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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33장

우리는 행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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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01 17:45 조회4,3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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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복한 사람

 

우리는 행복한 사람

2007년 03월 18일(주일예배)

본문 / 신명기 33:29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인 모세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대로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보냈고, 드디어 가나안 땅이 눈앞에 보이는 곳에 다다랐습니다.

이때 모세는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올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 살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큰 감회에 젖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세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 산에서 죽었습니다.

신명기 33장에 보면, 모세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한 후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행복자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 사람들은 돈과 권세와 학식이 많아야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되기를 갈망하고 그런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돈이 많은 사람이나 권세가 높은 사람이나 학식이 많은 사람에게 행복하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돈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형제 사이의 의가 상하고, 부모 자식이 원수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존 스타인벡의 중편소설인 〈진주〉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키노와 그의 아내 조안나는 어부였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바다에 나갔다가 운 좋게도 크고 갑진 진주를 발견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가난이 끝나고 행복한 삶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뿐이었습니다. 이들이 큰 진주를 찾았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그 진주를 보기 위해 키노의 오두막집을 기웃거렸습니다.

이들은 하루아침에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평소에 불친절하게 대했던 동네 의사까지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등 과잉친절을 베풀었습니다. 나중에는 도회지의 장사꾼들이 그 진주를 싼값으로 매입하기 위해 폭력배를 동원하고 이들 부부를 협박했으며, 심지어 한밤중에 강도가 침입하여 키노는 그 진주를 지키기 위해 격투까지 벌여야 했습니다. 결국 이들 부부는 깊이 의논한 끝에 배를 타고 깊은 바다에 나가 그 진주를 바다 속에 던져버렸습니다.

이처럼 과다한 물질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참 행복은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청와대의 초청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그분들과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분들이 “목사님, 이곳은 저주받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곳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고 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단히 좋아 보이는 선망의 자리지만, 당사자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지식이 많다고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철학자 괴테는 “세상 사람들은 나를 행운아라고 말하는데, 외부적인 조건이나 환경을 보면 그럴 것 같지만, 사실 나는 살아가는 동안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여류작가로 불리는 프랑수아르 사강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소르본대학에 재학 중이던 18세 때에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소설을 발표한 천재작가요, 미모의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이혼과 도박, 알코올중독 그리고 약물남용으로 인해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녀는 항상 인생을 부정적으로 생각했고, 낙심과 탄식 속에 하나님을 등지고 산 무신론자로서 자신만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외모가 잘 생겼다고 행복합니까? 최근 들어 미모의 인기 연예인들이 자살하는 것을 볼 때,외모가 잘 생겼다고 행복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부귀영화를 누리고 쾌락을 누린다고 해서 행복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이 세상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려보고,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져본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9세기 세계를 지배했던 스페인 사라센 제국의 압둘 라만 3세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왕국을 49년간 통치했습니다. 그의 연간 수입은 무려 3억 3천 6백만 불이었고, 세계 최강의 육군과 해군을 가지고 있었으며, 3,321명의 아리따운 황후와 616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두며 한 말은 자못 충격적입니다. 그는 “오랜 세월의 영예로운 통치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행복을 누린 날은 단 14일 뿐이었다.”라는 충격적인 말을 남겼습니다.

 

참된 행복은 이 세상의 것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 행복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데 있습니다.

행복의 조건을 다 구비하고 있어도, 마음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본문 신명기 33장 29절에 보면,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은 것은 축복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아직도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특히 복음을 들을 기회조차도 갖지 못하고,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는다고 해서 다 믿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들어도 믿어지지 않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았으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3~7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13절에 보면,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시민이 되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복음을 듣고 구원 받는 것은 재벌이 되고 큰 권세를 갖고 박사가 되고 인기인이 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복을 받는다 해도, 복음을 듣지 못해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저주 받은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아무리 길어봐야 100년 이하입니다. 그러나 저 세상에서의 삶은 영원합니다.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처럼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먹고 사는 일에 매여 밤낮 걱정하며 사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도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믿지만, 아직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모두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영안이 밝아지고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첫째,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 깨닫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일수록 철저히 회개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딤전 1:15). 철저히 회개한 사람일수록 더욱 겸손해지고 거룩해지며 죄 사함의 기쁨이 넘칩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크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감사와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해주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는 사람은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넘치고 진정한 행복자가 됩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는 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대신 저주를 받으시고 모든 저주를 속량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수님을 믿으면 율법의 저주로부터 속량함을 받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구원의 확신이 있는 그리스도인은 얼굴이 다릅니다. 얼굴에 기쁨이 있고 행복이 넘칩니다.

