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를 통해 깨닫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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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3:52 조회3,406회 댓글0건본문
히스기야를 통해 깨닫는 교훈
히스기야를 통해 깨닫는 교훈
2014년 06월 29일(주일예배)
본문 / 역대하 32:22~26
지난 6월 25일은 한국 전쟁이 일어난 지 64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나라를 공산화하기 위해 남한 군인들이 쉬는 날이었던 일요일 새벽에 갑자기 남침하여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탱크를 앞세우고 진격해오는 북한군은 저항을 별로 받지 않고, 서울을 쉽게 점령하고, 남쪽으로 계속 밀고 내려왔습니다.
부산과 주변의 지역을 약간 남겨놓고는 거의 다 점령하므로 금방이라도 공산화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16개국의 군대로 이루어진 유엔군을 보내주심으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 후, 전쟁이 계속 이어지다가 휴전되고,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남북이 분단된,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가 되었습니다.
2015년은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해방된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리고 한국 전쟁이 일어난 지 65년이 되는 해입니다. 매우 뜻 깊은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민족이 바벨론 군대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고,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끌려간 사람들을 70년 만에 기적적으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해주셨습니다.
그 전에는 유대민족도 우리나라처럼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나누어져있었습니다. 그런데 7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이후 남북통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유대인들의 공로나 힘으로 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눈물의 선지자인 예레미야 선지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유대민족이 70년 만에 회복될 것이라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5장 11절에 보면,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29장 1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니엘 9장에 보면, 다니엘은 책을 읽다가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70년이 되면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신다고 말씀하셨지.’라고 깨닫고, 70년이 다가올 때에 다니엘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재를 뒤집어쓰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동안 유대민족이 범함 죄, 이스라엘 민족이 범한 죄를 하나님 앞에 자복하면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다니엘 9장 19절에 보면, 다니엘은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런 기도는 반드시 응답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셔서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단 9:22~23).
다니엘이 결심하고, 기도를 시작했을 때에 하나님은 이미 응답하셨다는 것입니다.
에스라 1장에 보면,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고레스가 바사의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유대인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가 성전을 건축하라고 말했습니다.
에스라 1장에 보면, 고레스가 바사의 왕이 되자마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예언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때가 되었을 때,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온 나라에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라고 명령했습니다(스 1:2~4).
그러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 레위 사람들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을 건축하려고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기쁨으로 예물을 드렸습니다.
에스라 1장 7절에 보면, “고레스 왕이 또 여호와의 성전 그릇을 꺼내니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신당에 두었던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용하는 금으로 된 기물들을 다 빼앗아갔는데, 고레스 왕은 그것을 다 돌려주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래서 그들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갈 때에 어마어마한 그릇과 성전에서 사용하는 물품들을 다 가지고 갔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성품이 신실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가감됨이 없이, 정확 무오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을 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많이 발견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7:7~8).
그리고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1:24). 그리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33).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신실한가를 체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0:29). 이 말씀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우리의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사화복,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하나님의 방법으로 한순간에 기적적으로 통일될 줄 믿습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우리나라의 통일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이 나라가 복음으로 평안하게 통일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응답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 국민이 전쟁의 위험 속에서 살아오느라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북한에서 예수님을 믿다가 수용소에 끌려간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하는가를 러시아에 있는 크리스천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들도 70년간 고생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있는 러시아 크리스천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북한을 위해 기도하자고 하면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반드시 응답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응답하시기를 미루시고 계실까요? 우리나라가 받은 복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른 것은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나라에 자원이 많습니까. 우리나라의 땅이 넓습니까. 땅은 좁은데, 땅의 70%가 산이고, 쓸모 있는 땅은 30%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정말 작은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대국이 되어서 요즘은 한국이 미국보다 인기 있는 나라입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한국 여권만 가지고 있으면, 환영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면에서는 한국에 축복을 넘치게 부어주셨습니다. 건국 이래 이렇게 잘 살 때가 언제 있었으며, 세계적으로 이만큼 자랑스러웠던 때가 언제 있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나라를 통일되게 해주시지 않을까요? 여기에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분단된 상태로 두시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매우 유익한 일입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가 어떻게 해왔습니까. 나라에 어려운 일이 생기고,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때마다 교회에서는 물론이고, 산 속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목사님과 온 성도들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때로는 밤을 새며 기도하고, 예배당을 둘러서서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렸지만 그 사이에서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다 보니 은혜 받는 사람이 많아지고, 은혜 받은 사람이 많아지니 충성스러운 일꾼이 많아지고, 주를 위해 살겠다고 헌신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한국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전 세계에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유다의 왕이 되었을 때,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계속해서 항복하라고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유다는 금방이라도 망할 것 같은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이때 히스기야는 자신의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성전에 들어가 밤새도록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에게 특별히 기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런 기도는 응답이 매우 빠릅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이사야 37장 33~38절에 보면,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화살 하나도 이리로 쏘지 못하며 방패를 가지고 성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며 흉벽을 쌓고 치지도 못할 것이요 그가 오던 길 곧 그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이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자기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였으므로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이어 왕이 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그래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사야 38장에 보면,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히스기야에게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 38:1).
그러나 히스기야는 낙심하지도 절망하지도 않고, 하나님 앞에 통곡하고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명심하세요. 세상적으로, 인간적으로 보기에 100% 불가능해보여도, 히스기야처럼 목숨을 걸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라고 응답하셨습니다(사 38:5~6).
하나님께서는 그 징조로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 도 물러나게 해주셨습니다. 히스기야는 참으로 놀라운 응답을 받았습니다.
