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함 받은 자가 받는 복(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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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4-21 10:17 조회2,460회 댓글0건본문
택함 받은 자가 받는 복(23)
택함 받은 자가 받는 복 23
2020년 11월 22일(주일예배)
본문 / 역대하 18:28~32
사람은 자신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보면, 부모님께 효도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이 크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병환자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마음의 나병이 걸려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지 못합니다.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을 위해 수고하는데도 부모의 사랑을 깨닫지 못합니다. 마치 전혀 상관없는 사람처럼 삽니다.
이런 사람은 부모가 희생하고 사랑해도, 그것을 은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오히려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부잣집의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하겠습니까, 가난한 집의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하겠습니까. 부잣집의 자녀는 자신만 생각합니다. 오로지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부잣집의 자녀는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하지 않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습니다. 밤낮 불평하며 형제끼리 싸웁니다. 돈 때문에 형제끼리 원수가 됩니다. 그래서 부잣집의 부모는 자식이 효도하리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집의 경우에는 먹고살기 힘들어 부모가 자녀에게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제대로 입히지 못합니다.
부모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는 자녀들은 안타까워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합니다. 반드시 성공해서 부모님께 효도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님께 잘할까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집의 자녀들 가운데 효자가 많습니다.
가난한 집의 자녀들은 불평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고생하시는 것을 보면서 웬만한 것은 견딥니다.
부모님이 고생하시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불평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부모님을 위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집의 자녀 중에 효자가 많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 중에는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모르고 오히려 원망 불평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밤낮 원망 불평하며 삽니다.
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합니까?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영안이 밝아집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크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은혜를 받은 만큼 깨닫습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항상 감사하며 삽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복을 더 많이 받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대로 응답 받는 것은 물론이요, 생각하기만 해도 응답 받습니다. 날마다 이것을 체험하면 행복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사는 사람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세밀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만 해도 이루어집니다.
잠언 8장 17절에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습니다.
남 유다 왕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러나 북 이스라엘 왕 아합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바알 신은 섬겼습니다. 그는 아주 악한 왕이요, 타락한 왕이었습니다.
역대하 17장 3~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그가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더라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습니다. 첫째,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밧의 행동 하나하나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과 늘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 유다를 견고하게 하셨습니다.
역대하 18장 1절에 보면,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사밧은 크게 실수했습니다. 아합 가문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하여 우상을 숭배하지 않게 한 후에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바알을 섬기는 아합의 딸을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아이들은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바알을 섬기는 아합의 딸을 며느리로 삼았으니 후손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은 아합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여호사밧이 죽은 후, 여호람이 왕이 되었습니다. 여호람은 왕이 된 후, 그의 동생들을 다 죽였습니다.
역대하 21장 6절에 보면,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은 바알을 섬겼습니다. 바알을 섬기는 아합의 딸이 아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22장 3절에 보면,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였으니 이는 그의 어머니가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도 바알을 섬겼습니다.
역대하 18장 3~7절에 보면, “이스라엘 왕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시겠느냐 하니 여호사밧이 대답하되 나는 당신과 다름이 없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다름이 없으니 당신과 함께 싸우리이다 하는지라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오늘 물어 보소서 하더라 이스라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 명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하니 그들이 이르되 올라가소서 하나님이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하더라 여호사밧이 이르되 이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아직도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그는 내게 대하여 좋은 일로는 예언하지 아니하고 항상 나쁜 일로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 하더라 여호사밧이 이르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역대하 18장 18~22절에 보면, “미가야가 이르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섰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이스라엘 왕 아합을 꾀어 그에게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까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와서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재앙을 말씀하셨나이다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사밧은 미가야의 예언을 들었으니 싸우러 가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싸우러 나갔습니다.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나가서 싸웠습니다.
역대하 18장 29~32절에 보면,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 왕이 변장하고 둘이 전쟁터로 들어가니라 아람 왕이 그의 병거 지휘관들에게 이미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나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하고만 싸우라 한지라 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아서서 그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가게 하신지라 병거의 지휘관들이 그가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보고 추격을 그치고 돌아갔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급할 때에는 “주여, 살려주옵소서.”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급한데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십니다.
