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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33장

사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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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7 15:17 조회3,1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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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길

 

사는 길

2010년 07월 23일(금요철야)

본문 / 역대하 33:10~13

 

신명기 30장 19~20절에 보면,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두셨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길로 가느냐에 따라 그 길이 생명의 길이 될 수도 있고, 죽음의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길이 복 받는 길이 될 수도 있고, 저주 받는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생명을 얻는 길을 택하고, 축복 받는 길을 택해야지, 죽음의 길을 택한다거나 저주 받는 길을 택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죽음의 길, 저주 받는 길을 택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로 인해 모든 인류는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땅까지 저주를 받아 좋은 땅에서 가시와 엉겅퀴가 나서 인간들이 먹고 사는 데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농사를 지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과일과 열매들을 따먹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선택을 잘못하므로, 사망의 길을 택하므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고, 저주 받는 길을 택하므로 환난과 재난, 기근이 많아 고생하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들은 두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다윗의 길로 걸어가는 왕과 타락한 조상의 길을 걸어가는 왕이 있습니다.

다윗의 길은 생명의 길이고, 축복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조상의 길은 죽음의 길이요, 저주의 길이었기 때문에 그 길로 간 사람들은 고생하고, 불행을 경험하고, 비참하게 망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선악과를 따먹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지금도 다윗의 길로 걸어가는 사람은 적고, 타락한 조상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많습니다.

인간들의 마음속에 타락의 근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악을 행해도 하나님의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쁜 짓을 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죄를 지어도도 갑자기 아프다거나 갑자기 망하지는 않습니다. 죄를 지어도 잘되는 것 같고, 아무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인간들은 죄를 범하는 데 담대합니다.

 

전도서 8장 11절에 보면,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악한 짓을 했을 때에 즉사한다면, 겁나서 악한 짓을 하지 못할 텐데, 하나님은 악한 일을 즉각 징벌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인간들은 악을 행하는 데 담대합니다.

아담과 하와도 선악과를 따먹고 즉시 죽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천 년 가까이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었음에도 죽지 않았습니다. 천 년 가까이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인간들은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선악과를 따먹어도 죽지 않는구나.”라고 하나님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사울 왕은 죽음의 길을 택하고, 저주 받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80세에 죽었습니다. 그가 죽음의 길을 택하고, 저주 받을 길을 걸어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금방 걷어 가시지 않으셨습니다. 금방 저주를 내리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최후에 저주스럽게 멸망하고 말았지만, 80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인간들은 ‘죄를 범해도 괜찮다.’라고 생각하고, 죄를 범하는 데 담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즉각 진노하시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실까요?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도 죄 가운데 있다가 멸망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돌이켜 살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에스겔 18장 21~24절에 보면,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 같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것 같고, 훌륭한 것 같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변절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과거에 행했던 의로운 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것을 하나도 기억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지금 범하는 악한 행위로 말미암아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살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 한 사람이라도 죄 가운데 죽지 않고 돌이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해, 우리가 죄를 범해도 우리를 금방 데려가지 않으시고 참으십니다.

에스겔 18장 30~32절에 보면,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죽어 마땅한 인간이라고 해도 하나님은 그가 죄 가운데 죽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까.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지만, 하나님은 그가 죄 가운데 죽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죄에서 돌이켜 살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큰 죄를 범한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은 무조건 용서해주시고 축복해주십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엘 2장 12~14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엘 2장 18~19절에 보면,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말미암아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가 나라들 가운데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다고 할지라도, 죽음이 눈앞에 왔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늦었다고 할지라도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면, 살 길이 열리고,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늦었다고 할지라도 깨닫는 즉시 회개하는 자는 복 받습니다.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살 길이 열립니다.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본문에 나오는 므낫세 왕은 열두 살에 왕이 되어서 55년간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죽음의 길을 택했습니다. 사망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저주 받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왕이 되자마자 온갖 우상을 만들어놓고 숭배하고, 성전을 우상으로 가득하게 만들어놓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다 죽여 버렸습니다. 그래서 의인의 피가 마치 개울처럼 흐를 정도였습니다.

