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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은 패망의 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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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5 07:26 조회3,2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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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은 패망의 선봉

 

교만은 패망의 선봉

2009년 01월 30일(금요철야)

본문 / 역대하 32:24~26

 

우리는 돈 많은 사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학벌이 높은 사람들 중에서 교만한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돈이 많으면 자기도 모르게 힘이 생기고 천 년을 살 것처럼 생각하고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어지는가 봅니다.

또 지위가 높은 사람은 걸음걸이가 다릅니다. 사람들이 하도 굽실거리니까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 학벌이 높은 분들은 모든 사람들을 자기 제자처럼 생각하나 봅니다. 그래서 교만하게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만할 만한 것들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 중에서도 교만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볼 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만하게 행동하는 것이 똑똑한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에 일부러 교만하게 행동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교만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요 미련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잠언 14장 3절에 보면,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6장 18절에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교만하면 패망한다는 것을 모릅니다. 거만한 마음을 가지면 넘어진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서 들어갈 때, 첫 번째 정복한 성이 여리고 성입니다. 여리고 성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강한 성이며, 그곳에 사는 백성은 강한 백성이었습니다.

여호수아 3장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에서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쳐들어가기 전에 많이 기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따랐습니다.

 

여호수아 6장 2~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순종했습니다.

여호수아 6장 20~21절에 보면,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순종하니까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무너지게 하셔서 쉽게 점령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아이 성을 치러 갔을 때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도 없었습니다.

여호수아 7장 3~5절에 보면,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 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아이 사람이 그들을 삼십육 명쯤 쳐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이 성을 얕보고 이삼천 명만 보내면 이길 것이라는 정탐꾼의 말만 듣고 행했다가 여지없이 패하고 말았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교만 때문입니다. 교만해지니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교만해지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무너지게 해주셔서 쉽게 이길 수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마치 자기들의 힘으로 이긴 것처럼 착각하는 교만함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여리고 성을 멸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할 줄 압니까, 그들에게 무기가 있습니까, 그들은 노예노릇만 할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이겼는데, 하나님을 쏙 빼놓고, 마치 자기들이 굉장히 힘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교만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지도 않았습니다. 작은 마을이니까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실수를 얼마나 많이 합니까. 교만하기 때문에, 거만한 마음을 가지기 때문에 이런 실수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유다 왕 히스기야는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열왕기하 19장에 보면, 앗수르 군사에게 포위되어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했을 때, 히스기야는 밤새도록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가 얼마나 능력이 있었는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룻밤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앗수르 군사가 다 송장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앗수르 왕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 자기 신하에게 칼에 찔려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렇게 큰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다고 하면, 여러분들 같으면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마땅히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주셨다고 온 백성과 함께 모여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히스기야가 그렇게 했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들 중에도 히스기야와 같은 실수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모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은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열왕기하 20장에 보면, 히스기야는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하니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응답해주셨습니다.

열왕기하 20장 2~7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는 15년 생명이 연장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몰랐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았습니다.

 

역대하 32장 24~26절에 보면,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주셨으면 감사해야 할 텐데, 히스기야는 죽을병에 걸렸다가 나았는데도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고 은혜에 보답할 줄 몰랐습니다.

히스기야가 왜 이렇게 했습니까? 역대하 32장 25절에 보면, “마음이 교만하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의 마음이 교만해져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부자가 되면 교만해진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 사업이 잘되어 부자가 되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부흥되어 몇 만 명 정도 모이면 목회자가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저는 성전을 짓고 이곳으로 올 때에 기도하는 가운데 응답받은 것이 있습니다. 겸손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계속 부흥을 주시고 계속 축복해주실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려고 씨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와 함께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며, 겸손한 자를 축복하십니다.

은혜를 받았을 때에도 교만해지기 쉽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남보다 기도를 많이 하고, 남보다 기도응답을 많이 받고, 큰 기적을 체험했을 때에도 교만해지기 쉽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히스기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밤새도록 기도하니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이 죽었습니다. 죽을병에 걸렸을 때에 통곡하며 기도하니 죽을병이 나았고, 생명을 15년 연장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이 교만해져서 감사할 줄 모르고, 은혜에 보답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불을 받고 기도응답을 받고 다 이루어졌을 때 교만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는 중병으로 고생하다가 기도응답을 받고 깨끗이 고침 받은 분이 있습니다. 그 병으로 인해서 고생할 때에는 교회에 열심히 나왔습니다. 목사님께 기도해달라고 해서 기도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병이 나았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상황에서 병이 나았으니 믿음이 더 좋아질 것 같고 더 감사할 것 같고 충성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분은 병 고침 받고 난 후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건강해지니까 옛날로 돌아갔습니다. 은혜를 입고 건강해지니까 세상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했지만 전혀 열매가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7년 전에 기도하다가 불을 받고 너무 감사해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는 아무리 기도해도 그런 은혜를 받지를 못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에게는 아주 큰 잘못이 있었습니다. 큰 은혜를 체험했지만, 열매가 하나도 없습니다.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품도 삶의 태도도 옛날과 똑같습니다. 이런 사람이 또 다시 은혜를 받으려면,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다가 불을 받는 것도 좋고, 기도하다가 주의 음성을 듣는 것도 좋고, 굉장한 이적이 일어나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열매입니다.

