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큰 일을 행하실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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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4-26 10:55 조회3,972회 댓글0건본문
하나님이 큰 일을 행하실 때
하나님이 큰 일을 행하실 때
2020년 12월 20일(주일예배)
본문 / 에스라 1:1~4
여러분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을 믿습니까?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습니까?
마태복음 7장 7~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까? 기도했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었습니까?
이 말씀은 100% 믿지만, 수십 년 동안 기도해도 기도한 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100% 확신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신실하시고 완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한 대로 응답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신실하시고, 완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믿음만큼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절망 속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가장 신뢰했습니다. 로마서 4장 17~22절에 보면,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였고, 사라는 90세였습니다. 여성의 생리가 끊어진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라는 아기를 낳을 수 없었습니다.
여성은 50세가 넘으면 갱년기를 맞습니다. 아기를 낳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라는 90세였습니다. 어떻게 아기를 낳을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아무리 좋아도, 현실을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기들이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현실은 절망적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에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9~10절에 보면,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족은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 곳이 이 세상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가족은 이 세상에서 1백 년, 2백 년 사는 것을 꿈꾸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지 간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말씀하시면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동쪽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면 동쪽으로 가야 하고, 서쪽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면 서쪽으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지체하지 말고 즉각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가족은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창세기 12장 4절에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무조건 따라 갔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생각해보야야 합니다. 사람들은 재산을 열심히 모아 부요하게 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에 좋은 대로 삽니다. 이것은 잘못된 삶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말씀하시면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의 모습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1~12절에 보면,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라는 죽은 사람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사라에게 주셨습니다.
사라는 이삭 한 명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이삭의 자손이 어마어마하게 많았습니다.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습니다.
사람이 생각하기에는 100%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히브리서 11장 17~19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1백 세에 낳은 아들입니다. 그런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이삭을 번제로 드려도, 죽은 이삭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믿음이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었을 때, 아브라함은 먹고살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답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겁이 나서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죽고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장하시는 것을 아브라함은 믿지 않았습니다.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을 아브라함은 믿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기 위해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 사라를 바로에게 주었습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창 13:1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도 아브라함은 자녀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였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당시 사라의 나이 65세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사라의 나이 75세가 되었습니다. 늙었습니다.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습니다. 아기를 낳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자신의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이스마엘을 낳은 후, 아브라함은 잠시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아기가 없던 집에 아기가 생겼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마엘을 낳은 결과, 지금까지도 비극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신뢰해야 하는데, 아브라함은 사람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손들까지 불행하게 했습니다.
창세기 18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99세, 사라가 89세 되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아브라함에게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 18:10)”고 말했습니다.
장막 문 뒤에서 이 말을 들은 사라는 기가 막혀서 웃었습니다. 믿음이 없어 웃은 것이 아니라,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자가 말한 대로, 아브라함이 100세 되었을 때에 이삭을 낳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번창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100%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 신실하십니다. 완전하십니다. 거짓말하시지 않습니다. 실수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100% 불가능해도,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솔로몬 왕 이후,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70년 후에 돌아올 것이라고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하기에는 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습니다.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포로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벨론이 망했습니다. 고레스 왕이 메대와 바사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본문 에스라 1장 3절에 보면,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레스 왕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에스라 1장 1~4절에 보면,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레스가 조서를 내리자 포로생활이 끝났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 신실하십니다. 완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것을 믿게 하시려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된다고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으면 반드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으면 반드시 구원하십니다.
천지는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있습니다.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사야 40장 6~8절에 보면,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영광 얻는 것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다음 날이면 사라집니다.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죽기도 합니다.
아무리 큰소리쳐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불러 가시면 자다가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불가능해보여 모두 절망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큰 일을 행하십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십니다.
이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신실하심, 완전하심을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을 실망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반기독교세력들은 여러 가지 말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미래에 대한 말씀도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말씀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어 무덤 속에 있은 지 나흘 되어 냄새가 났습니다. 소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1장 23~24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나사로의 상황을 보면, 다시 살아날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마르다는 예수님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마르다는 예수님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7)”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름다운 믿음입니다.
