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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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8 10:26 조회5,486회 댓글0건본문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
2011년 08월 14일(주일예배)
본문 / 역대하 16:7~10
솔로몬 왕의 증손자 아사 왕의 일생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 때와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우리에게 잘 보여 줍니다.
아사 왕은 41년 동안 왕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기부터 35년 동안에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가운데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역대하 14장에 보면, 구스 왕 세라가 100만 군대를 거느리고 쳐들어왔을 때, 아사 왕은 적은 수의 군대를 데리고 나아가 전쟁을 치르기 위해 진을 쳤습니다. 그리고 아사 왕은 하나님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대하 14:11). 지금 전쟁이 벌어지려고 하는 상황에서 아사 왕은 하나님 앞에 도움을 구하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사 왕의 이 기도를 들으시고, 100만 군대로 하여금 도망가느라 정신없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다 군대가 뒤를 따라가며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전멸시켰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왔던 곡식과 무기와 금은보화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래서 나라가 더 부강해지고, 큰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왕이 된 지 36년째 되던 해에 갑자기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전심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가 구스의 100만 군대도 전멸시킬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북쪽 이스라엘의 바사가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오자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생각하지 않고, 아람 왕에게 금은보화를 가져다주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 선견자 하나니가 “과거에 100만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만 의지하자 우리가 승리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이번에는 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람 왕에게 도움을 청하느냐.”라고 책망했습니다. 아사 왕은 하나님의 종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내며, 분노하여 선견자 하나니를 옥에 가두어 버리고, 백성 중에서도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도 옥에 가두고 학대했습니다.
역대하 16장 12절에 보면, 아사 왕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회개하면 되는데, 아사 왕은 하나님 앞에 구하지 않고, 의원들에게 치료해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래서 2년 만에 죽었습니다.
옛날에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기적을 보고, 축복을 받았던 왕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의 방법으로만 해결하니 신앙도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과거보다 현재가 중요합니다. 과거에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하고, 은혜도 많이 받고, 충성도 많이 하며, 헌금을 많이 했으면 뭐합니까. 지금이 중요합니다. 현재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과거에 매이지 마십시오. 과거에 너무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일이 많더라도 과거는 지나갔으니 과거에 매이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지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입니다. 마지막을 어떻게 보내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제가 서울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할 때의 일입니다. 장로님이 돌아가시게 되어 임종하실 때 담임목사님이 임종예배를 드리며 “장로님! 이제 천국에 가서 주님 만나시겠네요.”라고 했더니 장로님은 “죽어봐야 알지”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평생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고 장로님으로 사시다가 연로해서 돌아가시는 분이 구원의 확신도, 천국에 대한 확신도 없으셨습니다.
여러분,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신앙으로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사람의 평가는 마지막을 보고 나서야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며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것을 깨닫고 사는 사람이 거듭난 신자요,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평생 교회에 나와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 아니고, 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겸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살아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항상 겸손합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좋은 일이 있으면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고 감사하며,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며 삽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교만합니다. 자기 힘으로 사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자기 힘으로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별로 기도하지 않고, 기도하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기 힘으로, 자기 방법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자기가 잘 나고, 잘해서 잘 된 것으로 알고, 감사할 줄 모릅니다. 감사할 마음을 갖지도 않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 힘이 있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돈과 힘이 있으니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몸에 병이 생기면, 돈과 힘이 있으니 한국에서 제일 좋은 병원, 좋은 의사만 찾아 사람을 의지하여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타락한 아사 왕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렘 17:5~8).
아사 왕을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뢰하며 나아갈 때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그렇게 열매 맺으며 복 받는 삶을 살았는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니 결국에 망하지 않았습니까.
둘째,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고 사는 것, 흥하고 망하는 것, 우리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도 세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신앙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이 입으로는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살아가는 것과 행동하는 것을 보면, 자기 방법으로,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건강하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고 감사합니다.
사업이 잘되면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심을 알고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다. 자녀가 잘되면 하나님께서 자녀를 축복하시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사무엘상 2장에 보면, 한나는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라고 기도했습니다(삼상 2:6~10).
한나는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사람을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역대상 29장에 보면, 다윗은 사람들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며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대상 29:10~14).
다윗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셔서 우리가 받은 것이고, 하나님이 주셔서 받은 것을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뿐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겸손하고, 얼마나 하나님을 높이고 있습니까.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셨는지 알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문제의 해결책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생기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문제가 없어지게도 하십니다. 열쇠가 하나님 손에 있으니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함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 7절에 보면,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께서 축복의 문을 여시면 닫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의 문을 여시면 다 망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축복의 문을 닫으시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도와도 안 됩니다. 절대주권이 하나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괴롭히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하거나 보복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그 사람이 나를 괴롭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일하실 기회를 가집니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실수가 많지만,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가장 좋게, 가장 잘되게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사무엘하 7장 12~14절에 보면,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만약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사람의 매, 사람의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시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그대로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이방 여자들과 살며 우상숭배하게 되어 2번이나 하나님께서 나타나 책망하셔도 회개하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드디어 인생채찍을 드셨습니다.
열왕기상 11장 1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그는 왕의 자손으로서 에돔에 거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열왕기상 11장 23절에 보면, “하나님이 또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자가 되게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열왕기상 11장 26절에 보면,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또한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였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10장 5~6절에 보면,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 내가 그를 보내어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령하여 나를 노하게 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길거리의 진흙 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니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악독한 앗수르 군대가 북쪽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는데, 이 앗수르를 하나님께서 몽둥이로 사용하셨다고 합니다.
예레미야 50장 23절에 보면, “온 세계의 망치가 어찌 그리 꺾여 부서졌는고 바벨론이 어찌 그리 나라들 가운데에 황무지가 되었는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유다와 많은 나라가 바벨론에게 멸망했는데, 바벨론을 온 세계의 망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을 미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왜 그 사람을 보내셔서 나를 괴롭히게 하시는지.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그런 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을 미워하고 보복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이유를 깨닫고 죄가 있다면 회개하여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몽둥이를 치워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 몽둥이가 예뻐서 쓰시는 것도 아닙니다. 몽둥이를 쓸 때만 쓰고, 끝나면 아궁이에 넣어서 태워버리십니다. 그래서 앗수르나 바벨론도 없어졌습니다.
요셉은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형들이 자기를 노예로 팔아서 애굽의 노예가 되었지만, 그것은 형들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주셨다고 했습니다. 형들에 대한 미움도, 원망도, 보복하려는 마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이런 믿음으로 사는 사람과 함께하셔서 범사에 형통하게 하시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십니다.
그러나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엎드리지도 않습니다. 모든 것이 다 우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괴롭히거나 못되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미워하고 원수처럼 생각하고 보복하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예수 믿지 않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마치 하나님께서 안 계신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마귀의 지배를 받고, 마귀가 시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다 보니 아사 왕과 같이 그렇게 마지막을 비극으로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일 뿐 아니라 그 모든 만물과 인간을 다스리시고 주장하시는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기억하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고,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역대하 16장 9절에 보면, 하나니가 아사 왕에게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려고 하고, 하나님을 향하는 그 사람을 위해 능력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작은 문제가 생겨도 여러분의 힘으로만 해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해결책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완전하신 하나님을 통해서 가장 완전하게 해결하고, 더 좋게 해결하며, 더 큰 축복을 받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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