기 23:10

 

우리가 평소에 지켜야 할 것이 많이 있지만, 특히 우리는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잠언 4장 23절에 보면,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또 잠언 16장 32절에 보면,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때때로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나면, 성질을 부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화난다고 해서 성질을 부리는 사람은 시시한 사람입니다. 그만큼 자기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감당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화가 나도 그것을 잘 참는 사람은 용사보다도 낫다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은 곁길로 가기 쉬울 때가 많습니다. 쓸데없는 생각, 잘못된 생각을 하기 쉬운데,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잘 지켜야 하는데,

첫째, 우리 마음이 항상 거룩하도록 지켜야 합니다.

둘째, 우리 마음이 항상 겸손하도록 지켜야 합니다.

거룩함과 겸손을 지키지 않으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아무리 인물이 잘나고, 학벌이 좋고, 높은 지위에 있고, 좋은 것을 다 가졌다고 할지라도 거룩함을 잃어버리면, 그 사람은 끝난 사람입니다. 거룩함을 잃은 사람은 쓰레기와 같이 썩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는 썩기 시작하면, 땔감 이외에는 쓸 데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거룩함을 잃어버리면, 쓸모없는 인간이 됩니다. 또한 겸손함을 잃어버리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습니다.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으니, 그 사람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거룩함과 겸손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내 생명을 지키듯이 거룩함과 겸손을 지켜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된 우리의 몸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함을 목숨처럼 지켜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하나님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22절에 보면,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릇으로 사용하실 때 어떤 그릇을 귀하게 쓰시는가 하는 말씀입니다. 비록 지식과 능력과 인물이 모자란다 할지라도 자기를 깨끗이 한다면,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사 삼손이 태어날 때부터 그를 아주 특별히 구별하셨습니다. 그는 사사로서 이스라엘 민족을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구원하고, 나귀 턱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때려죽이는 힘을 가진 장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있고, 키가 크고 잘 생겼어도 그가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기생의 무릎을 베고 잠을 자니까 머리를 깎이고 두 눈을 뽑히고 쇠사슬에 묶여 당나귀가 돌리는 맷돌을 돌리며 블레셋 사람들의 장난감으로 쓰임 받다가 그들과 함께 죽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고 해도 거룩함을 잃어버리면 여지없이 망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도들에게는 거룩함과 경건함을 지키는 것이 생명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거룩함을 지킬 수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평소의 생활이 참 중요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은혜 가운데 사는 만큼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은혜를 사모해 야합니다.

어떻게 하면 오늘도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을까, 어떻게 하면 성경을 읽다가 은혜를 받을까, 어떻게 하면 말씀을 묵상하다가 은혜를 받을까를 생각하면서 항상 은혜 받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어떻게 하면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은혜를 받고, 은혜 가운데 살까’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날마다 은혜를 받을 때,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줄 믿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울 왕은 겸손을 지키지 못함으로 망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에 보면, 사울 왕이 처음에는 아주 겸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워주셨는데, 왕이 된 후 아주 교만해져서 하나님 앞에서도 건방지게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사무엘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아주 건방진 사람이 됩니다. 말씀을 저버리고, 순종하지 않고, 제멋대로 사는 것은 교만해진 증거입니다.

 

사무엘상 15장 17~23절에 보면,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것은 아주 교만한 자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어떻게 축복을 받겠습니까? 교만해지니까 교만이 불순종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은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하면 불순종하게 되고, 불순종하게 되니까 모든 저주를 받게 됩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면 모든 복을 다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면 모든 저주를 다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사울이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책망 받으면서도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살 길이 열립니다. 우리가 아무리 말씀을 불순종했고 교만했고 잘못했다고 할지라도 회개하면 용서받고, 회개하면 살 길이 열립니다.

그런데 사울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면 축복받고 살 길이 열립니다.