왕이 그런 짓을 하니까 어리석은 백성들도 얼마나 우상숭배를 하는지, 과거의 어느 이방민족보다 심했습니다.

 

역대하 33장 9절에 보면,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모든 나라보다 더욱 심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옛날 가나안 족속들이 우상숭배를 많이 하다가 멸망했는데, 멸망한 모든 나라보다 더 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므낫세 때처럼 우상숭배를 지독하게 한 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

 

역대하 33장 10~1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책망하셨지만, 므낫세 왕은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므낫세와 그의 백성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를 쳐들어오게 해서 그들을 죽이고, 포로로 잡아가게 하셨는데, 왕까지 쇠사슬로 결박하여 잡아갔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므낫세 왕은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역대하 33장 12~13절에 보면,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므낫세는 죽음 직전에서 사는 길을 택했습니다. 므낫세는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받으시고, 그의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사는 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면, 사는 길이 열립니다. 살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받아주십니다.

 

야곱이 형 에서에게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형이 받을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그래서 형이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20년 만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면, 형에게 맞아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죽음을 면했습니다. 야곱이 아주 겸손한 마음으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3장 3~5절에 보면,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쌍둥이 형제였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에게 맞아죽을 것 같으니 매우 겸손하게 행동했습니다. 야곱은 형에게 일곱 번이나 엎드려 절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형을 가리켜 ‘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형님의 종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을 아주 낮췄습니다.

 

야곱이 겸손한 태도를 취하니 형 에서의 마음이 눈 녹듯이 풀렸습니다. 창세기 33장 8~9절에 보면,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가리켜 ‘내 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형님을 하나님 대하듯 했습니다.

악독한 에서였지만 야곱의 겸손한 태도를 보고 마음이 풀렸습니다. 하물며 좋으신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악한 에서 앞에서도 겸손하게 행동하니 마음이 풀렸는데, 하나님이 분노하셨다고 해도 우리가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풀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분노가 가득해서 진노하시다가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은혜로우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이 풀릴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큰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겸손하면, 살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가 되는 것이 사는 길인 이유는

첫째,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살 길이 열립니다. 아모스 5장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찾으면, 살 길이 열립니다.

 

이사야 55장 6~7절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십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가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용서해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힘을 믿고,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가 결국 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들은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있는 줄 알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래서 살 길이 열립니다.

 

야곱과 에서는 아브라함의 손자입니다.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입니다. 그런데 에서와 그의 후손은 멸망했고, 야곱과 그의 후손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둘은 쌍둥이였는데, 어떻게 에서는 멸망하고, 야곱은 축복을 받았습니까. 어려움을 당했을 때, 야곱은 하나님을 찾았지만, 에서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찾느냐 찾지 않느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야곱을 보세요.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나기 전, 형에게 맞아 죽을까봐 얍복 강가에서 밤새도록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께 축복해달라고 매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축복해주실 뿐 아니라,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까지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겼다’는 영광스러운 의미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야곱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에서가 하나님을 찾았다’라는 말은 없습니다. 야곱처럼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을 찾기 때문에 살 길이 열립니다. 므낫세는 천 번, 만 번 죽어 마땅한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므낫세에게 살 길이 열린 것은 그가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사람에게는 살 길이 열립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살 길이 열립니다. 이 길은 사는 길이요, 축복 받는 길입니다.

 

둘째,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은 회개하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회개할 줄 모릅니다. 교만한 사람은 마음이 아주 완악합니다. 그래서 회개할 줄 모릅니다. 회개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가룟 유다를 보세요.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않다가 자살해버렸습니다.

