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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2장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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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7-14 21:37 조회3,1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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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

2005년12월 09일(금요철야)

본문 / 느헤미야 2:1~5

 

대부분의 국가는 한번 망하면 그것으로 끝이었지만, 이스라엘은 예외였습니다. 멸망해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은 다시 일어났습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지금도 이스라엘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사람 중의 믿음의 사람들은 포로가 되어서도 노예 생활하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총리가 되어서 큰일을 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왕에게 감동을 주어 국가와 왕이 바뀌어도 계속해서 총리로 있었습니다. 바벨론 시대에는 느부갓네살 왕에게 총애를 받았고, 바벨론이 망하여 메데와 바사 두 나라로 나누어지는데, 메데의 왕 다리오 때에도 다니엘은 총리를 했습니다. 또 바사의 왕 고레스 때에도 다니엘은 총리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포로 생활이 끝나고, 백성들이 돌아갑니다.

 

본문 느헤미야 2장 1절에 보면, 고레스가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고국으로 돌아가게 한 후에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 때, 느헤미야는 술관원으로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고 울며,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자기 백성들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중보 기도를 했습니다.

왕의 술을 담당하는 술 관원은 왕에게 가장 인정을 받는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는 포로였지만, 왕 다음가는 최고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권세와 재산이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이 세상에서 잘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고국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민족을 위해 회개하고, 자기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애국자였으며,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에게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성을 중건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귀한 자리를 다 버리고, 고생하는 자리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땀흘려 성을 중건했습니다.

 

왜 느헤미야는 잘 사는 것을 버리고 고생되는 길을 택했을까요?

느헤미야는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사명을 알고 사명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릅니다. 삶의 자세, 목적, 태도가 다릅니다.

사명의식이 없는 사람은 돈을 벌어도, 성공해도 허무합니다. 이런 사람은 그냥 살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더 잘 살려고 삽니다.

이 땅은 낙원이 아니라 시련의 땅입니다. 미국이나 호주 같은 곳의 좋은 경치를 보고, 사명의식 없이 살려고 이민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크게 고생합니다.

이 세상은 시련의 땅입니다. 그래서 고달프고, 시험이 많고, 고난이 많고, 불의의 사고가 날마다 일어납니다. 수많은 재난과 질병이 있습니다. 건강하여 오래 살 것 같은 사람도 자다가 죽는 것처럼 죽음은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세상에는 많은 전쟁과 분쟁과 재난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낙원이 아닙니다. 이민 간 사람들도 한국에서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만큼 그곳의 생활은 힘듭니다. 그곳에도 시련이 많고, 고통이 많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어도 며칠 지나면 싫증납니다. 그리고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이 세상은 시련의 땅이라, 누구도 시련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사명을 알고, 사명의식을 가지고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은 어떤 시련이 와도 문제 되지 않습니다. 시련은 믿음을 더욱 온전하게 해주고, 은혜 받는 기회가 되고, 주님의 성품을 닮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아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낙이나 육체의 낙을 추구하며 살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사명을 알고 있었기에 자기의 재산과 영광을 버리고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자기 사명을 알고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돈이나 건강이나 지식이나 지혜나 명예나 권세나 모든 것을 사명을 위한 도구로 사용합니다. 돈이나 명예가 생기면 하나님을 위해 그것을 씁니다. 이런 사람은 하루하루가 기쁨으로 즐겁고 행복하고 보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장차 하나님께 칭찬 듣고 상 받을 수 있는 기회로 알고 충성하며 삽니다. 이런 사람은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세계적으로 위대한 인물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최고의 가치를 추구했습니다.

둘째, 그 가치를 실현하려고 애쓰며 살았습니다.

셋째, 그 가치를 전달하면서 살았습니다. 세상의 것을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최고의 가치는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주님의 말씀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는 사랑입니다.

마가복음 12장 28~31절에 보면,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받게 되고, 가장 보람 있게 살게 됩니다. 사랑이 가득한 곳이 천국이자 낙원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면 이 세상은 낙원이 됩니다. 우리가 사랑을 가지는 만큼 성숙한 인격자가 되고,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사랑을 가지고 사는 만큼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영광 돌리게 되고, 밝고 좋은 세상이 되고, 복된 삶이 되고,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첫 번째 가치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두 번째로 추구해야 할 가치는 정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정의입니다.

신명기 4장 1~8절에 보면,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여호와께서 바알브올의 일로 말미암아 행하신 바를 너희가 눈으로 보았거니와 바알브올을 따른 모든 사람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에서 멸망시키셨으되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가장 지혜롭고 지식이 있고, 위대한 나라의 백성이 되고 정의로운 나라가 됩니다.

 

우리가 세 번째로 추구해야 할 가치는 평화입니다.

우리가 사랑과 정의를 추구하고, 평화를 이룬다면, 이 세상은 지상 낙원이 됩니다. 평화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우리가 평화를 위해 노력하지만,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온전한 평화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UN이 설립되었어도 전쟁이 일어났듯이, 인간의 노력으로는 평화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타락의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지 않고 서로 미워하며 삽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께 가야 하고, 하나님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역대하 14장 2~6절에 보면,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그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평화는 축복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자기만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을 구하고, 우상을 없애버리고, 선을 행하고, 정의를 행하므로 복을 받은 것입니다.