 

아람 장군 나아만이 나병에 걸려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이 자기 집에서 일하는 이스라엘 소녀를 통해 엘리사라는 선지자에게 가면 그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교만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대접받으려고만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엘리사에게 가면 엘리사가 달려나와서 “장군님, 어서 오소서.”하고 굽실거리며 어떻게 오셨나고 물을 텐데, “내 병을 고쳐다오.”라고 말하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며 고쳐줄 것이다.’라고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밖에 나오지 않고 종을 시켜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라 한다고 전달하니까 화가 나서 성질을 냅니다. 이것이 교만의 증거입니다.

나아만은 병을 고침을 받으러 오면서도 겸손하지 못하고 성질을 냅니다. 그러면서 “돌아가자. 우리나라의 강물이 요단강물보다 못하냐?”라고 말합니다. 겉에는 번쩍번쩍한 옷을 입고 있지만, 온몸에 나병이 있는데,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으라고 하니 망신을 당할 것 같았나봅니다.

그런데 신하 중에 하나가 “병만 낫는다고 하면 그보다 더한 일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신하입니까. 가만히 들어보니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순종해서 일곱 번 목욕하고 나오니까 어린 아이의 깨끗한 살결같이 나병이 다 나았습니다.

불순종하던 사람이라도, 교만하던 사람이라도 뉘우치고 순종하면 이렇게 축복이 임합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만함으로 말미암아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저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라도 말씀을 듣고 깨닫는 순간에 뉘우치고 회개하면 살 길이 열립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축복이 임합니다.

 

에스겔 18장 21~23절에 보면,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무리 멸망할 수밖에 없는 악독한 인간이라 해도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기만 하면 살려주시겠다고 했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고, 못된 짓을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 선지자가 가서 회개하라고 하며 회개하지 않으면 40일 안에 망할 것이라고 외칠 때에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온 백성이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지 않으시고, 다 살려주셨습니다.

사울 왕도 회개만 했더라면, 살 길이 열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버림 받고, 결국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거룩함과 겸손을 지키지 아니하면, 결국 멸망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셔서 거룩함과 겸손을 지키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을 거룩하고 겸손한 자로 만들기 위해 주시는 고난은 축복입니다. 거룩함과 겸손을 지킬 수 있는 믿음을 가지게 될 때까지 고난을 주셔서 연단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래서 욥기 23장 10절에 보면, 욥은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거룩하고 겸손한 자, 순금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고난을 주시고 단련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을 가리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행 13:22).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꼭 맞는 사람입니다. 다윗의 마음가짐이 하나님의 마음에 꼭 맞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각과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열왕기상 15장 4~5절에 보면,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라고 다윗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런 사람이 된 것은 몇 년 사이에 쉽게 저절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이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수십 년 동안 고난을 통해 단련하셨습니다.

특히 다윗은 사울 왕으로부터 불 같은 시험을 당했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얼마나 끈질기게 쫓아다니면서 죽이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고난을 당할 때, 다윗은 참으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부르짖으며 기도하다보니 다윗은 은혜를 받게 되었고, 믿음이 점점 좋아져서 거룩하게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119편 67, 71절에 보면, 다윗은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고난은 괴롭지만, 그 고난을 통해 바르게 살게 되고, 말씀대로 살게 되고, 거룩한 자가 되었다면, 고난은 내게 축복이요, 유익한 것입니다.

 

시편 3편에 보면, 사울 왕과 그 신하들이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쫓아다닐 때, 다윗은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늘 하나님께 부르짖는 가운데 은혜를 받고, 담대한 마음이 생기고, 거룩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시편 19편 7~14절에 보면, 다윗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얼마나 은혜 가운데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의 은혜와 기도생활을 통해 은혜를 받아서 얼마나 거룩하게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마음을 꿰뚫어보시는 하나님이 보실 때, 참으로 기쁘게 받으실 수 있는 말과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고난 중에 거룩하게 살던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계속 전쟁에 승리하고, 나라가 부요해지고 강해졌을 때 큰 죄를 범하게 됩니다.