중요한 것은 열매입니다. 우리 가운데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열매가 하나도 없으면, 결국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태복음 7장 20~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많은 권능을 행하는 것은 은사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역사를 따라서도 그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그런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던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열매입니다.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고 말씀하십니다.

은혜를 받아도 열매가 없다면, 교만한 죄와 변하지 못한 죄악 된 행동과 옛 성품을 회개하고 열매 맺지 못한 것을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교만한 마음으로 또 다시 큰 실수를 했습니다. 열왕기하 20장 12~13절에 보면,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왜 이렇게 미련한 일을 했을까요? 교만한 마음 때문입니다. 자기 집의 보물을 자랑하는 사람은 도둑과 강도를 부르는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을 가져 이렇게 미련한 실수를 하니 열왕기하 20장 16~18절에 보면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책망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히스기야가 어마어마한 금과 보화를 가졌다는 것이 바벨론에 퍼지니까 바벨론에서는 쳐들어 올 것을 결심했습니다.

 

교만의 대가는 참으로 비참합니다. 그러므로 꿈에서라도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히스기야를 통해 깨닫는 교훈은 기도응답을 크게 받은 후에 교만한 마음이 생기기 쉽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25세에 왕이 되어 29년 동안 왕위에 있다가 54세에 죽었습니다. 39세였을 때에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히스기야의 39세 이후의 15년은 죽을 사람을 살려주셨으니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자기를 위해 살려고 생각하지 않고, 덤으로 주신 시간들을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았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역대하 28장에 보면,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는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죄를 많이 범한 왕입니다. 역대하 28장 22절에 보면,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곤고할 때에 더욱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우상숭배를 해서 하나님께 매를 맞을 때에 회개해야 하는데, 오히려 마음이 완악해져서 더 죄를 많이 범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왕입니까.

이렇게 타락했던 나라가 히스기야가 왕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다고 갑자기 변화될 수 있습니까. 왕이 바뀌었다고 갑자기 백성들이 바뀌겠습니까. 바뀌지 않습니다.

 

많은 왕들이 우상을 섬기고 타락했기 때문에 백성들 대다수가 우상숭배가 생활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백성들을 하여금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히스기야가 처음에는 잘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시켜 성전을 깨끗하게 했습니다. 아버지 때에 성전 구석구석에 우상을 들여놓았기 때문에 성전을 파괴하고 다 정리했습니다.

 

역대하 30장 6절에 보면, “보발꾼들이 왕과 방백들의 편지를 받아 가지고 왕의 명령을 따라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두루 다니며 전하니 일렀으되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 남은 자 곧 앗수르 왕의 손에서 벗어난 자에게로 돌아오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앗수르에게 멸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유월절을 지키는데도 모든 백성이 다 모여 지킵니다.

역대하 31장 4절에 보면, “또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을 명령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몫의 음식을 주어 그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힘쓰게 하라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온 백성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왕이 되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죽을병에 걸렸다가 살아났을 때에는 이전보다 더 열심히 할 뿐만 아니라 왕위를 계승할 아들에게 신앙교육을 시켜서 어렸을 때부터 기도하게 하고 성경을 암송하게 해서 절대로 우상숭배하지 않고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고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39세 이후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녀들에게도 신앙교육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가 보화를 쌓을 창고를 만들고 곡식 창고를 만들고 외양간을 아무리 만들어도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바벨론이 한번 쳐들어오면 끝나버립니다.

재산을 쌓아놓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타락한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그들을 깨우쳐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신앙으로 잘 양육해서 어렸을 때부터 말씀으로 무장하여 절대 우상숭배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히스기야에게서는 예전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히스기야가 15년을 더 살게 된 뒤, 3년 만에 얻은 므낫세는 12세에 왕이 되자마자 역대 왕들 중에서 가장 우상을 열심히 섬기고 악한 일을 행했습니다. 그것을 보면 히스기야의 15년은 참으로 부끄러운 시간입니다.

그의 마음이 교만해졌기 때문에 감사할 줄 모르고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하며 무엇이 중요한지 분별하지 못하게 되어버렸습니다.

 

누구나 마음이 교만해지면 영안이 어두워져서 분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실 때 영안이 밝아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교만한 자는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교만해지면 어리석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매 맞을 짓만 하고, 사람들에게는 욕먹을 짓만 합니다.

