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를 단련하시는 목적 > 욥기23장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욥기23장

하나님이 우리를 단련하시는 목적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4 08:58 조회5,544회 댓글0건

본문

하나님이 우리를 단련하시는 목적

 

하나님이 우리를 단련하시는 목적

2008년 09월 05일(금요철야)

본문 / 욥기 23:10

 

이 세상에서 살다 보면, 누구나 시련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이 시련 때문에 더 강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 온전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 큰 축복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낙심하고 원망 불평하거나 삶을 비관하여 자살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련이 왔을 때 깨달음을 얻는 사람, 변화가 일어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그 어떤 시련이라도 축복이 됩니다.

분명한 것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은 축복하시려는 목적으로 주십니다. 머릿속에 확실하게 인치시기 바랍니다.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어떤 시련이 와도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잘 참음으로 온전한 사람이 되어 더 큰 복을 받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믿음이 있는 증거가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말씀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게 되고, 존귀하게 여기고, 말씀대로 살기를 즐거워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지 않았고,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하나님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말씀을 저버리는 것은 곧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비참한 종말을 맞았습니다.

 

시련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불순종하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시련이 와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시련이 큰 축복으로 바뀝니다.

창세기 26장에 보면, 이삭이 살던 때에 이스라엘에 흉년이 왔습니다.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큰 시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26:2~4).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그랄 지방에 거했습니다. 그랬더니 백배의 축복을 받아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

어떤 시련이 와도 그 시련만 생각하며 걱정하지 마시고,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시련이 오히려 더 큰 축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느부갓네살 왕에게 다가온 시련은 교만한 그를 겸손하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아주 교만하여 하나님 은혜를 몰랐습니다. 다니엘 4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은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라고 말했습니다(단 4:30).

느부갓네살이 이 말을 하는 순간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 다니엘 4장 32~33절에 보면,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바로 그 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느부갓네살 왕을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 엄청난 시련을 주셨습니다. 다니엘 4장 34~37절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은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그 때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의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찾아오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받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꿈에라도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 시련하십니다.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찾아온 시련은 옛사람을 새사람으로 만들어 저주 받은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저주 받을 땅을 축복의 땅으로 만들려면, 먼저 사람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변화되지 않으면, 변화되지 못한 사람이 그 땅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노예 생활한 근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저주 받은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사람이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련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많은 시련을 당하였으면서도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모두 끝까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모두 버림받아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가나안 땅은 죄악이 가득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는 저주 받은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의 도구로 삼아 그들을 전멸시키기로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화되지 않은 사람을 쓰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을 광야에서 다 죽게 하시고, 그의 자손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의 인도를 받으며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죄악이 가득한 우리나라를 축복 받는 땅으로 변화시키는 데 쓰임 받는 자가 되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먼저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찾아온 시련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큰 시련입니다.

아브라함의 시대는 오늘날처럼 어디로 가든 먹고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닙니다. 어디로 가라는 말씀도 없으니 갈 길이 막막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무조건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막막함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은 큰 시련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창세기 12장 4절에 보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다는 의미입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낳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정말 큰 시험입니다. 얼마나 곤란한 일입니까.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가장 고민을 가져다 주는 시련이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장 17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그야말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순종하니까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하나님은 그가 어디로 가든지 그를 축복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창하는 축복을 받았고, 아브람이라는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고쳐주셨습니다.

아브람은 ‘큰 아버지’라는 뜻이지만, 아브라함은 ‘열방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런 이름인가요.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찾아온 시련은 놀라운 축복을 가져왔습니다.

 

야곱에게 찾아온 시련은 야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로 만드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야곱의 시련은 형 에서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축복을 가로챔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화가 난 형 에서는 이를 갈며 야곱을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가 그것을 알고, 야곱을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게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도망갈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도망간다고 해서 안심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냥꾼인 에서가 따라오면 붙잡혀죽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이것은 야곱에게 큰 시련입니다. 위기입니다.

 

그런데 야곱에게는 어려운 시련이 올 때마다 그 시련을 이기는 비결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비결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야곱의 비결이 저와 여러분의 비결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어려움, 시련이 와도 하나님 앞에 매달려 해결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도망하던 중, 어둡고 위험한 밤에 야곱은 기도했습니다. 놀라운 기도를 하게 됩니다.

창세기 28장 20~22절에 보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기도이고, 축복의 문을 여는 기도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야곱의 기도가 상달되어 하나님이 언제나 야곱과 함께하셨습니다. 야곱이 하는 일마다 다 잘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라반의 집은 가난했는데, 야곱이 그 집에서 일한 후, 그 집에 엄청난 축복이 임하여 야곱은 거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문을 여는 기도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기적인 기도를 하지 마세요. 야곱처럼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꿈과 소원을 가지고, 축복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해 이렇게 살기를 원하니 이렇게 축복해주세요.”라고 기도하세요.

 

저는 대학교에 갈 때, “아버지, 제가 대학교에 감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데 유익하다면 학비까지 몽땅 주세요.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제발 길을 막아주시고, 떨어지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1년 동안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했더니 합격자 발표하기도 전에 학비가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감동받으시면 미리 주십니다. 필요한 것보다 넘치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시련과 어려움 왔을 때,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세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세요. 반드시 역사가 일어납니다.