사무엘하 11장 1절에 보면,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싸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제 다윗은 나가 전쟁하지 않습니다. 자기 군대가 나가서 싸워 계속 이깁니다. 그러니까 나라는 점점 넓어지고, 점점 부요해지고, 점점 강해집니다. 다윗은 그저 보고만 받으면 됩니다. 너무 편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잘되고 부요해지고 평안할 때에 교만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교만해지면 한눈팔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사탄이 우리 안에 역사하여 쓰러지고 넘어지고 못할 짓을 하게 됩니다.

 

2~3절에 보면,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전쟁터에 나아가서 전쟁하고 있는 우리아 장군의 아내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아 장군은 다윗을 위해 목숨을 걸고 충성하는 충신입니다.

그런데 4~5절에 보면,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그 여인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고, 요압 장군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라고 지시합니다.

7~9절에 보면, “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이 어떠했는지를 묻고 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아는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데, “내가 이렇게 전쟁하다가 돌아와서 많은 군사가 피 흘려 싸우면서 죽고 있는 이때에 집에 가서 편안하게 다리 뻗고 잘 수 있느냐”라고 아무리 집에 가서 자라고 해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충성스러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아는 왕궁 문에서 다른 부하들과 함께 잤습니다.

아무리 해도 우리아가 집에 가지 않으니, 다윗은 우리아를 죽여야겠다고 결심하고,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전쟁터에서 맨 앞에 내세워 화살에 맞아 죽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아 장군이 죽은 다음에는 밧세바를 데리고 들어와서 자기 아내로 삼습니다. 참 큰 죄를 범했습니다. 신하의 아내를 빼앗은 것도 죄요, 그 남편을 죽인 것도 얼마나 큰 죄입니까.

 

사무엘하 12장 7~12절에 보면.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책망합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그러자 다윗이 나단에게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라고 겸손히 회개합니다(삼하 12:13). 그리고 나단은 다윗에게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삼하 12:13~14).

 

다윗이 오랫동안 고난을 당하면서 단련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한 것을 보면, 그의 마음에 타락의 근성이 남아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성전에 나아와 기도하고, 은혜 받는 것 같고, 거룩한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육신 속에는 타락의 근성이 남아있습니다. 좀처럼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타락의 근성이 언제 폭발할지 모릅니다.

다윗처럼 은혜를 많이 받고 훌륭한 사람이 갑자기 큰 죄를 범한 것을 볼 때, 우리도 항상 조심해야 됩니다. 교만하면 안 됩니다.

 

시편 51편 1~15절에 보면, 다윗은 범죄했을 때,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라고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범죄한 것을 보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때에 얼마나 교만해지기 쉬운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12장 9~10절에 보면, 다윗이 교만해진 증거가 나타납니다. 나단은 다윗에게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 교만해진 증거입니다.

다윗은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는데, 다윗이 망하지 않은 것은 즉시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울 왕과의 차이점입니다.

 

회개하면 살 길이 열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진심으로 회개한 사람에게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12장 16절 이하에 보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가 하나님께서 치시므로 심히 앓았다고 했습니다. 몸이 굉장히 아팠던 모양입니다. 다윗은 그 아이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간구하되 금식하고 밤새도록 땅에 엎드려서 기도하는데 일주일 동안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올 때까지 자지도 않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했습니다. 회개하며 그 아이를 살려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다윗의 겸손한 태도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면 정신 차리고 기도하는 것이 바른 태도입니다. 하나님이 몽둥이를 들어도 딴청만 피우며 기도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또 사무엘하 16장 5절 이하에서 사울의 친족 시므이가 저주할 때 다윗의 태도를 보면, 다윗이 얼마나 겸손한지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회개하므로 겸손한 자가 되었는데,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16장 7~12절에 보면,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의 모습을 보십시오. 얼마나 겸손합니까? 얼마나 낮아진 마음입니까? 그러므로 다윗은 진짜 회개한 사람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아름답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겸손한 마음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했다고 할지라도 철저하게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나타나면, 하나님은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축복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세상을 배설물과 같이 버리고 복음을 위해 살았습니다.

