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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복을 받으면서 사는 사람들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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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03-31 11:14 조회1,2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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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복을 받으면서 사는 사람들의 마음

2021년 10월 17일(주일예배)

본문 / 열왕기상 14:6~13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어디를 가든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사는 것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것보다 더 큰 복입니다. 이것은 매우 귀한 복입니다.

여러분은 어디를 가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축복을 받고, 평생 하나님으로부터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을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다윗처럼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않았습니다.

여로보암은 매우 악독했습니다. 그는 사신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저버리는 매우 악한 왕이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버리되 거름 더미를 쓸어 버림 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공중의 새가 먹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니라(왕상 14:10~11)”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는 저주를 받지 않고, 백성들이 슬퍼하는 가운데 장례식을 하고 무덤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기 때문입니다(왕상 14:12~13). 아비야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뜻을 품었기 때문에 저주를 받지 않았습니다.

아비야는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통곡하는 가운데 장례식을 했습니다.

 

아비야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뜻을 품어 저주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비야가 어떻게 행동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추측할 뿐입니니다.

아비야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뜻을 품은 것만으로도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마음을 가진 것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 어떤 상황에서든, 무슨 일을 하든지 매 순간 우리의 마음 상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생각을 하는가, 고약한 생각을 하는가에 따라 복을 받을 수도 있고, 저주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뜻을 항상 품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뜻을 품고 살 때, 복을 받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뜻을 가지고 하나님께 서원하며 기도했습니다. 창세기 28장 20~22절에 보면, 야곱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해주시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아버지 집으로 평안히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면,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노라고, 하나님 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않겠노라고, 기둥으로 세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서 1/10을 반드시 드리겠노라고 서원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한 결과, 야곱은 평생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매우 큰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편이 되어주시고,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면, 걱정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형통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갔습니다. 사실 부모와 같이 살지 못하고 도망간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좋지 않은 일로 인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야곱을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아들을 열두 명 낳았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아들 요셉을 잃어버려 슬퍼했지만, 요셉은 애굽에서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야곱은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야곱이 죽은 후, 야곱의 장례식은 매우 성대했습니다. 야곱은 끝까지 복을 누렸습니다. 야곱은 선한 뜻을 품고 서원 기도한 것으로 인해 이렇게 복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평생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은 날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움직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도착한 후로는 어디를 가든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장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말씀하시면, 언제든지 떠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언제든지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항상 장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디서든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은 생활 속에서 하나님과 늘 함께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늘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살 때, 경건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사라와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사라와 의논했다면, 사라는 기절했을지 모릅니다. 결사적으로 반대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브라함에게 큰 시험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 말씀에 순종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낳은 이삭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 15:4, 5).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으니 아브라함이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습니까. 고민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첫째, 아브라함은 이삭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했지만,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아브라함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심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다시 살려서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실 것을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7~19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기쁘셔서 아브라함에게 모든 복을 주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으며 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기 위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우리의 믿음이 매우 작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적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생각해보세요.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재산과 목숨을 드릴 수 있는가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사랑한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셋째, 우리에게는 타락의 근성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음에도 하와는 그것을 따먹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에게도 주어서 그것을 먹게 했습니다.

 

타락한 속성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어느 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어깁니다.

그러나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타락한 속성이 해결됩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믿음으로 충만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갖게 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사랑으로 충만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합니다. 그리고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사랑으로 충만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복을 많이 받으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방종하기 쉽습니다. 방탕하게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끝까지 변함없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위대한 점입니다.

아브라함은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참으로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평생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아 누리며 살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이 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막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에 교회가 생겼습니다.

 

동양은 서양에 비해 복음이 늦게 들어왔습니다. 서양에 복음이 일찍 전해졌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일찍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들은 교만해졌습니다. 방종하고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게을리했습니다.

그들은 기도생활을 게을리했습니다. 기도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하나님과 점점 멀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렸습니다. 방종하고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음란한 짓을 했습니다. 죄를 많이 범했습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만 남아있습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7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에 속했습니다. 그만큼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경제대국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가 굉장히 잘 사는 나라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만해졌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조차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게을리합니다. 열심히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학원을 여러 곳 보냅니다. 주일에는 교회에 보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신앙이 없습니다.

 

한국 교회 중에서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가 매우 많습니다. 교회에 아이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가 많습니다. 이것은 한국 교회의 어두운 미래를 보여줍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아이들이 주일학교 예배를 드리고도 대예배도 드렸습니다. 주일저녁예배, 수요일 저녁예배도 드렸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갔습니다.