 

역대하 15장 10~15절에 보면, “아사 왕 제십오년 셋째 달에 그들이 예루살렘에 모이고 그 날에 노략하여 온 물건 중에서 소 칠백 마리와 양 칠천 마리로 여호와께 제사를 지내고 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는 자는 대소 남녀를 막론하고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하고 무리가 큰 소리로 외치며 피리와 나팔을 불어 여호와께 맹세하매 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우상을 다 버리니 하나님이 나라를 평안하게 해주셨습니다.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도 하나님을 열심히 찾고 가까이하고 걱정이 있을 때, 하나님을 더 부르짖으면 우리 마음에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에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염려거리가 생겨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고 간구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감사하며 기도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에 가득 차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주십니다. 그러므로 걱정이 없고 마음이 평안한 믿음의 상태가 아주 건강한 믿음입니다. 덧붙여 기쁨까지 있다면 아주 행복한 삶입니다.

이사야 57장 20~21절에 보면,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전쟁은 하나님의 심판이고, 저주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악한 죄를 범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사사기 8장 33~34절에 보면, “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서서 바알들을 따라가 음행하였으며 또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이스라엘 자손이 주위의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는데 전쟁이 일어납니다.

사사기 9장 5~6절에 보면,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 곧 자기 형제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으되 다만 여룹바알의 막내 아들 요담은 스스로 숨었으므로 남으니라 세겜의 모든 사람과 밀로 모든 족속이 모여서 세겜에 있는 상수리나무 기둥 곁에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으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사기 9장 22~25절에 보면,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에게 저지른 포학한 일을 갚되 그들을 죽여 피 흘린 죄를 그들의 형제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 그의 형제들을 죽이게 한 세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게 하심이라 세겜 사람들이 산들의 꼭대기에 사람을 매복시켜 아비멜렉을 엿보게 하고 그 길로 지나는 모든 자를 다 강탈하게 하니 어떤 사람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알리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사기 9장 51~54절에 보면, “성읍 중에 견고한 망대가 있으므로 그 성읍 백성의 남녀가 모두 그리로 도망하여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망대 꼭대기로 올라간지라 아비멜렉이 망대 앞에 이르러 공격하며 망대의 문에 가까이 나아가서 그것을 불사르려 하더니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려 던져 그의 두개골을 깨뜨리니 아비멜렉이 자기의 무기를 든 청년을 급히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죽이라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이르기를 여자가 그를 죽였다 할까 하노라 하니 그 청년이 그를 찌르매 그가 죽은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겜 사람과 아비멜렉이 손을 잡고 나쁜 짓을 했습니다. 악한 짓을 한 사람에게 악신이 역사하여 자기들끼리 싸우게 됩니다. 결국에는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은 심판입니다.

1,2차 세계대전도 많은 사람이 죽고, 도시가 파괴되고, 결국에 이기고 진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저주입니다.

히틀러에게 스탈린에게 김일성에게도 악신이 들어가서 자신과 나라를 망하게 하였습니다. 전쟁은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악신을 역사하여 다 죽음으로 심판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많았지만, 온 나라 성도들의 기도가 악신을 묶어두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기도도 자기 백성을 회개하면서 금식하며 눈물로 기도하여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포로생활을 끝나게 하시고, 고레스 왕을 감동시켜서 이스라엘 백성은 돌아가 성전을 지으라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다니엘 혼자서 기도하여도 이랬으니 우리가 모두 기도하면 하늘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세상 복은, 생사화복은, 전쟁이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음은, 절대주권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평화는 하나님의 축복이고, 전쟁은 하나님의 심판이고 저주입니다.

 

우리가 네 번째로 추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는 것은 제일 가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기 위해 살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천국 백성입니다.

 

제 소원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만 사는 것입니다. 제일 처음 교회를 개척할 때에도 어디가 나에게 편하고 좋은 곳인지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어디인지를 생각했습니다. 그곳이 어디든지 가겠다고 기도했습니다.

 

자기 욕심이 앞서는 사람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해도 응답받지 못합니다. 그런 기도는 우상 앞에 비는 것과 같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겠다고 기도하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응답을 받습니다.

 

부산에 교회를 개척할 때에도 신실하신 주님이 제게 보여주신 대로, 말씀하신 대로, 교인들이 몰려왔습니다. 제가 설교를 잘하거나 목회를 잘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교회를 세우시고 백성을 모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우연히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주님이 여러분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 나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종, 충성된 일꾼도 보내 주셨습니다. 다른 교회에 다닐 때는 신앙생활을 잘하지 못했지만, 우리 교회에 와서 은혜를 받은 후 열심히 전도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대로만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와 같이 사명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죄와 허물을 깨닫게 되어서 은혜를 받은 사람은 겸손해지고 거룩해집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깨닫게 되고, 나의 사명이 깨달아집니다. 내가 어떻게 살다가 주님께 가야 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깨달음이 오고, 변화가 옵니다. 사람이 달라지고, 주님을 닮게 됩니다. 그리고 능력이 임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부끄럽게 사명의식 없이 살면 안 됩니다. 사명의식 없이 살면 자기만을 위해 살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돈과 명예와 정욕의 노예가 되고, 자기를 위해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저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게 되고 결국에는 부끄럽게 살다가 죽게 됩니다.

 

사울 왕과 솔로몬 왕이 부끄럽게 살다가 죽은 이유는 사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명의식을 가지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먹고 마시고 노느라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기도 생활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잊었기 때문에 사명을 잊어버리고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고생을 해도, 시련이 와도 낙심하지 말고, 최고의 가치를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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