사도행전 13장 6~1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총독에게 전도하려고 하니 총독과 함께 있던 마술사 엘루마가 어떻게 해서든 총독에게 전도하지 못하도록 방해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 못된 사람에게 책망했더니 그 말한 대로 갑자기 맹인이 되어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말씀의 능력이 있고, 권세가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4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본 적이 없는 자를 일어나 걷게 했더니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내려오셨다”라고 하면서 제사하려고 했습니다(행 14:8~13).

이런 역사가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사도행전 14장 19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와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울은 돌로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까무러친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사는 하나님의 종에게 이렇게 능력이 나타나면, 핍박하는 자들도 다 거꾸러뜨리면 좋겠는데, 오히려 하나님의 종이 그들로부터 돌에 맞아 까무러치게 됩니다.

이후에도 보면 계속해서 핍박과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훌륭한 하나님의 종인데 좀 권세를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막아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계속 핍박과 고난을 당하게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에 보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도 바울에게 얼마나 고난이 많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위해 살고, 헌신한 사람인데, 왜 이렇게 헐벗고 굶주리고 고생해야 합니까? 목적은 오직 거룩함과 겸손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주를 위해서 산다 해도 그 마음이 항상 거룩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인지라 거룩함이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로마서 7장 18~25절에 보면,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이라 해도 우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와 똑같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잘 믿는다고 합니다만, 때때로 마음에 별별 생각이 다 떠오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악한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라고 해서 신적 존재인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습니다. 약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27절에 보면,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 자신과 항상 싸웠습니다. 자기 속에 육신의 정욕이 솟아나고, 때때로 자기 마음속에서 나쁜 생각이 솟아나니까 그것을 쳐서 복종시키기 위해 자기 자신과 싸움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에게 실컷 전도해놓고, 자기는 버림받는 자가 될까봐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거룩하게 살려고 했지만 거룩함을 잃어버리기가 쉽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고난을 허락하셨습니다. 거룩함과 겸손을 지키게 하기 위해 고난을 허락하셨습니다.

나중에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 들어가 순교할 날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감옥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은혜 가운데 살면서 여러 교회에 편지를 보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큰 은혜를 주셔서 받은 계시가 많았습니다. 이때에 사도바울이 자만하게 될까봐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고 했습니다(고후 12:7).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간질병이 있었다고도 하고, 시력이 좋지 않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몸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 앞에 세 번이나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가 떠나게 하기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고후 12:7).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9~10).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알 때가 곧 겸손할 때입니다. 겸손할 때가 제일 강한 때입니다. 겸손을 지킬 때, 우리가 가장 강한 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과 함께하시고, 이런 사람에게 능력을 주시고, 이런 사람을 크게 들어쓰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도 고난이 있어서 기도하는 분이 계십니까? 우리가 아무리 축복을 받아도 거룩함과 겸손함을 지키는 믿음의 사람이 될 때까지 고난을 당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입니다.

다윗과 같이 위대한 믿음의 사람, 사도 바울과 같은 위대한 사람들에게도 거룩함과 겸손을 지키게 하기 위해 고난을 당하게 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거룩함과 겸손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 고난을 당하게 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고난은 괴롭지만 고난 때문에 깨어 기도하고 고난 때문에 거룩하게 살고, 고난 때문에 겸손하게 살 수 있다면, 그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문제는 고난이 있어도 깨어 기도하지 않고, 거룩하게 살지 않고, 교만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헛되이 고난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과 같이 고난 중에 깨어 기도하는 사람, 고난 중에 회개하고 거룩하게 사는 사람, 고난 중에 겸손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그 고난이 모두 축복이 될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이 아무리 축복하셔도 거룩하게 살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도 사도 바울에게도 고난을 주셨습니다. 거룩함과 겸손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고난이 있든지 없든지 항상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겸손하기 위해서 언제나 노력하면 축복 받는 하나님의 종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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