 

잠언 16장 5절에 보면,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십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 보면,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원수취급하십니다.

 

사탄이 어떻게 해서 사탄이 되었습니까? 천사가 교만해져서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려 하다 보니, 자기자리를 떠나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올라가려다가 마귀가 되었습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과 맞먹으려 하고, 하나님 노릇하려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대적하시는데, 망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교만하면 망합니다.

잠언 15장 25절에 보면,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십니다. 교만을 꺾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초등학생이었을 때보다 중학생이었을 때에 더 가난했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더 어려워져서 기거할 곳도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 안에 있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의 뿌리를 뽑기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교만하면 자꾸만 망합니다. 사업이 자꾸 망하는 사람, 집안이 자꾸 망하는 사람은 교만의 뿌리가 남아있는지 생각해보세요. 빨리 깨닫고 빨리 회개하고 교만을 버리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저는 제가 교만하면서도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살면서도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잘난 척했습니다. 그래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잠언 16장 18절에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8장 12절에 보면,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9장 23절에 보면,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멸망시키십니다. 그러므로 교만은 멸망의 선봉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낮아지게 하십니다. 교만하면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교만한 증거를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교만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도 잘 살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기도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한번 넘어져야 하나님 앞에 나아올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기 전에 미리 깨닫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둘째,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릅니다.

베풀어 주신 은혜가 많은데,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줄 모르고, 오히려 밤낮 원망불평만 합니다.

 

셋째, 자신의 허물과 부족을 모릅니다.

자기는 완전한 인간인 것처럼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합니다.

 

넷째, 교만한 자는 회개하지 않습니다.

교만하면 영안이 어두워져서 자기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합니다.

 

다섯째,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영광을 받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을 도둑질합니다.

 

여섯째, 배우려고 하지 않고 가르치려고 합니다.

진짜 실력자는 가르치는 것보다 더 배우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일곱째, 교만한 자는 충고를 받지 않습니다.

누가 충고하면 성질을 내어버립니다. 거만한 사람, 교만한 사람을 충고했다가 잘못하면 뺨맞습니다.

 

여덟째, 교만한 사람은 남을 대접할 줄 모릅니다.

대접받는 것만 좋아하고 받는 데만 익숙합니다. 대접해 보았어야 대접할 줄 압니다. 그리고 섬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섬김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이것은 아주 큰 교만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교만의 증거가 한 가지라도 남아있다면 철저히 회개하고 교만의 뿌리를 뽑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히스기야의 39세 이전과 이후는 전혀 다릅니다. 히스기야는 39세 이전에는 하나님을 참으로 기쁘시게 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39세 이후에는 교만하여 실패한 삶을 살았습니다. 차라리 39세 때에 죽었다면, 다윗 왕 다음으로 훌륭한 왕으로 역사에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축복하셔서 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생명을 15년 연장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히스기야에게 축복이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이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무조건 살려달라고 눈물로 통곡하는 기도할 것이 아니라 “아버지, 앞으로 제가 더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뜻대로만 산다면 살려주옵소서. 그러나 더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면 차라리 지금 불러가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가장 지혜롭고 복된 기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면, 가장 지혜롭고 복된 기도를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이었을 때에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어떻게 기도할까 생각하다가 “아버지, 평생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 제 소원인데, 제가 고등학교에 합격하고 공부하는 것이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데 필요하고 도움이 된다면 학비도 몽땅 주세요. 그러나 제가 고등학교에 가서 타락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면, 저는 고등학교에 갈 필요 없습니다. 제 길을 막아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합격하게 하시고 학비까지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고3 때에도 똑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시험을 치고 발표도 하기 전에 몇 배로 넘치는 장학금을 받게 하셨습니다. 기다렸다가 합격자 발표 나고 썼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기도가 복 받을 기도였습니다.

 

어떤 기도제목을 가지고 나오셨습니까? 사업, 취직, 건강, 승진, 진학의 문제입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기도하시겠습니까? 덮어놓고 “사업 잘 되고, 취직하고 건강하고 진급되고 진학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시겠습니까?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에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통곡하면서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15년을 더 살면서 교만해졌습니다. 계속 실수만 했습니다. 얼마나 비극입니까. 우리는 잘 생각해야 합니다.

 

병을 고쳐달라고만 기도하지 마세요. “아버지, 여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버지의 뜻대로만 살기 원합니다. 더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면, 제 병을 고쳐주시고, 더 살아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다면 차라리 지금 저를 불러가주세요.”라고 담대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업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저는 이 사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원합니다. 사업이 잘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면, 하나님께서 이 사업의 주인이 되어 맡아주십시오. 그러나 사업이 잘 되서 오히려 교만해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면 차라리 이 사업이 망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감동받으실 줄 믿습니다.

 

지혜롭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시고 응답하실 뿐 아니라 넘치는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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