교만한 인간들은 죽을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존심을 내세우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겸손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5장 18~21절에 보면,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탕자의 마음이 얼마나 겸손합니까. 탕자는 아버지께 돌아가면서 자신은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으니 품꾼의 하나로 여겨달라고 말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아주 겸손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탕자의 말과 행동은 진심으로 회개한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탕자에게 책임추궁을 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잘못에 대해 책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미 용서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무조건 용서해주십니다. 100% 용서해주십니다. 겸손한 마음,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는 사람은 겸손한 마음을 갖기만 해도 하나님이 용서하십니다.

우리는 탕자의 아버지의 행동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축복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다 회복시켜주시고, 아버지로부터의 상속권을 가진 아들의 자격을 회복시켜주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고, 신발도 신겨주고, 좋은 옷을 입혀주었습니다. 그리고 매우 기뻐서 잔치까지 벌였습니다.

 

우리가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라고 찬송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용서하시고, 잃어버린 것을 모두 회복시켜주시고, 축복해주십니다.

므낫세와 같은 죄인이라도 괜찮습니다. 므낫세와 같은 죄인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오니까, 회개하니까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겸손하면 살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면, 아무리 죄가 많다 해도 하나님은 따지지 않으십니다. 책임추궁하지 않으십니다. 무조건 용서하시고, 무조건 받아주십니다.

그러므로 겸손하면 살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면, 살 길이 열립니다. 겸손한 사람은 회개하기 때문에 살 길이 열립니다.

 

셋째,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은 은혜를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은 마음이 가난합니다. 목마른 사슴과 같습니다.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마치 목이 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은 마음이 가난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분수를 압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잠시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누가 은혜를 받습니까?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이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은 은혜를 사모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서 영육 간에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들은 은혜를 사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이런 사람은 심령이 점점 고갈되어서 완악해집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자신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돌이키지 않으면, 큰 환난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겸손한 사람은 은혜를 사모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은혜가 충만한 것 같은데, 자기 자신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부족해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듯이 은혜를 갈망합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클수록 은혜를 크게 받습니다.

똑같은 시간에 같은 목사의 설교를 들어도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은혜를 다르게 받습니다. 받는 은혜가 달라집니다.

 

그런데 마음이 교만해지는 순간, 마치 자기가 다 된 줄 압니다. 자신이 훌륭한 줄 압니다. 은혜 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은혜의 자리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은 심령이 점점 고갈되고 고갈되어서 완악해집니다. 교만해지면 망하는 것입니다. 저주 받는 것입니다.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지셔서 은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넷째,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가 잘나서 복 받은 줄 알고, 자기가 잘해서 성공한 줄 압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보답할 줄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도 모르고,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릴 줄도 모릅니다. 그저 자기가 영광을 받으려고 합니다.

 

역대하 32장 24~26절에 보면,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어 하나님 앞에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15년 더 살게 하시고, 아하스의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10도 물러가게 하시는, 우주 질서에 큰 변동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그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죽을 사람이 15년 더 살게 되었고, 하나님이 큰 이적을 보여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히스기야의 마음이 교만해졌습니다. 그래서 진노가 임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히스기야는 교만함을 뉘우쳤습니다.

 

마음이 교만해진 히스기야의 삶이 어떠했을까요? 히스기야의 마음이 교만해졌을 때, 히스기야의 삶은 이렇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을 찾는 시간이 줄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기도를 많이 하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체험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교만해진 후에는 예전처럼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체험도 많이 하시고, 은혜롭게 기도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새벽예배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새벽예배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새벽예배 인도를 부교역자에게 맡기고, 목사님은 집에서 기도한다고 하며 새벽예배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교회가 시험에 드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해할 수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교회에 생겼습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기도하시던 분이 기도하지 않으니까 영력이 떨어지고, 믿음이 약해졌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아수라장이 되어 교회가 쪼개어지고, 서로 싸우고, 그리고 몇 년 후에 같은 사건이 또 다시 발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아주 비참해졌습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기도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만해지면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교회에도 가끔 갑니다.