 

창세기 32장 24~29절에 보면,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기도했습니다. 20년 만에 돌아오는데, 형 에서가 군대를 데리고 온다는 소식을 들으니 큰일 났습니다. 그래서 온 가족을 강을 건너가게 하고, 혼자 남았습니다. 야곱은 밤새도록 기도합니다.

심각한 기도를 할 때 천사가 와서 씨름합니다. 결사적으로 기도합니다. 축복하지 않으면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면서 붙잡고 늘어진 것입니다.

 

야곱이 어려운 시련이 올 때마다 그 시련을 축복으로 바꾸는 비결은 목숨 걸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어떤 시련이 와도 해결하고, 오히려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발 뒤축을 잡음’이라는 의미의 졸렬한 이름인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입니다.

 

시련이 왔을 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축복하시고 사랑하십니다. 해결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시련이 왔을 때 낙심하지 말고, 앞이 답답하고 막막할 때 결사적으로 기도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셉에게 찾아온 시련은 하나님이 요셉을 높이 들어 쓰시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애굽에 팔려가게 하시고, 노예가 되게 하시고 고생하게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억울하게 누명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인간으로서는 밑바닥 인생이 된 것입니다.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시련 가운데 최악의 시련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믿음이 있는 요셉은 엄청난 시련이 와도 낙심한 적이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위험한 유혹을 받을 때에도 신앙의 지조를 지켰습니다.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사는 성도들은 하나님이 책임져주십니다. 이런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중적인 사람 되지 마시고, 누가 보든 안 보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거룩하게 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성도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높이 들어 쓰시는 줄 믿습니다.

성경에 보면, 요셉은 감옥에 들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가운데서도 언제나 하나님 말씀대로 살며, 맡은 일에 충성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셔서 감옥의 모든 살림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 간수장이 열쇠 꾸러미를 맡기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런 요셉을 하나님은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시고 크게 들어 쓰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어떤 시련이 와도 요셉처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인만 나타나면,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인만 나타나면, 모든 것 형통하든지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든지 전화위복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지 안 하시는지 사인만 관심 있게 찾아보세요.

 

욥에게 찾아온 시련은 욥을 정금 같은 사람으로 만들어 갑절의 축복을 받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보면, 욥은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욥이 얼마나 무서운 시험을 당했습니까. 그러나 욥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단련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단련 받은 다음에는 정금,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욥기 42장 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욥은 그가 말한 대로 축복 받았습니다. 재산이 두 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련 주실 때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려는 계획과 목적을 갖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에게 주신 시련은 하나님이 주시려는 큰 축복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축복을 감당하지 못해서 타락했습니다. 불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축복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수영로교회를 개척하고 나서 “수영로터리 땅을 다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며 몇 년 동안 수영로터리를 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하다가 하늘을 쳐다보니 새 한 마리가 올라가는데,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지, 나중에는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저 새를 보아라. 저 새를 위해 내가 예비한 공간을 보아라. 얼마나 높고 넓고 크냐? 저 새가 날개 치는 만큼 올라가지 않느냐. 네가 감당할 수 있다고 하면 얼마든지 주겠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멘. 감당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목회에 큰 축복을 받고 있지만, 하나님은 큰 시련 가운데서 저를 길러주셨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물질의 어려움을 주셨습니다. 너무 어려우니 하나님 앞에 “제 믿음이 이렇게 시시합니까? 물질로 이렇게 저를 단련하십니까? 저는 기도하다가 죽으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입시생들을 가르치느라 4년 동안 5시간 이상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졸업했습니다. 돌아보니 대학생활이 마치 전쟁 같았습니다.

졸업식 후 하나님 앞에 하소연하며 기도하는데, 주님은 제게 “내가 너를 이렇게 묶어놓지 않으면 네가 목사가 될 것 같으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묶어놓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알고 보니까 하나님이 저를 하나님 마음에 합하는 종을 만드시려고 시련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시련 당하시는 분들이 있을 줄 압니다. 시련에는 하나님께 목적과 뜻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크게 들어 쓰시기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뜻을 갖고 연단하시고 시련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련은 절대로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닙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다윗은 시련이 올 때마다 늘 말씀을 묵상하고 깨어 기도함으로 큰 은혜를 받고, 선지자와 같은 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무리 축복해도 교만하지 않고 성전을 지어 바치려고 정성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그 결과 더 크게 축복해주셨고, 역사에 길이 남는 가장 존경 받는 왕이 되었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았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시련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에게 주시는 시련은 축복하시려는 계획과 뜻과 목적이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조상들처럼 모든 시련이 축복으로 바꾸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욥기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23장

24장

25장

26장

27장

28장

29장

30장

31장

32장

33장

34장

35장

36장

37장

38장

39장

40장

41장

42장

 

 

 

 

 

 

 

 


접속자집계

오늘
1,121
어제
1,471
최대
7,648
전체
1,344,037
회사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Copyright © dalant.or.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