아합이 꾀를 내어도 소용없습니다. 누군가가 우연히 쏜 화살이 아합의 몸에 꽂혔습니다. 아합은 피를 많이 쏟아 죽었습니다. 수단 방법을 동원해도, 죽음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역대하 19장 1~2절에 보면, “유다 왕 여호사밧이 평안히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그의 궁으로 들어가니라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선견자 예후가 책망했을 때, 여호사밧이 다윗처럼 엎드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라고 회개했다면, 여호사밧이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선견자 예후의 말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선견자 예후가 예언한 대로 되었습니다. 남 유다도 바알 신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다가 멸망했습니다.
악한 사람들과 손을 잡으면 안 됩니다. 사업하는 분들은 악한 사람들과 동업하지 마세요. 신앙이 없는 사람, 복 받지 못할 사람과 손잡고 동업하면 같이 망합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과는 손을 잡아도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좋으신 분입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고통 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고난에서 건져주십니다.
출애굽기 2장 23~25절에 보면,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 중에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 당하여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돕는 사람을 우리에게 보내주십니다.
사사 시대에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사사기 4장 1~5절에 보면,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으니 그의 군대 장관은 하로셋 학고임에 거주하는 시스라요 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사기 6장 1~6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 메뚜기 떼 같이 많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낙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원수를 보내셨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괴로운 나머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시고 기드온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다윗은 위기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부르짖음에 반드시 응답해주셨습니다.
다윗이 쓴 시편을 보면, 하나님께 얼마나 부르짖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려움에 처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역대하 32장 20~23절에 보면,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진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을 멸하신지라 앗수르 왕이 낯이 뜨거워 그의 고국으로 돌아갔더니 그의 신의 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의 몸에서 난 자들이 거기서 칼로 죽였더라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주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열왕기하 19장 35절에 보면,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가 밤새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앗수르 군사 18민 5천 명을 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의 탄압을 받고 고생할 때, 사무엘 선지자는 결심했습니다. 사무엘상 7장 5~11절에 보면,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무기가 있습니다. 적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적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어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가 승리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시작한 후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한 은혜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특별히 은혜를 받았던 때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전도사로 사역할 때의 일입니다. 제 마음이 메마른 것 같았습니다. 마치 제 마음이 사막 같았습니다. 큰일이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불광동 뒷산에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배고프고 목은 아픈데, 기도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기도했는데도 맨송맨송했습니다. 진짜 화났습니다. 그대로 돌아가면 억울해서 참기 힘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날 밤, 밤을 새며 기도했습니다. 더 피곤했습니다. 화요일에도 계속 기도했습니다. 배고프고 목이 말랐습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낭떠러지 끝으로 갔습니다. 기도하다가 응답 받지 못하면, 몸부림치며 기도하다가 떨어져 죽으려고 생각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속옷까지 다 젖었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신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버리신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부르짖고 떨어져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힘을 다해 “주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순간 제게 불이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큰 불을 내리셨습니다. 순간 저는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 후, 한참 기도하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해가 떴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내려왔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3일 동안 기도했지만, 맨송맨송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르짖었을 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전심으로 부르짖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불이 임했습니다. 부르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강도사 고시를 앞두고 있었던 일입니다. 교계가 어지러운 것을 보니 목사가 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저 평신도로 살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실지 알 수 없으니 청계산기도원에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공부하느라 바쁜데, 저는 공부할 생각은 하지 않고 기도원에 올라가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내려가기 전에 기도하는데, 비가 많이 왔습니다. 그래서 우산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청계산에 가면 봉우리가 바위가 있습니다. 바위 위에 앉아 우산을 들고 기도하다가 제 모습을 보니 한심했습니다. 그래서 우산을 던졌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한 마디만 말씀해주세요. 순종하겠습니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제게 빛이 비쳤습니다.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보니 시커먼 구름 속에 난 구멍을 통해 빛이 비쳤습니다. 그것을 본 후,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며칠 지난 후에 강도사 고시를 쳤습니다. 많은 사람이 낙방했는데, 저는 합격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후에 시험을 쳤으니 하나님께서 책임지신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 33장 1~3절에 보면,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두 손을 높이 들고 있는 힘을 다해 하나님께 부르짖어보세요.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성도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부르짖어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응답 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하셔서 큰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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