 

셋째, 변화가 생깁니다.

사명감을 깨닫게 되기 때문에 삶의 자세가 달라집니다.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삶의 목적과 목표와 인격과 성품이 달라지고,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행복하게 해줍니다.

 

넷째,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한없이 기쁘고 즐겁습니다.

예배드리는 것이, 기도하는 시간이 즐겁니다. 남을 섬기고 봉사하기를 기뻐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 봉사하는 부서가 많이 있지만 특별히 차량봉사부와 경조위원회의 수고는 섬김의 기쁨이 없이는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와 상관없이 아무리 춥고 더워도 한결 같이 섬기시는 그분들은 보통 분이 아닙니다. 은혜 받은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섬김입니다.

교회가 크다보니 장례도 잦습니다. 생업을 내려놓고 언제든지 달려 나오는 운구위원과 백합성가대의 섬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쁨으로 섬기는 이분들의 모습에서 감동을 받습니다.

 

영국의 에드워드 모트는 37세까지 캐비닛 제조공으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열등의식과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의 삶은 전혀 의미가 없었고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그는 런던 거리를 배회하다가 한 교회의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존 하얏트 목사가 요한복음 3장을 본문으로 ‘거듭나는 도리’에 대래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그의 마음에 ‘그래, 나도 거듭나야 한다.’라는 강렬한 소원이 생겼고,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여셔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후 그는 “내 망치 소리는 이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 망치는 이제 춤을 춘다. 그리고 내 눈동자에는 생기가 돌고 마음속에는 생수가 솟는다. 예수님께서 내 마음에 오셨기 때문이다. 나는 거듭났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 소망은 산 소망이었습니다. 전에 하던 일을 계속했지만, 행복한 목공으로 완전히 변화되었고, 삶도 점점 풍요로워졌습니다.

그 후 자신이 일하던 목공소는 그의 소유가 되었고 사업은 날로 번창했습니다. 결국 에드워드 모트는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첫사랑을 기억하며 감사의 찬송시를 작사했습니다. 그 찬송시가 바로 찬송가 488장입니다. 1절과 4절의 가사를 보겠습니다.

1.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4. 바라던 천국 올라가 하나님 앞에 뵈올 때

구주의 의를 힘입어 어엿이 바로 서리라.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참으로 은혜 받은 자의 간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찬송이 되기를 바랍니다.

 

스위스의 철학자 힐티는 인간의 행복에 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방법과 논리 그리고 지식을 가지고 행복을 추구하려 해도, 이는 추상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힐티는 성경을 읽고 성경 안에서 참다운 행복론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그는 모든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행복론자가 되었고, 77년이라는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매일 같이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는 생활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는 주 안에 있는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며, 찬송하는 시간이 가장 평화로운 시간임을 깨달아 그의 ‘행복론’에서 이를 증거했습니다.

77세로 세상을 떠날 때, 그의 책상에서 빛바랜 낡은 성경과 〈영원한 평화〉라는 제목의 미완성 논문이 발견되었는데, 그 위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그리스도에게 있으니 파랑새를 잡으려 하는 허황된 행복론자들이여, 어서 속히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라!”

 

1935년 미국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한 젊은이가 시대의 흐름과 여론을 수집 분석하는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바로 조지 갤럽의 ‘미국여론연구소’입니다. 이 연구소는 세계적으로 기반을 넓혀 나갔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갤럽연구소가 있습니다.

갤럽은 원숙한 나이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가 ‘행복’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 관한 여론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그 결과를 놓고 TV방송국의 아나운서와 대담하는 자리에서 그는 “가장 행복한 사람은 생생한 신앙적 체험을 가진 사람이었고 불행한 사람은 알코올 중독자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우리는 성령의 큰 은혜를 받아 생생한 체험적인 신앙을 가진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어떤 환난과 시험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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