교만해지면 기도하지 않아도 되고, 은혜 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망할 징조입니다. 축복 받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는 시간이 줄어들면, 믿음이 약해집니다. 영안이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어리석게 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복이 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이 교만해지니 예전처럼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그의 교만은 큰 실수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지혜롭지 못하고, 어리석은 짓을 하게 됩니다. 열왕기하 20장 12절에 보면,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가 병 고침을 받은 후 바벨론의 왕이 편지와 예물을 보내 축하했습니다. 히스기야는 바벨론 왕이 보낸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 창고에 있는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사자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왕궁에 있는 모든 보물을 보여주며 자랑했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에게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소문나면 도둑과 강도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런 멍청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좋은 것이 있으면 감추어두고 자기만 보고 좋아해야지, 그것을 자랑하면, 자랑한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납니다.

 

히스기야는 지혜롭지 못하고 어리석은 짓을 한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니까, 교만해지니까 영안이 어두워져서 자기 자랑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왕하 20:16~18).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사람이 교만해지면 어리석어집니다. 지혜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실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고 대적하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돕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히스기야가 그런 실수를 한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교만해진 후의 삶이 어떠했을까요? 히스기야는 수명을 15년 연장 받은 지 3년 만에 므낫세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므낫세를 신앙으로 키우지 않은 것을 보면, 히스기야의 생활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철저한 기도생활과 말씀으로 무장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신령한 생활을 했다면,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데리고 다니며 신앙을 키워주고,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쳐주고, 십계명을 외우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므낫세는 왕이 되자마자 우상을 가져와서 섬기고, 백성들에게도 우상을 섬기게 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통해 히스기야의 삶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수명을 15년 연장 받았을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않았습니다.

 

만일 히스기야가 ‘15년은 덤으로 얻은 삶이니, 이제는 나를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모든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을 전하고, 기도운동을 일으키고,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무장시켰더라면, 백성들도 복을 받았을 것이고, 나라도 잘되었을 것이고, 자신도 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히스기야가 그렇게 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대하 32:25).

교만하면 망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잠 16:18).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함 받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감사하고, 십자가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아니면, 모두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감사하며 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주님을 위해 충성하며 삽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삽니다.

역대하 33장 15~16절에 보면, “이방 신들과 여호와의 전의 우상을 제거하며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산에와 예루살렘에 쌓은 모든 제단들을 다 성 밖에 던지고 여호와의 제단을 보수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그 제단 위에 드리고 유다를 명령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하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므낫세는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로 변화되더니 우상을 모두 갖다버렸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보수했습니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라고 명령했습니다. 자기만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까지 그렇게 살라고 했습니다.

므낫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므낫세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했습니다.

 

다섯째,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다가 멸망하게 됩니다.

므낫세의 아들 아몬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역대하 33장 21~25절에 보면, “아몬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 년 동안 다스리며 그의 아버지 므낫세의 행함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만든 아로새긴 모든 우상에게 제사하여 섬겼으며 이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스스로 겸손함 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지 아니하고 더욱 범죄하더니 그의 신하가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이매 백성들이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의 아들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으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므낫세의 아들 아몬은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이 매우 완악했습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사신우상을 섬기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을 뻔한 것과 그의 아버지가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살게 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사신우상을 섬기다가 반역자의 칼에 맞아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가 그의 아버지처럼 겸손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교만한 인간들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교만은 불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사울 왕이 교만해지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17~23절에 보면,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울이 예전에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겸손할 때에 그를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왕이 된 후에는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 사람과 짐승까지 다 멸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사울은 살진 짐승들을 죽이지 않고 끌어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긴 것입니다. 이것은 교만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거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복을 받게 됩니다.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축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 앞에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 15장 5절에 보면,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한번 범죄한 것을 제외하고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어긴 일이 없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다윗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사는 길은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교만은 죽는 길입니다. 절대 교만한 자가 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항상 겸손한 자가 되셔서 여러분이 가는 길이 축복의 길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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