요한복음 11장 32~44절에 보면,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시골에 있는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시골 교회다 보니 목회자가 사례비도 변변하게 받지 못하고 많이 고생했습니다. 그러다가 목사 부인이 암에 걸렸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3개월이라고 진단 받았습니다. 목사 부인은 그 동안 고생한 것을 생각하니 괴로웠습니다. 남편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러다가 결심했습니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 동안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하며 성도들을 축복하며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축복했습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축복하는 것이니 얼마나 간절히 축복했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3개월이 지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6개월이 지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1년이 지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암 세포가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남은 시간이 3개월이라고 병원에서 말했다고 해서 3개월 밖에 살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암 세포가 온몸에 퍼져 눈물 흘리며 기도하시는 분이 우리 교회에도 있습니다. 암 세포가 온몸에 퍼졌다 해도 기뻐하세요.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단하세요.
암 세포가 온몸에 퍼져 의학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치료하실 수 있습니다.
시골 교회의 목사 부인은 자신의 몸에 암 세포가 퍼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하고 결단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다리오 왕은 삼십 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금령을 세웠습니다.
이때 다니엘은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져 죽을 것을 각오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기도 생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기도를 하든 예배를 드리든 죽을 것을 각오하고 해야 합니다. 죽을 것을 각오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사람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다니엘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사자들의 입을 막아주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다리오 왕이 사자 굴에 갔습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이 살아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나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했습니다.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습니다.
우리 교회가 수영로터리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교회 주차장이 없어서 성도들이 주일에 교회에 오면 교회 주변 골목에 차를 주차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배를 마치고 교회 밖으로 나오니 골목에 주차했던 차들이 한 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네 주민들이 신고해서 다 견인해간 듯했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우리 교회는 소망 없는 교회가 됩니다.
그 날 이후, 저는 어린 아이처럼 울며 기도했습니다. 강단에서 어린 아이처럼 울며 “아버지, 주차장을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교회에 위급한 일이 있어 담임목사가 강단에서 울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당시 우리 교회 옆에 폐업한 큰 공장이 있었습니다. 그 공장을 우리 교회의 주차장으로 쓰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 날 밤,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황금 열쇠 꾸러미를 제게 주셨습니다. 제가 황금 열쇠로 그 공장의 문을 열다가 잠이 깼습니다. 공장의 문을 열고 잠이 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다음 날 새벽에도 저는 교회에 나와 강단에서 울며 기도했습니다. 그 날 저는 서울에 있는 여의도침례교회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습니다.
그 교회의 안수집사 부부가 제게 점심을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그 안수집사의 부인이 우리 교회 옆에 있는 공장장의 딸이었습니다.
점심을 먹으며 우리 교회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싼 가격에 우리 교회에게 매도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 날 저녁 집회 후에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 교회가 바로 그 땅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빨리 응답해주셨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돌아와 그 땅을 계약했습니다. 총액의 1/2을 3개월 내에 납부하고, 3개월 내에 나머지 1/2을 납부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헌금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성도들에게 헌금을 작정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기도만 하게 했습니다.
땅 값을 지불해야 하는 기한이 한 주 남았습니다. 헌금은 여전히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강단에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날마다 울며 기도했습니다. 울면서 “주신다고 하셨는데, 왜 안 주십니까”라고 기도했습니다. 월요일까지 땅 값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주일 새벽예배 후에도 집에 가지 않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교회에서 혼자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45장 2~3절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45장 2~3절에 보면,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제게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금식한 상태로 주일예배 설교를 다섯 번 했습니다. 아침에 기도하다가 응답 받은 것을 설교하던 중에 성도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성도들이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헌금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음 날, 정오까지도 돈이 없었습니다. 저는 강단에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은행 업무 마감 시간까지 기도했습니다.
은행 업무 마감 시간이 다 되었을 때, 성도들이 주보에 기록되어있는 교회 계좌로 헌금한 돈이 들어왔습니다. 은행에서 연락이 와서 사무장이 은행에 갔습니다. 땅 값을 지불하고도 1억 8천만 원이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완전히 절망에 빠졌을 때, 기적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 신실하십니다. 완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 신실하심, 완전하심을 믿기 원하십니다.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기 원하십니다.
오늘날 국내ㆍ외를 보면, 악이 번창하고 악이 승리할 것 같습니다. 악의 세력이 매우 강력해서 영원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절망적인 때에 일하십니다. 우리가 보기에 절망적인 때에 하나님께서는 일하십니다. 우리가 절망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한순간에 해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것을 잘 아십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100% 불가능해 보여 절망할 때, 그때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살아가기 막막하여 절망에 빠질 때에 낙심하지 말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완전하신 하나님을 믿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살리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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