앗수르 군대가 물러가므로 나라가 평안해졌는데,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대하 32장 22~23절에 보면,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주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제 히스기야가 높아졌습니다. 유명해졌습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앗수르 군대를 다 물리쳤다는 소문이 퍼져서 사람들이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왕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가 얼마나 존귀해졌는지, 사람들이 히스기야에게 보물을 마구 갖다주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때,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을까요?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나라가 평안해지고, 부요해졌을 때에 두 가지 위험이 찾아옵니다. 하나는 교만해지는 것이고, 하나는 방심, 방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명심하세요.
우리가 전쟁의 위험 없이 평안하게 살면 얼마나 좋습니까. 전쟁의 걱정 없이 살면 얼마나 좋습니까. 먹고 살 것을 걱정하지 않고, 점점 더 잘되고 부요해지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인간들에게는 타락의 근성이 있기 때문에, 평안해지고 잘 살게 되면 교만해집니다. 방종하게 되고, 방심하게 됩니다. 이것이 함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로 하여금 계속해서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깨어 기도함으로 거룩하게 살게 하기 위해 히스기야에게 죽을병을 주신 것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망할 위기에 처하거나 죽을병에 걸리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만,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전화위복됩니다. 전쟁으로 인해 망할 위기에 처하거나 죽을병에 걸리는, 괴로운 일이 오히려 축복을 가져다주고, 전화위복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엇이든지 기도로 해결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전화위복됩니다. 이것은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어려운 일은 언제든지 생길 수 있습니다. 전혀 예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왔다고 해서, 죽을병에 걸렸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세요. 히스기야처럼 목숨 걸고 기도하고, 통곡하며 기도하고, 기도로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하면, 어려움이 해결될 뿐 아니라, 축복이 찾아옵니다.
시편 119편 67절에 보면,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보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했지만, 이제는 말씀대로 살게 되었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있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근심거리, 고민거리가 있고,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어려운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기도로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고, 전화위복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 군대를 물리쳐주시므로 나라가 평안해졌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모든 사람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후에는 히스기야가 간절히 기도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더 이상 예전의 히스기야가 아닙니다. 사람이 변했습니다.
역대하 32장 27~30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지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온갖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 떼의 우리를 갖추며 양 떼와 많은 소 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 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부터 다윗 성 서쪽으로 곧게 끌어들였으니 히스기야가 그의 모든 일에 형통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나라가 아주 부강해졌습니다. 이때 교만과 방종에 빠지기 쉽습니다. 히스기야는 이 덫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히스기야가 교만해졌습니다. 히스기야가 교만해지니 눈에 보이는 보물이 다 자기의 것인 줄 착각하고,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과 점점 멀어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잠시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역대하 32장 25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는 교만해졌습니다. 그래서 죽을병에 걸렸다가 그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행동할 수 있습니까.
역대하 32장 24~26절에 보면,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행히 히스기야는 자신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회개하므로 용서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철저히 기도했다는 말씀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히스기야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달라졌습니까? 교만 때문입니다. 그가 간절히 기도하는 생활을 계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명심하세요. 기도생활이 중단되면, 믿음이 병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영적 호흡입니다. 목사, 장로라 해도,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죽어가기 시작합니다. 히스기야가 병든 이유, 영적으로 잘못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기도생활을 하지 않고, 교만해지니 허세를 부리게 되고, 자기 자랑을 하며 모든 영광을 자기가 받으려고 했습니다.
역대하 32장 31절에 보면,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가 교만해지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잠 16:18).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하나님께서 대적하십니다.
이사야 39장에 보면,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신하들을 통해 축하하는 글과 예물을 히스기야 왕에게 보냈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아주 좋아서 보물창고와 무기고를 다 보여주었습니다. 보여주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인간은 자신의 보물을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가진 재산을 자랑하고, 자신이 가진 보물을 자랑하는 사람만큼 미련한 사람은 없습니다.
히스기야가 그런 짓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를 책망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사 39:5~7).
이사야 39장 8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하고 또 이르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책망했을 때에 히스기야가 무릎을 꿇고 통곡하고 회개했다면, 살 길이 열릴 텐데, 히스기야는 아주 건방지게 행동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죽을병을 고쳐주셨을 때, 히스기야의 수한에 15년을 더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사 38:5). 하나님께서는 왜 15년이라고 기간을 말씀하셨을까요?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앞으로 15년 후에 데려가겠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제게 15년을 더 살 수 있게 해주신다면, 15년은 죽을 사람에게 덤으로 주신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그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저는 “나를 위해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겠다.”라고 결심할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의 본을 보여주면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믿음으로 무장하게 하고, 항상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전도할 것입니다.
이렇게 산다면, 저 자신에게도 복이 되는 것은 물론이요, 자자손손에게 이 복을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히스기야의 뒤를 이어 열두 살에 왕이 된 므낫세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사신 우상을 철저히 섬긴 것을 보면, 15년간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잘못된 삶을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아들에게 올바른 신앙교육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 자신이 본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므낫세와 같은 자식이 생긴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일생 중에 가장 좋았던 때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겸손했고, 방종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고, 항상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문제와 모든 고난이 축복으로 바뀌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다 해결된 후, 히스기야는 기도생활을 중단하고,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큰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오늘날 핵으로 무장한 북한은 남한을 계속해서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교만해지지 않고, 방종하거나 방심하지 않고, 항상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을 잘 섬긴다면, 오늘의 모든 어려움이 축복으로 바뀔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히스기야의 일생을 통해 얻은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어려울 때에 기도로 해결하는 것은 물론이요, 잘 될 때에도 더 겸손하고, 잘 살 때에 더욱 겸손하고, 더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더 열심히 보답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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