그때 같이 교회 다녔던 친구들 중에는 장로가 된 친구가 많습니다. 어렸을 때에 신앙생활한 것이 큰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교회에서는 부모와 아이가 같이 교회에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와 아이가 같이 예배드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참 훌륭한 부모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집회를 인도하러 가면, 어느 교회에서는 초등학생들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집회 때에는 2시간 이상 예배드립니다. 1시간 이상 설교합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설교를 들으며 열심히 기록합니다.

초등학생들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며 제가 감동을 받은 적 있습니다. 앞서가는 교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녀를 지옥으로 보내지 않으려면, 주일학교에 보내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예배드리시기 바랍니다.

올바르게 예배드리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자란 후에도 교회를 떠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은 교만합니다. 방종합니다. 방탕하게 살아갑니다. 많이 타락했습니다. 성도들도 많이 타락했습니다. 이것은 위기임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복을 받아도, 방종하거나 방탕하지 않으려면, 하나님과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죄지을 시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다 보면, 죄지을 시간이 없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은 후,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교만은 제게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제 친구들이 저를 보고 교만하다고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제가 교만할 이유가 없는데, 저를 교만하다고 하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집사님께 물어봤습니다. 친구들이 제가 교만하다고 하는데, 정말 제가 교만한가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집사님도 제가 교만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로 많이 울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하나님께서 제게 “너는 이곳에서 겸손을 배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제가 얼마나 교만했으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이 교회 건물을 완공한 후, 입당예배를 앞두고 있을 때였습니다. 기쁘고 즐거워야 할 텐데, 저는 왠지 두려웠습니다.

근심, 걱정, 불안, 공포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집에서 교회까지 오는 길에서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부산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되면, 제가 가장 먼저 순교할 것 같았습니다. 온갖 생각이 저를 공격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 들어와서 혼자 기도했습니다.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제게 “겸손하기만 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새 건물을 지었으니 많은 사람이 칭찬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들으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을 불안하게 하셔서 저를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제게 겸손하기만 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전에 부산에 노회가 하나뿐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부산에서 목회하시는 교단 목사님들이 제게 제가 한 주를 어떻게 사는지 이야기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주 동안 제가 어떻게 사는지 월요일부터 시작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는 목사님들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중단했습니다.

 

이야기하는 제 마음에 교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듣는 목사님들을 정죄하는 마음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는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제 마음이 잘못되었습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설교해서는 안 됩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강의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교만한 마음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을 깔보는 마음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그 후에 미국에서 이틀 동안 목회자세미나를 인도한 적 있습니다. 그때 저는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분들의 입장을 생각하며 강의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그때 제 강의를 녹음한 테이프가 엄청나게 팔렸다고 합니다.

제가 겸손한 마음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던 것입니다.

 

저는 제가 얼마나 교만한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제가 강단에서 혼자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저를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너는 왜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니. 그들을 불쌍히 여겨줄 수 없겠니. 그들을 위해 울어줄 수 없겠니. 그들을 위해 기도해줄 수 없겠니. 그들을 안아줄 수 없겠니. 그들을 축복할 수 없겠니. 그들을 사랑할 수 없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있는 교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평소 제가 판단하고 정죄했던 사람들을 축복하며 기도했습니다. 안아주듯 두 팔을 벌려 기도했습니다.

그 후, 그들의 마음이 변화되었습니다. 저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하는 일을 도와주려고 했습니다. 그 후 부산에 있는 목회자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교만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증거가 있습니다. 설교를 들어도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목회자 중에는 설교를 잘 하는 사람도 있고, 설교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성령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벧전 5:5).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은혜를 사모하며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어떤 사람의 설교를 듣든 은혜를 받습니다.

 

저는 방종하기 쉽고 방탕하기 쉽습니다. 저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매일매일 하나님의 일에 전심전력했습니다.

죄지을 시간이 없게 했습니다. 일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일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아주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에 있는 신현교회에서 사역할 때의 일입니다. 제가 그 교회에 처음 갔을 때, 신학교 동기가 그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신학교 동기는 주일에 자신이 맡은 것만 했습니다. 그리고 주일에만 교회에 와서 사역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교회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습니다. 교회 구석구석을 살폈습니다. 정리할 것이 있으면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는가, 얼마나 충성하는가는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그러면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감동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다. 복을 부어주십니다. 길을 열어주십니다.

 

디모데전서 4장 5~8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12~16절에 보면,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살면, 아브라함처럼 계속 복을 받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게 하시고, 아브라함처럼 평생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받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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